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1화(191/221)
191. 증거 (2)
191. 증거 (2)
“교수님께서 1저자로 올리시고 싶으시다면, 적어도 연구를 하실 때 작성하셨던 연구노트나 관련 자료는 가지고 계시겠죠?”
“연구 노트요?”
내 물음에 에단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글쎄요. 연구 노트를 따로 작성하지 않아서 말이죠. 이 머리에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기억력이 좋으신가봐요.”
“당연하죠. 어릴적부터 암기력 천재로 이름이 났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데이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해온 거 세팅 부탁해.”
“오케이.”
“준비해온 거라니 대체 뭘···?”
데이브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불길한 듯 미간을 좁혔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교수님. 아무래도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안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아니고서야 제자 연구를 빼앗고도 자기거라고 주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게 뭔···! 에단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데이브가 회의실 내 스크린과 노트북을 연결했다.
딸칵, 소리를 내며 재생하자 에단 교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연구실 위쪽에서 찍은 듯한 영상.
“저, 저건···!”
영상을 보자, 에단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소리는 없었지만 영상 속 에단은 매우 분주했고, 다급했고, 그러면서도 나름 철저했다.
“지금···책상을 뒤지고 있는 장면인가요?”
“본인 연구실일텐데 왜 저렇게···”
“자료도 안 들고 가고 어디다가 적어서 가네요. 흐음···”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에단을 바라봤다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님께서 밤낮을 새면서 연구를 하셨다고는 하는데, 영상 속에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없어서요.”
“그, 그게 저는 제 개인 연구실에서 연구를 했으니 말이죠. 굳이 학생이랑 같은 공간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유전자 데이터 샘플이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개인 연구실에서 하신건가요?”
“그, 그건···”
내 말에 에단은 결국 대답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교수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CCTV 영상은 오래 보관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희 학교의 CCTV는 적어도 30일동안은 보존되더군요.”
“설마 30일동안···”
“네. 한달동안 에단 교수님은 단 한번도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탄식을 내질렀다. 연구실에 온 적도 없는 사람이 연구를 했다라.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에단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머리를 부단히 굴리고 있는 상황있는 듯 했다.
“꼬, 꼭! 연구실에 있는다고 연구를 하는 건 아니죠. 사고 실험 모르나요? 나같은 천재들은 머릿속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아까는 일일이 분석하셨다고 했는데, 말이 다르시네요.”
“부, 분석을 하긴 했는데–”
“유전자도 없이 분석하셨다고요.”
나는 에단 교수를 바라봤다. 브레이크 없이 계속해서 발진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이 유전자 샘플들은 제가 환자들의 동의를 받아 직접 구해온 겁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은 그 샘플들을 무단으로 사용하신 거군요.”
“아, 아니···”
환자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건 미국내에서는 중형에 해당한다. 그 사실을 모를리 없는 에단이 불안한 듯 입을 파르르 떨었다.
“설마 제가 유전자 샘플을 줬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려는 건 아니시죠?”
“…”
그는 선택해야했다.
여기서 조용히 물러나거나,
아니면 한번 더 우겨보거나.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단순히 연구 내용을 뺏은 게 아니라 더 무거운 형벌로 가게 될 터였다.
“…죄, 죄송합니다···”
결국 고개를 떨군 에단. 그의 짧은 말은 이 모든 걸 인정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정말 에단 교수가 학생의 연구를 빼앗았다는 건가요?”
“이게 무슨 망신이랍니까. 매일 본인 입으로 천재, 천재하고 다니길래 진짜 천재라도 되는 줄 알았건만.”
“천재는 무슨.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남의 공을 빼앗아온거겠죠. 치졸한 사람같으니라고.”
교수진들이 저마다 혀를 차며 말했다. 에단 교수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한차례의 폭풍같던 시간이 끝나고 난 뒤, 연구윤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종결시키기로 했다.
“따라서 에단 스털링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가 사실로 드러났으므로, 이 시간 이후로 스털링 교수에 대한 징계가 내려질 것입니다.”
징계라. 아마 어떤 징계가 내려진다고 한들, 그는 더이상 이 대학에 있을 수 없을 터였다. 스스로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버티지 못할테니까.
학생의 연구를 빼앗은 교수. 그런 교수를 진짜 교수로 인정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긴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
“해임이라니. 생각보다 쎄네.”
“뭐, 아마 해임이 아니었어도 그만 뒀을 걸.”
“그런가? 아냐. 그 새끼라면 자리만 있으면 어떻게든 붙어있었을 걸?”
에단 교수의 해임이 결정되고 난 뒤, 그의 자리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쫓기듯이 나가던 에단 교수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김만덕 학생은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요?’
놀랍게도 에단 교수가 나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은 반성이나 사과가 아니었다.
일종의 경고였다.
‘나는, 나는···김만덕 학생을 진심으로 아꼈습니다.’
‘…아낀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연구를 빼앗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더더욱 연구를 빼앗고도 우리를 매장시키려고 악을 썼던 사람이라면 절대 저런 소리를 해선 안되었다.
그러나 에단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와 김아진은 그 모습을 보며 “소금 뿌릴까?” 라고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면 이제 바로 한국으로 가는거에요?”
“응.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네.”
그리고 달라진 게 있다면, 김아진은 더 하버드에 남지 않기로 했다.
