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0화(150/221)
150. 현실 (1)
150. 현실 (1)
슈퍼진단키트. 전생에 세상을 뒤집어 놨던 물건 중 하나였다.
‘혈액이 아닌 침으로도 당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진단의 정확률은 어느 정도 됩니까?’
‘대기업들로부터 투자 지원이 들어오고 있다는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30대 젊은 천재로 단숨에 인기 스타덤에 오른 데이브 밀러. 그는 당뇨병을 진단하는 키트를 제작하는 IT 기업을 설립했고 기업들은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그 당시에도 혈액으로 당뇨병을 진단하는 키트는 시중에 많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매번 바늘로 피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환자들에게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불편함을 해결해준게 데이브였다. 그는 심지어 생물학과는 연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프로그래밍 관련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단순히 데이터를 받아 분석해 내는 것만으로도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자자! 앉아봐! 존슨앤존슨한테 보여주기 전에 너희한테 먼저 소개해 줄 테니까!”
영광인 줄 알라고! 라며 뿌듯해하는 데이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체감상으론 아까 빅토르와 있을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동아리방에 갔고, 테이블 위에는 뭔가가 천으로 덮어져 있었다.
“슈퍼진단키트!”
천을 들어 올리자, 모습을 드러낸 꽤 큰 크기의 상자. 데이브는 간이침대 위에 던져져 있는 노트북을 가지고 오더니 상자와 연결했다. 그러자 윙, 소리를 내며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야는 이미 이 모습을 많이 봤는지 심드렁한 상태였고 데이브는 신이 난 모습으로 뭔가를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뱉어!”
“…뭘?”
“침 뱉으라고!”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연신 침을 뱉으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영화 속에나 나오던 매드 사이언티스트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그 모습을 본 미야가 고개를 젓더니 앞에 놓인 종이컵을 내게 내밀었다.
“데이브의 설명에 의하면 입 안에 있는 세포를 이용해서 분석하는 거래. 그러니까 데이브가 아니라 여기에 해.”
“아, 난 또.”
“근데 난 데이브 면상에 많이 뱉었어.”
“?”
놀란 눈으로 미야를 바라봤지만, 이윽고 이어지는 데이브의 재촉에 결국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무언가.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 되고 있는 거 맞아?”
“당연하지. 이제 3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결과?”
데이브는 내 물음에 씩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혈액을 통해서 모든 병을 진단하는 걸 하려고 했었는데, 전에 네가 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뭔가 아닌 것 같더라고.”
“아닌 것 같다고?”
“그때 네가 그랬잖아. 애초에 모든 병을 진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데이브한테 했던 말이었다. 혈액만으로 모든 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다 사기꾼이거나 과장 광고를 하는 사람이었을 뿐, 진짜 혈액만으로 모든 병을 진단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혈액이 모든 걸 담고 있는 만능 물질처럼 생각하곤 했지만 이것 역시도 채취된 혈액 내에 들어있는 특정 호르몬이나 효소를 분석한 것이었다.
“게다가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건 이미 나와 있고 말이야. 암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DNA를 분석해서 유전자 변이 정도를 파악하지만 사실 그 변이 정도를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고.”
데이브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가 하는 이야기 중에는 프로그래밍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도 섞여 있었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기존에 있던 혈액으로 병을 진단하는 건 병원에 가서 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이 ‘슈퍼진단키트’의 경우에는 혈액과 타액 두 종류로 집에서 간단하게 병을 진단하고 또 예측한다.
“그러니까 네 말은 입 안에 있는 상피세포로부터 DNA를 얻어내고, 그 안에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서 미래에 있을 병을 예측한다는 거지?”
“역시 생물학과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네! 아무래도 타액만으로는 현재 있는 병을 진단해 내는 건 어려우니까 피도 뽑는다는 거지.”
혈액으로는 현재 병을 진단한다. 타액으로는 미래에 있을 병을 진단한다. 하지만 미야가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데이브를 바라봤다.
“난 이거 싫어. 비효율적이야.”
“미야, 피 몇 번 뽑힌 거 가지고 그러지마.”
“…몇 번 아니거든. 지금까지 47번 뽑혔어.”
“에이! 내가 그렇게 많이 뽑았다고? 농담도.”
미야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데이브를 바라봤다. 이제야 미야가 왜 데이브의 면상에 침을 뱉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단 이 이유 때문은 아닌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굳이 두 종류로 나눠서 진단하는 이유는 뭔데? 그냥 혈액만 가지고도 다 진단할 수 있는 거잖아. 피에도 DNA가 있다고.”
