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0화(160/221)
160. 거래 (4)
160. 거래 (4)
하지만 윗대가리를 만나보겠다는 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니, 저렇게 빨리 달려간다고?”
“너 표정이 좀 무섭긴 했어.”
순식간에 도망쳐버린 둘을 보며 나는 미간을 좁혔다. 뛰어서 쫓아가볼까 생각도 했지만…그렇게 한다고 쳐도 주동자를 만나긴 어려울 거란 판단이 들었다.
애초에 이미 도망을 친다는 점에서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니까.
“햇빛에 녹아버릴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미야를 바라보니, 미야가 미분 기하학 책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그녀의 체력은 실시간으로 깎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 없지.
“미야. 아까 얘기 들어보니까 넌 이미 싸인 했다던데?”
“아, 아니. 하도 안 보내주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싸인으로 내 연구가 중단될 수도 있었는데도?”
“미안해애···.”
미야가 침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더 뭐라 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데이브의 슈퍼진단키트 때도 40번 넘게 피가 뽑혔으니···. 미야 성격상 거절하는 게 어려웠을 터.
결국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다음부터는 함부로 싸인하면 안 돼. 보증이나 담보 그런 것도.”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서명 운동 소동이 끝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쉽게도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는 동안까지도 하버드 내에서 그 서명 운동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만나면 이번엔 끝까지 쫓아가려고 했건만.
‘서명 운동이요? 저희 하버드 동아리 단체 중에는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따로 없는데요.’
가만히 있기엔 찝찝했기에 연합동아리회에 가서 이 일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조사 결과 ‘해당 동아리 없음’이라는 결론을 냈다.
외부 단체에서 들어온 걸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라는 말에 더욱 찝찝한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여간, 이 세상에 별별 또라이들이 다 있다니까? 그렇게 서명받아 봤자 뭐가 달라지나?”
“달라질 수도 있었어. 서명 꽤 많이 받은 것 같았거든.”
“그야 서명할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는 놈들이니까···.”
동아리실 [Nerd]에서 미야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데이브는 인상을 팍 쓰며 연신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명 운동 자체는 그렇다 쳐. 근데 없는 이야기로 받아낸 서명은 효력이 없다니까?”
“그건 그렇지만, 일단 잘못된 일이라는 걸 나중에 따로 듣지 않는 이상 모를 거 아니야.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연구 하나쯤은 중단되기 십상이라고.”
보통 연구원들이 자신의 실험을 진행하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사회학이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 같은 경우에는 종종 사회 집단과 마찰을 일으키곤 했다.
실제로 인간과 관련된 실험은 윤리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었고, 그게 비단 직접적인 약물 실험이나 치료 같은 개념이 아니어도 연구 중에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제한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슈퍼진단키트는 언제쯤 완성된다고?”
그중에 지금 데이브가 만들고 있는 슈퍼진단키트 역시 마찬가지.
유전자를 분석해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개인정보를 이용하고 해를 끼칠 수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은 잘 해결되어 진행중에 있었다.
“한국에서 받은 데이터도 이제 다 수합되었어. 이제 키트만 완성되면 되는데···.”
“헤이 캡틴. 재촉한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원래 엄청난 발명품들은 많은 수정을 거듭해서 만들어지는 거 몰라?”
“그래서 언제 만들어진다고?”
내 집요한 질문에 데이브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만큼 내게 데이브의 슈퍼진단키트는 큰 의미가 있었다.
치매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 낸다는 것.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키트가 지금 데이브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 녀석도 없어서 안 된다고.”
“누구?”
“진수 말이야. 김진수.”
아하. 김진수와 데이브는 계속해서 슈퍼진단키트와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김진수가 본격적으로 의대에 입학해 생활하면서 데이브의 슈퍼진단키트 개발에 조금 소홀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예과인 김진수라면 분명 시간이 좀 있을텐데···.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데이브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김진수 있으면 빨리 만들 수 있어?”
“당연하지! 그 녀석은 엄청난 인재라고. 물론 나보다 대단하진 않지만.”
“오호···.”
