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59화(159/221)
159. 거래 (3)
159. 거래 (3)
임상 시험은 대략 5가지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전임상 시험과 임상 시험 4종류로.
흔히 이야기하는 동물 실험이 전임상 시험이고 본격적으로 사람에게 신약을 투여하는 건 제 1상 임상 시험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우선은 건강한 사람들 80명을 대상으로 소량 투여할 계획이다.]“이번에 모집된 치매 환자분들이 아니라요?”
[질병이 있는 환자인 경우엔 보통 2, 3상 실험때 투입이 되니까. 게다가 치매 환자 특성상 노인 비율이 높아 신중할 필요가 있고.]김성진은 앞으로 진행될 임상 시험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 어떤 단계로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밀로잽과 관련해 각 단계별 설명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김성진과 이재성에게 아밀로잽 관련한 연구를 넘긴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음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내게 진행 경과를 알려줬다.
[투여 1주차/ 부작용 관찰되지 않음. 규칙적인 활동 수준 유지 중.] [투여 4주차/ 실험용 쥐 대상 미로 테스트 실시, 대조군에 비해 아밀로잽 투여 쥐의 경우 20% 향상된 학습 능력을 보여줌.] [투여 6주차/ 신체 건강 이상 무. 2종류 기억력 작업 추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수치 감소] [투여 8주차/ 부작용 무. 실험군 모두 대조군에 비해 71% 향상된 학습 능력을 보임.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수치 초기값에 비해 85% 감소.]이재성이 매주 보내오는 이메일에는 이와같이 아밀로잽과 관련된 실험 결과가 담겨있었다. 한 줄 정도는 일상적인 걸 물어볼만도 했지만, 녀석은 철저히 실험과 관련된 내용만 말했다.
뭐, 원래 이런 애였으니까 그러려니 한다만···. 생각해보니 이재성은 올해로 고3. 수능을 앞둔 수험생인데?
“교수님. 근데 이재성은 계속 연구실로 출근하는거에요? 주말마다?”
[아···사실 그게 말이지.]김성진 교수가 말을 하다 말고, 뜸을 들였다. 뭐지? 원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사람이 아닌데? 불현듯 전생때의 이재성이 떠올랐다.
‘당시에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셨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재성은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에선 더 배울 게 없다.’가 이유였다.
그리고 이후 그는 연구소에 들어가 치매의 증상을 완화시키고 진행 속도를 지연시키는 연구를 발표하고 이후 제약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학생을 연구소에서 스카우트 해간다? 대체 왜? 고작 화학 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라는 이유로?
그때는 이미 이재성이 성공한 후에 나오는 인터뷰를 읽은 것이었기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원래 엄청난 업적을 이루고 난 뒤에 보면 앞에 겪었던 일들이 더 범상치않아 보이는 법이니까.
[자퇴했다.]“예?!”
[…노파심에 말하는데 내가 강요한 건 아니다.]김성진이 지레 찔렸는지, 먼저 선수를 쳤다.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김아진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고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니, 지금 이 사람이 뭐라는거야. 이재성이 자퇴를 했다고?
“이재성이 자퇴를 왜 해요? 걔 대학 안간대요?”
[카이스트에 입학하기로 했다.]“예?”
[검정고시 치고 올해 원서 넣는다고 하더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먼저 강요하지 않았다.]“…먼저라는 말이 붙었네요?”
큼큼, 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미 숱하게 김성진의 수라에 말려든 적이 있던 나로서는 대충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을지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였다. 연구원으로 들어가거나 일을 맡는 것과 달리 자퇴는 한번 결정되면 돌이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김성진이라고 해도 이재성을 바로 카이스트에 꽂을 권한도, 애초에 그럴 수 있다 해도 안 할 사람이다. 청렴을 누구보다 강조하던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과고도 아니고 일반고 자퇴생이면 카이스트에 들어가기 힘들지 않을까요? 일반고가 나쁘다기 보단···준비해 온 서류부터 과고생에 비해 얇잖아요.”
