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7화(17/221)
17. 동아리 (2)
17. 동아리 (2)
김영재는 과학을 좋아한다. 아주 많이. 그래서 과학고등학교에 들어왔다. 그러면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을 더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과 너무 달랐다. 과학고라고 해서 맨날 실험하고 연구할 줄 알았는데, 이곳도 결국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기관 중 하나로 전락했을 뿐이었다.
‘자퇴할까?’
남들은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난 학교였지만, 그에게 그런 건 의미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연구를 위한 시간, 그리고 실험 장비가 갖춰진 공간이었다.
진지하게 담임과 상담했고, 담임은 그에게 ‘자율 동아리’라는 대안을 내세웠다. 자퇴라는 글자에 사색이 되어 김영재를 설득했다.
김영재는 우수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고 싶다는 거지? R&E를 이야기 하는거면 방과후에 하도록 하렴. 야자는 빼줄 테니까.’
‘연구실도 필요합니다.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요.’
‘으으, 학생 개인한테 연구실을 빌려줄 수는 없는데, 아. 그럼 자율 동아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니?’
자율 동아리. 정규 교육과정 내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개설되는 순간 동아리와 동등한 취급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동등한 취급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 교사의 간섭을 안 받는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자율’ 동아리이기 때문이다.
둘, 지원금. 원래 자율 동아리는 지원비가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소액이나마 지원받는다. 발전기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셋, 실적 보고. 지원금을 받는 대신 연구 성과를 보여야 한다.
“개꿀! 야자 감독쌤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졸라 편해.”
“부장. 우리 지원비 나온 거로 치킨 사먹으면 안 돼? 오늘 석식 노맛이란 말이야.”
“그냥 작년에 R&E 했던 거 재탕하자니까? 어차피 아무도 몰라.”
‘자퇴할까.’
답이 없는 부원들을 보며 김영재는 환멸을 느꼈다. 자율 동아리를 개설하기 위해 어찌저찌 모은 멤버들이라곤 하지만, 어째 정상이 한 명이 없다.
“선배, 이번 전시 주제부터 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서요.”
한 명 빼고.
올해 들어온 신입생 김만덕은 다른 부원들과는 조금 달랐다. 김만덕은 스스로 이곳에 왔다.
‘뇌생공 입부 신청서 작성하려고 하는데요.’
‘어? 어!’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봐 김영재는 열심히 홍보했다.
야자도 뺄 수 있고, 돈도 지원받고 (굳이 소액이라는 말은 안 했다.), 그냥 끝날 때 짧게 보고서 하나만 쓰면 된다고.
살짝 허위 광고인 느낌이 있었지만, 그날까지 5명을 모으지 못하면 폐부였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눈앞에 굴러온 복덩이를 어떻게든 붙잡아야만 했다.
‘좋네요.’
담백한 대답에 오히려 김영재가 머쓱해질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래. 일단 생각나는 아이디어 있어? 평소 연구해보고 싶던 주제나.”
“네. 있어요.”
단호하게 답하는 김만덕의 모습에 김영재는 살짝 주춤했다.
사실 김영재는 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 그가 자율동아리를 만들면서까지 하고 싶던 연구.
‘유전 공학’
그러나 그가 제일 관심 있어 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선 최첨단 장비가 필요했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으로도 최첨단 현미경, PCR 기계, 전기천공기, 원심분리기 등…
제아무리 한국과고라고 해도 전문 실험 장치를 구비해두기엔 무리였다. 관리의 문제도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연구는 일단 미뤄두고 관련된 연구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거라도 해야 과학고에 온 의미가 있을 테니까.
“유전 공학 쪽이요.”
“유전 공…어? 너도 그쪽에 관심 있었어?”
“음, 어느 정도는요.”
명쾌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같은 관심 분야를 가진 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김영재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일부러 반가운 티를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흠흠, 그거 신기하네. 나도 마침 그쪽에 관심이 있었거든. 근데 유전 공학에 대해 깊게 연구하는 건 힘들 거야. 장비도 없고 시간도 애매하니까. 일단 초파리 실험처럼 교과서에 있는 내용부터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아, 저는 유전자 편집 기술 쪽을 생각했는데요.”
유전자 편집 기술! 김영재는 눈앞의 김만덕을 쳐다봤다. 김만덕은 천진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려면 적어도 대학 연구소 정도의 설비 시설이 있어야 해.”
“설비 시설만 있으면 돼요?”
“응?”
묘하게 다른 핀트의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김영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설비 시설은 개인이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야.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무리고. 제대로 갖추려면 적어도 몇천은 깨져.”
“제가 안 사는데요?”
김만덕이 웃으며 말했다.
“제 연구실에 있어요.”
*
뇌연구소 책임 연구원 박성민의 제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물었다.
‘개인 연구실이 필요하다고? 실이야 남는 게 있긴 한데…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개인 연구실. 사실 본격적인 연구는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에 진행일뿐더러 학기 중에는 수업 때문에 거의 못 올 확률이 컸지만 박성민은 용케 연구실을 하나 빼뒀다.
그리고 황금 같은 주말, 학교에서 벗어난 나는 그곳으로 곧장 향했다.
높고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는 ‘국립뇌과학연구소’ 라고 적힌 표지가 반짝거렸다. 보안카드를 찍어야 입장할 수 있도록 해놓은 탓에 대문에는 박성민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큰 키에 뿔테 안경. 연구원들의 외양은 스테레오 타입이라도 있는지 다 비슷한 모습이다. 박성민이 가진 차별점이 있다면 귀가 좀 크다는 정도?
