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49화(149/221)
149. 꿈 (3)
149. 꿈 (3)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적극 지원하시겠다는 의미인가요?’
‘네, 맞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전화가 왔던 게 불과 일주일 전. 나는 고급 레스토랑 앞에서 들어가길 망설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줄기세포는 아직 치료제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물론 다리가 마비된 실험용 쥐와 개를 걷게 만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험에서의 의미일 뿐.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거쳐야 할 과제가 산더미였다.
‘당장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대상자를 모으는 것도 문제인데···.’
나는 줄기세포가 끝나던 날, 크리스 교수의 연구실로 끊임없이 걸려 오던 전화들을 떠올렸다.
자기 다리를 고쳐 달라는 사람, 돈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으니 걷게만 해달라는 사람, 자신은 마비까지는 아니니 분명 금방 고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중에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 시중에 유통될 단계가 아닙니다.’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괜히 헛된 희망만 주며 희망 고문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해주는 게 그들을 위한 길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두 다리를 걷게 되는 날들이 오겠지만…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단호한 크리스 교수의 말에 점점 걸려 오는 전화는 줄어들었고, 우리가 줄기세포로 베니를 치료했던 일은 쉬지 않고 올라오는 연예 기사 속에 파묻혀 잊혀져갔다.
…그렇게 잊힌 줄 알았는데. 신텍시스의 회장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길 원했다. 정중히 거절해도 그 이후로 계속 전화가 걸려 왔고, 이럴 거면 그냥 한번 만나서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반갑습니다. 김만덕 학생.”
“…안녕하세요.”
높은 지배인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프라이빗 룸.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
신텍시스의 대표 빅토르 리안이었다.
“편하게 앉으세요. 오시는 길이 힘드시진 않으셨는지요?”
“네.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어서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더 좋은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멀리 위치하면 안 나오실 것 같아서 말이죠.”
정답이다. 위치라도 멀면 위치를 핑계로 거절하려고 했는데, 빅토르는 딱 애매한 위치의 음식점으로 나를 초대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자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건만 간단히 듣겠습니다. 이후에 일정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빅토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한학수나 다른 사람들한테서 봐왔던 눈빛과 비슷했지만 뭔가 그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역시.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지요?”
빅토르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앞에 놓여 있는 나이프와 식기들이 어쩐지, 조금 위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여기서 밀려선 안 된다.
“지금은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원하려는 겁니다.”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저는 줄기세포 연구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 말은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살짝 고민하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무슨 연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순간 말해도 되나 고민했지만…이미 치매 치료제 연구하는 건 기사로도, 인터뷰로도 말해둔 상황이었다. 굳이 숨길 내용도 아닐뿐더러 숨겨질 내용도 아니었고.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인터뷰에서 언뜻 보긴 했지만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연구인지는 몰랐습니다.”
간혹 투자를 받기 위해 거짓 연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썩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짓 연구를 하는 연구원 취급을 받은 셈이니까.
그런 내 감정을 읽었는지, 빅토르가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쪽에 오래 있다 보니 워낙 다양한 사례들을 봐서 말이죠. 저는 이 자리에 정식으로 제안을 하러 온 거기도 하고요.”
“제안이라···저는 거절했습니다만.”
“조건을 아직 안 듣지 않았습니까.”
조건이라. 그의 말에 대답하려는 찰나, 레스토랑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노크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예의를 갖추며 우리에게 메뉴판을 보여줬다.
나는 메뉴판에 있는 음식들을 천천히 바라봤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 걸 마음껏 시키셔도 됩니다. 먹으면서 들어도 늦진 않으니까요.”
“…”
살면서 이렇게 비싼 음식들은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음식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 감도 안 온다. 대충 메인 디쉬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적당한 가격대의 음식을 골랐다.
괜히 여기서 비싼 거 얻어먹어봤자 체한다. 이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이거요.”
