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69화(169/221)
169. 만남 (3)
169. 만남 (3)
주지사라는 직급은 한국엔 존재하지 않지만, 높은 위치에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일.
갑작스러운 주지사 비서의 방문에 박성민과 케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워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그럼 언제가 편하신지요?”
“그, 그게…”
“김만덕 연구원님과의 일정을 가장 우선으로 두셨으니, 부담없이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부담없이 이야기하라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다.
주지사나 되는 사람이 나를 만난다고? 대체 왜?
그때, 옆에 있던 박성민이 큼큼, 거리며 끼어들었다.
“지금 김만덕 연구원님께서 연구 일정이 잡혀있는 관계로, 오늘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비서 윌리엄은 정중히 명함을 꺼내 박성민에게 건넸다. 그리고 살짝 인사를 한 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난 뒤, 박성민이 흠, 소리를 내며 명함을 바라봤다.
“…어째 복잡하게 얽힐 것 같은 느낌인데. 혹시 너 뭐 책잡힌 거 있냐?”
“전혀요. 이제 막 도착했는데 잡힐 게 뭐 있어요.”
“그럼 SNS나 그런 곳에 평소에 정치적 발언이나-”
“없어요.”
단호하게 말하는 내 말에 박성민이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케빈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선거 때문인가?”
“응?”
“이번 11월에 주지사 선거가 있거든.”
케빈의 말에 박성민이 손가락을 튕겼다.
“맞네. 그러면 납득이 되네.”
“선거랑 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데요? 제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순간 스쳐지나가듯 떠오르는 생각.
캘리포니아는 줄기세포 연구가 합법인 곳이다.
그리고 나는 줄기세포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만덕아, 너는 너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니까?”
“에, 에이. 설마요. 그런 일 때문에 부르는 건 아닐걸요?”
“주지사가 한가한 직업도 아니고, 너한테 무조건 시간을 맞추겠다는데?”
박성민과 케빈이 한마디씩 말을 거들었고, 그렇게 “설마요, 에이.” 하는 말들이 나중엔 “설마요…”가 되다가,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주지사 말에 반박하면 바로 감옥행인거 알지?”
“연구원님. 쟤는 농담하면 진짜로 받아들여서 안돼요.”
그렇게 주지사와의 약속 날짜가 다가왔다.
*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약속 당일. 그는 나를 데리러 연구소에 찾아왔다.
고급 세단을 끌고.
고급스러운 차 내부에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다보니 어느새 주지사가 캘리포니아 주청사에 도착했다. 내부로 들어가자 으리으리한 건물 속, 주지사가 있는 집무실 앞에 다다랐다.
“환영합니다. 김만덕 연구원님.”
“안녕하세요.”
머리가 희끗하지만 그 주위에 풍기는 기백은 젊은 사람 못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기백을 뿜어대고 있는게 느껴졌다.
마치 전에 존슨앤존슨의 CEO를 만났을 때보다도, 신텍시스의 CEO를 만났을 때보다도 더.
‘…방심하지 말자.’
이윽고 자리에 앉자, 곧바로 차가 내려졌다. 집무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과 어우러지는 향이었다. 나는 차를 바로 마시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저를 찾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 캘리포니아라는 주에 대해 나름의 정보를 모으긴 했었다.
브라운 애셔.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8년간 연임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 지역의 토착민.
‘아니지, 토착민보다는 오히려 지방 영주 정도라고 해야 적절하려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정치 경력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오랜 신뢰는 돈보다 얻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브라운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오시자마자 이렇게 불러 죄송한 마음입니다. 동료분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제 앞으로 계속 볼 사람들이니까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의 손짓에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 둘 만 남은 이 곳에서 나는 직감적으로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오갈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제가 만덕 학생을 따로 부른 이유는…한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탁이요?”
“네.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부탁이지요.”
정치적이라는 말에 표정이 굳었다. 케빈이 말했던 ‘선거’와 관련이 있는건가? 뭐가 되었든 간에 정치적인 부탁 치고 좋은 부탁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따로 불러냈다는 것 자체가 남들이 알면 안되는 은밀한 부탁이라는 뜻일 확률이 클테니까.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경계심이 한껏 서려있는 눈빛에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만덕 학생에게도 결코 해가 될 일은 아닐테니까요.”
“…무슨 부탁이죠?”
“혹시 오시는 길에 시위대를 마주치셨습니까?”
시위대? 갑자기 화제가 전환된 듯한 느낌에 내가 미간을 좁히자 브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쪽 벽면에 쳐져있던 블라인드를 올렸다.
