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79화(179/221)
179. 학회 (3)
179. 학회 (3)
아무리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르다.
제조 공정을 혁신적으로 바꿔 효율을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라고 오히려 되물을 수도 있다.
100미터를 10초에 달렸다는 말을 들어도 “빠르네.”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와주신 귀빈 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오시는 길이 힘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어느때보다 값진 학회가 될테니까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제 8회 ISSCR 학회. 전세계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곳에 모여있었다.
그 중에는 이전 줄기세포 포럼때 봤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사회를 맡은 남자는 CIRM 연구소장이었다.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학회에서는 58명의 초청 연사가 있습니다. 또한 입구에서 나눠드린 템플릿을 살펴보시면 이 학회 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행사에 대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템플릿을 보니 빼곡하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Plenary Session. 즉 다른 강연이나 행사가 진행되지 않고 모두가 한 자리에서 연설을 듣는 시간이 커다랗게 한쪽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Mandeok Kim]적혀있는 내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는 전생때 참여해 본 적은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참가 자격 자체가 달랐으니까.
엄청난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유명한 연구원이 아니고서는 Plenary Session에 참석하기 어렵다. 애초에 모든 참가자들을 한 곳에 잡아둘 정도로 파급력 있는 연구여야만 했으니까.
···새삼 내가 한 연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체감되었다.
그렇게 얼떨떨한 마음과 함께 다음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옆에서 대기를 하는데,
“반갑습니다. 김만덕 연구원님 맞으시죠?”
“아, 네.”
그때 한 남자가 아는 척을 했다. 은색 안경을 쓴 멀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는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CIRM 연구소에서 간세포 질환을 연구하고 있는 해리슨이라고 합니다. 저도 Plenary Session때 연설을 진행하게 되어서요.”
알고보니 같은 CIRM 동료였다. 물론 연구소가 큰 탓에 같은 곳에 있어도 모두가 아는 사이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연구에 집중하다보면 같은 랩실 사람들하고 친해지지 그 밖에까지 나가는 경우는 드무니까.
해리슨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전에 CIRM에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뵙는 건 또 처음이군요.”
“아, 네. 아무래도 연구소가 넓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죠. 게다가 연구원들 중엔 별로 사교적인 성격도 없으니까요.”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내용에 멋쩍게 웃기만 했자, 그 역시 웃어보였다.
앞에서 열심히 기조 연설을 하고 있는 CIRM 연구소장을 바라보던 해리슨은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외람된 말씀인 건 알지만,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탁이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부탁이라니. 적잖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그러자 내 모습을 본 해리슨이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더욱 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 학회가 끝나고 나면···”
“…네.”
“싸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예?”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것도 인상을 쓴 채로.
내 반응에 해리슨이 조금 무안했는지 허허, 웃으며 목덜미를 만지작댔다.
“아니 그게 좀 유명한 분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번 연구에 깊게 감명을 받았달까나···”
이 사람···진심인가?
처음에는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반응을 보니 아닌 것 같다. 그는 뒤이어 “앉은 뱅이를 일으킨 기적” 이라든가, “줄기세포계에서 오늘을 기념일로 지정할 것.” 과 같이 말도 안되는 말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연구를 하시다니. 역시 연구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아니지, 오히려 어린 나이였기에 창의력이 더 빛을 발한걸까나요? 하하하!”
그가 큰 소리로 웃자 학회를 준비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우리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저마다 무언가 이해됐다는 표정으로 다시 일에 집중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진행자의 다음 멘트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자, 그럼 이번에는 이번 학회의 주인공이지요. 이분을 모시느라 꽤 힘들었다는 걸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꽤나 부담되는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내 차례가 시작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갈채. 환한 조명과 그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기대.
그 중심에 섰다.
동시에 회의장 가장 앞쪽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이번에 하버드에서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넘어갔다죠?”
“들어보니 정확히는 CIRM 연구소쪽으로 아예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다음 연구도 벌써 잡혀있답니까?”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쪽을 향했다. 그리고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CIRM 연구소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 신경세포 분화 연구를 진행했던 김만덕 연구원입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오늘 저는 척수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줄기세포 치료법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첫 마디를 떼는 순간, 문득 학회 관련 초청을 받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저 혼자서요?’
ISSCR로부터 연설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이 팀으로 진행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실험을 진행했던 연구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네가 진행했던 연구의 연장선이잖아.’