“용케 길 안 잃어버리고 잘 왔네? 지방 출신이라 걱정했는데.”
“지방이라뇨. 산골 오지입니다. 지방 출신과 같게 보지 말아주세요.”
“그게 더 이상한데…”
애초에 서울에서만 10여 년을 넘게 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서울에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길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별반 수업을 하며 어느 정도 친해진 박성민은 기존의 선생님들과는 결이 달랐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학생이더라도 물어봤고, 흥미로운 주제가 있으면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동아리 연구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요. CRISPR 관련해서 연구하고 싶어요.”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박테리아와 고세균의 게놈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DNA 서열이었다.
“의학 쪽에 관심이 많은가 보네. 나중에 의대 가려고?”
“아뇨. 의대는 관심 없어요. 그리고 의학이 아니라…”
나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사실 이 연구는 내가 아닌 김영재가 주도한 연구였다. 나는 그저 나중에 그가 이룬 연구 결과를 보고 ‘와, 천재는 다르구나.’라고 감탄했을 뿐이다.
김영재는 대학생 때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CRISPR에 대해 알게 된다. 평소 이쪽에 관심이 많던 그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더욱 빠져들게 되고, 결국 특정 유전자를 편집에 성공, 특히 농업에 있어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시기가 이르긴 하지만 분명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구 업적을 가로챌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박성민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성과에 눈이 멀어 양심을 팔고 싶지는 않으니까.
단지 내가 원하는 건 하나. 공저자 자리.
1저자처럼 이 논문의 권리를 완전히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인정해주는 자리이다. 실제로 내가 그런 포지션이기도 하고.
‘실험실을 마련해줬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사실 박성민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다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나에 몇천에서 수억까지 하는 기계들을 고등학생들이 만진다고 하니 다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과학고 학생이더라도 학교에서 만지작대는 현미경이랑 연구소 현미경은 스케일이 달랐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락했다. 그 밖에 필요한 기계들에 대한 사용 권한도 허가했다.
단, 그가 있는 앞에서만 사용하는 걸로.
“전화로도 이야기하긴 했지만 내가 아무리 책임 연구원으로 있다고 해서 이 연구원 자체가 내 소유인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나는 ‘앨런’ 소속이고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파견 온 거니까.”
“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학 때 엄청 굴릴 테니까 체력 쌓아둬야 한다.”
오싹한 말이 들렸지만 나는 애써 모르는 척했다. 순간 대학원생으로 지내면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교수님 살려주세…
“아. 근데 이번 행사 때 선생님도 오세요?”
박성민은 연구원, 박사라는 말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뭔가 더 젊어진 느낌이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쉽게도 그 행사 때는 못 갈 것 같아. 그 주 통으로 출장을 가거든.”
“아쉽네요.”
“그 대신 연구소장님이 가실 거야.”
“예?”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소장님이 너한테 관심이 많으시거든.”
“대체 왜요?”
“글쎄?”
박성민이 시선을 피했다. 그는 일부러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연구소의 최고책임자가 바로 연구소장이다. 연구소장의 말 한마디로 진행되던 연구가 무산될 수도 있고, 지원금이 끊길 수도 있다. 그만큼 여러 연구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하고 바쁜 사람이 고작 과학고 행사를 보러 온다고?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심히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애쓰고 있는 나를 향해 박성민이 흘리듯 말했다.
“그냥 내가 몇 번 너에 대해 말하긴 했거든. 그랬더니 한번 와보시겠다네?”
“너무 한가하신 거 아닙니까…”
“하하, 한가하신 게 아니지.”
박성민이 발을 멈추고 문 앞에 섰다. ‘개인 연구실’이라고 적혀있는 방이었다.
“너가 그만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라는 거야. 뇌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말야.”
“저는 평범합니다만.”
“그게 한국식 화법의 문제야. 칭찬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니까?”
그가 문을 열자 널찍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내부와 간단한 실험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는 말 그대로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곳이고, 너가 말한 연구를 진행하려면 기기 영역에 가서 원심 분리기랑 PCR기계 이용하면 돼. 필요하면 생물학적 안전 작업대(BSC)에 가고.”
“분석은요?”
“질량 분석기, NMR 기계, 유전자 시퀀서는 저쪽 가서 쓰면 돼.”
“감사합니다.”
고등학생이 할 질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마치 연구소에 온 게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대답하자 박성민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진짜 너는 연구 대상이야.”
“칭찬 맞죠?”
“어. 엄청 엄청 큰 칭찬. 당장이라도 네 뇌를 분석하고 싶다.”
약간 광기가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박성민을 따라나섰다. 그는 연구소 내부의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었다. 이전에 있던 연구소보다 훨씬 크고 최신식이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했다.
“어머, 책임 연구원님!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옆에는 아들인가요?”
“연구소 구경시켜주려고 오셨군요. 자상하시네요.”
우연히 마주친 연구원 둘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아마 이 연구원들은 박성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확률이 컸다.
박성민이 내 또래의 아들이 있으려면 적어도 40은 넘어야 하는데… 그는 아직 40이 아니었다.
“아직 결혼도 안 했습니다만…”
슬픈 목소리로 대답하는 박성민의 모습에 두 연구원이 흠칫 놀랐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떠나는 둘을 보며 박성민이 물었다.
“만덕아,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아, 아뇨. 아마 책임 연구원님까지 올라왔으니까 분명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요? 선생님처럼 똑똑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올라오긴 힘드니까요. 그, 그니까 쌤은 예외! 예외인 거죠!”
나는 그날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많이 머리를 굴렸고, 회귀 후 제일 힘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