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6화(146/221)
146. 동료 (2)
146. 동료 (2)
나도 인정한다. 전생의 나는 좀 재수 없었다.
‘재수 없는 새끼.’
‘욕은 하지 마시고요.’
조금 많이.
과고 때 형성된 내 인간 관계관은 당연히 대학교에 와서도 이어졌다. 조별 활동을 하든, 뭘 하든 남을 까 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건 기본인 상태.
연구를 하다 잘못되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동료를 탓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볼 때 이 연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그때의 나는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 것보다 남에게서 문제를 찾는 편이 더 쉬운 길이었으니까.
“나 신문에서 얘 본 적 있어. 너 김만덕 맞지? 줄기 세포계의 1인자로 거듭난 천재 소년!”
윽, 저 문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김아진. 전생 때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랩실 동료.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김아진은 내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잠깐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며 동아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찾아냈다.
“아니 핸드폰이 없어졌지 뭐야. 아이폰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가만 보면 레이첼 너는 머리는 좋은데 좀…”
“거기까지만 말하지?”
웃으면서 남자를 바라보는 김아진. 그 모습에 나는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나이대엔 학부생이겠구나.’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이제 막 박사 1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녀는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고 뇌인지신경망을 주 분야로 김성진 연구실에 들어왔다.
‘아무리 서브프라임 여파가 컸어도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을텐데.’
그 당시엔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본토 미국인들조차 취업난에 시달려 하던 연구도 그만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그래도 미국서 박사 과정을 하다 돌아온다는 건 그만큼 많은 걸 포기하고 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환경이 바뀐다고 기존에 연구하던 주제까지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그녀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치매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제거한다고? 재밌겠다!’라며 내 연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연구 주제를 바꾼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이제 슬슬 졸업 논문 마무리 지어야 해서.”
“맞다, 이제 곧 있으면 심사지? 한 번에 통과되길 바랄게.”
땡큐, 라고 말하던 김아진은 내게도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동안 머리를 스치고 간 한 생각.
‘김아진이라면?’
연구가 진행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실험실. 그리고 동료.
에단 교수의 제안을 수락하면 나는 실험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있으면서 혹시라도 변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 또 과거의 나로 돌아갈까 봐.
그리고 동료.
나는 같이 실험을 진행할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히 실험 데이터를 정리해 주는 보조 연구원이 아니라 이 연구에 대해 잘 아는,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동료.
그러기 위해서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둘째, 같은 대학의 구성원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셋째, 치매 치료에 관심이 있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되었다.
나도 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이미 전생에 숱하게 싸웠던 사람이다. 이번 생이라고 다를 거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싸운다는 말은 그만큼 이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해조차 못 했다면 싸우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의견에 순순히 따라줄 사람이 아닌, 싸우더라도 같이 연구할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이제 막 입학한 내가 전문 연구원을 구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입장 바꿔서 신입생이 갑자기 ‘같이 연구하지 않을래요?’라고 다가온다면 나라도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낼 테니까.
실력 부분에서 믿을 수 있고, 지금 당장이라도 같이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
갑작스러운 내 호칭에 김아진이 나를 바라봤다.
“저, 저기 그러니까.”
하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생에 그렇게 매몰차게 굴었던 사람이다.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팀을 꾸리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을터였다.
여전히 내게 그녀는 ‘날 내쫓은 팀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김성진에 대한 원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와 있으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그 사람들도 단순히 내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었을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다가 이젠 이마 위에도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옆에 있던 사람들이 “오오”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우리를 지켜봤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고백해! 고백해! 진짜 첫눈에 반했나 봐!”
“스티븐, 재미없어. 급한 일 아니면 이만 가볼게. 룸메이트가 기다리고 있어서.”
내 머릿속은 지금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대충 ‘인간은 안 변해’, 와 ‘상황은 변하지.’로.
내가 그녀를 만난 건 박사 과정 중이다. 지금 학부생 수준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전생과 지금은 시기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많은 게 다르다.
그래, 다르다.
“조, 좋아하세요?”
“…엉?”
용기내어 낸 말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오오오오~”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미묘한 어감 차이를 느낀 김아진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냈다.
“유, 유전자 좋아하세요?”
“…뭐?”
“유전자 편집 기술이요!”
엥, 이어지는 대화에 주변인들이 급격하게 식었다. 다들 미간을 좁히며 “뭐야?”, “신종 고백인가?”라고 웅성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말에 비로소 김아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 졸업 논문이 CRISPR-Cas9 관련인데?”
CRISPR-Cas9, 유전자 편집 기술의 핵심이었다.
*
‘…미치겠네.’
나는 연구실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한 채로 서있었다. 일단 급한 대로 “같이 연구하실?”이라고 말은 해놨다만, 이후가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기억을 뒤집어봐도 그녀와 잘 지냈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김아진하고만 같이 연구를 했던 건 아니었다. 연구 주제가 주제였던 만큼 관심을 보인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그녀를 포함해서 4명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그중 한 명이 전에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에서 봤던 당시 랩장, 김민성을 포함해 우리는 같이 연구를 진행했다.
‘같이 연구한다는 명목이긴 했지만···사실상 나 혼자 진행하는 거나 다름없었지.’
애초에 누군가랑 같이 지내는 게 불편했던 나는 웃으며 다가오는 팀원들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 날이 선 말만 내뱉었고.
미국식 문화에 익숙한 김아진하고는 연일 충돌의 연속이었다.
‘괜히 김아진한테 부탁했나?’