“음···그렇긴 하네.”
“게다가 저 상자 같은 걸 집집마다 둔다고? 누가? 슈퍼진단키트가 아니고 슈퍼짐덩이야.”
촌철살인 같은 미야의 말에 데이브가 윽,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슈퍼짐덩이, 아니 슈퍼진단키트는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었다.
“아냐. 난 두 종류로 나눈 거 잘한거라고 생각해.”
“…만덕. 굳이 데이브 편 안 들어줘도 돼. 얘 지금 그냥 불쌍한 척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생각해 봐. 모든 사람들이 피를 뽑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특수한 경우는 예외로 둬야지. 모든 경우를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해.”
“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간이 침대 위로 쓰러져 엎드려 있는 데이브를 바라봤다. 녀석은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꿈쩍도 안 하고 있었지만, 우리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노트북으로 다가가니 그 위로 뭔가가 정신없이 써지며 표에 작성되고 있었다.
[간염, HIV, HSV, CMV, TB, 쿠싱증후군, 애디슨병, 제1형 당뇨, 제2형 당뇨, 구강암, GERD···]“그렇다고 특수한 케이스라고 해서 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니까.”
“내 말이!”
죽은 듯 엎드려있던 데이브가 고개를 번쩍 쳐들며 대답했다.
“그리고 바늘로 찌르는 거 엄청 거부감 든다고? 솔직히 침만 뱉어서 진단할 수 있다면—”
“그런데 아마 이건 쓸 수 없을 거야.”
“…엉?”
단호한 내 말에 데이브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미야도 달라진 내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데이브가 만든 건 확실히 뛰어난 기계다. 전생 때는 타액으로 제1형 당뇨병과 2형 당뇨병을 진단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건 병의 범위도 넓고 방법도 두 가지니까.
하지만 너무 넓었기에 정확률이 떨어졌다.
“우선 타액을 이용해서 상피세포를 채취한다는 건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야. 하지만 상피세포를 보다 확실하게 얻으려면 이런 식으로는 안 돼.”
“그, 그럼?”
“면봉으로 직접 채취해야지.”
나는 슈퍼진단키트를 감싸고 있는 외피를 들어 올렸다. 딱딱한 판으로 둘러싸고 있던 녀석을 들어내고 나니 내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각종 칩들과 회로로 엮여있는 부분 말고 타액을 분석하는 부분을 자세히 바라봤다.
“게다가 지금 이 상태로는 건조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더 떨어질 거고.”
“…어쩐지. 안 그래도 나한테 모든 병이 다 일어날 거라고 곧 죽을 거라고 했어.”
미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데이브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고개를 파묻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은 역작이 쓰레기라니···.”
“쓰레기라곤 안 했는데.”
“진단 키트가 정확하지 않으면 그게 쓰레기지, 뭐야! 난 망했어. 틀렸다고···.”
이제 존슨앤존슨 사옥에서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 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데이브. 결국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그를 흔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파묻고 실의에 빠져있는 데이브였기에, 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상태는 쓰레기가 맞아.”
“아아앍!”
“그러니까 이제 재활용을 해보자.”
“아아앍···?”
고개를 든 데이브. 미야도 옆에서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슈퍼진단키트는 제1, 2형 당뇨병 진단이라는 하나의 질병에 관한 키트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젊은 부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병을 진단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정확하고 편하게 진단하느냐’였다.
덜어낼 건 덜어내고, 필요한 것만 남긴다.
“지금 이 진단키트의 원리가 뭐야? 상피세포를 이용하는 거면 유전자 분석?”
“응. 환자들의 데이터를 얻어서 그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서 추출하고 대상자의 상피세포에 그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 대조한 뒤 발병률을 측정하는 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병에 걸릴지 알아내기 힘들 텐데? 단순히 침의 형태가 아니라 면봉으로 채취해 낸다고 해도—”
“아앍! 내가 만든 건 쓰레기야! 단순히 유전자 분석만으로 병에 걸릴 거라 판단해 낸 내 아이디어가 쓰레기였던 거라고오···. 유전자가 있냐, 없냐 O,X 처럼 맞춰가는 걸로 어떻게 해내겠어···.”
이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다가 포기한 데이브가 실의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기 힘들었다.
“아냐. 유전자 분석만으로 병에 걸릴 거라 판단해 낼 수 있어.”
“…엉?”
“최근에 어떤 재수 없는 놈이 발견해 낸 게 있거든.”
