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6화(166/221)
166. 노력 (3)
166. 노력 (3)
전화를 마친 나는 연구실로 향했다. 핸드폰을 보니 따로 김아진에게서 온 답장이 없었다.
“으으으음…”
연구실에 가니 김아진이 머리를 산발을 한 채 잠들어있었다. 보아하니 이 사람 연구실에서 아예 잔 모양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캔커피 2개를 바라봤다. 이 광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듯 했다.
…이 세상에 정녕 행복한 대학원생, 아니 연구원은 없는 것인가?
비몽사몽한 눈으로 깬 그녀는 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몇 시야?”
“오전 11시요.”
“너 왜 지금 와?”
“문자 못 봤어요? 집에서 자고 간다고 보냈는데.”
내 말에 김아진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배터리 나가서 확인 못했지.”
“그럼 지금까지 저 기다린거에요?”
“어. 하도 기다려도 안 오길래 잠깐 눈 좀 붙인다는게–”
으윽, 소리를 내며 팔을 하늘위로 쭉 뻗는 김아진. 기지개 한번 폈을 뿐인데 온 몸에서 두둑, 소리가 연달아 나는 듯 했다.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됐는데? 치매 유전자 발견했다며.”
“아···그거 버그였어요. 그냥 에러.”
“김 빠지네···.”
아쉬운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일정했다. 평소라면 “그러게, 호들갑은!” 이라면서 장난스레 받아칠 사람인데…평소와 다르게 말 수가 적어진 모습이 김아진답지 않았다.
지금은 아쉬워하는건지, 오히려 안도하는 건지 애매하달까나.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지금 김아진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었다.
그녀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
“선배. 할말이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아요?”
“뭔데? 오래 걸려?”
그녀는 시계를 한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이제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아마 적잖이 허기질 터.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같이 밥 먹을래요?”
“여기서 먹는게 아니라?”
“모처럼 밖에 나가서 먹어요.”
내 말에 김아진이 한껏 경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건데?”
“좀···중요한 말이긴 해요. 이 연구랑 관련된거기도 하고.”
연구 이야기가 나오자 김아진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고급 레스토랑. 이전에 신텍시스 대표와 같이 저녁을 먹었던 곳이었다.
김아진은 딱 봐도 비싸보이는 음식점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게 물었다.
“여기서 먹자고? 진심이야?“
“네.”
“…왜?”
“중요한 얘기니까요.”
미간을 찌푸리며 한사코 거절하는 그녀를 데리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라면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지만, 다행히 그날 마침 예약했던 팀이 취소를 한 덕에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김아진은 마치 내가 처음 메뉴판을 봤을 때처럼 가격을 보고 소리 없이 경악했다.
저 마음 내가 잘 알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결국 김아진이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비싼곳에 오자고 한건데?”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연구 말인데요.”
”…!“
내가 운을 떼자 김아진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본론을 꺼내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그래도 나도 그거 말하려고 했어.”
엥?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김아진을 바라보자, 그녀가 결의에 찬 모습으로 나를 마주봤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금 망설여졌는지, 한참을 말을 꺼낼까 말까 하다 말을 이었다.
“1저자. 공동으로 해.”
“네?”
“물론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 하지만 나도···나도 못지 않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거라 오히려 이렇게 비장하게 말하는 김아진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김아진은 내 말에 더 당황한 듯 했다.
“당연한거라고?”
“네. 선배가 제시한 아이디어잖아요. 복구해낸다는거.”
“그, 그렇지만 네가 데이터도 구해왔고, 슈퍼진단키트인가 뭔가도 만들어내고 있고···”
“데이터는 제가 구한 게 아니고 한국에서 연구하고 있는 팀이랑 연계해서 받아온 거고요, 슈퍼진단키트는 제가 만든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네가 총괄로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건데?”
“그럼 저만 1저자 할까요?”
내 말에 김아진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논문에 있어 1저자의 힘은 사실상 엄청나다. 1저자가 아니면 논문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고, 사실상 연구를 주도하고 지분을 차지하는 정도를 말하다 보니 누가 1저자가 되느냐는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였다.