“좋습니다. 그럼 이 코스로 주문하죠.”
“?”
에. 나는 메뉴 하나를 고른 건데, 빅토르는 그 음식이 포함된 코스 요리를 시켰다. 그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가격에 0이 더 늘어났다.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더니 빅토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 나와주신 작은 답례입니다.”
이렇게까지 대하는 모습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마음 속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원래 이 세상에 조심해야 하는 부류가 있는데, 첫째는 처음 만났는데 비싼 음식 사주는 사람이고, 둘째는 비싼 거 사주고도 생색 안 내는 사람이다.
빅토르는 이 두 개를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
‘대체 뭐지? 줄기 세포 기술이 불완전하다는 건 어느정도 알고 있을텐데?’
존슨앤존슨과의 줄기 세포 실험이 진행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단계에 오르지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시범, 아니 그 이하의 단계라는 걸 제약 회사의 CEO인 그가 모를리가 없었다.
그렇게 빅토르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애쓰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회사의 지분을 드리겠습니다.”
“…예?”
“돈이 좋다면 그에 상응하는 돈으로도 가능하고요.”
그가 이야기하는 돈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고작 치료제 하나로 회사의 지분을 받는다는 거니까. 존슨앤존슨도 이 정도 금액을 제안하지는 못할 터였다.
“지금의 신텍시스에겐 김만덕 학생이 필요합니다.”
“…너무 무모한 투자라고 생각하는데요.”
“영업할 때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갑자기 영업? 내가 미간을 좁힌 채 그를 바라보자, 그는 웃으며 내 물잔에 물을 채워줬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쉽게 말해 욕망. 욕망을 알아야 비로소 거래가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그럼 제 욕망은 돈이라는 건가요?”
“아뇨. 이 다음 대답을 통해 김만덕 학생의 욕망이 정해지겠죠.”
돈도 거절할 만큼 이루고 싶은 욕망이 뭔지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았고, 마치 이곳에 그 목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노련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와 같이 돈만 만지던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때로 교수들이나 연구자들은 돈보다도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하죠. 김만덕 학생도 그와 비슷한 부류일 거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비슷한 부류라…맞는 것 같네요. 전 딱히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빅토르는 씩 웃었다. 내 생각을 맞췄다는 뿌듯해하는 표정. 그러나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럼 대표님이 원하시는 건 뭔가요?”
“저는 하나입니다. 신텍시스가 세계 1위의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 그게 제 유일한 욕망입니다.”
“어려운 길이군요.”
세계 1위. 말이 쉽지 사실상 이미 굳혀진 순위를 바꾼다는 건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장이라는 건 초기 선점을 못 하면 점점 뒤처질 뿐이니까.
그때 주문했던 음식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고, 내 앞엔 손바닥보다 작은 고기 위에 장식된 고기가 놓였다.
“저희 같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뿐입니다. 만덕 학생이 연구한 줄기세포 같은 기술 말이지요.”
“줄기세포로 1위 시장을 선점하시려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분야를 창출해내니까요. 그건 곧 돈이고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겠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민했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치매 치료제가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길 원합니다.”
“저렴하다면 얼마정도 인가요?”
“음…10달러 정도면 되려나요.”
“하하하!”
내 말에 빅토르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그의 목소리와 다르게 가늘고 높은 느낌이었기에 이질적으로 들렸다.
그는 한참 웃고 난 뒤, 나를 보며 말했다.
“투자 비용만 수백, 아니 수억 달러가 들지도 모르는 신약을 고작 10달러에 팔겠다? 하하하! ”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누구나 치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약.”
“하하하! 좋습니다, 좋아요.”
좋다고? 생각보다 흔쾌히 제안에 응한 빅토르의 모습에 되려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이윽고 웃음이 잦아든 그는 양손을 깍지 낀 채 나를 마주 봤다.