착, 소리를 내며 가려져 있던 햇빛이 단숨에 집무실 안을 가득 메웠고, 강렬한 햇빛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당장 줄기세포와 관련된 지원을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과학 기술이라는 이름은 면죄부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연구를 즉시 중단하라!”
일전에 연구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사람들과 비슷한 목소리였다. 적막한 집무실이라 그런지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증오, 분노와 같은 그 아래의 감정도 함께.
브라운은 창문을 열어 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시위대의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시위가 시작된 지는 1년 전쯤입니다.”
“1년 전이라면…”
“줄기세포 포럼이 있던 날이랑 겹치기도 하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브라운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라.”
전에 서명 운동단에게 붙잡혔을 때도 든 생각이지만, 나는 윤리 단체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무분별하게 기술이 발전되는 걸 막아주는 단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브라운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의 이마가 살짝 패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오 루디즘. 저 단체의 이름입니다.”
“네오 루디즘이요?”
“네. 겉으로는 생명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 자체를 혐오하는 급진파이지요. 혹시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러다이트 운동. 오래 전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 기계에 의해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사회 운동.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비슷해 보였지만 엄연히 달랐다. 적어도 줄기세포가 그들의 일자리를 뺏진 않으니까.
“지금 이렇게 시위하는 것 자체는 저희에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크지만 물리적으로 어떤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최근들어 그 정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달라지고 있다고요?”
“최근 CIRM 연구원들 중 일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CIRM에 소속된 연구원들 중 하필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원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
“자동차 유리가 깨져있다거나, 타이어가 고장나 있는 정도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기술과 윤리는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관계이니까요. 게다가 이런 일은 처벌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일단락 되는 듯 싶었습니다만…”
그는 불편한 듯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최근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한 연구원이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던 거지요.”
“…설마.”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가장 어렵고 무서운 겁니다.”
그 순간,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시위대의 목소리가 섬찟하게 들렸다.
브라운과의 대화 전까지는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광기가 느껴졌으니까.
“그 괴한은 바로 붙잡혔겠죠? 재판은요?”
“물론 실형을 받았습니다. 꽤 무거운 형벌로요. 하지만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CNN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이와 비슷한 일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즉, 이 일들은 이번 생에 새롭게 생겨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전세계의 줄기세포 반대파들을 한 곳에 결집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결집이요?”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번 뉴스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보는게 맞겠군요.”
의견이라는 건 하나일 때는 별로 힘을 못 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의견인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자신감을 얻는다.
이 괴한 사건은 줄기세포에 관한 사람들을 자극했다.
어떤 방향이든 간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니 이쪽 연구실을 향해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이 눈에 들어왔다.
‘헌법에 위배되는 실험! 즉시 중단하라!’
‘생명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존엄성을 지켜주세요.’
‘결사반대! 중단하라!’
붉은색으로 쓰여져 있는 글자들. 필체 하나하나에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나는 처음 그와 대화할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그 부탁이 저 시위대와 관련이 있는건가요?”
“맞습니다.”
“제가 뭘 하길 원하시는거죠?”
그는 말없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창문을 닫았다.
회의실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건 일종의 ‘쇼’입니다.”
“쇼라면…”
“만덕 학생은 줄기세포 계에서 유명인사입니다. 그 이유는 본인이 잘 알고 있겠지요?”
“…”
“저 시위대들의 다음 타겟이 만덕 학생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다음 타겟이라고? 나는 해명하듯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배아줄기세포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험자의 체세포를 중심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했던–”
“—그건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덕 학생의 연구를 시작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해 줄기세포 연구들 중 대다수가 재개되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입을 꾹 닫았다.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아니, 줄기세포를 연구 하면서 이미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게 실험쥐 대니에 대한 실험일지를 웹상에 공개하면서 동시에 여러 줄기세포 연구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았으니까.
줄기세포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내가 이쪽 동향을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게다가 저 시위대들이 모이기 시작한 날짜도…
“처음에는 소수였습니다. 하지만 괴한 사건 이후 점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윽고 몇몇은 여기 CIRM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설립 이래로 줄기세포 부분에선 성과를 보인 게 없으니까요.”
“줄기세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는 얼마 안되었는걸요. 치료의 의미로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3년에서 5년은 걸립니다.”
“아쉽게도 그 모든 걸 고려해주는 시민은 극히 드물지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심지어 괴한이니, 윤리 단체니 하는 요란한 소리도 들려온다면…
“이 분위기를 잠재우려면 줄기세포랑 관련된 성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하려고 왔습니다.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하는-”
“지금 당장의 성과가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말입니다. 마치 줄기세포 포럼에서 하반신 마비이던 강아지가 걷게 된 것처럼요.”
