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8화(18/221)
18. 중간고사 (1)
18. 중간고사 (1)
요즘 현재 상황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과학 부스 준비, 전시회 준비, 물밀듯이 밀려오는 수행평가 공지.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행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험공부는 잘돼?”
룸메이트인 김진수가 안경테를 올리며 물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 보이는 일종의 신호였다.
“뭐. 그럭저럭.”
과학고에 들어와서 치르는 첫 지필고사.
중간고사가 다음 주였다.
수업 중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도 시험과 관련되었다하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전투 모드로 들어갔다.
한 문제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모두가 숨죽이며 수업을 듣는 그 상황이란, 살짝 움직이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그때는 대체 어떻게 버틴 거지.’
회귀를 해서 느끼는 게 있다면 과학고는 기억했던 것보다 더욱 치열했고, 각박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시험을 앞둬서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서로를 견제하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필기 노트가 사라지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고, 심하면 교재 자체가 통으로 사라졌다가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곤 했다.
‘어디서 이런 것들만 배워온 건지. 이런 녀석들이 나중에 높은 곳에서 한 자리씩 맡는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길게 나왔다. 그 모습을 본 김진수가 몸을 틀고 아예 나를 마주 봤다.
“그럭저럭은 무슨. 딱 봐도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안 풀리는 문제라도 있어? 아니면 개념이 어렵거나?”
김진수가 내게 호의적으로 변한 건 순전히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어떤 이유든 간에 호의적이란 건 좋은 거니까.
“그런 건 없어. 그냥 이 나라의 미래가 갑자기 걱정되어서 그래.”
“무슨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하고 있어. 그런 쓸데없는 고민 말고 이거나 한번 풀어보든가.”
결국 원래 목적을 밝힌 김진수가 자신이 풀던 문제집을 내 쪽으로 밀었다.
“맨입으로?”
“이 문제 엄청 비싼 거거든? 대치동 쪽집게 강사한테서 극비로 구한 거라고.”
“그건 니 사정이고. 난 이 문제를 푼다고 해서 아무 이득이 없는데?”
없을 리가. 이런 고급 문제를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순순히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모든 관계에는 밀당이 필요한 법이니까.
“학원에서 나눠 준 중간고사 대비 문제집 프린트 줄게. 그 대신 다는 못 줘.”
“수학 (가)까지?”
“양심 없어?”
김진수가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과학고의 커리큘럼은 상상 이상으로 빡세다. 다른 학교라면 한 학기 동안 느긋하게 나갈 수학-10(가)를 중간고사 때 다 나가고, 기말 때는 수학-10(나)를 친다. 그리고 2학기 때는 수Ⅰ,Ⅱ를 배우게 된다.
“수학 (가)까지 달라는 거면 중간고사 범위 다 달라는 거잖아!”
“싫음 말든가. 그리고 너 지금 안 풀리는 문제 가만 보니까…”
나는 일부러 미간을 좁히며 최대한 안쓰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 중에 쌤이 짚어준 문제랑 유사하네.”
“뭐!? 진짜?”
“응. 꼭 나올 듯.”
아악!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김진수를 보며 몰래 웃었다. 사실 문제를 짚어줬는지 아닌지는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원래 이런 말이 사람을 더 불안하게 하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김진수가 다니는 학원도 이상하단 말이야. 왜 답지를 따로 안 주는 거지?’
김진수가 받아오는 문제집들은 어딘가 신기한 구석이 많았다. 문제 퀄리티도 높을뿐더러 나중에 김진수가 적어 오는 풀이도 깔끔하고 명료했다.
“근데 그 학원은 왜 답지를 안 줘? 그래도 돼?”
“너가 뭘 몰라서 그래. 원래 이런 쪽집게 강사님들은 자기 문제집이 일반 시중에 유포되는 걸 제일 걱정하신다고. 생각해봐, 이 한 문제 만들려고 수백만 원을 쏟으셨을 텐데 사람들한테 다 퍼진다? 그게 가치가 있겠어?”
“그래도 답지 없이는 아예 못 풀 수도 있잖아. 그래서 너가 나한테 지금 이러는 거고.”
