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3화(153/221)
153. 동의 (1)
153. 동의 (1)
전 세계 치매 환자 수는 약 4,000만 명. 추정치가 이 정도이니 실제 치매 환자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터였다. 그리고 그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최O철] [담당의: 최강석]1인실 병동 앞, 최성훈은 쉽사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다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지만 밖에서 잠깐 기다려 줄 수 있냐’ 는 그의 말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긴 1인실 중에서도 좀 특별한 곳인 것 같은데.’
살면서 이런 병실은 와본 적이 없다. 전생에 어머니가 암 말기였을 때도 1인실은커녕 다인실에서 지내다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고개만 떨궜을 뿐이니까.
최성훈의 아버지가 있는 곳은 1인실 중에서도 VIP실인 듯했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최성훈을 기다리고 있는데,
“…김만덕?”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최한별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얘도 있었구나. 최한별에게 있어 저 병실 속 사람은 할아버지일 터. 병문안을 온 듯 그녀의 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하나 들려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왜 네가 여기에…?”
“음, 사정이 좀 복잡한데. 최성훈 팀장님이랑 같이 온 거거든.”
“삼촌이랑?”
최한별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병실 문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내려놓은 쇼핑백 안에는 인형이 하나 들어있었다.
“삼촌…지금까지 온 적 없었는데.”
“뭐, 나름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아.”
“고민…”
최성훈은 적어도 3년 동안은 병문안을 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최한별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삼촌의 방문이 낯설게 느껴진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근데 삼촌이랑 너는 무슨 관계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너도 우리 할아버지 뵈러 온 건 아닐거 아니야.”
“정확히는 불려서 나온 거긴 한데…아예 상관이 없진 않아.”
“?”
고개를 갸웃하는 최한별. 하지만 나는 이어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연서 병원과 김성진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즉, 연서 병원의 책임자는 최강석, 즉 최한별의 아버지인 상황.
자신의 할아버지가 임상 시험자로 들어간다는 걸 알고 최한별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버지 연구 때문에 온 거구나?”
“어? 알고 있었어?”
“응. 어쩌다 보니.”
그녀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을 보며 신발로 바닥을 한 번씩 치며 시간을 보냈다.
최성훈은 대화가 꽤 길어지는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지는 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침묵이 길어지던 중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삼촌 안 좋아해.”
“어?”
“너무 늦게 왔잖아.”
느닷없는 이야기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평소 좋아하고 말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애였는데,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게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게다가 이렇게 ‘안 좋아함.’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기에, 나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러자 최한별이 병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에 우리 집에도 오셨었거든. 잔뜩 취한 상태로. 그리고 ‘아버지를 실험체로 쓸 생각이냐’, ‘형은 예전부터 자기 명예만 챙기고 잇속만 챙기는 놈이다.’, ‘그러고도 자식이냐’라면서 쏟아내고 가셨어.”
“어···.”
“그래서 그때 알았어. 잘은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구나, 그리고 그 실험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버지구나.”
결코 밝은 내용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나와 다르게 최한별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아버지가 연구를 위해 할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왜?”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만약 최강석이 정말로 연구를 위해서, 그러니까 이 업적에 대한 명예에 눈먼 사람이었다면 굳이 자신의 아버지를 대상으로 진행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엄밀하게 치료 대상자로 적합한 사람을 찾고, 투약하기에 적절한 대상군을 또 골라내고, 보다 시간을 길게 잡고 연구를 진행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이 세상에 자기 가족을 실험체로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영화엔 많던데?”
“…대체 무슨 영화를 보는거야.”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바라봤다. 최한별은 옅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현재로선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니까. 뭐라도 할 수 있다면 다 해보려는 게 아니실까?”
“너라면?”
“어?”
“너였어도 그랬을 거야?”
최한별의 물음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만약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최강석처럼 행동했을까?
“응.”
나는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최한별은 내 말을 듣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베니를 치료할 때도 그랬었다. 굳이 베니가 아닌 다른 실험체를 구해다가 실험을 하는게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효율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베니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 이유 하나였을 뿐이다.
“있잖아, 나도 알고 싶어.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어···그게 말해주기가—”
“말해줘.”
단호한 말투로 나를 바라보는 최한별. 그녀는 이제 아예 몸을 틀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올곧게 바라보는 그 시선에 나는 아랫 입술을 한번 씹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밀로잽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지?”
“응. 네가 올린 논문에 나오던 거잖아.”
“그걸 활용한 후속 연구라고 보면 돼. 지금까지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 안에 축적이 되어도 효과적으로 분해하는 게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번엔 그 약을 이용해서 비이상적으로 축적된 단백질을 분해해서 배출해 내는 거야.”
김성진 교수와 이재성은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서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기존에는 단순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혈뇌장벽 수준으로 배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그 약을 투여한 뒤에도 뇌졸중이나 뇌혈관 질환 등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내 설명에 최한별은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마치 내가 하는 말을 모조리 기억하겠다는 듯이 그녀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내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너···엄청난 걸 만들어낸 거였구나.”
