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화(19/221)
19. 중간고사 (2)
19. 중간고사 (2)
화학(Chemistry).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일반적으로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물리와 같이 사고실험을 하거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부류와, 화학과 같이 실험을 하거나 다양한 화학식들을 쪼개고 결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부류.
세간에는 전자를 좀 더 ‘천재’라고 띄워주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화학이라는 분야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깊이와 폭을 자랑했다.
물리화학, 분석화학, 분자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 고분자화학, 생화학… 그 세부 분야만 해도 끝없었으니까.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덕에 취업이 잘되는 학과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자, 시험지 앞뒤 인쇄 상태 확인하고 맨 뒷면이 위로 가도록 덮어두도록. 문제를 풀면 부정행위로 간주한다.”
감독으로 들어온 남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정행위라는 말에 학생들이 바짝 긴장한 게 보였다.
사라락, 시험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앞사람의 손을 타고 건네진 시험지.
회색 갱지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문제들을 보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제1회 지필고사] [과목코드 05 화학]빠르게 인쇄 상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험지 장수만 무려 4장. 그림이 포함된 거라 해도 과하게 많은 양이었다. 뒤의 2장은 서술형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쇄 상태를 확인하며 문제들을 최대한 꼼꼼히 확인했다. 종이 치면 어차피 보게 될 문제들이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선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 상 알고 있었다.
‘이 시험을 다시 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우울하고 잿빛으로 가득 차 있던 그 학창 시절 중 시험은 나에게 일종의 백지 수표였다.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내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맞추느냐에 따라 수표에 적혀지는 숫자가 늘어날 거라고, 그러니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기필코 1등을 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아니었지. 세상엔 천재는 많고, 범재는 더 많으니까.’
세상이 원하는 건 시험을 잘 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험을 조금 못 풀더라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인재를 원했다.
천재가 해낼 수 없는 일을 평범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낸 경우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단지 저평가, 아니 평가 자체를 하지 않을 뿐이다. 멋있지 않아 보이니까.
과거의 나는 이 시험지를 받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초조, 불안, 공포.’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 이 시험을 망치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공포, 그 순간 모두에게 버려질 거라는 불안. 그 모든 것들이 똘똘 뭉쳐 피해의식에 찌든 나를 만들어냈었다.
‘수행평가 범위를 알려달라고? 내가 왜?’
‘너가 발표를 하겠다고? 너보단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냥 점수 얻으려고 애쓰려고 하지마. 어차피 나 빼고는 B일 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가 없을 만했네.’
내가 먼저 주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데, 다가올 사람이 있을 리가. 불현듯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주변을 바라봤다.
시험을 앞두고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과고에 입학한 후 치르는 첫 시험. 이 시험의 점수는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졸업 때까지 붙어 있을 터였다. 일종의 낙인효과.
바짝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는 이인영, 그 앞에서 따분한 듯 길게 하품하는 이인성의 모습.
‘너가 볼 때 이거 시험에 나올 것 같아?’
‘만덕, 만덕. 이거 해석 좀. 화학식만 보면 이제 현기증 날 것 같아.’
전생과 달리 이번 시험은 외롭지 않았다. 괴롭지도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실험을 하고 연구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시험 공부를 한 건 처음이었다.
마냥 내가 가진 것들만 뺏길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얻어가는 게 많았다.
화학식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려는 이인성을 붙잡고 가르치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고.
‘오히려 알려주면서 더 알기 쉽게 이해가 되었지. 서술형 대비도 매끄럽게 할 수 있었고.’
지식의 저주. 아는 게 너무 많은 지금 상태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좋을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 둘과 대화하면서 그 선을 정할 수 있었다.
‘시험이라고? 옛다, 당 충전이나 해라.’
‘너 나보다 시험 잘 치면 안 된다?’
고등학교 첫 시험 잘 치라며 박성민이 준 초콜릿도 주머니에 들어있고, 김진수가 츤츤거리며 건네준 시험 족보도 있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떨리는 감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설령 시험 결과가 과거보다 나쁘게 나온다고 한들, 이번 생은 전생보다 훨씬 나은 삶이라고.
한 문제 더 맞히는 것보다 한 사람을 더 얻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다고.
띠리링딩-
그렇게 시험 종이 울렸다.
*
“수학을 왜 마지막 날에 치는 걸까?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라는 뜻인가?”