과학고는 기본적으로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특수목적고등학교다. 그렇기에 학교 내의 교육과정도 일반고에 비해 과학을 중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관련 행사나 대회도 모두 과학에 초점. 문과 계열같이 다른 과목 대회 및 활동이 있는 일반고에 비해 오로지 과학에 집중되어 있는 과학고 특성상 서류전형부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애가 떨어질 거라 생각하니?]그때, 김성진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화상이라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분명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었겠지.
그도 그럴게 이건 질문이 아니니까. 김성진도 나도 알고 있었다. 이재성이라면 카이스트에 붙을 인재라는 걸.
“글쎄요. 아마 2차에서 떨어질 수도요. 심층 면접때 대인 역량도 보잖아요.”
[저런, 그걸 깜빡했군.]그렇게 나는 “이재성이 머리는 좋은데 좀 성격이 이상한 것 같아요.” 라며 칭찬과 험담을 같이 했고, 김성진은 웃으며 “그건 너도 만만치 않단다.” 라고 대꾸했다.
‘이번 기말고사 끝나고 한국에 가면 한번 물어봐야겠어.’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곰곰이 생각했다. 이재성 역시 전생과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명제가 여기서도 적용이 되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안그래도 이제 본격적으로 아밀로잽이 임상 시험에 들어가고, 유전자 데이터도 최강석의 도움으로 받아내고 있는 상황. 상황이 된다면 한국에 가서 상황을 살펴볼 필요도 있었다.
그렇게 방학 계획을 미리 다 세워두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야?”
“쉿. 조용히 해야 해.”
그때 연구실이 있는 건물 벽면에 딱 달라붙은 채 주위를 살피고 있는 미야가 눈에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주의를 줬다.
뭐지?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미야가 미어캣처럼 주위를 샥샥 살피더니 내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
“그 사람?”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서명운동이나 설문조사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말이야.”
미야는 마치 방패라도 들듯이 한 손으로 ‘미분 기하학’ 책을 들었다. 보아하니 꽤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냥 거절하고 가면 되잖아.”
“어떻게 거절해! 갑자기 길가다가 붙잡혀서 ‘지금 북극곰은 실시간으로 집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쌍한 북극곰을 위해 서명해주지 않겠어요?’ 라고 말하는데 그냥 거절하라고? 그 순간 나는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자는 입장에 서게 되는 거라고!”
“엄···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걸.”
전에도 느낀 거였지만 미야는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데이브의 슈퍼진단키트를 위해 40번 넘게 피가 뽑힌거만 봐도 그랬다.
그녀는 잔뜩 경계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앞으로 갔다. 참고로 나를 앞장 세워서 뒤에 숨은 모습으로.
···뭔가 인간 방패가 된 기분인데. 하지만 지금까지 하버드에 있으면서 서명 운동이나 설문 조사를 받았던 적은 없다. 동아리 구경하라고 끌려간 적은 있어도 이런 사회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제스쳐는 없었다.
안그래도 연구실에 김아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슬슬 다시 돌아가야했다. 그렇게 겁에 질린 채 주위를 둘러보는 미야에게 말을 걸려는데,
“저기···”
그 때,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과 남학생이 걸어왔다. 두 명이 동시에 나타나자 미야가 내 뒤로 숨었다.
여자는 한쪽 손에는 서명 운동 판으로 보이는 뭔가를 들고 있었고, 남자는 환한 이빨을 들어내며 내게 웃어보였다.
“혹시 지금 시간 돼?”
“아뇨. 시간 없어요.”
“5분이면 돼.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위한 서명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단칼에 거절했건만. 남자는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What are stem cells?(줄기세포란 무엇인가?)]나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미야가 그 모습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내 옷을 잡아 당겼다.
“안돼! 그거 받는 순간 꼼짝 없이 10분간 붙잡혀있어야하는—”
“어? 너는 아까 서명 운동 해줬던 애 맞지? 고마워.”
“그럼 이번엔 남자애한테 설명해주자.”
