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77화(177/221)
177. 학회 (1)
177. 학회 (1)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김만덕 연구원님도 그동안 연구하셨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상이라···”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이정도 금액은 솔직히 큰 금액이 아닐겁니다. 오히려 얼마가 되든 간에 치료제를 사기 위해 혈안이 되겠죠.”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적당한 템포와 호의를 보이는 제스처와 함께 어우러졌다.
보상. 보상이라. 그 단어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적당한 금액을 받고 그 금액으로 다시 또 연구에 투자한다면 그거야말로 바른 선순환이지 않을까요? 제약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생기면요?”
“그건···”
윌튼은 내 질문에 고민하듯 미간을 잠시 좁혔다. 그리고는 살짝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봅니다. 모든 경우를 저희가 다 고려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법이니까요.”
윌튼의 말은 옳았다. 그는 자선 단체나 봉사 단체의 일원이 아닌, 한 기업의 총수였다.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신약을 사람들에게 팔고,
그 돈으로 다시 또 연구를 진행하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사이클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윌튼에게 이상적인 사이클일 뿐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모든 치매 환자가 치료를 받아 낫는 거에요.”
“또 그 소리인가요? 정말이지···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정말로 김만덕 연구원님은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냐고?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엔 정말 다양한 환자들이 있다. 말기암 환자, 하반신 마비 환자, 불치병 및 난치병 환자들.
그러나 그 환자들은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남은 시간동안 이 병을 치료하는데 보내야할 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체념해야 할 지를 의사를 통해 듣는다.
하지만 치매 환자는 다르다.
“…아까 그러셨죠. 치매 환자 수가 3,000만명이라고.”
“아주 적게 잡은 수치입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겠지요.”
“그럼 이번에 제가 묻겠습니다. 이 환자들 중 자신이 치매라고 인지하고 있는 환자의 수는 몇명이나 될까요?”
내 물음에 윌튼이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질문을 하냐는 눈빛이었다.
치매 환자가 다른 환자들과 다른 점은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자신이 치매인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치료비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
“‘이정도는 괜찮겠지, 굳이 그 큰 돈을 들이면서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어.’ 라고 생각하다가 병을 키우게 되면은요?”
내 말에 윌튼은 답하지 못했다.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계속 살아가게 된다면요?”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치매 환자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까? 가족이 그 지경까지 가도록 그대로 둘까요?”
“가족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겠죠. 그 누가 자신이 치매라는 걸 자식들에게 알리고 싶겠어요.”
방 안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도 안다. 윌튼이 지금 얼마나 머리를 굴려가며 나를 설득하려고 애쓰는지.
그리고 절대 설득되지 않을거라는 것까지 그는 계산을 마친 것 같았다.
“…이사회에 다시 한번 정식으로 건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모쪼록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긴 면담을 마친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선배. 유전자 쪽은 잘 돼가고 있어요?”
[음, 일단 네가 준 유전자 샘플들은 다 분석이 끝난 상태고 이제 관련된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기는 한데···솔직히 큰 진전은 없어.]오랜만에 김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이메일을 통해 연구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직접 경과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데이브와 김진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슈퍼진단키트에서는 오류가 많이 발견되고 있었다. 실제로 샘플을 넣어서 분석하는 중에 에러가 많이 뜨는 탓에 분석 자체도 오래 걸렸다.
김아진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안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너 이번에 했던 연구 들었어. 엄청나던데? 그에 비해 나는 아직 이룬 게 없어서 좀 면목이 없네.]“연구에 면목을 왜 따져요. 애초에 연구라는게 재촉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움···그건 그렇지만···어쨌든 나도 열심히 할게!]나름 내 위로에 동의한 걸까, 김아진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한동안 유전자 분석과 관련된 이야기를 진행하던 중, 우리의 대화 주제는 시위대와 연결되었다.
[뭐?! 너를 둘러싸고 피켓으로 찍어버리겠다면서 위협했다고?]“찍어버린다고는 안했고요, 그냥 좀 우르르 몰려오긴 했어요.”
[아니,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두고 그렇게 위협적으로 굴어도 되는거야?]시위대와 만났었던 이야기를 전하자 김아진이 분통을 터뜨렸다.
안그래도 제임스와 관련된 줄기세포 치료가 대대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위대들을 취재하는 방송국도 생겨났다.
[줄기세포를 반대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과학 기술의 어두운 이면, 윤리 문제를 외치는 사람들.]한동안 제임스와 관련된 기사가 이제는 시들해졌는지, 이쪽과 관련된 기사를 마구잡이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줄기세포를 반대하는 이 단체, 네오 루디즘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주를 이루었지만 으레 그렇듯 이쪽을 옹호하는 기사도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그 단체. 말도 많던데? 전에는 컴퓨터가 직업을 빼앗는다고 회사 서버에 불을 질렀대.]“거짓말이죠···?”
섬뜩한 내용에 되물었지만, 김아진은 “진짜인데?” 라며 더 무섭게 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김아진이 들려주는 ‘네오 루디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가 통화를 끊었다.
···뭐가 뭔진 몰라도 일단 좀 사리자.
안그래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제임스를 비롯해 이쪽 연구진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안그래도 베니를 치료했던 전적으로 한차례 관심을 받았던 나였지만···이번은 그 급이 달랐다.
왜냐하면 이번 치료의 주체는 사람이었으니까.
“헤이!! 왔어? 안 그래도 부를까 했던 참인데!!”