짧게 감상하듯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데이브가 응?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김진수만 있으면 빨리 만들 수 있다라.
그럼 부르면 되지.
“여보세요?”
[…김만덕?]“어. 잘 지내고 있지?”
갑작스럽게 걸려온 해외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김진수는 바로 받았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한국은 지금쯤 새벽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새벽 4시인데 안 자?”
[새벽 4시인 걸 알고도 전화를 거는 넌 뭐냐···.]약간 질린다는 듯이 대답하는 김진수.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제 막 자다가 깬 목소리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이미 깨어있는 상태였다는 뜻.
굳이 이런 저런 안부인사를 물을 타입도 아니고, 김진수 역시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기에 나는 바로 물었다.
“너 미국 안 올래?”
[…무슨 PC방 오라는 것처럼 쉽게 말하냐? 미국이 무슨 너희 집 앞 마당이야?]“어차피 너 지금 방학이잖아. 아닌가?”
[방학하려면 아직 한 달은 더 남았거든? 미국 대학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라고.]틱틱대는 목소리. 아하, 아직 한 달이 남은 상태였군. 하버드대에 있은 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다 보니 시간 감각이 둔해진 듯 했다.
전생에 대학 생활을 이미 충분히 한 나였지만, 지금 또 현생에 무서울 정도로 적응해 버리는 게 인간이니까.
“그럼 다음달에 미국 올래?”
[안 돼. 공부해야 해.]“이미 의대도 합격했는데 공부를 더 해? 어차피 너 지금 예과잖아.”
[피부과나 성형외과 가려면 지금부터 빡세게 준비해 둬야 한다고. 선배들한테 족보 받으려면 방학 때도 이곳저곳 따라다녀야 해.]김진수는 대학에 가서도 김진수였다. 머릿속으로 이미 앞으로의 계획을 다 짜둔 그는 족보를 얻을 루트마저도 다 계산해 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 루트를 김진수가 다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들었던 그의 의대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것 같았으니까.
[지금도 기말고사 공부하다가 전화받은 거야. 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이만 끊는다.]“음···사실 데이브가 슈퍼진단키트 만들고 있는데 막혔대.”
[뭐?]지금 나는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기에, 데이브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하고 있었다. 그저 데이브는 웃으면서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만덕, 지금 진수랑 통화하는 거지? 슈퍼진단키트 매우 잘 되고 있다고 전해줄래? 걱정시키기는 싫거든.”
“응. 알았어.”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데이브의 말을 전했다.
“지금 데이브가 그러는데, 슈퍼진단키트 매우 망해 가고 있는 중이래.”
[뭐, 뭐. 망한다고? 왜 망해 그게!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코딩했는데?]“몰라. 지금 큰일 났나 봐. 너 없으니까 아무 것도 안 된대.”
[이, 이···멍청한 놈!]분한 듯 전화기 너머로 소리치는 김진수.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며 데이브를 바라봤다. 데이브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슈퍼진단키트는 좀 더 자극이 필요하다고.
“그럼 방학 때 미국 올 수 있어?”
[야. 미국 가는 건 그렇다 쳐도 거기서 어떻게 생활하냐? 비행기 값만 백이 넘는데?]“돈 문제는 걱정 마. 숙소도.”
[왜, 네가 내주게? 미국에 집이라도 있어?]“응.”
[미국에 집이라도···뭐?]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김진수에게 설명을 해줬다. 하버드에서 가까운 거리에 집이 있으며, 전에 쌍둥이들도 와서 놀다갔다는 이야기까지도.
그 이야기를 들은 김진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연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야···너 금수저였냐?]“아니? 너 과고 때 내 별명 뭔지 알잖아.”
[아, 아니. 혹시 내가 잘못 알았나 해서. 그럼 진짜 집이 있다는 거지? 먹고 자고 할 돈도?]“응. 매일 고기는 못 사줘도 굶기지는 않을게.”
사실 고기 사줄 돈도 있지만···. 애 버릇 나빠진다. 안 그래도 김진수는 상대방에게 뽑아먹을 게 있다고 판단되면 등골까지도 다 빼먹는 무서운 녀석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김진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조금 가벼워진 목소리로 답했다.
