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1화(151/221)
151. 현실 (2)
151. 현실 (2)
미국의 대학 학사 일정은 한국과는 다르다. 3월에 개강인 한국과 다르게 이곳은 1월 중순에 개강. 한마디로 방학이라고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없었다.
게다가 연구실에 살고 있는 내 경우는 더더욱이고.
“너무 연구만 하는 거 아니야? 이 기간에 안 쉬어두면 학기 시작하고 엄청 후회할 걸?”
“별로요. 그보다 아진 선배, 빨리 와서 실험용 쥐 DNA 추출해 뒀던 거 단편화 해놔요. 시퀀서에 넣어둬야 하니까.”
“맨날 귀찮은 건 나만 시키지?”
“들켰네요.”
내 대답에 김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툴툴거리며 작업에 들어가는 그녀. 방학 중에도 연구는 계속되어야 했기에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김아진 역시 이곳에 남기를 택했다. 나는 곽진환한테 받았던 연구 자료를 분석하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집에 가도 된다니까요? 방학마다 한국에 꼭 갔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뭔가 지금까지의 데이터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
“데이터요?”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미간만 좁히고 있는데, 작업을 끝낸 김아진이 나를 바라봤다.
“너 지금 네가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연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어···. 글쎄요. 그냥 평범한 것 같은데.”
“평범하다고? 연구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주말 포함해서!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가는 거 모를 줄 알아?”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도 연구실에 나오는 사람이 어딨냐! 라고 외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김아진이 하는 말은 전부 다 사실이었으니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제거한다는 개념은 계속해 오던 생각이었다. 더불어 곽진환의 연구 덕에 그 외의 다양한 유전인자들이 연관이 있다는 게 파악이 되었다.
‘염색체 14번에 위치한 PSEN1과 PSEN2 유전자에 대해 더 연구해 봐야겠어.’
기존에 진행중이던 APOE 단백질과 관련된 연구가 아닌 새로운 녀석들.
PSEN1과 PSEN2 유전자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전구체인 APP가 처리되는 과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가능성을 발견한 우리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새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치매에 영향을 주는 APOE ε4 유전자와 반대로 보호 역할을 하는 AOPE ε2 유전자.
이 두 유전자외에도 치매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발견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여기서 흐름을 끊고 쉬다 와라? 제발 쉬고 하라고 애원해도 그건 안될 일이지.
“전 쉬는 것보다 연구하는 게 더 좋으니까요.”
“와···. 독종. 하버드에서 별별 놈들을 다 봤지만 네가 최고야.”
“칭찬 감사해요.”
이제는 꽤 능숙하게 대화를 끝내는 법을 배운 상태였기에, 나는 대충 대답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김아진은 하던 작업을 아예 그만두고 내 쪽을 몸을 틀었다.
“어쨌든, 이렇게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데 내가 한 달이나 쉬어봐. 그 사이에 네가 해 놓은 걸 내가 따라갈 수 있겠어?”
“음···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다 너 생각해서 안 간 거라는 말이야.”
순간적으로 “근데 못 따라오는 건 아진 선배 문제 아니에요?”라고 전생 때처럼 말할 뻔하다가 꾹 참았다. 이렇게 사회성을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스스로가 이제 대견하게 느껴진다.
장하다, 나 자신.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김아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나저나 한국 병원 일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아무 연락 없고?”
“…네. 아직은요.”
“하긴 당연한 거겠지. 환자 데이터를 넘기려면 다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보통 쉬운 일이야? 게다가 치매 환자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
나는 말없이 하던 작업에 바라봤다. 하지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힘들 것 같네. 아무리 교수팀과 공동 연구라고 해도 이 연구를 반길 사람은 없으니 말이야.’
‘이 연구가 있으면 치매 치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어요.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게 문제일세.’
