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1화(161/221)
161. 방학 (1)
161. 방학 (1)
김아진은 진심으로 나를 미친놈이라 생각했는지 살짝 몸을 뒤로 뺄 정도였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나는 양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 그니까 미국 생활하면 돈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혹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나 싶어서—”
“네가 무슨 돈이 있는데? 너 알바도 안 하잖아.”
“그니까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캐치해냈다.
“장학금!”
“어?”
“대통령과학장학금 받았거든요. 그걸로 이것저것 썼는데도 꽤 남았어요.”
“뭐야, 난 또.”
김아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양 팔을 하늘 위로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피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럼 대충 2천만 원 넘게 받았겠네.”
“그, 그렇죠?”
“그 정도로는 택도 안 돼. 너 미국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구나?”
“어···. 그렇게 많이 비싸요?”
전생에도 한국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았던 나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해외 유학이 돈 먹는 하마라는 걸 알곤 있었지만 정확히 그 금액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미국 대학원 같은 경우에는 적어도 1년에 5천만 원은 깨져. 그 정도로는 모자라도 한 참 모자라.”
“어···. 그럼 선배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몰라. 마음 같아서는 여기 계속 남고 싶은데 안 될 것 같네.”
김아진이 체념한 듯 이야기했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던 그녀였기에 이런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대학원 학비라. 생각해 보면 김아진이 어떤 이유로 하버드에 진학했고, 왜 한국에 들어왔는지 자세하게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대화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었다.
현실. 현실적인 문제가 그녀 앞에 놓여있었다.
“사실 나도 집안 형편이 썩 좋은 편이 아니거든.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장학금은 나도 받았어.”
“어, 진짜요?”
“응. 그래도 택도 없더라. 미국 학비랑 생활비가 아무리 지원되어도 대학원을 준비하기엔 모자라.”
“그럼···. 대학원에서 장학금 받는 건요?”
내 말에 김아진이 씩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문제를 떠올리는 게 골치 아프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뉴스 안 봐? 지금 미국 내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곡소리 나오고 있다고. 외국인 장학생 수도 줄이고 있는걸?”
“…그럼 이대로 한국에 들어가는 거에요? 취업은요?”
“그러게. 원래는 미국에 있는 연구소에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뭐 길게 생각 안 하고 무작정 미국에 온 내 업보라고 생각하고 있어.”
김아진은 평소 행동하는 것도 우선 일을 저지르고 뒤에 수습하는 식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방식이 매우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때때로 좋은 결과가 있을 때도 있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녀는 덤덤한 목소리로 한국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와 유학을 오게 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김아진은 일반고 출신이긴 했지만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해외로 유학 가볼래? 학비랑 생활비도 준단다.’ 라고 이야기하길래, ‘그럼 가보죠.’라고 이야기했다가,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원래는 학부까지만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이 정도 학벌이면 한국에서 웬만한 곳은 다 부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있다 보니 욕심이 생겼더란다. 좀 더 연구하고 싶고, 좀 더 이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 마음을 깨달았을 땐 지금까지 안 보고 있던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연간 학비만 5천만 원인데 그걸 어떻게 감당해. 그냥 한국 들어가야지 뭐.”
“…아깝잖아요. 이대로 돌아가면.”
“음···. 아깝긴 한데. 그렇다고 연구가 아예 끝나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도 알아보니까 외국인 유학생 신분으로는 장학금이 별로 없는데 한국에 가면 난 더이상 외국인이 아니잖아? 유학생도 아니고. 국내 장학금은 그래도 빵빵하더라고?”
그녀가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자신을 가리키는 그녀.
“이래 보여도 하버드 출신이라니까 벌써부터 자기 연구실로 오라는 사람 꽤 있던데?”
“…학벌 때문이 아니라 선배가 한 연구 때문이겠죠.”
“흐음···. 과연 그럴까. 몰라. 어쨌든 이번에 졸업하고 나면 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그러니까 너도 지금 빨리 실험해! 적어도 나 졸업하기 전에는 이 연구 끝장 보고 갈 테니까.”
그래서 요즘따라 부쩍 연구실에 많이 붙어있던 건가. 이번 방학에도 집이 아니라 연구실에 있겠다는 그녀의 말이 이제 이해가 가는 듯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학부생활까지 지내는 건 지원이 많이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수준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학비에 대한 부담은 대학원생이 오롯이 져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겠지. 석사 과정부터는 본격적으로 고학력 사회에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느 수준까지는 일정하게 지원을 해주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힘으로 일궈내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뜻이 없어도 석사에 지원하려는 사람이 많아질 테고, 무지성 학위 취득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택도 없으니 내 걱정은 그만하시고 너 걱정이나 해. 지금이라도 알바라도 하든가.”
“알바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맞지. 아니면 금수저 여친 사귀는 건?”
“그냥 여친도 없는데요.”
저런···. 김아진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고, 그렇게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반대 방향에 있는 기숙사로 향하는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아진과 약속했던 시간은 1년. 그중 절반을 이미 쓴 상황이었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그녀는 아직 연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동안 작성했었던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된 논문을 보충하기로 했고,
다음 학기가 끝나면 졸업이었다.
