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87화(187/221)
187. 타이틀 (4)
187. 타이틀 (4)
“교수님, 부르셨다고요?”
“거기 앉아보세요.”
“어···네.”
에단 교수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 턱짓으로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김아진은 그런 에단의 모습을 보며 불안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뭔진 몰라도 분명 좋은 소리 하려고 부른 건 아닌 것 같은데.’
드륵, 소리를 내며 의자를 끌어 앉아 에단 교수가 한동안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1분, 2분···.그렇게 시침 소리만 똑딱거리며 들려오고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한 김아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왜요. 바쁩니까?”
“아···그게 지금 연구를 하다가 온 거라서요.”
연구실에 동료가 있어서 가봐야해요. 그 동료가 김만덕이라는 건 굳이 지칭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에단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연구는 잘 되어갑니까?”
“···네. 그럭저럭이요.”
“그럭저럭? 잘된다는 겁니까, 아닌 겁니까? 말을 할 때는 확실하게 하세요.”
“잘 되고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서 히스테리를 에단. 하지만 이미 이런 건 많이 당해본 김아진이었기에 그냥 빠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와 불필요한 언쟁을 해봤자 피곤한 건 그녀였기에.
하지만 어째선지 이번 대화는 이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에단은 김아진의 말을 꼬투리잡듯 이어 묻기 시작했다.
“누구 덕입니까?”
“네? 뭐라고요?”
“연구가 잘되는 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냐는 겁니다.”
김아진은 대답대신 미간을 좁혔다. 좁아진 미간에는 여러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저딴 걸 왜 물어보는 거지? 하는 의아함과,
저딴 걸 왜 물어보는거지···?하는 찝찝함.
그리고 찝찝한 감정은 이어지는 에단의 말로 인해 불쾌함으로 넘어갔다.
“그 연구가 잘 될 수 있는 건 제 덕입니다. 이걸 잊어버려선 안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에단 교수의 말에 김아진은 결국 되물었다. 그래도 지도 교수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했는데, 그의 말은 도저히 예의고 뭐고 갖출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에단 교수가 큼큼 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첫째, 김아진 학생은 대학원생이 아닙니다.”
“네.”
“대학원생이 아닌 일반 학부생이 이렇게 연구실을 사용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죠.”
“…아 그런가요.”
학부생 중에서도 연구실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았다. 교수 개인에게 배정된 연구실이 아니더라도 공용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경우는 많았으니까.
하지만 에단은 굳이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둘째, 연구실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연구 활동에 대한 책임은 그 연구실 관리자에게 있습니다.”
“…”
“그리고 김아진 학생이 사용했던 모든 연구실들은 제 책임 하에 있고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김아진 학생이 한 모든 연구는 제 덕이라는 소립니다.”
에단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뻔뻔하다 못해 당당한 모습. 김아진은 할말을 잃었다.
이사람 평소에도 또라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의 또라이이다.
도덕성과 사회성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또라이.
하지만 에단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는지 김아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므로 이 연구 진행 과정에 대해 저도 알아야겠습니다. 지도 교수가 학생이 연구하는 거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물어보려고 하면 ‘유전자 편집은 내 전공이 아닙니다.’ 라며 도망치기 바쁘던 에단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당당히 연구 내용을 공유해달라고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에단이 하는 말이 틀린 건 없다.
어디까지나 에단은 김아진과 김만덕의 지도 교수로 남아있으며,
지도 교수는 학생의 연구를 보고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정도에 따라서는 논문에 같이 이름을 실을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김아진은 느꼈다. 지금 고개를 끄덕였다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조금 생각해보고요.”
“뭐라고요?”
“적어도 같의 연구했던 동료들이랑 이야기해본 후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하···김아진 학생.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김아진 학생이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이번에 연구한 치매 유전자 자료. 넘기세요.”
결국 지금까지 숨겨왔던 그의 본심이 나오자, 김아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팍 구겼다.
