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5화(155/221)
155. 신뢰 (1)
155. 신뢰 (1)
김만덕의 방송이 국내에 퍼지고, 말도 안 되는 임상 실험자 수가 몰려들 무렵. 그 영상에 대한 소식을 뒤늦게 보고 있는 한 가정도 있었다.
김진수는 미국 여행 5일 차, TV 속 한국 채널을 찾아 화면 속 친구를 바라봤다.
[사실 치매 치료의 현실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꼭 치료제를 만들어 내고 말겠습니다.]“어머, 쟤 좀 봐. 나이도 어린데 기특하네.”
“엄···그러게요.”
김만덕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김진수의 모친은 아들을 챙겨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김진수는 올해 의대에 합격했고, 이제 곧 의대생이 될 귀한 아들이었으니까.
원래는 재수를 대비해 모아둔 돈이었는데, 김진수가 한 번에 합격하는 덕에 이렇게 일가족 모두 미국 여행을 오게 되었다. 그동안 뒷바라지한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자 수험생활 열심히 한 아들을 위한 여행.
문득 고기를 발라주던 김진수의 모친은 TV를 보고는 쯧, 하며 소리를 냈다.
“그런데 치매 치료를 하고 싶으면 의대를 가야지 쟤는 왜 하버드에 갔다니? 보니까 하버드 의대도 아닌 것 같던데.”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고 싶대요.”
“근본적인 치료? 뭔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백퍼센트 후회할 걸? 의대 안 간 걸?”
뭐니뭐니해도 한국에서는 전문직이 최고야 아들, 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김진수는 딱히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의대에 진학한 거였으니까.
“잠깐 밖에 갔다 올게요.”
“그래~ 날 추우니까 너무 밖에 있진 말고.”
아침을 다 먹은 김진수는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수험생 시절에는 주말에도 밖에서 놀다 온다는 건 허락되지 않았는데, 의대에 합격하고 나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아이고! 우리 집안에도 이제 의사 선생님이 생겼네!’
‘오빠, 의대 가는 거 진짜 힘들다던데 오빠는 전교 몇 등했어?’
‘형. 나중에 무슨 과 갈 거야? 피부과? 성형외과?’
친척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물론 한국과고 갔을 때도 다들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 급이 달랐다.
직업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인 순간이었으니까. 부모님의 자랑, 친구들의 부러움. 그 모든 건 짜릿하고 행복했다. 그동안 노력해 왔던 게 헛된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증명해 보였다.
“…쓰읍, 춥네. 추워.”
김진수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사실 미국을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고 이런 카페가 아니고 다른 데 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자 곳곳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손엔 너도나도 아이폰이라고 불리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었다.
기존의 폴더폰과 슬라이드폰이 아닌 터치식 핸드폰의 등장. 작년 11월에 아이폰이 한국에서도 발매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한국엔 폴더폰을 쓰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수지타산을 따져보던 김진수의 눈에는 뭔가 느낌이 왔다. 이건 되는 주식이라는 느낌이. 머릿속으로 굴러가는 계산기가 아니더라도 그의 본능이 이쪽은 돈 되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김진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주문한 모카라떼의 휘핑을 미간을 좁힌 채 걷어내며 생각했다.
‘됐다, 됐어. 이제 앞으로 장밋빛 인생만 남아있는데 굳이 다른 걸 신경 쓸 이유가 뭐가 있어? 지금까지 못 했던 거나 하면 돼. 못 했던 거.’
그러나 김진수는 미간을 좁혔다. 분명 의대에 합격하고 나면 하려고 했던 게 엄청 많았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할 게 없다. 만날 친구도 없고. 놀 것도 없고.
한마디로 심심하다. 인생이 심심해. 물론 누가 본다면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라고 할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김진수가 안 심심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때 옆에서 뭔가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갈색 머리의 외국인이 앉아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잘 들어보니 대부분이 “Shit’ ‘Fxxx’과 같은 욕이었다.
