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5화(165/221)
165. 노력 (2)
165. 노력 (2)
김아진은 최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분자세포생물학 과정으로 대학원 학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실로 엄청난 내용의 전화.
김아진에게 연락이 온 건 나름 인지도있는 장학재단이었다. 정식 절차가 아닌 이렇게 따로 오는게 의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워낙 이곳 저곳에 지원서를 넣었던 김아진이었기에··· 그러려니 하며 미팅 장소로 향했다.
‘김아진 학생 맞으십니까?’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자신을 장학재단의 담당자라고 소개한 그는 천천히 장학 재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립 이념, 지원 규모, 지금까지의 지원 약력 등···여러 내용들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김아진에게 제일 중요한 건 지원 규모.
즉 학비였다.
‘전액 지원이요? 게다가 박사 과정까지 지원해주신다고요?’
‘네. 아무래도 저희 재단에서 추구하는 인재상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 석사 과정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바이오 산업의 인재를 키워낸다. 그것이 이 남자가 있는 장학재단 ‘바이오니티’가 추구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장학금의 대부분은 제약회사로부터 받은 기부금이었다.
그가 내민 목록에는 바이오니티에 기부한 여러 제약회사들의 목록이 줄지어 있었다.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대기업도 있었고, 처음보는 생소한 회사들까지.
김아진은 그 목록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럼 이 장학금을 받는 대신 조건이 있나요? 산업체에서 근무를 해야한다거나 나중에 일부 반환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거요.’
물론 장학금이니 대가를 바라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김아진은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애초에 하버드라는 이름이 대단하더라도 그녀보다 우수한 학생들은 이미 하버드 내에서도 깔려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 그러니까 저 사람들에게는 곧 고국으로 돌아갈 외국인에게 이런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게 영 께름칙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김아진이 살짝 의심이 서린 목소리로 되묻자,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마치 김아진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낮으면서도 느린 템포의 목소리였다.
‘조건은 없습니다. 만약 조건이 있다면 장학재단의 이념과 맞지 않겠죠. 목적이 있다면 장학금이 아닌 투자금이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흐음···그렇다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작은 조건이 하나 있을 수도 있겠군요.’
‘작은 조건이요?’
김아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남자가 준비해온 서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란색 서류철을 한무더기 꺼냈다.
서류 표지에는 ‘장학생 지원 서류’ 라고 적혀있었다.
‘장학생으로 선정이 되려면 일종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이해해주시지요?’
‘네. 다른 장학 재단에서도 다 받던데요. 자기소개서라든가, 앞으로 어떤 업무를 할건지 뭐 그런것들이요.’
장학금을 받아서 어떻게 쓸 것인지, 외국인의 경우에는 언제 귀국할 것이고 지금 거처는 마련이 되어있는지, 앞으로 연구하려는 과제와 그 과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꼭 작성해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남자는 김아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김아진 학생의 경우에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해서 서류를 지원했었더군요.’
‘맞아요. 그런데 사실 떨어진 줄 알았어요. 이미 합격자 발표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고···선정이 되면 이메일이 온다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정작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메일은 없고, 갑자기 이렇게 전화가 걸려오다니. 그렇기에 김아진의 입장에서는 떨떠름한 상황이었다.
남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까와 같이 미소를 띄운 채 대답했다.
‘맞습니다. 사실 김아진 학생의 경우에는 제 2차 후기 장학생으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 이건 뭐죠?’
‘특별 선정인거죠. 간혹가다 심사때 놓쳤던 부분을 나중에 확인하게 된다거나···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신문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 기사는 김아진도 전에 봤던 내용이었다.
[줄기세포에 이어 유전자 편집 기술까지. 새로운 생물학을 열고 있는 천재 소년]한국 방송에서 나왔던 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 내에 퍼졌던 내용. 기사 속에는 익숙한 얼굴의 소년이 캡쳐된 모습으로 담겨있었다.
김만덕이었다.
‘김만덕 학생과 같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게 왜 궁금하신거죠? 이게 장학생 선정이랑 관련이 있나요?’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심사를 위해 몇가지 여쭤보고 있는 것 뿐이니까요.’
남자는 마치 이 대화로 장학금을 선정하겠다는 듯이, 말투를 오묘하게 바꾸었다. 분명 아까까지는 거의 확정된 어투로 이야기했었는데···김아진은 살짝 몸을 뒤로 빼내며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버드내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모두 받으려면 어마어마한 학비가 들 겁니다. 더군다나 요즘같은 미국 경제상황 속에선 장학금 규모도 줄이고 있죠. 특히 외국인 장학금은 더더욱이요.’
이미 그 상황에 놓여있는 김아진이었기에, 그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김아진을 향해 말했다.
‘간단합니다. 연구실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전달해주시면 박사과정, 아니 그 이후에 미국 내 유명 연구소에 취직하는 것까지 책임지고 지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말이 안될 것까지는 없습니다. 사실 연구 내용이라는 건 결국 이후에 학술지에 다시 보고가 되는 것 아닙니까?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영영 자신만 알려고 연구를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김아진은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온화해보이던 얼굴이 이제는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챙겼던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그런 김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혀 손해볼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김아진 학생이 연구하는 내용이랑 김만덕 학생이 연구하는 내용은 결국 같은 부분 아닙니까?’
‘지금 연구하는 내용을 빼내오라고 하시는 건데도요?’
‘빼내오라는게 아니죠. 그 연구가 김만덕 학생 혼자서 하는 연구는 아니지 않습니까?’
엄연히 김아진 학생의 지분이 있는 내용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남자.