김진수는 오늘뿐만 아니라 종종 내게 문제를 내밀곤 했다. 학원에서는 따로 답지 프린트를 주지 않고 직접 풀이 강의를 진행했고, 그날이 될 때까지는 스스로 고민하고 틀려도 좋으니 오답이라도 풀어서 와야 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딴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풀어줘.”
“문제집은?”
“아, 줄게, 줄게!”
결국 김진수한테 문제집 삥뜯기에 성공한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문제를 바라봤다.
“나머지 정리 문제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미지수가 안 풀린다고.”
김진수가 보여준 문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난해했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괴랄한 기호들을 적어놓은 건 둘째 치고, 창의력이나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계산 실수를 유도하는 듯한 복잡한 과정이었다.
“이런 건 최대한 단순하게 해서 푸는 게 좋아. 괜히 식 여러 개 세워서 연립해서 풀려고 하다가 실수하기 딱 좋으니까.”
“그런 원론적인 말 말고, 공식 없어? 빨리 푸는 공식 같은 거 말이야. 전에 너 알려줬던 것처럼!”
김진수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전에 알려줬던 공식이라 함은, 일종의 야매 풀이였다.
“그거는 문제가 간단했으니까 가능했던 거고. 오히려 이런 문제일수록 정공법으로 풀어야 해. 야매 풀이는 항상 가능한 게 아니니까.”
고등학교 수학과 대학교 수학의 차이가 있다면 이 공식을 써도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대학교 수학은 말 그대로 교육과정이 없다. 물론 교수 재량의 강의 계획서가 존재하긴 하지만 만약 교수의 의도와 다르게 풀었다고 하더라도 풀이과정이 일정 이상 맞다면 답으로 인정해준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진짜 이상한 법 아니야? 선행 금지를 왜 하는 건데? 내가 더 배우고 싶어서 더 배우겠다는데?”
사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김진수가 분한 듯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선행 금지법은 간단했다. 교육과정 외의 지식을 가르쳐서도, 문제에 내서도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유는 사교육을 조장하기 때문.
“뭐 어쩌겠어. 나중에 미분 때도 로피탈로 풀면 전부 틀린 걸로 하시겠다는데.”
“그럼 그걸 일일이 다 쓰라고? 한 문제 풀다가 시험 다 끝나겠네.”
김진수의 말이 과장된 법도 있었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되돌아봤을 때도 과학고의 문제는 극악의 난이도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아예 전체 학생의 평균을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쉬운 문제는 내지 않는, 그런 징글징글한 문제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교 분위기는 초상집 그 자체였지. 여자애들은 울고, 남자애 중에도 몇몇 애들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도 그럴게, 이곳은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한평생 우수하다는 말만 들어오고, 성적표에는 늘 1등만 찍혀오던 녀석들이 처음으로 새로운 숫자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1, 2등이 아닌 자신들이 한심하게 여기던 그 등수들로.
“자자, 이 문제나 풀자. 지금 주어진 식 자체는 4차 방정식이지? 그럼 나머지 정리를 이용하면 R(x)는 3차 이하로 나올 수밖에 없어. 그럼 조금 복잡하더라도…”
나는 a,b,c 식들을 하나씩 쓰면서 문제를 해석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미분으로 풀어버리고 싶었지만, 서술형으로 나올 경우도 대비해야했다.
김진수는 조용히 내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조금만 해도 금방 이해하는 게 역시 과학고 학생은 과학고 학생이었다.
그렇게 풀이가 끝나자, 김진수가 나를 쳐다봤다.
“근데 진짜 궁금한 건데, 넌 이런 거 왜 이렇게 잘 푸는 거냐?”
“별거 있나. 그냥 공부했지.”
“아니 생각해봐. 나는 주말마다 학원 가서 풀이과정 달달 외워 와서 푸는데 너는 지금 이 문제 처음 본 걸 거 아니야? 근데 이렇게 바로 깔끔하게 풀어버린다고? 이게 바로 재능인 건가?”
김진수의 칭찬이 이어지자 조금 뒷덜미가 간지러워졌다. 언제나 칭찬 듣는 건 어색한 경험이었다.
“재능은 무슨. 그냥…운이 좋은 거야.”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왜냐면 과거의 나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었으니까.
‘전생에 중간고사 등수는…처참했지.’