보아하니 미야는 이미 저 판에 싸인까지 끝낸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강렬한 태양, 아까보다는 조금 시원해진 편이긴 했지만 이 햇빛에 10분동안 붙잡혀 있는다면 아마 에너지를 다 써버리겠지. 게다가 미야와 다르게 난 거절을 잘하는 편이다.
“죄송합니다. 지금 잠깐 나온거여서요. 다시 들어가봐야해요.”
“오, 친구. 지금 공부가 중요한 때가 아니야. 지금도 수 많은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줄기세포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둘은 내가 강한 햇살 때문에 미간을 좁혔다고 생각한 듯 했다. 미야는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한 듯 잡고 있던 내 옷을 놓았다.
안경을 쓴 여자가 종이를 가리키며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하버드대 내에서 아주 끔찍하고 비윤리적인 실험이 시행되었어. 너도 들어본 적 있을거야, 한 생물학과 교수가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강아지를 치료했다는 이야기 말이야.”
“…더 말해보세요.”
“그런데 그때 사용된 줄기세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니? 이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로, 쉽게 말하면 살아있는 생명을 다른 생명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했다는거야. 게다가 그 강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고.”
제인으로부터 연락은 받았다. 베니가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슬퍼하거나 울지 않았다.
‘고마워. 네 덕분에 베니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었어.’
끝까지 반려견을 사랑해주었던 주인의 모습이었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보내 준 제인의 표정은 밝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내 앞에서 거짓 뉴스를 그럴듯하게 엮어 이야기하고 있는 둘에게 조금, 많이 짜증이 났다.
“강아지가 사망한 거랑 줄기세포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거죠?”
“그만큼 줄기세포는 위험한 치료라는거지! 그런데 과학자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실험을 위해서 이 위험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게다가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사용한다는 건 생명을 도구로 보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말없이 그녀가 준 종이를 읽었다. 생명윤리라.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분야였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이들이 싫지 않다.
이세상에 피도 눈물도 없이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만 있었다면 그녀가 말한 것처럼 생명은 도구로 전락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진짜인 것처럼 퍼뜨리고 다니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저도 생명이 도구로 전락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치? 그렇다면 여기에 싸인하면 돼. 하버드 내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금지시켜달라는 서명 운동이야.”
“하지만 그럴 수록 제대로 설명하고 서명을 받으셨어야죠.”
“…뭐?”
“마, 만덕. 이만 가자. 10분 지났어.”
미야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여전히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에 하버드대 내에서 아주 끔찍하고 비윤리적인 실험이 시행되었다고요? 그 실험에 대해 자세히 읽어는 보셨어요?”
“다, 당연하지! 내가 그것도 안 읽어보고 이러고 있겠어?”
“그러면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라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사용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텐데요.”
“…그, 그건.”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도구로 사용했다는데에는 변함이 없잖아? 우리는 그걸 막으려는 것뿐이라고!”
옆에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둘은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에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배아줄기세포랑 유도만능줄기세포는 그 과정 자체가 전혀 달라요.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다른 생명체가 아니라 자신의 피부 조직과 같은 체세포를 인위적으로 자극을 줘서 배아줄기세포와 같이 만드는 거에요. 애초부터 다른 생명체를 가지고 와서 실험을 하는게 아니라 내 세포를 가지고 내가 치료를 받는건데요?”
“ ···그, 그래도···”
배아줄기세포와 생명 윤리는 늘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걸 두고 맞다, 틀리다라고 판단하기엔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고안해서 나온게 유도만능줄기세포고. 그런데 지금 눈 앞의 두 사람은 실험 내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줄기세포 연구를 금지시켜달라고 요청하는 싸인을 받고 있었다.
이건 크리스 교수, 아니 그동안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연구해 온 사람들을 매도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 서명 운동. 둘이서만 받고 있는 건 아니죠?”
“어, 어?”
“동아리에요? 아니면 지역 단체?”
“그, 그게···”
“됐고, 그냥 앞장 서요.”
어떤 놈인지 그 윗대가리 좀 만나봐야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