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7화(157/221)
157. 거래 (1)
157. 거래 (1)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하버드 수업도 2학기에 접어들었고 이곳 적응도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다들 룸메이트 변경 안 했네.”
“응. 나쁘지 않았으니까.”
“사실 나는 해볼까 생각은 했는데–”
룸메이트인 엘리엇과 존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한 학기동안 동고동락하다보니 나름 정이 든 녀석들. 그중에서도 같은 방을 쓰는 존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름 친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덕, 네가 하려는 연구가 구체적으로 뭐야?”
“어?”
“나도 연구원 쪽에 관심이 많아서. 소문에 의하면 이미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 엘리엇이란 녀석은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태생부터 금수저여서 오는 거리감이 아니라 이상하게 관계에서 삐걱대는 느낌.
정확히는 정보에 의한 거리감이었다. 나는 내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이 녀석은 알고 있다. 물론 김아진이 말하고 다녔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너랑 연구한다고 하면 다 날 조수로 볼 것 같아서 싫어.’
라고 이야기하는 김아진이 그럴리가 없다. 그녀는 내가 줄기세포계의 1인자라거나, 아밀로잽으로 네이처에 논문도 올린 천재다 하는 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연구를 진행할 때 동등한 위치에서 진행했다.
그렇다면 김아진이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누가 이야기했는가? 후보로 여러 명을 떠올려 봤지만 다 혐의없음이었다.
“누구한테 들은 소문인데?”
“음, 아는 형?”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썩 좋지는 않네. 연구라는 게 말이 많아지면 괜한 일도 생기는 법인지라.”
일부러 좀 차갑게 이야기하자 엘리엇이 머쓱한 듯 뒤통수만 긁었다. 그 모습을 본 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엘리엇이면 소문 들을만 하지. 너 그 소속이지? 아크?”
“아크? 아크가 뭔데?”
“너 진짜 외국인은 외국인이구나?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엘리트 소셜 클럽을 모르다니.”
존은 엘리엇을 앞에 두고 ‘아크’라는 사교 클럽에 대해 소개했다. 프래터니티(Fraternity)라고 불리는 남성 중심의 친목 클럽으로 쉽게 말하면 동아리 클럽이 좀 더 결속된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있는 건 동아리 수준이 아니지만.”
“아니야.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 걸. 그래봤자 그냥 사교 클럽이고.”
“그냥 사교 클럽은 무슨. 들어가는 조건 부터가 백인 남성인데? 나랑 만덕은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게다가 소득 수준도 평범한 집안은 아예 가입조차 안 돼, 라고 이야기하는 존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와, 이런 게 진짜 존재했구나. 지금까지 그냥 영화에서나 있던 비밀 사교 클럽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가입하면 뭐가 좋은데?”
“쉽게 말하면 사람이 있는 곳에는 다 부탁할 수 있는 거지. 그게 정치든, 산업 쪽이든, 심지어 여기 학교든.”
“다시 말하지만, 난 그쪽이랑 전혀 무관해. 오해야.”
“오해는 무슨, 이미 그 클럽에서 나온 정치인들만 해도 인터넷에 수두룩한걸?”
존과 엘리엇이 티격태격하면서 말이 오갔다. 그 내용의 깊은 곳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엘리엇이 보통 집안이 아니라는 것과, 그가 발들이고 있는 곳은 더욱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여간 미국이나 한국이나 인맥이란 건···나는 살짝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떨쳐냈다. 어차피 나랑 엮일 일은 없을 테니까.
“어쨌든 캐묻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아냐, 내가 좀···예민하게 굴었어. 나야말로 미안.”
“뭐야, 갑자기 이 훈훈한 분위기는? 그럼 우리 맥주나 마실까?”
존이 웃으며 말했고, 나와 엘리엇은 웃으며 거절했다. 알콜은 뇌에 치명적이니까. 그렇게 울상이 된 존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엘리엇과 나만 공용 룸에 남게 되었다.
