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3화(163/221)
163. 방학 (3)
163. 방학 (3)
김진수와 데이브가 슈퍼진단키트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나날 중. 나는 연락을 받고 뉴욕 거리로 나왔다.
바쁜 사람들 속에서 저 멀리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여자.
“하버드대 합격했다며. 축하해.”
“고마워.”
최한별은 하버드대에 합격한 후, 미리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뉴욕에 숙소를 구한 상황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집값이 비싼 도시로 유명한 뉴욕에 집을 얻다니.
새삼 그녀의 재력이 어느정도일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최한별과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친척 중에도 미국 대학을 다니는 분이 계시긴 한데···.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어서.”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나도 미국을 잘 아는 건 아니어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괜찮아. 약속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최한별이 싱긋 웃으며 말했고, 나는 멋쩍게 허허, 웃을 뿐이었다.
…양심에 찔린다.
생물 올림피아드 때, 살기 위해 들어갔던 최한별 숙소. 그날 했던 약속이 바로 ‘미국 유학 생활 도와주기’였다.
물론 그 당시에 광신도들에게 온 정신이 쏠려있던 나는 최한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고, 억지로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가 지금 이렇게 불려 나온 것이었다.
“솔직히 그때 내가 한 말 못 들은 줄 알았거든. 그래서 기대는 안 했어.”
“하하···. 아냐. 들었어. 진짜로.”
이렇게 된 거 그냥 그런 거로 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연구실에 가서 실험을 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 온 애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연서 병원에서 만났던 기억도 있었기에 오늘 하루는 아예 비워두기로 했다.
‘잘됐다, 너 이번 기회에 미국 구경 좀 하고 와. 미국에 온 지 1년이 넘었는데 관광지 한 곳도 안 가봤다는 게 말이 되니?’
‘사람 많은 곳 싫어요.’
‘넌 사람 좀 만나야 해!’
갑작스러운 연구 오프 소식에 김아진은 오히려 기쁜 표정으로 나를 내보냈다. 아니 쫓겨났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물론 김아진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연구실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그럼 우리 밖에 나갈까?”
“어? 어. 어. 그러자.”
이쪽이 더 신경 쓰인다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애초에 친구랑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놀아도 쌍둥이들이랑 같이 놀다 보니 저절로 3명 구성으로 지냈지, 이렇게 남녀로 어딜 놀러 가 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로 난관에 봉착했다.
“? 너 식은 땀 흘리는 것 같은데 괜찮아?”
“어, 어. 지금 여름이어서 그래. 여름이어서.”
“무리하는 거면 안 그래도 되는데···.”
“아냐. 무리 아니야. 괜찮아. 그래서 어디 가 보고 싶은 데 있어?”
식은 땀을 흘리며 물었으나, 최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은 없는데…”라고 답할 뿐이었다.
젠장, 가보고 싶은 곳이 없다니. 선택지가 없는 주관식 문제가 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자유의 여신상 보러갈래?”
“전에 가봤어.”
“어···그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엄청 높대!”
“거기도 가봤어.”
뭘 얘기해도 다 가봤다고 이야기하는 최한별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애초에 나보다 관광지를 더 많이 가본 애한테 내가 구경을 시켜주는게 맞나…? 그렇게 이마가 패일정도로 고뇌하고 있는데, 최한별이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가보고 싶은 곳 있는데.”
“어디?”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
“응. 거기 잔디밭에 누워보는 게 소원이었어.”
살풋 웃으며 이야기하는 최한별.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응했다.
‘잔디밭에 눕는 게 어렵나? 소원이라고 말할 것 까지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쌍둥이들의 소원도 그렇게 거창하진 않았다. 이인성은 ‘김만덕보다 유명해지기’가 소원이라고 했고, 이인영은 ‘김만덕을 화학으로 이기기’였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둘 다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갈까?”
“어, 어. 가자.”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최한별이 살짝 잡아당겼고,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센트럴 파크는 생각보다 더 평화로웠고, 건강한 느낌이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 중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여기에 깔면 되는 것 같은데. 근데 지금은 햇살이 너무 강하니까 해 좀 지면 돗자리 깔자.”
“응. 그동안 어디 들어가 있고 싶은데…”
미국 햇볕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기에,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쉴 곳을 찾았다. 다행히 카페는 차고 넘칠정도로 많았기에 우리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
“…”
그리고 침묵. 어쩌다가 음료를 호로록 마시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항상 옆에서 귀 따가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있다보니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셔?”
“…음.”
최한별이 뭔가를 고민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말할지 말지 오랜 고민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더 나빠지진 않으신 것 같아. 그래도 여전히 내 이름은 기억 못 하셔.”
“그렇구나.”
다시 또 침묵.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구나. 새삼 이인성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아무 말을 던지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던 녀석…
“언제쯤이면 나도 연구할 수 있게 될까?”
“어?”
“아버지랑 네가 하고 있는 연구말이야.”
최한별은 음료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피할정도는 아니었다.
“글세···. 적어도 일단 대학은 졸업하고 나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너는 지금 학부생이잖아.”
“나는 그러니까, 음···.”
뭐라 답하기가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학부생의 신분인 내가 이 정도 급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가능한 거였으니까.
최한별 역시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걸 눈치챘는지, “미안, 괜한 이야기를 했네.”라며 얼버무렸다. 그리곤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부러워.”
“나?”
“응. 과학고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부러워했어.”
…얘가 더위를 먹었나. 갑자기 이러는 모습에 나는 이렇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하지만 최한별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어쩐지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넌 네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고 있잖아.”
“그럼 너는? 너는 아니야?”
“…나도 이제부터 그래보려고.”
그녀는 밖을 바라봤다. 옆모습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모습이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최한별이 나를 부러워한다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은 단 한 명.
