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화(16/221)
16. 동아리 (1)
16. 동아리 (1)
“어, 여기 앉아봐라.”
담임 박민철은 간이 의자 하나를 끌어다 내 앞에 두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떨떠름하며 자리에 앉자, 그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과학 인재 장학금]과학 인재 장학금. 이공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 장학금을 주는 제도였다.
금성 장학생처럼 엄청난 학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장학제도.
“이번에 장학생 추천자로 널 추천하기로 결정이 되어서 말이야. 관련 서류 몇 개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학업 계획서, 생활비를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간단한 개요문 등. 크게 어려운 서류들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면…
“수급자 증명서 같은 건 필요 없나요?”
전생에도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학기 초에 받았던 건 공부를 잘해서 받은 게 아니라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받은 장학금이었다. 그때 꼭 제출하던 서류가 수급자 증명서였다.
내 말에 박민철이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번 장학금은 가정형편을 본 게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본 거거든. 학업계획서만 잘 작성해서 내면 반려되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저보다 더 공부 잘하는 애도 있지 않나요?”
배치고사 등수로 따지면 전교 2등이었다. 그 말인즉슨, 내 앞에 최한별이 있다는 소리.
내 말에 박민철이 곤란한지 미간을 좁혔다. 그는 교무실을 한번 훑어보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이번 장학생으로 황 교수님이 널 적극 추천하셨다.”
“네?”
“여기까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이 장학생선정위원회에서 한자리 맡고 계신 분이시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유로 널 추천하신 건 아닐 테니 찝찝해하지 않아도 된다. 너가 볼 때도 황 교수님이 그럴 분은 아니시잖니?”
박민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봐왔던 황대문 교수는 반기를 들면 반기를 들었지 누구를 추천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큼 그 사람의 눈에 들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장학생으로 선정된다고 해서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야. 상위 5%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대학 진학 때는 무조건 이공계로. 나중에 의대 간다고 하면 다시 회수한다?”
“그쪽은 생각이 없긴 한데···. 다른 학부모님들의 반박이 있지 않을까요?”
날 추천해준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혜택을 받아버리면 자칫 ‘특혜’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학업에 집중하고 싶은 나에게 신경 쓰일 노이즈는 사양이다.
그런데 의외로 박민철은 속 시원하게 대답했다.
“아 그런 거면 괜찮다. 다른 후보자로 언급되었던 학생이 ‘더 필요한 애들한테 장학금이 가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거든.”
한마디로 금수저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이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서 대학 입시에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괜히 학업 계획서 쓰느라 시간 버릴 바에 안 쓰고 안 받겠다는 뜻이었다.
문득 이 학교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새삼 체감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 계급 이동이 가능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이 났고, 사다리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이렇게 흙수저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답니다.”라고 전해지는 시대다.
최한별만 봐도 부모가 모두 교수이고, 쌍둥이들도 말은 안 했지만, 행동거지나 평소 말하는 걸로 봐선 잘사는 집의 자제들인 거 같고.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만약 내가 금수저 집에서 자랐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환하게 맞이해주시던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더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까.’
장학금을 받으면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용돈을 보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그래. 앞으로 월 50만 원씩 너 명의의 계좌로 들어갈 거다. 다른 장학금이랑 중복 지원이 안 되긴 한데 아마 다른 장학제도 중에선 이게 제일 부담이 적고 지원이 빵빵하니까 걱정 말고.”
호쾌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박민철의 모습에는 뿌듯함이 실려있었다.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라는 격려와 덕담에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월 50만 원. 나중에 연구소 일도 참가하면···’
무려 월 90. 이 당시 사회 초년생의 월급이 100정도였으니 지금 고등학생의 신분으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용돈을 보내드리고도 수중에 돈이 남는 금액.
돈이 없어서 문제집도 제대로 사지 못하던 전생과는 스타트가 달랐다.
‘뭘 사지? 책? 노트북? 아니면 일단 저축을 해둘까?’
나는 이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을 하다 발걸음을 멈췄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2008년. 그리고 내년은···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채굴되는 해였다.
*
“저 1학년 왜 저래?”
“몰라. 들어올 때부터 싱글벙글이던데?”
전공을 고려해 들어온 동아리, ‘뇌생공’이었다. 뇌, 생명공학을 줄인 말이라는데 끔찍한 작명 센스였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2학년 김영재는 준비한 종이를 동아리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종이 맨 위쪽에는 ‘과학의 달 부스 신청서’라고 적혀있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4월에는 과고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과학의 달 전시 및 부스 운영이 있어. 자율 동아리의 경우엔 참여가 의무는 아니지만···올해 참가해보려는데 너희 생각은 어때?”
검은 뿔테 안경을 끌어 올리며 김영재가 말했다. 덤덤하게 말한 동아리 회장의 말에 동아리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글쎄. 나는 그닥 참여하고 싶진 않은데. 정규 동아리 준비하는 거로도 바빠.”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있으려나. 자율 동아리 활동은 생기부 입력도 까다롭잖아.”
“그냥 올해는 넘어가자.”