최강석은 그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주변이 시끄러웠지만 그의 목소리만 웅웅 들릴 뿐이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치매 환자의 경우 수명이 긴 편이 아니지. 그런 상황에서 연구 데이터를 준다고 한들, 과연 치료가 될 가능성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면 연구가 진행될 순 없어요. 비단 치매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 그럼 자네가 한번 환자들을 설득해 보게나.’
다음 치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지금 데이터를 좀 받아 가도 되겠냐고.
그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렇게 최강석과는 헤어졌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 모습을 본 김아진이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면 그냥 치료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데이터 받으면 안 돼? 진짜 그럴 수도 있잖아.”
“…데이터 분석한 걸 바탕으로 임상 실험도 하고 그러면 몇 년은 훌쩍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되실지 모르는 분들한테 거짓말하고 싶진 않아요.”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95% 확률이라고 해도 5%의 가능성이 있다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는 거지.”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내 연구를 위해 필요한 건 ‘치매 환자의 유전자가 담긴 데이터’가 필요했다. 이게 없다면 지금 데이브가 동아리방에서 불을 켜고 재정비하고 있는 ‘슈퍼진단키트’도 다 의미가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곽진환의 연구도 마찬가지고.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분명 한 단계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또 새로운 벽이 있다. 이론적인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도적인 게 막혀있었다.
“그럼 어둠의 경로로 얻는 건 어때?”
“진심이에요?”
“…농담이야.”
나도 모르게 경멸을 담은 눈으로 김아진을 바라봤다. 김아진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얻으려면 얻을 수야 있다. 이 바닥에 돈으로 못 사는 건 없고, 어쩌면 살아있는 실험체를 구해다 줄 수 있는 곳이 이 자본주의 사회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실험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거지, 사람을 실험체로 쓰면서 치매라는 질병을 치료하고 싶지는 않은 거니까.
윤리와 제도를 다 지키며 연구를 이어가는 건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라고 혼자 고뇌하고 있는데 김아진이 흐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럼 네가 직접 가서 설득하면 되잖아?”
“예?”
“그 교수는 안 될 거라고 말한 것뿐이라며. 근데 진짜 환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 아니야?”
나는 김아진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내 유전자를 채취해서 분석한다고 하면 께름칙할 것 같긴 해.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르니까 거부감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
“모르니까 거부감이 생긴다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진짜 네 연구가 빨리 되어서 그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김아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진짜 이 사람은 한결같다. 한결같이 낙천적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걸 생각해 내곤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가서 부탁하면 아무도 안 들어주실 것 같은데요.”
“좋아. 그럼 한번 테스트해 본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말해봐. 치매 환자 본인보다 보호자한테 허락받아야 할 테니까. 날 보호자라고 생각하고!”
“음···.”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골똘히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치매 환자 보호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해서 유전자 데이터를 받아낼 수 있을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의 유전자를 얻고 싶습니다.”
“나 보호자라니까?”
“귀하의 피보호자의 유전자를 얻고 싶습니다.”
“…진짜 그런 식으로 말할 거야? 21세기에?”
“…귀하의 피보호자의 유전자를···사고 싶습니다?”
“…”
결국 김아진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마치 과외 선생님이 된 것처럼 내 옆에 앉아 하나씩 지도해주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를 제일 원하고 있을까?”
“원하는 거요?”
“그래.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거래인 거잖아? 그들이 유전자 데이터를 주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게 과연 돈일까?”
순간 그녀의 말에서 빅토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거래의 기본은 욕망이라고 말하던 그.
그날 이후로 다행인지 빅토르에게 따로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은 없었다. 마치 내가 원하는 때에 적절히 연락을 주겠다는 것처럼.
그 순간, 빅토르에게 전화를 걸면 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잘 모르겠어요. 뭘 원하고 있을지.”
“뭐야, 진짜 이걸 모르겠다고?”
내 말에 김아진이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질문을 바꿀게. 넌 왜 치매를 치료하고 싶어?”
“네?”