“수학 싫어…살려줘…”
시험 공부를 하다말고 잠깐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등나무 아래에 앉아 좀비가 된 쌍둥이들을 지켜보는 건 꽤나 재미있었다.
상대적으로 이과 과목에 강한 쌍둥이들이 유달리 약한 과목이 있었는데, 바로 수학이었다. 이 부분이 늘 궁금하기도 했던 터라 나는 음료수를 건네며 물었다.
“근데 너희 계산 같은 거 잘하잖아. 인성이도 물리 공식 거의 다 외우고 있고 인영이 너도 화학 쪽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수학은 달라… 얘네는 암기가 아니잖아…”
머리를 나무 테이블에 박은 채 고개를 젓는 이인성. 그 옆에서 이인영도 똑같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다를 게 뭐 있어. 어차피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은 암기라고 봐도 무방해. 그냥 주요 공식 외우고 변형 문제만 열심히 돌리면 돼.”
내 말이 끝나자 이인성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내가 아닌 이인영을 보며 물었다.
“나…대학은 갈 수 있을까? 고졸도 연구원 될 수 있어…?”
“과학고 고졸이면 받아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개인 연구원으로…”
“일단 엄빠부터 설득하고… 너가 엄마 맡아… 내가 아빠 맡을게…”
“응…”
평소 이인성의 시답잖은 말에 반응도 안 하던 이인영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둘은 동태눈이 된 채로 ‘개인 연구원이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 자본금은 얼마인가’를 두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쌍둥이 맞다니까.’
유전자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데, 동태눈이 된 이인영과 눈이 마주쳤다.
“…진짜 신기해.”
“응?”
“어떻게 학원도 안 다니고 수학 수행평가 만점을 받을 수가 있지?”
“내 말이!”
앞에 있던 이인성이 격하게 반응했다.
“머리가 좋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건 선 넘었지. 이젠 부러운 감정을 넘어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어질 정도야.”
순간 내 뇌를 분석해보고 싶다던 박민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째선지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보다 내 뇌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냥 노력하면 돼.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예습, 복습을 철저하게 하면 너희도 만점 받을 수 있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럼.”
물론 이 말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과학고는 교과서 위주로 수업을 나가지도 않을뿐더러 예습, 복습을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응용 문제는 수업 시간만으로 커버가 안 되는 게 많았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하면 돼. 그럼 대충 뭐가 시험에 나올지 보이거든.’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가 장난친다며 더 눈총받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내 진심이 전해진 걸까, 이인성과 이인영이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무언가 통한 듯했다.
“묻어버리자.”
“-!”
“좋아. 우선 저 뇌는 연구 가치가 있으니까 보존하자.”
“오케이.”
“미친놈들…”
그 말과 동시에 슬금슬금 내 쪽으로 오는 이인성과 이인영을 겁에 질린 채로 바라봤다.
그날은 맛탱이가 간 둘을 피해 다니느라 기숙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
한국 과학고 2008학년도 제1회 정기고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교과 교사들이 긴급 회의에 호출되었다.
1학년 시험 출제를 한 교사들이 일렬로 나란히 앉았고, 그 앞에는 교장과 교감, 그리고 시험을 총괄하는 연구부장이 사뭇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비교적 교직 경력이 적은 수학과 교사 박하성이 선배 교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갑작스럽게 호출된 회의라 이유도 못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부정행위인가?”
“그런가 봐요. 전에도 컨닝하던 애 잡고 이렇게 회의 열렸었거든요.”
선배 교사들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박하성은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컨닝이라.’
수재들이 모인다는 과학고등학교.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최고 진학률을 보이는 한국 과학고에서 컨닝이라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OMR은 다 읽었습니까?”
“네. 시험이 끝나는 즉시 다 읽었습니다.”
“서술형 채점은 언제쯤 끝날 것 같나요?”
“일부 한두 교과를 제외하고는 채점을 다 마친 상황입니다. 이제 학생들한테 확인만 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연구부장과 교과부장들의 말에 교장이 미간을 좁힌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에는 피로가 깊게 배어있는 상황이었다.
“박민철 선생님.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들 수준은 어떤 편인지요?”
“뭐 늘 그렇듯,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들입니다.”
“똑똑하고 성실하다라… 이번에 모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정행위 신고가 들어왔어요. 박민철 선생님 반 학생 말입니다.”
“네?”