···이상한 사람이군. 이상한 사람 주위에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불똥이 튈 거라는 계산이 든 김진수는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그는 바로 옆 넓다란 4인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정체 불명의 기계를 올려놓고 부산스럽게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Shit! Why doesn’t it work here?(젠장, 왜 여기서 안 되는 거야?)”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다시 눈에 불을 켜고 노트북을 빤히 쳐다봤다. 타다닥, 현란한 키보드 소리가 이어서 들리고 같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아메리카노가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흠, 컴퓨터 공학과인가? 바로 옆자리였기에 곁눈질로 보니 정체 모를 영어들이 화면에 쫙 깔려있었다. 이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저게 코드인가 뭔가 하는 것 같다.
‘됐다. 숙소나 가자.’
신기하긴 했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을 걸 정도로 그렇게 친화력 좋은 사람도 아닐뿐더러 뭔가 엮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김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오면 좀 재밌을까 싶었는데, 역시 따뜻한 숙소가 최고다. 다 마신 모카라떼 잔을 들고 이동하는데,
덜컥.
“…아.”
“Shittttttttttttt!”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틈새를 빠져나오려다가 실수로 외국인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건드렸다. 그리고 테이블에 있던 아메리카노가 노트북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노트북이 꺼졌다.
아. X됐다.
XXX! xx! XxxXX! 대충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욕설을 내뱉는 남자는 고개를 돌려 김진수를 바라봤고, 잔뜩 화가 난 그를 보며 김진수는 어, 어, 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겨우 첫마디를 뗐다.
“M, May I help you···?”
무료하던 하루가 순식간에 어메이징하게 변했다. 좀 안 좋은 의미로.
*
“응. 데이브.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어?”
[어, 어. 어! 어.]“?”
고장 난 기계처럼 끊긴 대답을 반복하는 데이브. 최강석의 협조를 받아낸 이후로 치매 환자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오고 있었다. 실험을 더 지체해서는 안 되었기에 나는 데이터를 받는 대로 바로 데이브에게 넘겼다.
데이브의 역할은 분명했다. ‘슈퍼진단키트’를 이용해 치매 환자들에게서 있는 공통의 특징을 분석해 내는 것. 기존의 슈퍼진단키트로는 불가능했지만 이후 곽진환이 연구했던 내용을 데이브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곽진환이 하는 건 수학적인 공식과 수식을 이끌어내서 하나의 새로운 식을 이끌어내는 것이었고, 데이브는 그걸 컴퓨터에서 돌아갈 수 있게 변형해내야 했으니까.
‘할 수 있어! 걱정 마!’
그러나 데이브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울수록 도전 의식이 생긴다며 더 불타오르곤 했다. 그렇게 데이브는 “나만 믿고 있어. 복잡한 계산은 이 녀석이 다 해내도록 만들어 둘 테니까.”라고 말하며 슈퍼진단키트를 툭툭 쳤었다.
…지금 이 떨떠름한 반응이 좀 찝찝하긴하다만. 뭐, 데이터는 나한테도 있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신뢰다. 여기서 데이브를 믿지 못하고 내가 개입해봤자 자칫 잘못하면 그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이 될 터. 설령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온다고 한들, 예전에 부커 교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알고리즘을 개발했던 기억을 더듬어 다시 시작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일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는 데이브에게 믿고 맡길 필요가 있었다.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안 그래도 네가 보내 준 깜짝 선물은 잘 받았단다.”
“깜짝 선물이요?”
오랜만에 방문한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 그는 여전히 피로한 얼굴이었지만, 날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주 깜찍한 짓을 벌였더구나. TV 출연말이다.”
“아···.”
“게다가 내 연구실 언급까지. 덕분에 어제까지도 심심할 일은 없었다.”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전화기를 눈짓하며 말했다.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멋쩍게 웃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됐다, 사과를 들으려고 말한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어찌되었든 연구에 진척이 생긴 건 분명하고.”