“이 제안에 응한 기업이 있습니까? 황금알이나 다름없는 김만덕 학생에게 연락이 온 기업이 제가 처음일 리는 없을 테니까요.”
“…”
“없을 리가 없죠. 자, 그럼 제가 맞춰보죠. 치매 치료제를 10달러에 넘기는 대신 만덕 학생이 줄 수 있는 것.”
빅토르가 깎지를 풀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프를 든 채 이야기했다.
“다른 기술이 있나 보군요?”
“…”
나는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줄기세포 포럼 이후 존슨앤존슨 CEO와 계약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었다.
치매 치료제 개발.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고, 존슨앤존슨은 그 외에도 더 많은 치료제를 만들고 싶어 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질병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치료제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
빅토르는 내 침묵에 모든 걸 읽어냈다.
“뭐, 아니면 말고요.”
씩 웃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기는 빅토르는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생각이 정리되면 언제든지 말해주시죠.”
[신텍시스 CEO. 빅토르 리안] 이라고 적혀있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명함.나는 빳빳한 명함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연락을 주진 말아주시죠. 제가 참을성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지라.”
“…저는—”
“아, 참고로 저는 한번 눈독을 들인 건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길.”
그는 내 말을 끊으며 답했다. 그리곤 겉옷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일정이 있다며 먼저 나가려는 그를 붙잡듯 말을 꺼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요?”
방을 나가려던 빅토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만약 제가 신텍시스가 아니라 다른 기업에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가요?”
“만에 하나요.”
빅토르는 웃었다.
“그럴 일은 없게 만들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죠, 빅토르는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고, 이내 방문이 닫혔다.
그렇게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 사라져갔고,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
…
…하, 죽는 줄 알았네.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고.
설마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없겠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애써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21세기다. 고작 기술 하나 때문에 사람을 위협하고 그런 일은…일어나고 있네.
종종 연구원들이 실종되거나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대화를 통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됐다, 괜히 앞서나가지 말자.
줄기세포 치료제는 만들어지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설령 그게 나온다고 한들 그 치료제가 신텍시스를 1위로 만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빅토르도 나를 잊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를 했다. 직원이었다.
“어, 나올 음식이 더 있나요?”
“네. 기본 코스가 아니라 특별 코스라 메뉴 수가 좀 많습니다.”
“음···.”
보아하니 포장은 안 될 분위기고 그렇다고 이대로 버리기에도 아까운데…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이게 다 목숨을 담보로 오간 음식들이란 생각이 드니 더더욱 그냥 가기엔 뭐했다.
“뭐야! 이게 다! 나 이런데 처음 와 봐!”
“이거 우리 다 먹어도 돼···?”
미야와 데이브를 불렀다. 마침 저녁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다길래 “캐비어 먹을래?”라고 했더니 바로 달려왔다.
“맘껏 먹어.”
“너는?”
“난 지금 먹으면 백 퍼센트 체 해…”
내 말에 미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먼저 자리에 앉은 데이브는 “요즘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었는데!”라며 음식들을 죄다 한입에 흡입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미야도 줄줄이 들어오는 디저트들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누가 다 사준 거야?”
“어떤 돈 많은 아저씨가 연구하러 오라고 협박하면서 사줬어.”
“에.”
“맛있게 먹어.”
미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였고, 미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음식을 정신없이 먹어 치운 데이브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입가엔 먹던 음식들이 묻어있다.
“캡틴. 오늘 이 음식. 은혜. 잊지 않을게.”
“엄···잊어도 되는데.”
“내가 다 갚을 수 있어.”
“엄···안 갚아도 되는데.”
근데 이 녀석 뭔가 평소랑 다른데. 평소에는 반 죽어있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빛도 돌아왔고 머리도 감았다. 잠깐, 머리를 감았다고?
데이브가 씩 웃으며 말했다.
“슈퍼진단키트. 완성했거든.”
진단 키트가 완성되었다. 예정보다 훨씬 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