치매 유전자 연구는 김아진과 김만덕이 영혼을 갈아서 한 연구이다. 아니, 김만덕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 연구에 모든 걸 걸었다.
슈퍼진단키트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뛰어오던 데이브.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슈퍼진단키트와 관련해 메일을 주고 받던 김진수.
이건 모두의 노력이 담겨있는 연구였다.
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뻔뻔하게 이걸 넘기라고 말하고 있다.
‘···참자. 여기서 감정적으로 나서봤자 오히려 말려드는 거야. 그냥 거절하면 돼. 거절.’
김아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꽉 쥐지 않으면 진심으로 눈 앞의 남자를 한 대 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마음같아서는 욕을 때려박으며 쏘아붙이고 싶지만 에단은 엄연히 김아진의 지도 교수였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 지도 교수에게 밉보였다가 졸업이 밀린 썰은 두고두고 들어왔다.
참을 인(忍)이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그녀는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참을 인(忍)을 쓰며 화를 누그러뜨렸다.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건 저희가 진행한 연구 내용이라서요. 함부로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하! 김아진 학생의 연구 내용이라고요? 김아진 학생의? 김아진 학생은 스스로 연구를 할 만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참을 인(忍)을 하나 더 그렸다.
‘괜찮아, 괜찮아. 지금 눈 앞의 사람은 교수가 아니라 그냥 음···그래. 원숭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이 연구실은 사실 김만덕 학생을 위해 빌려준겁니다. 김아진 학생을 위해 빌려준 게 아니라고요!”
‘원숭이가 말을 한다.’
참을 인(忍) 하나를 더 그렸다.
“김아진 학생이 뭐라도 된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당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 그리고 그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들, 저와 면담하면서 얻은 아이디어 아닙니까?”
‘원숭이가 개소리를 한다.’
참을 인(忍) 한번 더 그렸다.
“엄연히 말하면 넘기는 게 아니지요. 지도 교수에게 확인을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최종적으로 완성되면 그때 확인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김아진.
결국 그토록 듣고 싶던 연구 내용을 넘기겠다는 말이 없자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만약 연구를 안 넘기면 졸업은 없습니다.”
“네?”
“졸업은 없다고 했습니다.”
“…”
김아진은 잠시 생각했다.
참을 인(忍)이 세개면 살인을 면한다.
‘근데 총 몇 번 셌더라?’
찬찬히 참은 횟수를 생각해보던 김아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넘기기로 마음을 바꾼 건가요?”
“네.”
“! 좋습니다. 그럼 데이터와 함께···”
“한번 더 강요하시면 정식으로 학교측에 넘기겠습니다.”
에단 교수님을요.
“지, 지금 뭐라고···”
“지금 이렇게 말하시는 것도 일종의 압력, 협박이니까요. 졸업을 미끼로 그러시는 거 좀,”
김아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치하시네요.”
김아진의 말을 들을 에단 교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는 진심으로 수치스러운지, 아니면 화가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버벅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 유치하다뇨! 지도 교수에게 못하는 말이 없는–”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게 다 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연구를 해야해서요. 라고 짧막하게 대답한 후 나가는 김아진.
에단 교수는 김아진이 떠나고 난 뒤, 한동안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똑딱거리는 시침 소리가 지나다가, 에단 교수는 불안한 듯 연구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라고.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연구할 수 있었던 게 다 누구덕인데? 하여간 이래서 유학생들을 함부러 받으면 안된다니까. 고마운 줄 몰라요, 고마운 줄을!’
그는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초조한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 이대로면 더는 천재 교수라는 타이틀로 못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최근 학회에 안 나가지 오래. 이렇다 할 연구를 진행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학회에 나가서 할 이야기도 없었다.
그가 어릴 적에 연구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그 논문은 진작에 낡고 오래된 논문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세상은 시시각각 바뀐다.
어제는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늘은 거짓이 된다.