[큼큼, 그럼 어쩔 수 없지. 원래 이번 방학 때 선배들이랑 같이 MT 가기로 했는데, 그냥 미국 여행 갔다 오지 뭐.]“그래도 돼? 같이 가서 족보 하나라도 받는 게 더 이득이지 않아?”
[…됐어. 어차피 있어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으니까.]응?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김진수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럼 방학하면 연락할게.”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득 그가 통화를 하면서 키보드 타자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뭐. 자세한 건 녀석이 미국에 온 다음에 물어봐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나는 데이브를 바라봤다.
“진수 온대.”
“진짜? 걔가 온다고? 언제? 왜?”
“슈퍼진단키트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한가 봐. 다음 달에 방학하면 바로 온대.”
“와우, 무서운 녀석이네. 잘되고 있다고 해도 못 믿겠나 보네?”
데이브가 눈썹을 씰룩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해명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일단 김진수가 오면 저 슈퍼진단키트도 더 빨리 만들어질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렇게 데이브와의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제 한여름에 접어든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햇빛이 강렬했고, 심지어 해가 지고 있는 지금도 선글라스를 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이미 김아진이 열심히 실험중인 상태였다. 그녀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돌연변이가 일어난 유전인자를 복구해 내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방금요. 문 여는 소리 못 들었어요?”
“응. 실험하고 있다 보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
김아진은 전생에 내가 알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전생에는 줏대 없이 이리저리 연구하는 철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김아진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긴 하지만 적어도 실험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대체 뭘 겪었길래, 한국에 다시 돌아온 걸까. 문득 궁금해 졌지만 이제는 알 도리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 성적은 얼마라고?”
“잘 모르겠어요. 아직 성적 발표가 안 나서.”
“그래도 짐작 가는 거 있을 거 아니야. 몇몇 교수님들은 미리 알려주시기도 하잖아.”
“음···적어도 A+?”
“어우, 재수 없어.”
이렇게 나쁜 소리를 한번씩 하는 김아진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실험하고 있던 것으로부터 몸을 완전히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살짝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근데 있잖아···.”
“왜요? 뭔 일 있어요?”
“으응···아니. 일은 아닌데···. 아니야! 너도 빨리 실험하라고. 빠져 가지곤!”
뭐지? 김아진의 태도가 뭔가 석연찮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실험을 시작하는 그녀였기에 더 물을 틈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김아진과 유전자 편집과 관련된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중, 그녀가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근데 너는 장학생으로 여기 온 거야?”
“예? 장학생이요?”
“아니, 미국 학비는 비싼 편이잖아. 물론 하버드는 소득 수준에 따라서 학비가 면제되기도 하지만···.”
“아 그거요? 저는 면제에요. 집이 잘사는 편이 아니라서.”
내 말에 김아진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실험에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말도 안 하는 그녀였는데, 지금 모습은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다시 큼큼, 소리내더니 다시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대학원은 어떻게 할 거야? 미국? 아니면 한국?”
“음···지금 상황이면 미국에 있는 대학원을 가게 되겠죠? 굳이 한국에 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학비는 어떡하게? 하버드 대학원은 따로 학비가 면제되진 않잖아.”
나는 실험을 하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김아진이 진심으로 궁금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 사람···. 한국으로 들어왔던 이유가···.
“선배.”
“어?”
“혹시···. 혹시 말이에요.”
만약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끝내지 못했던 이유가 돈이라면,
그리고 이번 생에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래서 내 연구가 끝나기 전에 그녀가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안 돼. 이제 데이터 다 받았는데 나 혼자서 다 분석하라고?’
김아진은 유능하다. 그런 인재를 놓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를 이곳에 붙잡아둬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말을 골랐다. 그녀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혹시라도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을 고르고 고른 후,
그녀를 바라봤다.
“…돈 빌려줄까요?”
“에.”
“무, 무이자로?”
김아진이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이 말은 정답이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