논문 도둑이다, 꼽사리로 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기도 하고.
‘전생에도 그런 경우 많았지. 연구에 참여도 안해놓고선 1저자 자리를 요구하거나, 간단한 업무 하나 한 걸로 생색내던 사람들.’
물론 저마다 참여했다는 기준이 다르다는 건 인정하지만, 1저자는 고작 참여만 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내 질문에 김아진이 차마 그렇게 하라고는 말 못하겠는지 미간을 찌푸렸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사실 엄연히 따지자면 지금 김아진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 연구의 비중은 내가 더 높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제시한 아이디어대로 진행되고 있는게 맞지만, 그 안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내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유전자 편집 기술이라는 것 자체에 있어서는 김아진이나 나나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치매 유전자와 관련된 연구라는 점에서는 내가 더 앞서고 있었다.
“아까 제가 연구 관련해서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다고 했죠?”
“어?”
“이 연구. 선배가 잠시 맡아줄 수 있어요?”
“…어?”
내 말에 김아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수십개가 떴다. 연구를 맡아달라고? 계속 되묻는 김아진.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캘리포니아 대학교라면 전에 말했던 줄기세포 이야기하는거야?”
“네. 원래는 더 빨리 연구에 참여하는 일정이었는데, 내부에서 일이 생겼었나봐요. 그걸 처리하다보니까 늦어져서···”
오늘 아침에 걸려왔던 전화였다.
‘다음 학기부터 캘리포니아 대학 내의 줄기세포 연구소에서 연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손상된 뇌세포 복구에 초점을 맞춰서 말이죠, 라고 이야기하는 연구단장의 말에 잠에서 순식간에 깼다.
뇌세포 복구. 크리스 교수와 진행하던 게 운동세포를 복구해내는 작업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진짜 뇌와 관련된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바로 다음학기부터요?’
‘네. 예정보다 많이 늦어진 연구인 만큼 바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참여하실 수 있으시지요?’
‘…그게.’
하지만 그의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김아진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은 전생의 내가 매달렸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을 얻지 못했던 연구다. 이 연구를 끝을 내지 못한 상태로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하는 건 영 찝찝했다.
그렇다고 동시에 2개의 연구를 진행할 자신은 없었다. 줄기세포 하나만 해도 벅찬 상황인데, 게다가 뇌세포 복구는 또 새로운 연구 시작이나 다름 없을 터. 그런 상황 속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김아진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그럼 이 연구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치매 유전자 제거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맞아요. 그렇지만 단순히 제거만 한다고 해서 치매가 치료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지금 너 말은 이거 버리고 그거 하러 가겠다는—”
“안 버려요.”
단호한 내 말에 김아진이 주춤했다. 나도 모르게 딱 잘라 말해버렸다.
하지만 이 연구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진심이니까.
전생에도, 과거에서 회귀하자마자 다시 뛰어들었던 첫 연구도. 다 이 유전자 편집 기술이었다. 김영재와 함께 과학 전시를 준비할 때도 내 머릿속엔 치매 치료와 유전자 편집 기술 두 개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잠시 놓아줄 필요가 있었다.
“데이브가 만든 슈퍼진단키트는 아직 프로토 타입이에요. 버그도 많고 오류도 많고요.”
“그 말은···”
“네. 이 키트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더 많은 샘플군을 넣어야해요. 지금 한국 내에 치매 환자의 샘플군을 받아서 분석하고 있지만 이정도로는 부족해요.”
더 많은 환자의 정보가 필요했다. 진단키트도 더 보완되어야 했다. 이건 단순히 열정만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긴 시간. 오랜 노력. 재능보다는 끈기가 더 절실한 연구.
나는 김아진에게 그런 연구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지루하고, 같은 작업이 반복되는 그런 일을.
‘…역시 무리려나.’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평소에도 통통 튀는 성격의 그녀이니 이런 지겨운 일은 맡기 싫겠지. 더군다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단 우직하게 데이터를 분석하는게 대부분 일이니까.