부원은 나를 포함해 총 5명. 동아리 개설 최소 인원을 맞춰 구성되었다. 처음 ‘뇌생공’에 들어가고 싶다고 김영재를 찾아갔을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김영재는 나를 보며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게 다들 수업량을 따라가기도 바빠서 자율 동아리는 참여 안 하거나, 참여하더라도 인원이 모자라 폐부 위기인 ‘뇌생공’이 아닌 ‘뉴로 퓨쳐스’라고 불리는 생명과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실험기구도 변변찮고, 정확히 뭘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뇌생공’과 다르게 ‘뉴로 퓨처스’는 홍보 때부터 의대를 내걸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시면 뉴로 퓨쳐스로 오세요! 졸업한 선배님들이 오셔서 직접 입시 멘토링도 진행해주십니다!’
과고에는 의외로 의대 지망생들이 많다. 굳이 의대가 아니더라도 명문대에 들어간 선배들의 생생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선후배 유대 관계가 끈끈하다는 점에서 다들 ‘뉴로 퓨쳐스’를 택했다.
부원들의 강력한 거부 의사에 부장 김영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마도 그는 이런 동아리 생활을 꿈꿨던 건 아닐 거다. 희망차고, 다들 열띠게 과학적인 토론을 하고, 함께 학술지를 읽는 그런 동아리를 꿈꿨을 테지만···
“우리 치킨 시켜 먹자!”
“학교로 배달시켰다가 걸리면 바로 벌점 때리는 거 몰라?”
“아 뭐 어때. 동아리 실험 재료라고 해~”
이곳은 조금 별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안 좋게 말하면 과고 부적응자들이었다.
“자율동아리 하면 야자 빼준다 해서 왔는데 이게 뭐야. 노잼이잖아.”
“게임하자. 노트북 써도 되지?”
“부장~ 외출증 끊어와 주면 안 돼? 실험 재료 사러간다고 하구.”
과고는 날고 기는 천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중학생 때까진 잘 버티던 놈들도 과고의 경쟁에서 다들 떨어져 나갔다. 결국 과거의 영광을 다시 못 얻을 거라 생각한 그들은 차라리 행복한 괴짜가 되기를 택했다.
“근데 만덕아. 너 이번 배치고사 때 몇 등 나왔어?”
한쪽 구석에서 거울을 보며 단장을 하고 있던 2학년 홍예슬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예쁘장한 얼굴로 학교에서 나름 인기가 있었다. 물론 성적은 처참했지만.
“야. 애 기죽게 그런 걸 왜 물어보냐? 여기 들어온 거 보면 모르겠어?”
“아 왜~ 궁금할 수도 있지. 꼽주기는. 그리고 누가 보면 여기 공부 못하는 애들만 들어오는 줄 알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 여기는 성적 제한이 없으니까.”
다른 자율동아리들은 다들 대학 입시를 위해서, R&E를 위해서,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입부 신청을 한다. 그렇게 모인 지원자들은 대게 성적순으로 걸러진다.
“저 2등 했는데요.”
“그래 2…뭐? 2등?”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진짜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어째 기분이 조금 상했다. 내가 그렇게 공부랑 멀어 보이는 관상인가?
“뭐, 뭐야. 거짓말 아니지?”
“어차피 들킬 거짓말을 뭐 하러 해요.”
“근데 왜 여기 들어온 거야?!”
방금까지 심드렁하며 책상에 누워있던 학생들도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뇌생명공학자’가 꿈인 만큼 입시 때 한 줄이라도 써먹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인맥.
“제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부장 선배에게 좋은 기운이···”
“으윽, 유사 과학충이 여기 또···”
“가만 보면 생명과학 하는 애 중에 정상은 없는 것 같아.”
‘뇌생공’의 부장을 맡고 있는 김영재와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훗날 과학의 역사를 바꿀 유전 공학, 그 중심에 서는 인물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최소 15년은 지나야 되는 일이지만 여기가 아니면 인맥을 쌓을 접점이 없다.’
자신의 개인적인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뇌생공’을 창설했다는 김영재. 그는 괴짜 과학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빼다 박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났고, 별난 만큼 남들과는 달랐다.
‘장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환경에서 그가 낸 연구는 대학은 물론 해외 연구진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지.’
이번 생에서도 같을지는 의문이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터였다. 천재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 외로도 그는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자율 동아리를 만든 것부터 보통과는 달랐으니까.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저는 부스 참가할래요.”
“억지로 안 해도 괜찮아. 부스가 힘들면 그냥 전시회로 돌려도 되니까.”
부스 운영은 일반적으로 손이 많이 간다. 단순히 그동안 연구한 걸 전시하는 전시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체험 키트도 준비해야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비가 컸다.
“부스 운영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 사람 대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거짓말이다. 전생의 기억으로 아직도 사람 대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한국과고에서 주최하는 ‘과학의 달’ 행사는 과학 교육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한국창의재단에서도 눈여겨보는 행사였다.
과학 천재들이 직접 준비한 전시와 부스를 체험할 기회.
이걸 알고 있던 한국과고 교장은 특별히 이 기간 동안에는 외부인 출입을 허용했다. 학생들이 연구한 걸 서로 공유하자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될성부른 떡잎들 좀 보고 가세요~’라고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난 떡잎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크게 자랄 떡잎.
“그냥 부스랑 전시 둘 다 참가할게요.”
떡잎을 자라게 해 줄 기연을 찾아 나설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