“딱히. 나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 이어지는 연구는 사실상 교수님 손에 달렸다고—”
“고마워.”
멋쩍게 뒷통수를 긁던 나에게 최한별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 아무것도 된 게 없는데. 연구도 아직 시작 안 됐고.”
“아버지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아마 네가 아니었으면 영영 치매 치료는 놓아버리셨을지도 몰라.”
“…확대 해석이야.”
“고마워.”
연이어 고맙다는 말을 하는 최한별. 괜시리 뒷목이 가려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드르륵. 소리를 내며 병실 문이 열렸다.
최성훈의 눈이 빨갛게 변해있었지만 우리 중 아무도 그걸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앞에 있는 조카의 모습에 당황한 듯했다.
“어, 어. 한별이니? 할아버지 뵈러 왔고?”
“네.”
“그래, 그래. 근데 지금 할아버지 저녁 드실 시간이라는데 좀 있다 오지 않을래?”
“괜찮아요. 오늘은 선물만 드리고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녀가 쇼핑백에서 인형을 꺼내 들었다. 흰색 털이 복실복실하게 난 강아지 인형이었다.
최성훈은 그녀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러렴.”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렇게 최한별과 헤어지려는데,
“한국엔 언제까지 있어?”
“어···. 아마 일주일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이번엔 꼭 놀러 와.”
우리 집으로. 최한별이 강아지 인형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웠기에 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최한별과 헤어졌다.
“이래도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이야기는 잘하셨어요?”
“그래. 덕분에.”
병원을 빠져나온 후, 우리는 차로 이동했다. 저녁을 사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 참이었기에, 그는 나를 쌍둥이네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럼 공동 연구는 어떻게 할까요?”
내 물음에 운전에 집중하던 그가 코를 한번 훌쩍였다. 갑자기 더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아까의 감정이 올라온 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어지는 목소리는 밝았다.
“계속 진행해도 될 것 같다. 내 생각이 짧았어. 나는 형이 그저 자기 목적을 위해서 아버지를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오늘 아버지를 뵈니까···내 생각이 짧았단 걸 알았어.”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오늘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내게 털어놓는 최성훈. 운전을 하는 중이라 내 쪽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나를 신경쓰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간단했다. 두려웠고, 그래서 외면했다가, 연구 이야기에 화가 났고,
“…빨리 그 연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네.”
남은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런 최성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연구중인 아밀로잽만으로는 치매를 치료하는 건 어려워요.”
“…그런가.”
“그래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최강석은 말했다.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내보라고.
김아진은 물었다. 환자의 보호자들이 가장 원하고 있을게 뭘 것 같냐고.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최성훈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긴 운전을 하며 내쪽을 바라보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성훈 팀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이었다.
*
많은 환자 중 임상실험을 꺼려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한 가지 감정이 깔려있었다.
불안. 이 실험을 받다가 오히려 더 안 좋아질까 봐, 괜히 이상한 걸 몸에 주입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신 등. 임상 실험 자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르니까 거부감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 흔한 예시로 죽음 뒤의 일이라든가, 10년 후의 미래같이 다양한 추측은 가능하지만 확정할 수는 없는 것들 말이다.
그때 카페 안으로 들어온 한 여자가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니! 만덕 학생 하버드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무슨 일이에요?”
“김민주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에이, 우리 저번에 봤잖아요. 아! 작년에 본 거니까 오랜만이 맞나?”
김민주 작가가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게 그녀와 줄기세포와 관련된 인터뷰를 해주기로 했었지만, 그날 곽진환의 발표를 보고 충격에 빠진 그녀는 날 인터뷰하는 것에서 방향을 틀어 곽진환에 대해 특집 방송을 내는 걸로 결정했다.
[천재 소년의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방송, 그 방송에서 그녀는 곽진환을 ‘매스컴이 만들어낸 천재’가 아닌 ‘매스컴이 놓친 천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사실 그 방송 다 대본이긴 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런 걸 보고 위약 효과라고 하던가? 주위에서 천재, 천재 하면 진짜 천재가 되어버리는?!’
···전생의 폭로 영상과 비교했을 때 내용은 비슷했지만 뉘앙스는 전혀 반대였다. 오히려 매스컴을 일찍 타버려서 그 천재성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다시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워낙 방송에 나오는 걸 싫어하시다 보니 그냥 물 건너갔구나 싶었거든요.”
“사실 이번 인터뷰는 줄기세포보다는 다른 내용이긴 하거든요. 그래도 가능할까요?”
김민주 작가가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살짝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실 제가 기자도 아니고 방송 작가다보니 저한테 큰 힘은 없거든요. 일단은 인터뷰 내용 따서는 가는데 방송엔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럼 혹시 아시는 기자분들한테 전달해 주실 순 없나요?”
“기자한테까지요? 대체 뭘 이야기하시려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내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와, 그 연구를 가로막고 있는 벽에 대해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적막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난처한 적막이 아니었다. 그녀는 씩 웃으며 가방에서 노트북과 녹음기를 꺼냈다.
“대박이네요.”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