제임스에게 신경세포를 1차로 이식하고 난 뒤, 그 뒤로 총 3번의 이식 수술이 더 진행되었다. 다행히 나머지 두 실험때도 면역 거부 현상과 같이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날이 갈 수록 제임스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매일같이 보는 녀석의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유달리 표정이 밝았다. 평소와 다른 텐션에 내가 주춤거리자 그가 손가락으로 발 끝을 가리켰다.
“얼른 이리 와 봐!!”
제임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가갔고 제임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을 연신 가리켰다.
그리고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려봐!!”
“뭐?”
“얼른 때려보라고!”
설마.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봤다가 주먹으로 발 끝을 톡 쳤다.
“…아파?”
“아프긴! 전혀. 그런데 느껴져. 방금 친 게 느껴졌다고!”
신이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제임스. 그와 동시에 내 표정도 단숨에 밝아졌다.
발 끝에 감각이 느껴진다는 건 끊겼던 신경회로가 연결되었다는 뜻.
그 말인 즉슨 이식한 신경 세포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진짜? 진짜로?”
“당연하지! 정 못 믿겠으면 이불 덮어봐. 네가 발바닥 칠때마다 소리질러볼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침대 위에 있던 이불로 발을 가리는 제임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발바닥을 주먹으로 쳤고, 그럴때마다 제임스는 소리를 질렀다.
“어···너희 뭐하냐?”
그리고 마침 병실에 찾아온 케빈이 미간을 좁히며 우리를 바라봤다.
“만덕. 아무리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환자를 때려선 안 돼···”
“그런 거 아니거든. 발에 감각이 돌아왔대.”
“뭐?!”
케빈의 눈이 단숨에 커다래졌다. 문쪽에 붙어있던 그는 한걸음에 제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더니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진짜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어?”
“어···네. 그래서 김만덕 연구원님이 발 때리고 있던 거에요.”
제임스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나한테는 편하게 친구처럼 대했지만, 케빈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래도 케빈은 나보다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 어색한 관계도 단숨에 치워버릴 일이 일어났다.
“진짜? 진짜로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다고? 맙소사, 이거 엄청난 일이잖아!”
“내말이. 이제 사람한테도 줄기세포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게 입증되었어.”
“맙소사. 나도 한 번 때려봐도 돼?”
“예?”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제임스. 하지만 케빈의 눈에는 광기 비슷한 무언가가 서려있었기에, 그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있는 힘껏 때릴테니까 감각 있으면 소리 치면 돼!”
“아, 아니. 그 감각은 이미 돌아왔는데요. 그··· 세게 안 치셔도 돼요.”
“아냐. 혹시라도 약하게 쳤다가 감각을 못 느낄 수도 있잖아?”
“그, 저 아직 환자라–”
악! 하지만 제임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케빈이 얼마 있지도 않은 발바닥 살을 꼬집었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광기 어린 케빈의 인체 실험이 이어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뭔진 몰라도 이 녀석도 위험한 녀석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와우, 진짜 감각이 돌아왔잖아. 이거 당장 학회에 보고해야겠는 걸.”
“안그래도 학회 관련해서 말인데. 매일 전화가 끊이지 않고 오고 있어서 말이야.”
“전화?”
케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ISSCR에서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어.”
“ISSCR이면 국제 줄기세포 학회 말이지?”
ISSCR (International Society For Stem Cell Research). 국제 줄기세포 학회로 줄기세포와 관련해서 이뤄지는 학회 중 가장 크면서 동시에 인정받는 학회였다.
사실 베니를 치료하고 난 뒤에도 몇차례 연락이 왔지만, 이미 줄기세포 포럼에서 할 말은 다 전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이런 자리를 찾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크리스 교수가 논문 조작으로 교수직을 내려놓은 직후라 그런지, 더욱 이런 자리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만큼 언젠간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했으니까.
“아무래도 제임스의 치료와 관련해서 언론이 많이 취재를 해가긴 했지만···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아직 정식으로 발표한 적이 없으니까.”
“학회 준비 혼자 할 수 있겠어?”
“아니. 그래서 말 꺼낸거지.”
학회를 준비하는 건 꽤나 까다로운 일의 연속이다. 게다가 초청 발표로 자리에 서게 된 이상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을 것도 꼼꼼하게 준비해야만 했다.
만약 혼자서 이 일을 다 준비하라면 매우 힘이 들겠지만, 지금 내 앞에는 같은 실험을 진행했던 케빈이 있었다.
씩 웃으며 그를 바라보자, 케빈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학회에 가야했으니까.” 라며 나름 상황을 긍정적으로 봐주기까지.
여러모로 고마운 녀석이었다.
그렇게 학회 준비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불현듯 깨달은 케빈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 시작할 수 있는거야? 뇌세포 복구하는 연구?”
“응. 아마 이번 일 정리되고 나면 바로 시작할 것 같아. 제임스 치료도 이제 경과 살펴보는 정도고.”
물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 다시 이 연구로 돌아와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굳이 이 연구에 계속 매달려있을 필요는 없었다.
케빈이 살짝 걱정된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좀 쉬었다가 하는게 낫지 않겠어?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연이은 실험의 연속. 일반 사람이라면 진작에 체력이 바닥나서 병원에 실려갔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꽤나 힘든 과정들이었고, 보통은 휴식 기간을 가지다가 다른 연구를 맡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거든.”
드디어 뇌세포를 복구하는 실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는 실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