박민철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자 눈이 마주친 교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태이긴 해요.”
내용과 다르게 말투는 단호한 상태였다. 올해로 5년째 수학 교과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 유지한이었다. 올해로 32세인 그는 다른 교사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한국 과학고 졸업생이라는 것.
조기 졸업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전국 수석으로 중등 교사 임용에 합격했다. 극악의 난이도, 피 터지는 경쟁률은 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가 못 푸는 문제는 없었으니까.
한국 과학고의 경우에는 보통 다른 학교에서 오랜 경력을 지내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교사를 데리고 오는 시스템이었다. 공립이 아닌 사립인 만큼 채용에 비리가 있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공립보다 더 철저하면 철저했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제가 이번에 출제한 마지막 문제는 적어도 7줄 이상의 풀이 과정이 적혀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한 줄의 풀이 과정으로 끝을 냈고, 답도… 정확히 풀어냈습니다.”
“그게 뭐가 문제인 거죠? 풀이 과정이야 교사의 의도와 다르게 적는 학생이야 늘 나오는 것이지 않나요?”
박민철이 답답한 듯 대꾸했다. 평소에도 고집불통으로 소문 난 유지한이었던 만큼, 이번 일도 그런 고지식한 면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부정행위가 아니라면 더 당황스럽습니다.”
유지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앞에 복사해 둔 마지막 문제를 동료 교사들에게 전달했다. 수학 문제를 받아 든 교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정식 x^3 + y^3 + z^3 =33를 만족하는 정수 x, y, z를 구하는 풀이과정을 적으시오.]언뜻 보면 흔한 삼차 방정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뒤에 이어지는 유지한의 말은 나머지 교사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이 문제는 여러 디오판토스 방정식 중 하나입니다. 수학에 대해 어느정도 아시는 분이 보시면 눈치채셨겠지만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 x, y, z, k의 값을 찾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특정 방정식은 세제곱합의 개념과 관련이 있으며 Fermat의 마지막 정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이 문제는 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답을 구하기 위해 어떤 정리를 이용해야 하는지, 어떤 개념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입니다. 제가 굳이 답에 대한 언급을 뺀 것도 그 이유입니다. 애초에 답이 없다는 걸 학생들도 알고 있고요. 그렇기에 수업 중에도 33에 대한 답을 구하는 문제를 토론시키기도 했습니다.”
실제 수업 중에서 유지한은 학생들에게 이런 난제들을 제시하고 도전하게 하는 수업을 즐겼다. 그는 학생들에게 답을 구하는 것보다 구하는 과정까지의 사고 과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주입식 교육이 판을 치고 초등학생도 고등학교 내용까지 선행을 해서 오는 현실 속에서, 그는 학원이 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학교에서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답이 아닌 풀이 과정의 논리를 평가하는 문제들을 종종 마지막 문제로 내곤 했었다.
답을 내지 못해도 그 과정까지의 여정을 칭찬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복사된 종이 뒷면,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을 받는 학생의 답안이 적혀있었다.
[ —922,177,669, 1,230,657,823, 1,411,644,513]교사들은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성의 없어 보이는 답안, 이건 풀이 점수를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는 답안이었다. 풀이과정이 한 줄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 숫자마저도 기괴했다.
“이건 뭔… 그냥 아무 숫자나 막 쓴 거 아닙니까?”
“부정행위를 했다고 치기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틀렸다고 하면 안 됩니까? 답이 없는 문제기도 했고, 애초에 풀이 과정을 보는 문제였으니까요.”
교사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교장이 제가 볼 때도 부정행위라고 보기엔 풀이 점수도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네. 풀이 점수는 없지만 답 점수가 생겨버렸습니다.”
유지한이 준비해뒀던 유인물을 넘겼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60년만의 난제,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해결]“방금 전 수학자 Andrew Booker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방정식 x^3 + y^3 + z^3 = 33을 만족하는 x, y, z값을 찾아냈습니다.”
“그 말은… 이 학생이 난제가 풀린 걸 보고 답을 옮겨적었다는 말이군요?”
그제야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기괴한 숫자가 어디서 나왔나 했는데, 보고 베낀거라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대로 따라 적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학생이 먼저 풀고, 이후에 발견되었습니다.”
“네?”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유지한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긴장되는 시선 속에서 그는 감히 꺼내기 두려운 말을 꺼냈다.
“김만덕 학생이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푼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