유전인자 간의 연관을 분석해 낸다. 그로 인해 하나의 유전인자로 인한 발병이 다른 병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석해 내고, 유전인자 간의 종속성을 파악한다.
그걸 실험이 아닌 오직 종이와 펜으로 유도해 낸 녀석이 있었다.
데이브가 “잉? 누군데? 설마 로버트?”라며 아무 말을 내뱉었지만, 미야는 묘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치매 유전인자 간의 연관성을 발견해 낸 곽진환과, 생물학적인 데이터를 프로그래밍으로 넘어와 직접 분석해 내는 기기를 구현해 낸 데이브. 이 둘의 도움이 있다면···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알아낼 수 있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곽진환이 했던 연구의 내용은 나도 알고 있고.
“데이브. 지금부터 좀 많이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당연하지! 지금 이 상태로 존슨앤존슨한테 가져갔다가는 그대로 던져질걸?”
“좋아. 그럼 당장 시작하자.”
“? 뭘?”
내 말에 데이브가 고개를 갸웃했다.
“치매 환자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내는 작업 말이야.”
진정한 슈퍼진단키트로 거듭나기 위한 첫 단계였다.
*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라고 하기엔 뭐하군.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아니니 말이야.”
“그럼 박사님?”
“…편하게 부르게나.”
뉴욕 거리,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북적거리는 카페 안, 한 남자를 마주했다.
최강석. 최한별의 아버지이자 연서 병원에서 뇌혈관 질환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 그리고 한때 치매 치료 연구에 앞장섰던 연구원.
“한별이는 올해 조기졸업 확정이네. 내년에 바로 하버드에 입학할 거고.”
“결국 의대는 안 가는 걸로 됐나요?”
“그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뭔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지.”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내민 딸을 보며 최강석은 “쯧,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센지.”라고 이야기했고, 최한별은 조용히 “아버지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진짜 전부터 느낀 거지만 얘도 진짜 만만치 않다···.
최강석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 역시 그에 맞춰 라떼를 홀짝였다.
“자, 이제 슬슬 본론을 들어볼까. 곧 있으면 학회에 참석할 시간이라서 말일세.”
“연서 병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내 말에 최강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데이브와 함께 슈퍼진단키트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치매 환자의 유전자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요구인지 알고 있겠지?”
“네.”
진단키트는 어디까지나 유전자를 분석해 내는 키트이다. 그렇기에 치매 환자들에게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유전인자들을 실제로 분석해 내기 위해서라도 유전자 데이터가 필요했다.
물론 곽진환의 연구 덕에 유전인자 간의 연관성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환자의 데이터값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니까.
한마디로 분석을 해낼 자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유학생 신분이면서 의대생도 아닌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노먼 교수와 에단 교수에게도 부탁했지만 어렵다는 얘기뿐이었지.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환자의 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극 보안 문서이다. 그도 그럴 게 유전자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악용될 가능성도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기에.
물론 내가 악용할 일은 없지만···. 미국 내 나의 위치는 외국인. 외국인이 자국민들의 데이터를 알고 싶어한다? 넘겨줄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나는 최강석에게 연락했다. 다시 치매 연구를 시작했다는 최강석이라면 분명 이 데이터들을 가지고 있을 테니.
“안되네.”
“이유는요?”
“환자 개인정보이기 때문이지.”
예상한 답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질문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나요?”
“자네···. 진심인가?”
“네.”
김성진은 그랬다. 원하는 걸 미리 정해놓고 방법을 찾아가라고. 그렇기에 나 역시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치매 환자들의 유전자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데이터를 얻어낼 것이다.
“…자네가 우리 병원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학생이 우리 병원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이네.”
“저 혼자가 아니라 팀이라면요?”
“팀?”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네. 하버드 내 유전자 편집 및 면역체계 분석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라는 타이틀이라면 가능한가요?”
“자네 지금 연구팀 소속인가?”
“네. 연서 병원에서 최근 진행하고 있는 ‘대식세포 활용 암 치료’ 연구에 자문위원으로 있으셨던 에단 스털링 교수님 밑에 있습니다.”
“…이미 조사하고 온 건가?”
최강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처음에는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대답했다.
“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메일로 말씀드리면 안 된다고 하실 게 눈에 보여서요.”
“대체 왜 그렇게까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 데이터들이 저한테는 꼭 필요하거든요.”
원하는 걸 미리 정해놓고 방법을 찾아가는 건 꽤나 유용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