어릴 적 배웠던 내용을 모조리 다 들어내야 할 수도 있다.
과학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잠정적 가설’이라는 걸, 에단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 제 논문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어디까지나 논리적으로 지적하는겁니다. 잘못된 걸 개선해나가야 하니까요.’
‘헛소리 하지 마시죠. 제 논문엔 잘못 된 게 없습니다. 잘못된 걸 굳이 찾자면 당신의 사고 방식이겠죠.’
에단은 학회에 나갈 때마다 자신의 논문을 향해 들어오는 무수한 공격들을 디펜스, 즉 방어 해야만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에단의 논문에는 구멍이 많았고, 공격이 들어오면 들어올 수록 사람들의 에단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져갔다.
‘식균작용을 보면 미세아교세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이 프로세스 자체가 좀 엉성하지 않습니까?’
‘어릴 때는 천재 소리 들었다고 아직도 천재인 줄 알다니···솔직히 여기 중 천재 소리 안 듣고 자란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나이는 들어도 여전히 어린 애같네요.’
툭툭 들려오는 에단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에단 교수는 너무 철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평가들을 단순히 자신에 대한 질투로 치부해버렸다.
질투. 이 사람들의 질투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다면 이 질투를 없애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연구실. 연구실에 가보자.’
에단은 문을 벌컥 열었다. 물론 김아진과 김만덕에게 말은 안했지만, 엄연히 그 연구실은 에단 교수의 관리 밑에 있다.
즉 언제든지 가도 되는 연구실이라는 뜻.
그렇게 한 걸음에 달려간 연구실. 그런데 생각보다 안에 인기척이 안느껴졌다. 에단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연구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설마 갔나?’
하지만 지금까지 봐 온 김아진이라면 연구실로 곧 돌아올 터. 에단은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널브러져 있는 종이들과 빈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휴대전화나 가방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로 봐서는 곧 돌아올 것 같았다.
‘지금이다!’
에단은 빠르게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빠르게 쓱쓱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디 있지? 분명 유전자 관련 내용이 있을 텐데… 젠장, 다 어디다 숨겨둔거야?’
에단은 책상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김아진이 꽁꽁 숨겨둔 건지 원하는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불필요한 서류들만 책상 위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가 더욱 빠르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지금 김아진이 들어온다면 진짜 학교 측에 신고를 넣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자신의 연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김아진이었으니까. 에단은 이런 상황에 비통함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글자가 있었다.
‘TREM2? 들어본 적이 있는데···잠깐, 이거 미세아교세포랑 관련된 유전자잖아?’
에단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이거다. 이거구나.
발견한 유전자가 이거구나!
에단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도그럴게 이 부분은 그의 전공 분야와 관련있었으니까.
이로써 그가 이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매우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내용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실험 내용을 다 몰라도 상관없어. 내가 먼저 발표하기만 하면 선구자 타이틀은 내 거야. 처음에만 주목 받으면 그만이니까.’
연구자로서 하기 어려운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에단은 궁지에 몰려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천재 교수라고 불리는 타이틀에 대한 압박감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했다.
에단은 열심히 책상 위의 자료들을 쓸어 모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뒀다. 이걸 그대로 들고 갔다간 분명 없어진 걸 알아차릴테니···그는 빈 종이에다가 빠르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이정도로는 논문을 쓰는 건 무리인데…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도 분명 거절당할 거고. 게다가 설령 된다고 해도 검토하는 동안 이 녀석이 진짜 연구한 내용을 투고해버리면 끝장이야.’
다시 또 생각에 빠지는 에단.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도대체 어디에 투고하는게···.
잠시 고민하던 에단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다래졌다.
‘아카이브.’
그곳에 먼저 올리면 적어도 연구에 대한 선취권을 가질 수 있다.
최초. 모든 연구자들에게 매혹적인 단어.
에단의 입꼬리가 광대까지 끌어올라갔다.
이로서 그는 지난 날의 영광.
다시 천재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