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86화(186/221)
186. 타이틀 (3)
186. 타이틀 (3)
대형 컨벤션 홀 입구에 들어서자, 넓다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곳곳에 퍼져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하며 행사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런 학회에 오는 게 처음은 아니다만···어쩐지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그 모습을 눈치챘는지, 김성진이 가볍게 나를 보며 물었다.
“평소와 다르게 바짝 얼어있는데, 어디 불편한 게 있나?”
“아뇨. 그냥 좀···떨려서요.”
치매라는 질병을 연구하고 있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다른 연구원들과 치매와 관련해 같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손에 꼽았다.
안그래도 좁은 내 인간관계는 끽해야 연구실 사람들 뿐이었고, 어쩌다가 한번씩 따라가나는 학회에선 내용만 쏙 듣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지만 학회의 존재 의의는 단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그나저나 개회 시간보다 일찍 왔는데도 사람들이 많네요.”
“아무래도 인맥을 쌓으려는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많으니 말일세.”
인맥. 다른 말로는 연구 네트워크.
연구는 혼자 할 수 없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만 연구하려고 해도 결국 연구를 하다보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
학문이라는 건 칼로 딱 잘려있는 게 아니니까.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연구 소식 들었는가? 그 효과가 심상치 않더라고.”
“안그래도 요즘 제일 주목하고 있는 연구 중 하나네. 혈뇌장벽을 통과해서 배출해낼 수 있다니···아직도 믿기지가 않구만.”
그때 내 옆에 모여있던 남자들의 대화가 귀에 들렸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한 채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연구는 많다. 하지만 내 정보가 맞다면, 혈뇌장벽을 통과해 배출해낼 수 있는 건···
아밀로잽밖에 없었다.
“처음 그 논문이 나왔을 때는 솔직히 누가 장난치는 건 줄 알았지 뭔가.”
“나는 제목만 보고 아예 읽지도 않았네! 솔직히 아카이브에 그런 내용이 올라올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존스 자네가 읽어주지 않았으면 아마 영영 안 읽고 있었겠지!”
“후후, 그러진 않았을걸세.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처에도 그대로 실렸으니 말이야.”
나는 힐끗 고개를 돌려 김성진을 바라봤다. 김성진 시선은 저 멀리 보고 있었지만 미동이 없는게 옆 대화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다보니 엿 듣는 모양새가 됐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아는체를 하기도 좀 그랬다.
김성진이나 나나 관심 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야기를 들으니 임상 실험 중에 환자로부터 유전자 샘플도 받았지 뭔가. 심지어 직접 방송에 나와서 임상 실험 참가를 부탁했다고 하더군.”
“아아, 그 방송 말인가? 안그래도 우리 연구실에 한국 학생이 있어서 덕분에 나도 봤네. 어린 학생이 꽤나 패기있었지.”
“어린 학생?”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기세포 때와 다르게 치매와 관련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한 상황.
줄기세포 계에서는 유명인사가 되었을지언정, 치매 연구쪽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게 정상인거지. 내가 엄청난 발견을 한 것도 아니고.’
물론 조만간 세상에 내놓을 발표로 유명해질테지만 말이다.
‘만덕아. 이 유전자 언제 발표 할까?’
‘내용 정리 되면 바로요. 이건 저희 뿐만 아니라 치매를 연구하는 모든 연구원들에게 도움이 될테니까요.’
TREM2.
치매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유전자.
지금까지 기술의 한계로 밝혀내는게 어려웠지만···그걸 해냈다.
조만간 세상을 한번 더 떠들썩하게 만들겠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데, 맞은 편에 서있던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어린 학생이었네. 물론 동양인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한 열 일곱, 열 여덟정도로 보이는···”
탓.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한 저 정도 되는 학생이었네.”
“그런가?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만 보면 나이가 좀 있을거라 생각했다만. 논문을 한 두번 써본 솜씨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더 놀란거네. 그 논문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깊이의···?”
그리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남자가 미간을 구겼다.
머지않아 커다래지는 남자의 두 눈.
“···잠깐만. 분명 그때 영상에서 봤던 학생?”
“무슨 말하는건가, 자네?”
“아, 아니. 분명 그때 영상에서 봤던 학생인데?”