음···솔직히 말하자면 엘리엇과 단둘이 있으면 좀 어색하다. 서로 공통된 취미도 없고, 살아온 문화가 달라서인지 대화가 어긋날 때가 있다. 이때의 문화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아니라 살아온 계층의 차이였다.
“나는 나중에 정치계로 갈 생각이야.”
“정치? 근데 왜 이 전공에 왔는데?”
“음···전공이 정치학 하나인 것보다 여러 개면 여러모로 좋잖아.”
그런가? 평소 정치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별로 궁금한 내용은 아니었으나 엘리엇이 먼저 입을 연 관계로 나는 묵묵히 듣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생각보다 더, 훨씬 더 뿌리 깊은 정치인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엘리엇이 있던 지역의 주지사를 역임했었고, 아버지 역시 상원의원으로서 정치인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엘리엇 역시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정계에 입문할 예정이었다.
“정치 쪽은 인맥이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맥이 중요해. 그래서 이 프래터니티에 가입한 거기도 하고.”
“그렇구나.”
“혹시라도 이 사교 클럽에 소속되었다는 것만으로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봐. 존이 설명한 거만 들으면 뭐랄까···좀 돈 많은 나쁜 놈 같은 느낌이잖아.”
“딱히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어.”
그냥 돈 많은 녀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도리어 생각해 봤을 때 이것저것 묻는 게 좀 께름칙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이해도 되고.
‘그런 모임이면 제약 회사 쪽이랑도 말이 오갈 테니까. 자연히 나에 대한 관심도 쏠렸었겠지.’
최근 제약회사에서 가장 열렬한 러브콜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일 테니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엘리엇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몇 분간 이어지자,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이야기하니까 재밌네.”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각자 방으로 헤어졌고, 나는 싱글룸이 닫히는 걸 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
“아진 선배. 이번에 실험 쥐 대상으로 APOE 유전자 편집했던 거 어떻게 됐어요?”
“음···그게 일단 ε4 유전자를 녹아웃 시키는 방향으로 해봤는데 결괏값이 별로 썩 시원찮아.”
“그럼 녹아웃 말고 전환으로 해보죠.”
“어? 진짜?”
김아진이 내 말에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되물었다. 나는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반응이 오히려 살짝 의심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
“저번에 내가 제안했을 때는 회의적이었잖아?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뀌었는데?”
“딱히 마음이 바뀐 건 아니에요. 이번게 잘 안되면 선배가 말한 방향으로 진행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인자로는 APOE 유전자가 있었다. 그 유전자에는 ε2, ε3, ε4의 세가지 대립 유전자가 있었고 그 중 ε4 대립유전자가 알츠하이머 병과 연관이 깊었다.
기존에는 ε4 유전자 녹아웃((gene knockout). 그러니까 유전자의 기능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로 만들어 관련 작동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ε4 대립유전자를 ε3 대립유전자로 전환하려면 시토신을 티민으로 바꿔야해요.”
“응응!”
“ε4 대립유전자는 아르기닌을 인코딩하지만, ε3은 시스테인을 인코딩하니까···”
본격적으로 치매, 그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깊은 유전자를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흐른 후, 같이 토의하는 것만으로도 뇌에 과부하가 걸린 김아진이 “스탑!!”이라며 휴식을 외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숙사에 가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아직 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요? 잠깐 교수님 좀 뵙고 올게요.”
“그래, 그래. 난 여기 지키고 있을 테니까 갔다 와~”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이야기하는 김아진. 나는 그런 그녀를 두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어느덧 추웠던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따뜻한 5월이 찾아왔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꽤 된 상태였기에 학생들은 저마다 과제를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지만, 봄 날씨라는 이유로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익숙한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오! 만덕!”
“노먼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후후, 곧 떠나는 교수는 생각보다 여유가 없는 편이랍니다. 정리하고 가야 할 게 많기 때문이지요.”