‘맞아. 만덕 너가 아니었으면 치료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연구했잖아요. 제가 발표를 하면 저 혼자 다 한 것처럼 보이면···’
물론 논문에는 같이 연구했던 팀원들의 이름이 차례로 올라간다. 애초에 다같이 연구를 하느라 노력했던 걸 아는 나로서는 이런 제안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보다못한 케빈이 어깨를 으쓱이며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럼 투표로 하자. 여기서 김만덕 연구원이 발표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그러자 일제히 올라가는 손. 나는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고, 케빈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봤지? 만장일치라고.’
‘…망쳐도 뭐라하시기 없기에요.’
‘벌써 망칠 생각을 해?’
케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망친 너보다 더 잘 발표할 사람은 없을 걸?’
이 연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너니까, 라고 말하던 케빈.
나는 떨리는 마음과 함께 첫 번째 슬라이드를 클릭했다.
제임스의 척추 부분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손상 부위가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사용하여 세포들이 손상된 신경 경로를 복구하고 통합할 수 있는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하반신 마비 환자였다고 하죠?”
“보아하니 척추의 T12와 L1 사이에 손상을 입었나보군요.”
청중들이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최대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발표에 집중했다.
이번 제임스의 실험은 베니에게 했던 방식과 유사했다. 실험자의 피부세포를 채취하여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변환하는 것.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전에 실험했던 베니의 경우에는 유도만능줄기세포를 가지고 운동 세포로 분화하였습니다. 따라서 파킨슨병이 진행되면서 운동 세포가 소멸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딸칵, 소리를 내며 다음 슬라이드로 넘겼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운동 세포가 아닌 신경 세포로 분화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기존에 있던 신경 세포들 및 새로 이식된 신경 세포들이 시냅스를 형성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가자 청중들이 작게나마 수근거렸다. 뒤에 앉은 몇몇은 더 가까이에서 슬라이드를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후 나는 세포 배양의 시간 경과를 보여주는 비디오를 재생했다. 세포의 형태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영상. 세포에서 수상돌기가 뻗어나가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작게 탄식을 질렀다.
“지금 보시는 영상은 신경 세포로 분화되는 모습을 담은 장면입니다. 이는 곧 신경 발생(Neurogenesis)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또 새롭게 느껴지네요.”
“저게 이제 환자의 척수에 이식되었다는 거지요?”
시각 자료가 있으니 한층 사람들이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을 빛내며 이 연구를 진심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번 실험이 단순히 이론적인 내용의 발표였다면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큰 관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연구하는 분야가 다른 만큼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이론으로 끝나는 연구가 아니었다.
진짜 치료 된 사람이 있는 연구. 어쩌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연구였다.
“이번 실험에 참가한 실험자에게서 운동 기능, 감각, 심지어 자율 조절이 개선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오호···감각 기능 뿐만 아니라 자율 조절까지라!”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벅차올랐다. 감탄 안에는 여러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제임스는 수술 이후 급격하게 회복되는 중이다. 보조 기기의 도움으로 이제 어색하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감각도 일정 이상 회복되었다.
물론 이 이후의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 해야겠지만···지금 상황으로는 성공.
그것도 엄청나게 성공한 실험이었다.
“이상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한 내용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학회가 아닌 축제에 온 것처럼 다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열기는 곧바로 질의 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암 세포로 분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겁니까?”
“아까 슬라이드를 보면 척추 손상 부위에서—”
“단순 마비 환자가 아닌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질환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까?”
저마다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지어 질문을 던졌다.
장내엔 활기가 넘쳤다. 그렇게 한마디씩 질문을 던지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가운데 뒤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김만덕 연구원님.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연구 결과 자체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나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봤다.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유전적 안정성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아직 이 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한 장기적인 위험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남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인간 실험을 진행한 것을 어떻게 정당화 할 생각이십니까?”
장내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임상 실험이 아니다. 그는 똑똑히 ‘인간 실험’이라고 이야기했다.
“혹시 윤리적인 문제를 이야기하시려는 거면,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아뇨.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아무런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실험을 무모하게 인간을 대상으로 진행하신 저의를 여쭙고자 하는겁니다.”
말투는 정중했으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미묘하게 싸우려고 하는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에 진심으로 질문하고 있는 듯 한···그런 느낌.
“연구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거면 이번 연구는 전적으로 실험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실험입니다. 또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연구 지침을 준수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뉴얼같은 답이었다.
내 대답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모든 실험들이 개인의 욕심으로 진행된 건 아니라는 뜻이지요?”
“네 맞습니다. 환자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럼 이후에 진행하실 치매 관련 연구도 마찬가지시겠군요?”
“…네. 당연히.”
내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의사를 묻는다니, 모순 아닙니까?”
···정정한다.
이 사람은 싸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정확히는 나와 싸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