“왜 많고 많은 질병 중에 하필 치매냐고. 난치병으로는 암도 있고, 뇌사도 있고 그런데.”
김아진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내가 치매를 치료하고 싶은 이유. 많고 많은 질병 중에서 하필 치매를 골랐던 이유.
“…제일 잔인하니까요. 주변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나중엔 나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게.”
“그거야. 그 두려움이라고. 그 두려움이 없어지는 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거야.”
“그 말은···.”
“결국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치매가 치료되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고,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치매가 치료되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이자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부러 오래 걸린다는 걸 숨길 필요는 없어. 네 마음이 불편하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돼. 정확히 언제 치매가 치료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들한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줘.”
언젠가는, 꼭. 치매를 치료해 내고 말겠다고.
김아진의 말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선배. 선배 덕분에 제가 뭘 해야 할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래, 그래. 일단 그 교수님한테 네 이런 상황을 말씀드리고 설득해 보겠다고 말씀드리면—”
“다녀올게요.”
“어? 어딜?”
나는 겉옷을 챙겼다.
“한국이요.”
방학 맞이 첫 귀국이었다.
*
“만덕쓰!!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잘 지냈어?”
“아니, 이게 진짜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에 쌍둥이들이 단번에 나를 보러 나왔다. 처음에는 최강석만 보고 갈 생각이었지만···그가 매우 바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지금 학회 참석하러 가셨어요. 아마 3일 뒤에 귀국하실 것 같은데···.’
하지만 최강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병원을 통해 연락해 보니 ‘학회 참석 중’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그는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양한 곳에서 열리는 치매 및 뇌 관련 질환 학회에 참석하고 있었고, 학회가 없는 날에도 세미나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해외에 없는 날에도 하루 종일 수술 일정이 잡혀있는 등. 한마디로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최강석. 이 정도면 미국에서 그를 만났던 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한국에 귀국한다는 날짜를 듣고 그날까지 호텔에서 며칠 머물다 갈려고 했지만,
‘신분증 좀 확인 할 수 있을까요?’
나이 때문에 어디를 가도 빠꾸. 그렇다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을 가기엔 영 석연찮았다. 김성진 교수에게 연락하려다가 지금 방학이라는 걸 깨달았고 괜히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진 않았고.
결국 고민하던 나는 쌍둥이들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아니! 한국에 올 예정이었으면 미리 말하지!”
“미안, 나도 갑자기 오게 된 거라.”
“미안할게 어딨어. 나는 오히려 좋은데?”
이인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새로 산 게임 혼자 하기 뭐했거든. 대학 합격 발표 난 수험생이 시간을 어떻게 낭비하는지 보여주도록 하지.”
“이미 플레이타임 1,000시간 넘었대. 얜 그냥 미쳤어.”
질색하는 이인영.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갑자기 온 거야?”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설득? 누굴?”
나는 치매 환자들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진행된 게 없으니 굳이 먼저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기에…대충 얼버무리기로 마음먹었다.
“교수님 뵈러 왔어.”
“교수님? 전에 같이 연구했던?”
“아냐. 이번에는 새로운 교수님인데, 음···. 최강석 교수님이라고 있어.”
내 말에 이인영이 고개를 갸웃했고, 이인성이 미간을 좁히더니 갑자기 “아!” 소리를 냈다.
“최한별 아빠잖아?”
“?”
이인영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별 아빠를 보러 간다고?”
“응.”
“설득하러?”
“응.”
“뭘 설득하는데?”
갑자기 집요해진 이인영.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이인영이 포기하지 않고 물으려는 찰나,
“보나 마나 또 연구 관련이겠지, 왜 자꾸 물어 돼지야.”
“아···. 그런가? 그런데 넌 말끝마다 맨날 돼지라고 하는 거 맞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이인성의 도움 덕에 이 질문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렇게 투닥대고 있는 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 [센터장 최성훈]···? 이 사람이 왜?
최한별의 삼촌이자, 최강석의 동생.
최성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