그러나 김아진은 이미 발걸음을 돌렸다. 더는 이곳에 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곧장 나가려는데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어느정도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저희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겠죠. 그 연구가 완성이 되고 논문이 나오게 된다면 1저자는 김만덕 학생일겁니다. 맞습니까?’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 애에요.’
‘그럼 김아진 학생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
…이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김아진이 인상을 쓴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더 빨랐다.
‘천재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공을 독차지 하는 건 학술계에도 결국 악습으로 남을 뿐입니다.’
‘…악습이 아니라 정당한 결과에요. 이 연구 아이디어는 걔가 낸 거고···’
하지만 문득 김만덕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전자 제거가 아닌 복구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김아진의 아이디어 덕에 연구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그녀의 의견대로 진행하게 되었던 대화들이.
‘돌연변이를 제거한다는 게 아니라 복구하는 쪽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말이 왜 지금 상황에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김아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든지 연락주시죠. 아직 졸업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있을테니.’
“으아아악! 진짜 재수 없는 새끼!”
김아진은 신경질적으로 자판기 버튼을 연타했다. 눈 밑에 다크써클이 턱끝까지 내려온 김만덕을 위해 커피를 사가려는 중이었다.
그렇게 커피가 덜컹, 소리를 내며 나왔고, 김아진은 커피를 꺼내기 위해 쪼그려앉았다가 고개도 같이 푹 숙였다.
미국에 남고 싶다. 하버드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구 내용을 홀라당 넘길 수도 없는 법이잖아···’
엄밀히 말하면 연구 내용을 어떻게 넘기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 연구하고 있는 걸 내밀기엔 결과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
하지만 동시에 그때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럼 김아진 학생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
“으으···짜증나아아아!!”
김아진 역시 김만덕 못지 않게 이 연구에 진심이었다. 김만덕이 말하는 것처럼 치매 치료라는 거창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 대해 졸업 논문을 준비했던 것처럼 그녀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연구실에 지박령처럼 살았고, 방학 때도 한국에 가지 않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노력’이라는 부분에선 그녀도 김만덕 못지 않게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 연구가 완성이 되고 논문이 나오게 된다면 1저자는 김만덕 학생일겁니다. 맞습니까?’
‘천재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공을 독차지 하는 건 학술계에도 결국 악습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런데 재능까지 가지고 있는 김만덕이 모든 공을 가져간다면? 그녀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김만덕이라면 그러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이 업계에 있으면서 여러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소위 말하는 논문 도둑. 1저자에 연구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의 이름을 끼워 넣는다거나, 지도 교수의 이름을 1저자에 싣게 되는 일은 은근히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물론 이번 일은 논문 도둑 일과는 다르다. 이 연구에 대한 논문은 공동 1저자로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김만덕의 이름이 더 앞에 적히겠지.
‘물론 순서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분위기이긴 하지만···그래도 앞에 적힌 이름을 좀 더 쳐주는 관행이니까.’
50대 50. ‘복구’아이디어를 낸 건 김아진이지만 그래도 진행할 때 둘 다 노력했으니 공으로 친다면 이게 맞을 것이다.
‘…50대 50 맞겠지?’
하아아,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꺼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여기서 이렇게 고민해봤자 답이 안나왔다.
김만덕과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를 해서 풀어갈 일이지 혼자 고민해봤자 아무런 답도 없다.
그나저나 편의점 커피 아니고 자판기 커피 사왔다고 뭐라 하는건 아니겠지? 그렇게 캔커피를 들고 연구실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김아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선배. 저 잠깐 밖에 좀 갔다 올게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노트북과 무슨 기계가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빈 테이블인 상황.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커피를 내려놓는데, 포스트잇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치매 유전자. 발견한 것 같아요.]탁. 50대 50이라고 생각했던 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
“아니···지금은 새벽 4시라고오···.”
“미안. 그래도 이게 무슨 뜻인지 보려면 너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서.”
“너 이러려고 너희 집에서 지내라고 한거지? 그치?’
노트북과 진단 키트를 챙겨서 집으로 달려갔다.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는 김진수를 흔들어 깨웠다. 녀석은 비몽사몽한 사태로 미간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빨간색으로 뭐가 떴는데. 이거 발견한거지?”
“빨간색?”
김진수가 안경을 닦은 후 노트북을 바라봤다. 한동안 흐음, 하는 소리와 미간을 좁힌 그는 노트북을 탁탁 치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발견했네.”
“진짜?”
“버그를.”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하긴, 이렇게 쉽게 얻어질리가 없지.’
아직 데이터 샘플을 분석하려면 한참은 남았다. 아직 슈퍼진단키트에 돌려보지 못한 샘플만 해도 수백개인 상황.
김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버그를 고쳤다. 그리고는 다시 크게 하품을 한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엄청 간절한 건 알겠는데 지금은 아니야. 애초에 이 키트는 데이터 샘플이 일정 수 이상 돌아간 후에 신뢰도가 생기거든. 지금 뭐가 뜬다고 해도 버그일 확률이 높아.”
버그 발견되면 또 알려줘. 수정하게. 라는 말을 하고 다시 숙면에 취하는 김진수.
쩝.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컸다. 한껏 긴장하고 있던 상태였는지 몸도 노곤노곤해지며 피로가 몰려왔다.
‘연구실은 아진 선배한테 말하고 좀 자다 갈까.’
어차피 노트북이랑 진단키트도 나한테 있는 상황이니···이제 몸이 한계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김아진에게 간단하게 문자를 보낸 후, 방으로 들어갔고, 오랜만에 제대로된 침대에서 푹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