노먼 교수가 가리킨 곳에는 서류 더미가 상자 안에 가득 쌓여있었다. 그 광경은 오래전 박성민이 한국을 떠날 때와 비슷했다.
괜히 허전해지는 듯한 마음에 서류 더미만 바라보고 있자, 노먼 교수가 소파를 가리켰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 앉았고 그는 시원한 아이스티를 내게 건넸다.
“플로리다로 가신다고요?”
“네. 그곳에 제 딸아이가 자리를 잡았거든요. 어디 보자, 여기 있는 애가 제 딸이고 그 앞이 제 손녀입니다.”
후후, 흐뭇한 미소와 함께 사진을 보여주는 노먼 교수.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단란해 보이는 가정이 웃으며 서 있었다.
노먼 교수는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 많은 나이에도 연구를 계속 이어 나가겠지. 그리고 전생 때와 그랬듯이 tRNA 관련 연구로 노벨상까지 수상할 것이다.
“자, 그래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잘 되어가고 있나요?”
“네. 포기하고 있던 연구였는데···. 우연한 기회로 다시 진행되게 되었어요.”
전생 때 포기했었던 연구였다. 기술의 한계에 부딪혀서, 혹은 내 한계로 인해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곽진환의 연구, 김아진의 아이디어, 데이브의 슈퍼진단키트, 치매 환자분들의 데이터까지···.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연구가 다시 진행될 수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에 말없이 잔을 바라보고 있자, 노먼 교수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지금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어떤 연구는 평생을 걸쳐서 씨름해야 하는 녀석도 있는 법이거든요.”
“평생이요?”
“제가 하고 있는 연구가 바로 그런 녀석이죠.”
노먼 교수는 따뜻한 카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말없이 상자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류를 바라봤다가 이내 창밖을 바라봤다.
그는 RNA 연구에 거의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이 연구실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가 연구해 왔는지는 나로서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기실 거에요.”
“예?”
“그 연구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알아내실 테니까요, 확신에 가까운 내 말에 노먼 교수가 놀란 듯이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럴 때 보면 만덕 학생은 꼭 미래에서 온 사람 같단 말이죠!”
“하하···.”
“좋습니다, 그럼 미래에서 온 학생과 함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미래에는—”
그렇게 노먼 교수와 나는 꽤 멀어 보이는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꼭 플로리다에 오면 연락해라.’라는 노먼 교수의 말과 함께 나는 그의 연구실을 빠져나왔고, 다시 김아진이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꽤 시간이 지난 상황. 처음에는 휴식 시간이라고 기뻐했을 그녀도 슬슬 지루해하고 있을 터였다.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로 향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데이브? 무슨 일이야?”
[만덕, 완전 대박 소식이 있어. 엄청난 소식!]“설마 슈퍼진단키트 완성한 거야?”
가던 걸음을 멈추고 떨리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김진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도 데이브의 일대일 강의와 함께 코드를 열심히 짜다 갔다.
그렇게 완전히 끊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김진수는 한국에 가서도 계속 데이브에게 연락해 프로그래밍을 배워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 이거 좀 재밌을지도?’
‘오, 그럼 전공 바꿔보는 건 어때?’
‘미쳤냐? 그래도 내 직업은 의사 하나임.’
김진수와 통화하면서 그는 프로그래밍 하는데 진심으로 적성을 발견한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평생을 공부해 온 의대를 포기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이번 생에도 김진수가 의대를 자퇴하게 된다면···. 적어도 그 이후에 그가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있으니까.
[슈퍼진단키트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쩝, 그런가. 하긴 지금쯤 만들어졌다면 그건 초인적인 실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긴 했다. 프로그램 하나를 개발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비해 여기는 고작 2명이 전부인 팀이니까.
그렇게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데,
[연락 왔어.]“연락? 누구?”
그 순간,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누가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판매하고 싶대.]그것도 엄청 엄청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