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2화(152/221)
152. 현실 (3)
152. 현실 (3)
최성훈에게 전화가 온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쌍둥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 나는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피했다.
“여보세요?”
[어! 드디어 통화가 되네!]최성훈 역시 통화가 된 사실에 놀란 듯 했다. 아직까지 영문을 모르고 있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혹시 잘못 거신건···”
[아냐, 아냐. 너한테 건 거 맞아. 안그래도 미국에 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바뀐 번호를 몰라서 말이야. 이제 방학이니까 슬슬 한국에 들어왔으려나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딱 시기가 맞았네.]“저한텐 무슨일로···?”
최성훈. 삼성미래전략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아니었다면 아밀로잽과 관련해 연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신약 개발까지 아니더라도 후보 물질을 선별해내고 관련 실험을 진행하는데는 꽤 많은 돈이 들어가니까.
물론 선정은 블라인드로 진행이 되었다고 해도, 지원하는데까지 그의 도움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이번에 아밀로잽 관련해서 임상 실험 들어간다는 건 알고 있지?]“네. 안 그래도 김성진 교수님 통해서 이야기 들었어요.”
[그거랑 관련해서 좀 이야기할 게 있어서 말이야.]이야기?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그가 할 이야기라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보통 이렇게 연락이 오는 경우엔 연구비 사용과 관련해서 소명할 일이 생겼거나, 지원금 축소와 관련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최성훈이 좀 머뭇거리며 말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긴장해서 올 건 없어. 공동 연구 때문에 좀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거니까.]“공동 연구라면···.”
최성훈은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라며 약속 날짜를 잡았다. 어차피 최강석이 오기 전까지는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실정이었기에 나는 거절하지 않았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쌍둥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이인성이 궁금한 듯 물었다.
“누구야? 한국에 오자마자 이렇게 애타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어···너도 아는 사람. 최성훈이라고 기억해?”
“최성훈? 음···어···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다가 느낌표로 바꾸는 이인성. 그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최한별네 삼촌! 맞지?”
“최한별 삼촌이 왜 너한테 연락해?”
옆에서 듣고 있던 이인영이 살짝 못마땅한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최한별 아빠에 이제 삼촌까지…” 라며 중얼거렸다.
흠. 어디까지 말해야 좋지. 결국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여 이인영의 미간을 더욱 좁히게 만들었고, 그 모습을 본 이인성이 빠르게 중재하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자, 됐고. 일단 집으로 가자. 안그래도 비행기 오래 타고 와서 힘들거 아니야. 안그래?”
“근데 정말 너희 집에서 지내도 돼? 적어도 일주일은 지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집에 빈 방 많아.”
오···이게 바로 금수저들의 삶인가? 새삼 쌍둥이들이 범상치 않은 수저였음을 다시금 깨달은 나는 흔쾌히 쌍둥이네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쌍둥이네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 부모님 두 분 다 해외 여행 가셨거든. 자식들 다 대학 붙었겠다 뭐, 이제 한 시름 놓으신거지.”
“맞다. 너희 둘 어디 붙었다고 했지?”
“이인영은 생명화학공학과이고 나는 물리학과.”
새삼 전생과 달라진 모습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전생에 일어날 일들 중 가장 분명하게 바뀐 거였으니까.
그렇게 이인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이인영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녀는 살짝 내 눈치를 보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진짜 한국엔 갑자기 무슨 일인데?”
“어?”
“갑자기 한국에 들어오고 그럴 애가 아니니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대놓고 걱정된다는 말은 하기 좀 그런지 일부러 뱅뱅 돌려서 이야기하는 이인영. 이인성도 궁금했는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굳이 숨길 일은 아니니까. 결국 마음을 정한 그간 있었던 일을 쌍둥이들에게 털어놓았다.
“흐음···어렵네.”
“이게 이렇게 복잡할 일이야? 그냥 만덕쓰한테 자료 넘기고, 만덕쓰는 그걸로 치료제 만들고! 그럼 둘 다 윈윈하는 거 아니야?”
“단세포인 네 입장에선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몰라, 몰라. 이래서 사람이 낑겨있는 학문은 안 좋다니까.”