임상 실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임상 실험 대상자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대상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던 상황에 내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내게 앉으라고 소파를 권했다. 그리고 따뜻한 둥굴레차를 건넸다.
“최강석 교수에게 들으니 치매 환자의 유전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네. 본격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전에 말했던 치매의 원인이 되는 유전인자를 제거해 내겠다는 아이디어인가?”
“네.”
그는 둥굴레차를 홀짝였다.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도 그랬었지.”
“네?”
“자네를 처음 만난 날 말일세. 그때도 자네는 그렇게 이야기했었어.”
마치 옛날 일을 회상하듯이 그는 조용히 말했다. 방 안에는 은은한 둥굴레차 향이 퍼졌고, 나 역시 아무런 말 없이 차를 마셨다.
우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김성진 교수는 내가 하려는 연구를 두고 격려도, 우려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차만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운이 좋아서 베타-아밀로이드와 관련된 유전인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예전에 했던 대화를 끌고 온 김성진.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운이 좋아서 발견해 낸 건 아니고, 전생에 밝혀진 내용을 좀 끌고 온 거긴 했지만···.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니까.
“부디 이번 연구에도 그 운이 따라주길 바라네. 임상 실험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일세.”
“꼭 성공할 겁니다.”
“그래, 이번 임상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글로벌 임상 실험으로 확장될 거니 미리 알아두고.”
“네.”
글로벌 임상. 전 세계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밀로잽을 투여하는 임상 실험이었다. 거대 제약사에서 주관하는 경우엔 보통 글로벌 임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아밀로잽은 국내에서 시작된 신약. 차차 범위를 확장시켜 나갈 예정이었다.
···물론 제약회사에서 가만히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문득 신텍시스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그의 제안에 솔깃했던 건 사실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의 도움을 받는 순간, 그보다 더 큰 걸 뱉어내야 한다는 것을.
제약회사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아밀로잽과 관련해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치매라는 건 어떤 증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말일 뿐, 하나의 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요. 그렇기에 치매를 치료하는 단일 치료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치매도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알콜성 치매 등 다양하니까.”
과거에 나는 한 가지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만 찾아낸다면, 그래서 그걸 제거만 한다면 치매라는 질병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그러나 김아진과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더 연구를 하면서 연구의 방향을 다듬어갔다.
“치매의 원인이라는 건 사실 없을지도 몰라요.”
“흠, 그렇게 되면 유전자 편집 기술로 치매 유전인자를 제거하려는 자네 연구가 틀어지는 게 아닌가?”
“틀어지는 게 아니라 이제야 바른 방향으로 잡힌 거라고 생각해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김아진은 말했다. 유전인자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복구하는 것도 유전자 편집 기술의 일부라고. 아마 전생 때도 그녀는 누누이 말했겠지만 나는 듣지 않았겠지.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김성진을 향해 말했다.
“치매라는 병을 없앤다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증상을 하나씩 줄여나간다면 결국 치매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통적인 유전인자 분석은 필수라고 생각하고요.”
“치매의 증상이라···.”
우리는 건망증을 보고 치매라고 하지 않는다.
갑자기 화를 내고 운다고 해서 치매라고 하지 않는다.
말을 하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치매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동시에 일어난다면, 우리는 치매를 의심한다.
“약 하나를 먹는다고, 주사를 한번 맞는다고 해서 치매가 치료될 거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아요. 설령 그게 가능했다고 해도···그건 운이 좋아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더이상 운에 기대지 않을 겁니다, 비장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김성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원참. 방금까지 운을 운운하던 내가 다 민망해지는군.”
“아, 그러려던 건 아닌데.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됐네. 사과를 받으려고 그런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보다 이제 가볼까나. 최강석 교수랑 이재성 군은 아마 거기 있을걸세.”
“네.”
“다들 자네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 무게에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아마 굳이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책임감. 그래, 책임감이겠지.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강석 교수가 있는 연서 병원으로 향했다.
임상 실험자들이 모여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