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70화(170/221)
170. 히어로 (1)
170. 히어로 (1)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브라운은 비서를 시켜 나를 CIRM 앞까지 다시 데려다줬다.
마지막까지 정중히 인사를 하며 임무를 다한 비서 윌리엄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CIRM 연구소 입구에 섰다.
“줄기세포 연구를 중단하라!”
“생명을 도구로 보는 끔찍한 행동! 당장 금지시켜라!”
성난 목소리로 외쳐대는 시위대들. 그들의 규모는 전보다 더 커져가는 듯 했다. 볼때마다 서너명씩은 점점 더 불어나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마주쳐야 좋을 일이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일부러 시위대들을 피해 연구실로 향했다.
그러나 열심히 목청을 높이던 시위대들 중 한명이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거기! 너!”
“저요?”
“너, 연구소엔 무슨 볼 일이지?”
“어···.”
“보아하니 학생인 거 같은데. 아는 사람이 여기 일하는 거야?”
성큼 성큼 걸어온 남자. 그는 나를 취조하듯 캐물었다. 질문에 굳이 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게다가 내가 연구원이라는 걸 알면 목소리를 더 높이겠지.
안 그래도 주지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로 시위대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상태였다. 예측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긴장감이 흘렀다. 그 순간, 시위대 중 한 사람이 소리치듯 말했다.
“잠깐만! 저 녀석 그 신문에 나온 녀석 맞지? 줄기세포 실험했던!”
“뭐?!”
시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내쪽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하나 둘, 손에 들고 있는 피켓을 바닥쪽으로 내린 채 걸어오는 사람들.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이미 내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들로부터 평화적으로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맞네! 그때 그 신문에 나왔던 동양인 꼬마랑 똑같이 생겼잖아.”
“실제로 보니까 더 어린 녀석이었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게 벌써부터 이상한 실험에 빠져버려선···!”
혀를 차는 목소리와 심기 불편한 목소리.
남자는 위협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더욱 인상을 썼다. 금방이라도 한대 칠듯한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때, 옆에 있던 빨간색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또 무슨 끔찍한 실험을 하려고 이곳에 온거야?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일려고?”
“제가 하는 연구는 생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연구인데요.”
“웃기는 소리. 한 명을 살리자고 수십명을 실험체로 쓰는게 네가 하는 짓이야. 모르겠니?”
수십명을 실험체로 쓴다라···.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모든 줄기세포가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만 해도 사람의 체세포를 채취해서 이뤄지는 실험인걸요”
“체세포든 배아세포든 간에 징그러운 실험인 건 분명하잖아.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거라고!”
“치료를 하는게 징그러운 거에요?”
내 말에 여자의 말이 사라졌다. 분명 방금까지도 지지않겠다는 듯이 되받아치던 모습이었는데… 그녀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뇌정지가 온 듯 미간을 팍 구겼다.
“…치료가 징그러운 게 아니라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거지. 모든 세포는 각자 기능이 있어. 근데 그걸 인위적으로 분화해낸다는 것도 이상하고, 애초에 이 실험이 나중에 인간 복제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을거라 장담해?”
“그건 너무 비약적인···.”
“어쨌든 이 실험은 틀려먹었다는 거야.”
말도 안되는 논리다.
‘…지금 내가 뭐라고 한들, 이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겠구나.’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말을 삼켰다.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녀에게 닿지 않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으니까.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정보를 모으는 경향이 있거든. 아마 네가 아무리 이야기한다고 한들, 사람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을거야.’
문득 하버드에 있을 때, 룸메이트인 존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심리학과인 존은 줄기세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이 무엇인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사실을 옹호하고 있는 ‘나’ 가 더 중요하니까.
‘이 일을 어쩐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반대하면 진행할 수 없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기술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릴테니까.
“어이!!”
그 순간, 저 멀리서 케빈과 박성민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얼굴로 한걸음에 달려오는 박성민의 이마엔 땀이 이미 흥건한 상태였다.
적잖이 당황한 목소리로 둘은 시위대를 물리쳤다.
“훠이! 훠이! 여기서 폭력 쓰면 바로 경찰 부릅니다?!”
“가자. 너는 왔으면 바로 연구소로 들어와야지, 왜 여기 붙잡혀있어?”
“…어쩌다보니?”
어쩌다는 무슨 어쩌다! 타박하는 박성민과 케빈. 둘은 나를 끌고 바로 연구실로 데리고 왔고, 그렇게 시위대들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러나 연구실로 들어가는 내내 느껴지던 그 시선들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려주는 듯 했다.
*
일련의 소동이 끝난 뒤, 나는 케빈의 집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연구실에서 먹고, 자면서 연구와 물아일체 된 삶을 살려고 했으나, 박성민이 막아세웠다.
‘오늘 하루는 쉬어라. 어제 많이 놀랐을 거 아니냐.’
‘별로요.’
‘센 척하기는. 어차피 지금은 와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하루정도는 쉬어둬. 아니다, 모처럼 내일 주말이니까 푹 쉬다 와!’
휴식도 연구다-라고 강경하게 말하기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의 집은 꽤나 쾌적했다. 혼자 사는 집 치고는 넓은 편이었고, 같이 생활하는데 불편한 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집에 공짜로 먹고 자는게 미안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이제 주지사 아들을 치료하기로 했다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 케빈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시리얼에 부었다.