남자는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남자가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김성진이 대강당처럼 보이는 커다란 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멋쩍게 웃어보이며 김성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여전히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둘을 내버려둔채로.
…뭐. 제대로 된 인사는 나중에 하자.
이곳에 온 이유는 다른 연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거니까.
“와, 엄청 넓네요.”
“이번에는 작년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고 하더군. 편한 곳에 앉게나.”
아직 개회식까지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심장이 떨리는 걸 느꼈다.
국제 알츠하이머 협회. 치매를 치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왔을,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동료들.
···국제 줄기세포 학회때도 이렇게 긴장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양 주먹을 꽉 쥐며 이동했다.
‘그래도 교수님이랑 같이 와서 다행이야. 혼자 왔으면 아마 더 긴장했을테니까.’
그렇게 새삼 이곳에 같이 가자고 불러준 김성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왜 여기서 멈추는···
“나는 앞쪽으로 가야할 것 같네.”
“예?”
“이번에 연설 하나를 맡게 되어서 말이야.”
“예?”
김성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왜 교수님이 갸웃하세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 어떤 주제로 발표하시는데요?”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연구가 뭐겠나?”
“!”
허리가 빳빳하게 펴졌다. 목이 뻐근해지는 듯한 느낌.
최근에 하고 있는 연구.
아밀로잽 임상 실험이다.
이거랑 관련해서 연설을 한다고?
물론 지금 아밀로잽에 대한 연구는 내 손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의 진행은 김성진, 최강석, 이재성의 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엄연히 아밀로잽도 내 자식이다. 지금은 더 좋은 연구자의 손에 있게 하기 위해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아밀로잽이 이곳 학회에서 이리저리 물어뜯길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해졌다.
학회라는 곳은 평화로운 인맥밭으로 보이다가도 물어뜯을 대상이 보이면 즉시 전쟁터로 변하는 곳이었으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며 김성진이 미간을 좁혔다.
“내가 연설을 하고 말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오늘 연설을 하는 건 자네가 아니고 나일세.”
“아, 아니. 그래도 미리 이야기해주실 수도 있잖아요.”
“흠. 내가 말 안했던가? 그건 미안하군.”
너무도 빠르고 간단하게 사과를 마친 김성진은 저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괜찮아. 오히려 잘 됐어.’
안그래도 아밀로잽 관련해서 최근 이재성한테 온 메일을 한동안 읽어보지 못했다. 유전자 분석을 하는데 전력을 다 쏟고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아밀로잽이 어떤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 실험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들어볼 필요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힌 후, 아까 입구에서 받았던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국제 알츠하이머 컨퍼런스(AAIC)]책자에는 컨퍼런스 내에서 진행될 프로그램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단순히 학술적인 이야기가 오간다고 해서 모두가 일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앉아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기조 연설, 구두 연설, 포스터 연설 등.
모두가 같은 곳에 앉아서 듣거나,
각자 관심 있는 세션으로 가서 논문 발표를 듣거나,
지나가며 전시되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 기조 연설을 들으려고 이곳에 온 거겠지.’
기조 연설. 학회의 꽃.
모두가 모인 곳에서 진행되는 만큼 가장 중요한 파트이기도 했다.
그에 반면 포스터 발표는 일정 조건만 충족되면 게시가 되었기에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진 못했다. 더군다나 규모가 큰 학회의 경우 게시되는 포스터의 수만 해도 수백개가 넘어갔으니까.
김성진이 기조 연설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간을 좁히며 책자를 꼼꼼히 읽고 있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번 포스터 발표에 좀 이상한 포스터 있던데요?”
“이상한 포스터?”
“네. 아까 지나가다가 슬쩍 봤는데 정식 게재도 안 받았는지 좀 엉성하더라고요.”
뒤에서 하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국제 학회정도 되는 곳인데 엉성한 포스터라니. 어지간히 바빴나보네.”
“에이, 물론 포스터 발표에 큰 관심을 안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며가며 보는 건데···바빴다는 이유로 그럴수가 있나요?”
조용한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남녀.
“그래도 설마 승인도 안 받은 걸 거기에 걸어놨으려고. 너무 신경쓰지 마.”
“흐음···그렇다면야 뭐.”
“그보다 이 아밀로잽 발표나 듣자고. 오늘 이거 들으려고 온 거잖아?”