이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야기했다. 나 역시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였기에···그냥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국 만덕이가 치료제 개발하면 더 이득인거 아니야? 난 이해 못하겠어.”
“이건 머리로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보다 나 좀 피곤한데 잠깐 자도 될까?”
시차 적응탓인지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최성훈과의 대화도 조금 신경 쓰였고. “편하게 자.”라고 말하며 나가는 쌍둥이들.
그리고 잠에서 깬 다음날부터 “놀자!” 라고 말하는 이인성에게 끌려가 계속 게임을 해야했고, 결국 “너처럼 게임 못하는 놈은 처음 봐···.”라며 경악에 가까운 평가를 들으며 스파르타 지도를 받아야 했다.
···하루빨리 최강석을 빨리 만나고 이곳을 떠야할 것 같다.
*
“안녕하세요.”
“오! 한별이 남친!”
“남친 아닙니다···”
오랜만에 만난 최성훈은 그때와 별 다른 점이 없었다. 여전히 쾌활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그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평범한 카페가 아니었다. 연서 병원 1층에 위치한 카페 안이었다.
“여기서 만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아, 그게 좀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그보다 이번에 하버드에 갔다던데 잘 적응하고 있고?”
“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가 웃으며 “후배가 될 수 있었는데, 인재를 뺏겨버렸구만!”이라고 이야기했다.
약간의 일상적인 안부, 그리고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결국 내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전화로 말씀하셨던 공동 연구 관련 이야기는 뭐에요?”
“아아,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만나자고 했던 건데.”
나는 살짝 긴장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사실 아밀로잽과 관련한 연구는 김성진과 이재성에게 토스한 상황. 하지만 그와 관련한 특허엔 나도 포함이 되어있는 상황이었기에 연구에서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었다.
최성훈은 “쓰읍,”하는 소리를 낸 후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 너희 팀에서 하던 아밀로잽 연구가 연서 병원과 공동 연구로 넘어가게 된 건 알고 있지?”
“네.”
“그런데 그 연구를 하는 사람이···우리 형이거든.”
“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별 반응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최성훈이 오히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가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이미 알고 있었나보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아으, 이걸 이렇게 말해도 될 지 모르겠는데···”
“무슨 일인데요?”
“솔직히 나는 이 연구를 멈추고 싶다.”
“…예?”
예상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하지만 최성훈 역시 곤란한지 양 손으로 마른 세수를 연거푸 했다.
연구를 멈추고 싶다고? 왜?
“물론 이미 연구비 지원 결정은 끝이 난 상황이고 이걸 내가 멈추고 말고 할 재량이나 능력은 없어.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아니, 왜 멈추고 싶으신데요? 그냥 공동 연구라는 이유로 그러시는 건 아니실 거 아니에요. 연서 병원때문에 그러세요? 형이랑 연관될까 봐?”
계속되는 추궁에 최성훈의 눈썹이 한번 올라갔다가 긴 한숨과 함께 내려왔다.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안 본 사이에 다크써클이 좀 짙어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구지 지원을 멈추고 싶을 정도면 보통 이유는 아닐 텐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때문에.”
최성훈이 체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연구가 임상실험까지 이어지는 연구인 건 알고 있지? 그리고 그 실험 대상자엔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고. 나는 형이 하는 거엔 일절 터치 안 해. 애초에 분야도 다르고 감 놔라 배 놔라 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요?”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형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내 아버지이기도 해. 그런데 임상실험 참가자? 내 동의는? 막말로 그 실험의 참가할 정도로 아버지 증상이 심각한가? 어디까지나 이건 형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진행되는 거라고.”
최성훈이 미간을 좁힌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가 말하는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고,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게 최강석이 말한 일의 일부였으니까.
‘그럼 자네가 직접 환자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해보게나.’
물론 유전 데이터를 얻는 것과 이렇게 임상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건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할 건 아니긴 하다. 데이터를 얻는 쪽이 실험 대상자를 구하는 것보다 더 쉬울 테니까.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말들엔 환자의 보호자들이 가지고 있을 불안과 걱정이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널 부른 이유는···. 혹시 다른 팀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순 없겠니? 굳이 연서 병원일 필요는 없잖아.”