이제 와서 후회해 본들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유전자 편집 기술 좋아하세요?’라는 내 말에 자신이 아는 내용을 줄줄 읊을 정도였으니까.
그녀만큼 적합한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1학년, 그것도 대학원생도 아닌 학부생 1학년과 연구를 같이하려는 사람도 없을 거고.
아무리 아밀로잽과 줄기세포로 유명해졌다고 해도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었다.
“이미 와 있었네!”
“네. 교수님은 안에 계세요.”
“에단 교수님이라고 그랬지? 이분 유명하셔서 꼭 한번 뵙고 싶었었는데.”
반대로 에단 교수는 그의 말대로 ‘천재 교수’로 꽤 유명한 듯했다. 적어도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었다. 그가 있는 분야 내에선 알아주는 학자이자 연구원이었다.
김아진은 살짝 설레는 표정과 함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에단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종류별로 차를 꺼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 종류만 11개.
…이런 준비성은 조금 무서운데.
“어서 오세요. 편한 곳에 앉으세요.”
에단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 실험실로 들어가겠습니다.’
‘! 역시 만덕 학생도 저와 생각이 같은—’
‘그 대신 한 명 더요.’
‘?’
연구실에 들어가겠다는 말에 에단 교수는 반색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일단 면담부터 해보지요…”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연구실로 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에단 교수가 본론을 꺼냈다.
“그래요, 이 학생인가요? 김아진, 분자세포생물학 전공?”
“네! 김아진입니다.”
“졸업 논문도 이미 완성했다고 들었는데 연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요? 졸업을 늦추겠다는 소리인가요?”
···? 졸업을 늦추겠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에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김아진을 바라보자 그녀가 찡긋 웃으며 “서프라이즈~”라고 이야기했다.
서프라이즈는 무슨!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디까지나 졸업 논문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이미 다 쓴 논문을 바꾼다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김아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연구를 같이 진행하겠다는 생각인지 에단 교수의 질문에 모두 받아쳐 내고 있었다.
“아뇨? 1년 내로 연구를 끝낼 건데요?”
“졸업 논문 심사 제출을 하고 통과를 받으려면 적어도 한 학기 전에는 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진 학생은 지금···5학기째군요?”
“그럼 5학기 때 연구하고 6학기 때 심사받으면 딱이겠네요!”
너무 당당하게 말한 탓일까 오히려 에단 교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할 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김아진은 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기존에 써뒀던 걸로 하죠. 뭐!”
…긍정적인 사람이다. 문득 전생에 그녀와 자주 부딪혔던 이유 중 하나가 떠올랐다.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지, 가볍다고 해야 할지.
안되면 될 때까지, 라고 말하는 나와
안되면 다른 걸로! 라고 말하는 그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 놓여있었다.
“괜찮습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으면 연구에 참여하기 어려울 텐데요?”
“제가 또 마침, 졸업 논문으로 내려고 했던 게 유전자 편집 기술이지 뭐에요? 이런 우연이, 아니 운명이!”
결국 에단 교수는 시선을 피하며 “…그러면 연구를 빨리 진행하든가요.” 라고 말했고 김아진은 진심으로 기쁜 듯 작게 세레모니를 했다.
‘뭐···. 어쨌든 잘 된 건가.’
실험실과 동료. 두 개를 얻었다. 이제 남은 건 연구뿐.
에단 교수는 김아진을 상대하느라 에너지를 다 사용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우리를 내보냈다.
그의 연구실을 나온 후,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졸업을 늦춘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안 늦출 건데?”
“예?”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아까 말로는 졸업도 늦출 것처럼 말하더니?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하버드 1년 학비가 얼마인데! 졸업이 미뤄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연구할 생각은 없는데?”
“그런데 왜…?”
하지만 내 말에 오히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자신 없어?”
“…자신 없는 게 아니라 연구라는 게 원래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요.”
“1년이면 충분히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원하는 데이터값이 충분히 나오기까지—”
하지만 나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이래서는 꼭 연구가 실패할 거라고 미리 말하는 것 같잖아.
“빨리 연구 일정이나 잡아요. 1년 안에 끝내려면 오늘부터 시작해도 빠듯하니까.”
“좋아, 좋아~”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김아진과 이후 연구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입생인 나와 다르게 김아진은 수업 시간표가 널널한 편이었고 일정을 잡는 데는 수월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연구 방향에 대해 토의하기 시작했다. 카페테리아 한쪽에 앉은 그녀는 레모네이드를 들이켰다.
“치매를 일으키는 주 가설 중에선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가설이 가장 유력해요.”
“어, 나 그거 뭔지 알아.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APP)에서 파생되는 거잖아. 뉴런의 세포막에서 발견되고.”
“맞아요. 그 외에도 다른 단백질 축적을 억제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게 일단 첫 번째 과제에요. 그 외에 세포와 관련된 자문은 교수님께서 봐주신다고 했고요.”
게다가 실제로 졸업 논문을 이쪽과 관련해서 진행했던 덕인지,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해서도 따로 설명할 부분은 없었기에 생각보다 이야기는 잘 진행되었다.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전생엔 틈만 나면 의견 차이로 싸웠었는데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한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뭔가···뭔가···.
‘…왜 김아진이랑 사이가 안 좋았더라?’
탁. 그 순간, 김아진이 유리컵을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말이야.”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김아진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 모습을 본 순간 전생의 그녀 별명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 모든 의견에 태클을 거는, 정확히는 내 의견에만 태클을 거는—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프로 이니시에이터, 즉 싸움꾼이었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