전교 꼴등. 그런 등수를 내가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1번부터 어려운 문제가 나온 까닭에 그 문제에만 매달렸고, 결국 나머지 문제들은 손도 못 댔었다. 그렇게 패닉 상태로 첫 시험을 치고 나머지도 줄줄이 패닉. 결국 말아먹은 시험이었다.
“꿀팁 공유 좀 하자. 응? 룸메 우정 그런 거 몰라?”
마치 내게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을 거라 확신했는지 김진수가 끈질기게 물었다. 나는 연필을 두어 번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시험을 잘 치는 법.
“없어. 꿀팁 같은 건.”
“그래, 알겠다. 알겠어. 치사하게 너 혼자만 알고 있겠다 그거지?”
“꿀팁은 없지만 생존 팁은 있어.”
“어?”
꿀팁. 그런 건 없다. 인터넷에 각종 떠도는 시험 잘 치는 방법들은 죄다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거라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기 어렵다.
“중요한 건,”
과학고에서 살아남는 것뿐만 아니라, 이 험난한 사회를 버티는 팁.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에.”
엄청난 팁일 줄 알고 한껏 기대했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생은 길어. 시험 한번 망쳤다고 안 죽어.”
“네네, 기만자 발언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경쟁자를 컷 하려는 고도의 심리전략에 걸려들지 않죠.”
볼멘소리로 문제집을 정리하는 김진수를 바라봤다.
전생의 김진수는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의대 진학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버티지 못했고,
결국 자퇴를 한다.
그 이후로 김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회귀를 하고 김진수를 다시 본 순간부터 그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내 길도 챙기면서 그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룸메이트 우정일 테니까.
*
대망의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학생 중 몇몇은 얼굴이 누렇게 뜬 상태였다.
‘보나마나 핫식스 들이마시면서 밤샜나보군.’
밤샌 녀석들은 얼굴만 봐도 구분할 수 있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정신은 저 멀리 딴 곳에 있는 녀석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암기 노트를 달달 외우고 있는 녀석들.
수면이 학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너 어제 몇 시간 공부했어?”
“공부 하나도 못 했어. 망했어.”
“나도 나도. 잠깐 눈 붙였는데 새벽이었다니까?”
학생들이 저마다 ‘누가 누가 더 공부 안 했나’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저 중에는 진짜로 공부를 못한 학생이 한 명쯤은 있었겠지만, 나머지는 전부 블러핑(bluffing)이었다. 일종의 방어기제.
시험을 망쳤을 경우에 좋은 핑계가 된다. ‘이번 시험 때는 공부를 안 해서 이렇게 나온 거야, 그러니까 난 멍청한 게 아니야.’라는 핑계.
시험을 잘 보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다. ‘뭐야, 쟤는 공부 안 했는데도 이 점수를 받았다고? 천재야?’라는 식의 부러움을.
하지만 장기전으로 봤을 때는 둘 다 좋지 않다. 결국 스스로에게 부담만 늘리는 꼴이니까.
“어이, 공부했는가?”
“엉. 시험 전날인데 안 했겠냐.”
이인성의 물음에 가뿐하게 대답했다. 내 말에 이인성이 재밌다는 듯이 어깨를 툭 쳤다.
“진짜 너는 솔직해서 좋다니까? 공부했는데 안 했다고 말하는 가식적인 놈들 보면 아주 그냥-!”
그 말에 맞춰 이인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게 누가 봐도 전날 늦게까지 공부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야 돼지, 공부했냐?”
“이 새끼는 아침부터 사람보고 돼지라고 하고 지랄이야. 입 꼬매버린다.”
첫인사의 수위가 평소와 달랐다.
‘무섭다.’
회귀 후 이인영과 이인성의 대화가 거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섭다거나 두렵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나 저래나 고딩이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괜찮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조심스레 묻자 이인영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자신도 날이 서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인영의 모습을 보며 이인성이 조용히 속삭였다.
“쟤 시험 때마다 늘 저러거든. 아마 지금도 한 시간 정도밖에 못 잤을걸? 게다가 첫 시험 과목이…”
나는 칠판에 쓰여있는 시험 일정을 확인했다.
“화학이네.”
중간고사 첫 시간, 화학 시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