‘그래도 전생 때는 박사과정을 밟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번 생에는 좀 다른 건가.’
만약 이번에도 전생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간다면 김아진은 적어도 석사 과정은 하버드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학부까지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을 켰다. 전자지갑, 그러니까 비트코인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364,982.01 BTC]그때 데이브를 통해 알게된 녀석으로부터 30만 비트를 거래하고 난 뒤에도 꾸준히 매수했다. 사람들이 부르는 가격은 그때그때 마다 달랐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비해서는 한없이 저렴했다.
원래라면 2013년까지 기다렸다가 한번 팔고 떨어졌을 때, 다시 재매수할 생각이었다. 다른 코인이나 주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한국인이라면 비트코인이 언제 떨어지고, 언제 급상승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김아진은 여러모로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이 정도의 투자는 충분히 할 만했다.
내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였으니까.
그렇게 어떻게 해야 김아진이 하버드에 계속 남아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엘리엇이었다.
유독 요즘 따라 자주 마주치는 녀석이었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간 것에 비해 엘리엇은 집에 좀처럼 가지 않는 듯했다.
“아직 집에 안 갔네?”
“응. 아마 이번 방학 때는 하버드에 계속 있을 것 같아.”
“그 연구 때문에?”
“응.”
담백하게 대답하자, 엘리엇이 “그렇군.”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야식 먹을래? 혼자 먹기엔 양이 좀 많아서.”
“좋지.”
안 그래도 하루종일 머리를 쓰다보니 에너지를 다 쓴 상태였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던 상태였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가정집의 형태를 띄고 있는 기숙사에는 간단한 조리 시설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는 비닐봉지에서 이것 저것을 꺼내 데우기 시작했다.
“치킨이네?”
“응. 한국에도 치킨이 있다고 했지?”
“어. 엄청 맛있음.”
내 말에 피식 웃는 엘리엇. 그는 데워진 치킨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후라이드 치킨보다는 오븐에 구워진 형태였다. 물론 맛있었다.
허기졌던 배를 달래기 위해 빠르게 흡입하려는데, 엘리엇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 연구하는 거. 정확히 어떤 건지 물어봐도 돼?”
···갑자기 밥맛이 뚝 떨어진 기분이다. 나는 닭 다리를 뜯으려다 말고 엘리엇을 바라봤다. 그는 예전에 줄기세포와 관련해서도 물어본 전적이 있다.
안 그래도 찝찝했던 나는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궁금했는데 내 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거야?”
“응? 그야 네 연구는 워낙 유명하니까 안 건데?”
“아밀로잽이나 줄기세포, 다?”
“응. 그쪽에 관심이 있어서. 왜? 그러면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뭐라 할 말도 없긴 하다. 엘리엇 말고도 아밀로잽이나 줄기세포에 대해 물어 보는 녀석들은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다른 거였다.
“그냥.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따로 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그때 네가 그랬잖아. 수업 때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했었다고.”
“아···. 내가 그랬나?”
“응. 그랬어.”
“착각했나 봐.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빠져나가는 엘리엇이었지만, 이상하게 촉이 안 좋았다. 그리고 내 촉은 은근히 적중률이 높았고.
엘리엇과 나는 말없이 치킨을 뜯었다. 먹는 내내 삭막한 분위기에 먹던 것도 체할 것 같았지만, 치킨이었기에 그냥 먹었다.
“사실 이번에 네가 인터뷰하는 영상 봤어.”
“인터뷰? 무슨 인터뷰?”
“한국 방송에 나오는 거.”
“…그걸 봤다고?”
들고 있던 날개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도 그럴 게 굳이 미국놈이 한국에서 하는 아침 방송을 찾아서 본다? 대체 왜?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녀석을 바라봤다. 혹시 이 녀석도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마주쳤던 그런 광신도 같은—
“나는 임상 시험은 최대한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
“어?”
“네가 하려는 거. 위험한 거잖아. 안 그래?”
사뭇 달라진 분위기. 나는 말없이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엘리엇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환자는 환자잖아. 실험체가 아니라.”
“실험체라고 한 적 없는데.”
“결국 그 약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절박한 사람들 이용하는 거 아닌가?”
“…진심이야?”
“응. 진심이야.”
엘리엇의 말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녀석에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예전에 최성훈과 이야기할 때와는 달랐다.
적어도 최성훈은 불안해 하면서 아밀로잽을 가지고 임상 시험하는 것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엘리엇은 그 너머의 감정. 불신을 넘어선 감정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모순적이네.”
“글쎄. 사람마다 목적은 다 다른 거니까. 만덕 너처럼 다들 연구원이 꿈이진 않을 걸?”
“…그럼 네 목적은 뭔데? 연구원이 꿈 아니었어?”
엘리엇은 내 말을 듣더니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는 듯했다.
“굳이 내가 연구할 필요가 있겠어?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을 고용하면 되는데.”
“회사라도 차리겠다는 거야? 제약 회사?”
“뭐···비슷한 거지.”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엘리엇과의 긴 대화가 끝이났고, 녀석은 다음날 바로 모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 학기에 그와 룸메이트가 될 일은 없겠다는 것을.
그렇게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1학년 생활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