“음···. 일단 연구와 관련해서는 제가 팀을 정하는 권한이 없어서요. 교수님한테 여쭤봐야 해요.”
“그래, 그러니까 너한테 부탁을 하는 거야. 내가 이야기를 하면 괜히 이상하게 넘어갈 수도 있거든. 연구비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갑질을 하는 거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제서야 그가 따로 나를 불러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미래전략팀 소속으로 온 게 아닌 환자의 보호자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보호자 동의라는 거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일단 아버지가 그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 또 형이 전담의니까. 병원비나 이런 걸 두고 봤을 때도 형이 보호자인 건 맞고.”
나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최성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임상실험이 잘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니까···.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데 나는 아버지가 적어도 첫 타자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인 거야.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안정성이 보장된 후에 약을 투여해도 안 늦는 거잖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뵌 게 언제쯤이세요?”
“응?”
뚱딴지같은 내 질문에 최성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살짝 멋쩍은 듯이 대답했다.
“한 3년 정도 됐지? 요즘 바쁘기도 했고, 그래도 마지막에 뵈었을 때는 기억도 잘하시고 따로 불편함도 없으셨–”
“치매는 진행 속도가 사람마다 달라요. 그래서 시기에 따라 증상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고요.”
“…”
최성훈은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를 언제 뵙고 말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지 않니? 중요한 건 지금, 그러니까 자식 된 도리로서, 그래 도리로서! 적어도 안전한 실험에 참가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려고 너를 부른거지.”
열심히 부연 설명을 늘어놓는 최성훈.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부모님에게 혼날까 봐 열심히 변명을 하고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최성훈을 혼내거나 나무랄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방금 대화로 그가 날 부른 진짜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 챌 뿐이었다.
“오늘 굳이 다른 카페가 아니라 여기로 부르신 이유 있으시죠?”
이곳은 연서 병원 내부의 카페. 많고 많은 카페 중에 왜 하필 여기일까. 그는 사정이 있어서라고 했지만…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조금만 나와도 카페는 많았다.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병원 내부의 카페였기에 부산스러웠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도 이리저리 지나다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곳을 고른 이유가 있다.
“아버지 뵙고 싶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최강석 교수님?”
내가 미간을 좁히며 갸웃거리자, 그가 정곡이 찔린 듯 얼굴이 어두워졌다.
손을 만지작 거리던 최성훈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둘 다야. 아버지 상태를 뵙고 멀쩡하신 거 보면 형한테 이 연구를 취소하자고 말할 수 있을테니까.”
“음, 아마 교수님은 안 계실거에요. 지금 해외에 계신다고 하셨거든요.”
“어째 너가 나보다 더 형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
다시 가벼운 태도로 돌아온 최성훈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좀…두렵네.”
어릴 적에 그렇게 혼나도 아버지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두려움. 나는 그 감정을 안다.
안 본 사이에 너무 많이 달라져 버렸을까 봐,
나를 잊어버렸을까 봐.
하루하루 증상이 심해지던 할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기억하고 있던 내 이름을 내일은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만덕아’라고 불러도, 내일은 ‘누구냐?’라며 물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는 한동안 할아버지가 계신 방에 가지 않다가, 어머니의 꾸지람에 못 이겨 다시 할아버지를 마주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뭐라 이야기하셨더라. 그때 분명…
아, 맞아. 그랬지.
옛 기억이 떠오른 나는 옅게 웃으며 최성훈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계셨을 거에요. 3년 동안.”
“…날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그의 목소리에서 울음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다 큰 어른이 애 앞에서 우는 건 좀 부끄러울 테니까.
그렇기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그를 조용히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치매가 진행될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으로 해마가 있는데, 여기선 보통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고요. 그래서 이 부위가 손상되면 환자는 최근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는 걸 어려워해요.”
“…”
“그러니까 제 말은 지금 방문해도···.”
어제 본 것처럼 맞이해 주실 거에요. 아마도요.
“…흐흡.”
결국 소리 내어 흐느끼는 최성훈을 바라보며 나는 커피를 다시 홀짝였다.
오늘따라 유달리 커피가 더욱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