“아직 확정난 건 아니야. 생각해보겠다고 했어.”
“생각? 무슨 생각을 더 해?”
이해가 안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그.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이 내겐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인간을 치료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잖아. 게다가 시간이 많지도 않고.”
위험할 수도 있는 실험에 단순히 가능성 하나만 보고 참여를 한다는게 쉽게 이해가 안될 뿐더러 마음이 선뜻 서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다. 하반신 마비인 축구 유망주를 줄기세포로 뚝딱 치료해내는, 어쩌면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
하지만 화려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이면에는 ‘표’를 얻기 위한 일종의 정치쇼라는 어른들의 사정이 깔려있었다.
“근데 그렇게 치면 네가 하고 있는 연구도 마찬가지 아니야?”
“응?”
“아니,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다는 거 말이야. 아밀로잽? 맞나?”
케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제자 자랑은 해도해도 끝이 없지!’ 라고 환하게 말하는 박성민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케빈에게 쉬지 않고 떠들어댔고, 그 덕분에 케빈도 아밀로잽을 비롯해 내가 진행했던 연구에 대해 대강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거 임상 실험 들어갔다며?”
“응. 지금은 1차 실험 중이야.”
“결국 나중에는 치매 환자들에게 직접 투약할거잖아. 그렇게 치면 그것도 위험한 거 아닌가?”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하는 케빈. 하지만 내 표정은 진지했다.
“엄연히 다르지. 아밀로잽은 건강한 사람들부터 차례차례 검증을 마친 후에 환자들에게 투약하는 거지만 지금 이건 바로 치료해내라는 거잖아.”
“근데 내 입장에선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것 같은데···. 솔직히 너도 알잖아. 이 바닥에서 절차 다 따지고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걸리는지.”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케빈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신약 개발이 오래걸리는 이유는 윤리적 절차를 비롯해 각종 규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어보인다고 해서 바로 환자에게 투약하는 건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연구원들한테 물어보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면서 연구 시작할 걸? 게다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했다며.”
설령 아들이 죽는다고 해도 말이야. 케빈은 어깨를 으쓱이고 마저 시리얼을 먹었다.
죽는다라. 내가 하는 실험으로 누군가가 죽는다면···
전생에도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단지 기사화되지 않아 소리소문 없이 묻혔을 뿐.
알게 모르게 실험으로 인해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병은 치료됐지만 다른 병이 발병한 사람, 당시에는 괜찮았지만 수 년이 지난 후 갑자기 통증을 느끼는 사람 등. 부작용의 사례는 다양했고 모두 조용히 묻혔다.
특히 시간이 지난 뒤에 발생한 부작용일 경우 더욱 그랬다.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소송도 기각되는 경우도 여럿이고.
임상 1차와 2차까지 무사히 성공했지만 3차를 진행하던 중에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가 더 큰 혹을 붙여버린 환자들의 마음은 말 그대로 곯아 썩어져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야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더라도 감수하겠다고 싸인한 사람들은 참가자들이고, 이 모든 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니까.
“…이걸 자발적이라고 해도 되는건가?”
“그럼 자발적인게 아니면 뭔데? 실험에 참가하라고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가 치료되고 싶어서 싸인 한건데?”
“등을 떠민 건 아니지만 길이 하나밖에 안 보이면 누구든 거기로 가려고 할테니까.”
내 말에 케빈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우리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의 인생까지 다 책임져 줄 순 없어.”
“…책임이라.”
“막말로 임상 실험이 없으면 이세상에 신약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실험하다 죽는 사람들은 뭐···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거고.”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야, 라고 이야기 하는 케빈.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이윽고 시리얼을 다 비운 케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봤다.
주말을 맞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캐치볼을 하고 있는 모습.
가족들이 단란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
누군가에겐 지루할 정도로 일상적인 평화로운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들 앞으로 익숙한 고급 세단이 나타났다.
“그럼 갔다 올게.”
“조심히 갔다 오고. 아까 내가 한 말 직접 앞에서 하면 안된다?”
“무슨 말?”
“운 나쁘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참가자 앞에서 그런 말하는 건 좀 아니잖아–, 케빈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그럴게.”
“그렇다고 너무 운 좋게 치료가 백퍼센트 될거라고도 하지 말고!”
나는 소리없이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참가자, 그러니까 주지사의 아들을 직접 만날 시간이었다.
*
“어서오세요. 김만덕 연구원님.”
“안녕하세요.”
비서가 데려간 곳은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한눈에 봐도 부잣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외부 못지 않게 내부 역시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인테리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복도처럼 긴 통로를 지나 제임스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휠체어에 앉은 채 손을 흔들었다. 주지사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딱히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그래도 연구원님이 진행하셨던 실험은 다 찾아봤어요. 실험 일지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라요.”
제임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는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정말이지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니까요! 의학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는게 느껴져요!”
설렘 가득한 목소리. 그리고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 다시 걸을 수 있겠죠?”
그가 한차례 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잘 관리된 머리, 휠체어를 끄느라 팔 근육은 어느정도 있는 상태였지만, 다리는 얇은 담요로 덮어진 상태라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다시 걸을 수 있냐라, 제임스가 어떤 심정으로 묻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단지 고민했다.
그에게 현실을 보여줘야할지, 아니면 희망을 줘야할지.
나는 담요를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