하지만 김아진이 이 일을 맡아주지 읺으면 줄기세포 연구를 히러 갈 수 없었다.
적어도 연구를 하는 중에도 계속 눈앞에 다른 연구가 아른 거릴터.
“…진짜 뭐야.”
“미안해요. 선배. 뭔가 선배한테 어려운 결정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당연하지. 갑자기 이런 부탁을 하면 누가 들어주겠어?”
내 말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민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얼마나 걸리는데? 줄기세포 연구 끝나면 다시 이 연구하러 올거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뇌세포를 복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그래서 선배한테 부탁드리는거에요. 그동안 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1저자에서 네 이름 빼버린다고 해도? 그래도 나한테 이 연구를 맡길거야?”
“슬프지만 어쩔 수 없죠.”
더 열심히 한 사람이 적히는게 맞으니까요, 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내 말에 김아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뭔가 중얼거리며 고민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건 1저자 자리가 아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전 치매 치료제가 빨리 세상에 나오길 바라요.”
“…”
“1저자 자리 누나 드릴테니까 계속 연구해주세요.”
줄기세포로 뇌세포 복구를 하는 연구가 끝이 났을 때, 김아진이 이어서 하던 이 연구도 끝이 난 상황이라면,
치매 치료는 더이상 꿈이 아닐 테니까.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날 믿어?”
“네?”
“그니까, 이 연구를 내가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냐고.”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연구에 있어서는 이재성이나 곽진환 못지 않게 자신만만하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렇게 맡겨주고 갔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을 못내면 어떡하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런 생각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찬찬히 전생의 김아진과 지금까지 함께 연구했던 김아진을 떠올렸다.
제멋대로고, 내 의견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사람.
전생의 나는 팀에서 쫓겨났었다. 그렇기에 이 연구가 어떻게 끝이 났는지 알 수 없다. 연구 결과를 듣기 전에 과거로 회귀해버렸으니까.
하지만 굳이 결과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 믿어요.”
전생에 이 연구가 실패로 끝났던 이유는 내 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진행한 이 연구는 내 연구가 아니라, 팀 연구였다.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잘못된 점은 신랄하게 서로 비판하되, 그러면서 결국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구.
김아진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긴 침묵끝에 입을 열었다.
“2년.”
“네?”
“졸업 학기 연장하고 휴학해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최대 기간이야. 학비랑 생활비도 그쯤이면 다 떨어질거고.”
“돈은 제가 알아서—”
“됐고. 2년 안에 안 오면 난 귀국할거니까. 그 전까지 꼭 끝내.”
김아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마음에 답하듯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꼭 그럴게요.”
그제야 김아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옅게 웃어보이던 그녀는 메뉴판을 다시 펼쳤고 “좋아. 그럼 오늘은 나 먹고 싶은 거 다 시킨다?” 라며 음식을 주문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영수증을 보며 약간 후회했다.
이 사람···대체 얼마나 먹는거야···?
“와, 진짜 잘 먹었다.”
“…잘 먹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표정 뭐야. 어쨌든 그럼 다음 학기에 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가는거야? 그게 행정상 가능해?”
“일단 파견이나 교류 신청해서 가는걸로 하고 연구원에서 있는 시간을 학점으로 인정해준대요.”
“되게 복잡하네–”
김아진은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를 사서 내게 건넸다. “후식은 내가 산다!” 라고 말한 것에 비해 조금 조촐한 후식이었지만···감사히 받았다.
커피를 마시며 연구실로 향하던 김아진은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근데 만약 캘리포니아 가게 되더라도 줄기세포 연구한다는 건 너무 말하고 다니진 마.”
“왜요? 캘리포니아는 줄기세포 연구 합법이잖아요.”
“합법이니까 더 말이 많은거지. 아예 금지된 곳에서는 충돌이 일어날 일도 없잖아.”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 라고 이야기하는 김아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전에 마주쳤던 서명 운동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방학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