이 여자애였으니까.
남 부러울 것 없는 집.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머리. 흙수저였던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까지. 그랬던 그녀가 나를 부러워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네가 하는 연구에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이지만···. 꼭 너랑 같은 선상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게.”
“…엄청 힘들 텐데.”
내 말에 최한별이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눈웃음을 지은 채로 이야기했다.
“그정도는 각오는 했는걸.”
그러니까 그때 가면 잘 부탁해, 라고 이야기하는 최한별의 말에 나는 말없이 뒷목만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공기 속에서 카페를 나왔고, 저녁이 될 때까지 센트럴 파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곧 하버드에서 봐.”
“응. 잘 가.”
활짝 웃으며 뉴욕 숙소로 들어가는 최한별.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뒷목만 만지작 거렸다.
더위를 먹은 듯한 느낌이다.
*
“으아아아아악!! 대체!! 왜!! 여기서 에러가 뜨냐고!!!”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데이브···넌 참 개 같은 애였어—”
집에 들어오니 데이브와 김진수가 콩트를 찍고 있었다. 대충 쓰러진 김진수를 데이브가 열심히 때리고 있었다.
둘은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온 집주인을 보고 아는체를 했다.
“그래, 데이트는 잘하고 왔고?”
“데이트? 쟤가 여친이 있다고?”
데이브의 말에 김진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너마저···솔로부대를 떠난다고?’하는 눈이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아니야. 그냥 친구 만나고 오는 길이야.”
“한국 친구라며. 여자고.”
“뭐야, 누구 만났는데. 이인영? 이인영 만나고 왔냐? 너희 둘 사귀냐?”
김진수가 깔짝대며 비웃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인영 아니야.”
“그럼 누군데?”
“됐고. 그 시간에 빨리 슈퍼진단키트나 완성시켜.”
“야! 무슨 슈퍼진단키트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줄 아냐? 코드라는 건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창의적으로 짜야 한다고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키보드 타다닥! 치면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김진수가 억울한 듯이 말했다. 우리 둘의 한국어 대화 내용을 모르는 데이브는 그저 우리의 표정을 보며 분위기를 읽더니 노트북을 두드렸다.
나는 미간을 한껏 좁힌 채 “하여간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면 다 쉬워 보이는 줄 알아요.”라며 툴툴대는 김진수를 바라봤다.
“쉽게 생각한 적 없어. 너랑 데이브니까 믿고 맡기는거지.”
“예예. 믿고 맡긴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습죠. 막말로 잘못되면 다 내 책임 아니야?”
“에이, 내가 그래도 양심이 있는데 어떻게 책임을 물어.”
내 말에 김진수가 살짝 누그러진 태도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여전히 불신이 가득한 눈이기도 했다.
그는 달력 위에 동그라미를 치며 가리켰다.
“어쨌든, 나 이 날에는 무조건. 무조건 한국 가야 하니까 표 끊어 놔.”
“다음 주에 간다고? 너무 빠르잖아.”
“아쉬운 척하지마. 애초에 나는 네가 미국 ‘여행’오라고 해서 온 거지 이렇게 어? 노예처럼 코드만 짜게 될 줄 알았으면 안 왔어!”
“에이, 그런 사람이 노트북을 챙겨와?”
“노, 노트북은 이 시대의 필수품이거든? 막말로 숙소에서 노트북 안 하는 사람이 어딨냐?”
김진수는 버벅이며 말했지만, 뭐···진실은 그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사실 나 역시도 그를 억지로 붙잡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슈퍼진단키트가 중요하고 급하다고 해도 김진수가 지금 하는 건 어디까지나 재능 기부와 같은 영역이었으니까.
막말로 내가 돈을 주면서 부탁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렇게 협박을 하면서 묶어두는 건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었다.
김진수는 연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이 날 본과 선배들도 같이 MT 가는 날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해!”라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쉽긴 하지만 이 뒤는 데이브에게 맡기는 수밖에. 데이브 역시 엄청난 실력자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단지 갑자기 재능을 발견해 두각을 보이는 김진수가 이상한 쪽이었다.
“왓 더···.”
탁. 그 순간 데이브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우리는 동시에 데이브를 바라봤다.
그리고 미동이 없던 슈퍼진단키트에서 무언가 웅웅하는 소리를 내더니 빠르게 진행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데이브, 뭐야. 무슨 일인데?”
“드디어.”
“드디어?”
“슈퍼진단키트 프로토 타입 완성됐어.”
우당탕! 데이브의 말과 함께 앉아있던 김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탓에 의자가 뒤로 넘어진 상태.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바로 데이브가 만지고 있는 노트북을 향해 달려갔다.
슈퍼진단키트가 굴러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 진행되다가 중간에 턱턱 막히던 것과 다르게 이건 그 시작부터가 다르다고.
“데이브. 그럼 이제 이거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유전자 데이터 분석 가능한 거야?”
“어···이, 일단은? 일단은 가능하지? 그런데 샘플 데이터 넣어서 비교하다 보면 또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는 모르는 일인데···.”
우리는 소리없이 김진수를 바라봤다. 그의 눈 밑이 파르르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이제 드디어 시작이지만···. 진수 네가 한국에 가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바이바이 제로원···.”
풀이 죽은 우리를 바라보는 김진수. 그의 머릿속에는 아마 계산기가 바쁘게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이쪽보다는 MT를 가는 게 훨씬 이득일 터였다.
전생의 김진수였다면 말이다.
“아아악—!! 진짜 내 인생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빨리 유전자 데이터 분석하게 샘플 가지고 오든가! 라고 소리치는 김진수였고, 그는 결국 방학을 꽉 채우고서야 한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