“맞죠, 맞죠.”
그렇게 다시 둘의 대화 주제는 아밀로잽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아밀로잽에 몰려있는 듯 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앞을 바라봤다. 연설을 하는 건 김성진인데 어째 내가 더 떠는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단상으로 나왔다. 당당하면서도 힘있는 발걸음과 함께.
“안녕하십니까! 이곳에 모인 각 자리의 석학 여러분.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국제 알츠하이머 컨퍼런스 사회를 맡게 된 이반이라고 합니다.”
이윽고 그의 낭랑하면서도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간단한 개회사를 시작으로 컨퍼런스 진행에 대해 설명하는 이반. 그가 띄워둔 피피티에는 컨퍼런스 프로그램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빠르게 김성진의 이름을 찾았다.
[베타-아밀로이드와 혈뇌장벽: 임상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Kim Sungjin]‘교수님은 마지막 순서네.’
모든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안내가 끝나고,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앞을 바라봤다.
“자, 그럼 지금 이 시간 가장 처음으로 기조 연설을 맡아주실 분은···”
이반의 목소리에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이 무대로 집중되었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존 스미스 교수님입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컨퍼런스장을 가득 메웠다. 스미스 교수는 희끗한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더니 웃으며 단상 위에 섰다.
그가 준비한 연설은 ‘치매 조기진단으로 위한 바이오마커 연구’였다. 치매라는 질병의 특성상 빠르게 조기 진단하는 게 중요했다. 얼마나 초기에 대응하느냐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달라졌으니까.
지금까지는 인지적인 부분에서 치매로 의심될 경우 치매로 판정하곤 했지만, 보다 정량적인 방법으로 체내 축적된 타우 단백질 및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바탕으로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도 논의하고 있었다.
‘언젠가 슈퍼진단키트로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날도 오겠지.’
데이브와 김진수가 만들어낸 슈퍼진단키트. 아직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TREM2 유전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표하는 순간 함께 공개될 터였다.
데이브가 신나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한 것 같다. 어서 빨리 발표하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스미스 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고, 이내 차례 차례 연설자들이 발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알츠하이머 질병을 효과적으로 진료하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알츠하이머 병을 유전학적으로 연구해 본 결과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줄기세포 단계에서 연구가 이제 막 진행된 시점이긴 하지만–”
연설가들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움직임도 함께 부산스러워졌다.
아무래도 긴 연설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모든 기조 연설 발표자들이 연설을 마친 후,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네, 아마 이곳에 모인 분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연구라 생각이 되는데요. 아밀로잽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김성진 교수님의 발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설명이 끝나자, 김성진이 옆에서 걸어나왔다.
조금 풀어져있던 객석에도 순식간에 긴장감이 불어넣어졌다. 조그만 목소리로 오가던 이야기들도 순간 조용해졌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아밀로잽 임상 실험 결과와 관련해 연설을 하게 된 김성진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긴장할 법도 한데, 김성진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목소리에서도 긴장이나 떨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
“안그래도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새롭네요.”
“그런데 제 기억에 아카이브에 처음 올라왔던 이름이랑 다른 것 같은데요. 그때는 분명 다른 이름이었어요.”
“뭐 일종의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제자의 논문을 자기가 발표하는.”
옆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자의 논문을 발표한다라.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밀로잽의 시작은 나와 이재성, 그리고 김영재 셋이서 시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엄연히 김성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연구실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베타-아밀로이드와 관련해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
게다가 지금은 나와 김영재 손을 떠나 그들 스스로 지금까지 일궈온 것이었다. 이 논문의 모든 것이 김성진 한 명의 것이라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어허, 제자의 논문을 발표하다뇨. 다들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아니 뭐···그냥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저 녀석을 아는데, 절대 그럴 놈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하던 연구도 제자 쓰라고 넘겨주면 모를까. 남의 논문 뺏고 그럴 깜냥도 안되는 놈이에요, 저놈.”
한 남자가 김성진을 두둔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저 녀석이 얼마나 새가슴인지 아십니까? 죄 짓고는 못 살 녀석이에요. 게다가 은근히 겁도 많아서 아마 지금도 무진장 떨고 있을—어라?”
열심히 침을 튀기며 김성진을 옹호, 아니 열심히 까던 박성민과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