단숨에 그가 원하는 게 뭔지 파악이 되었다.
“…줄기세포 치료가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아직 이릅니다. 이런 위험한 실험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거고요.”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뭐라고?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누가 들어도 논란이 될 소지가 분명히 있는 말.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 아들이 참여할거니까요.”
“…예?”
그래,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사람에 대해 검색하면서 그때 났던 기사가… 그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첩을 열어 내게 건넸다.
브라운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둘은 닮아있었다.
“올해로 18살입니다. 이름은 제임스이고요.”
“…건강해보이네요.”
“그렇죠? 아쉽게도 사고가 난 뒤로는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말입니다. 이건…사고 전 사진입니다.”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다시 품속에 넣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었습니다. 아들은 꽤 촉망받는 축구 유망주였고, 대학도 그쪽과 관련해 이미 스카우트가 된 상황이었죠.”
브라운은 그날 있었던 일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대답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게 연구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일테니까.
“강아지를 치료하는 것과 인간을 치료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칫하면 생명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을정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요. 지금 위험한 일인 걸 알면서도 아들을 실험에 참여시키시겠다는건가요?”
따지듯이 말하는 내 목소리에 브라운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여전히 시위대들이 열심히 피켓을 흔들며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사고 이후로 아들은 달라졌습니다.”
“…”
“그 사고로 잃은 건 다리이지만, 사라진 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에 잠겨있지 않았다. 내게 말을 건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결같은 목소리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매 순간 위기가 다가옵니다. 갑자기 몰아치는 태풍이나 산사태와 같이 자연 재해와 더불어 아들이 하반신이 마비가 되는 절망스러운 사고까지.”
브라운 애셔. 그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이자, 사랑하는 아들의 사고를 그저 바라봐야 하는 아버지였고,
이제 곧 있을 선거에서 재임을 노리고 있는 정치인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지 못하는 순간, 정치인으로서의 수명은 끝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위기입니다, 라고 조용히 말하는 브라운 록웰.
…나는 말 없이 브라운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내가 따라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지도 이미 다 그의 계획 속에 있다는 소리였다.
“만약 제가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요?”
“굳이 그 선택을 생각해 봐야할까요?”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 다른 동물과 관련된 실험을 하는 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죠.”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인 즉슨 쉽게 질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줄기세포로 이미 개를 치료한 시점에서 동물에 대한 실험은 끝이 났습니다. 보다 강력하고 충격적인, 그 다음 단계의 성과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 단계가 인간이라 보시는군요. 하지만 꼭 아드님을 실험에 참여시키셔야 하나요?”
“누군가는 참여해야합니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 다른 참가자들에게 먼저 실험을 해보고 안전한게 파악되면 그때 아들을 치료해도 늦지 않겠죠.”
“…”
“하지만 주지사인 제가 그러면 안됩니다. 아들도 동의할 거고요. 게다가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때까지 CIRM이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CIRM. 혁신적인 연구소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끈 연구소이자, 생명공학을 하는 연구원들에게 있어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곳.
지금 분위기로는 줄기세포 연구가 중단될 위기다. 그렇다면 이 CIRM도 존폐 위기에 처할 터.
“이대로면 줄기세포 연구는 중단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원치 않습니다.”
“…꼭 줄기세포일 이유가 있나요? 그러니까 제 말은 꼭 이 기술이 아니어도 캘리포니아가 살아갈 방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CIRM도 줄기세포 연구만 진행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브라운은 내 말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한다. 이번에 맡으신 연구과제이시죠?”
“…네.”
“줄기세포 말고도 뇌세포를 복구할 방법이 있나요? 꼭 줄기세포로 치료를 해야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말없이 찻잔을 바라봤다.
전생에 하던 유전자 연구를 김아진에게 맡기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
많은 사람들이 베니가 다시 걷게 되었을 때 모두가 놀랐던 이유.
“인간에게는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곳에 그저 매달릴 뿐입니다. 설령 그게 기적처럼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는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가, 책장 한쪽에 전시되어있는 작은 액자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들 제임스로 추정되는 남학생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저는 주지사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
“그저 아들이 축구장에서 뛰어 놀기 바라는, 예전처럼 다시 웃고 떠들며 집에 들어오길 바라는…”
나는 말 없이 브라운이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활짝 웃으며 축구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제임스의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