“하버드에서 박사까지 하고 연구소 취직하고 싶다면서요.”
“그냥 지긋지긋해. 외국인 유학생 취급 받는 것도 더 싫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심정의 변화가 있는 듯 했다. 그녀는 한차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돈이 필요한거면···”
“아냐. 그냥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서 그래.”
내 말에 단호하게 딱 잘라 대답하는 김아진. 그녀도 자신의 말투에 살짝 놀랐는지, 멋쩍게 볼을 긁으며 말했다.
“물론 유전자 편집 기술 관련해서 여기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 깨달았달까.”
“뭐를요?”
“연구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거.”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현실을 맛 본 듯한 쓴 미소였다.
“만약 CCTV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건···”
“게다가 너랑 데이브가 없었다면?”
김아진의 말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안그래도 에단 교수는 김아진을 탐탁치않아 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연구윤리위원회에 있던 교수들도, 국제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봤던 사람들도.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에단 그새끼가 말한 것처럼 나도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긴 하잖아.”
“그게 뭐 어때서요. 연구한다고 꼭 거기서 평생 살아야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다. 하여튼 난 더는 여기 안 있으려고.”
창밖을 바라봤다. 카페 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계절은 순식간에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아진은 이번학기에 바로 졸업 신청을 냈고, 급하게 된 감이 있지만 승인이 났다.
“에단 그새끼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날이 있네. 졸업 안 시켜준다고 협박당했다는 걸 참작해줬나봐.”
“졸업 논문 내야 졸업 되는거 아니었어요?”
“전에 써뒀던 거 있어. 그거 냈더니 교수님들한테 한방에 통과했지롱.”
“우와···”
김아진이 자랑스럽게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했고, 나는 영혼을 담아 박수를 쳤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한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아진이 기지개를 쭉 펴며 하품했다.
“그나저나 한국에 어디 좋은 지도교수 없나? 그래도 교수님들한테 미리 컨택한 후에 한국 들어가고 싶은데.”
“좋은 지도교수의 기준이 뭔데요?”
“엄···적어도 연구 실적 가로채진 않는 사람?”
김아진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그녀를 바라봤다.
“음···좋은 지도 교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연구 실적은 뺏길 걱정은 안해도 되는 사람이 있긴 해요.”
“그럼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할래. 연구할 때 옆에서 간섭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또 막 학생 무시하지 않는 사람! 또 거기다가···”
그동안 에단에게 당했던 게 많은 까닭일까, 그녀는 서러웠던 걸 풀듯이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김아진이 생각하는 ‘좋은’ 지도 교수는 다음과 같았다.
학생에게 관심은 있으나 또 너무 관심이 있지는 않고,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좀 명성도 있는 사람이어야하며,
좀 재미있고 자신과 티키타카가 잘 통하는, 그런 인성 좋은 지도 교수여야 했다.
“으으으음···.”
“하긴 이런 사람이 있으면 지도 교수일리가 없지. 그런 사람은 유니콘이야, 유니콘.”
“한 명 비슷한 사람이 있긴 한데···”
“진짜?!”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김아진.
나는 한동안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야기했다.
“김성진 교수님이라고 있는데요···”
“김성진 교수님? 알아! 네이처랑 사이언스지에도 논문 여러번 올리셨던 분이잖아.”
“그 분이 마침 이번에 치매 관련해서 연구를 하고 계시거든요···?”
“진짜? 진짜로? 너랑 아는 사이야? 어떤 분이신데?”
김아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김아진은 김성진 연구실에 들어가는 건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몇 년 후였다.
그녀가 박사 과정을 밟을 때 한국으로 돌연 귀국한거였으니까.
‘지금 만나게 하는 건 너무 이르려나?’
박사 과정의 김아진과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김아진.
둘 사이에는 분명히 지식 수준의 차이가 있을 터였다.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해 김성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학생 한명이 내 연구실에 오고 싶어한다고.]“네.”
[어떤 학생이니.]갑자기 건 전화인데도 불구하고 김성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국제 알츠하이머 학회가 끝나고 곧바로 한국 일정이 있는탓에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가는 순간까지도 “그 교수와 관련해서 계속 알아볼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렴.” 이라고 응원해주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뇌인지영상 부분을 비롯해 뇌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이번에 아밀로잽 임상 실험과 더불어 그의 인지도는 더욱 올라간 상태였다.
‘…이정도면 좋은 지도 교수 맞겠지?’
나는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가, 김아진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이번에 같이 연구했던 누나인데요. 같은 하버드대생이고 분자세포생물학이에요. 주 연구 분야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고요.”
“제가 볼 때요?”
[그래. 사실 누구 소개로 학생을 받지 말자는 주의라···]아차, 김성진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니 그럴만도 했다. 이런 인맥을 통해 들어오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는 그였다.
나는 김아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음. 아마 직접 보시는게 나을거에요.”
[응?]“제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서요.”
아마 알아서 잘 할거에요, 라는 내 말에 김성진이 보기 드문 목소리로 웃었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뭐래? 뭐라셔? 받아주신대?”
“엄···그럴걸요?”
“뭐야. 대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데? 확실한거야?”
“누나에 대해선 아무말도 안했어요.”
내 말에 김아진이 인상을 팍 썼다.
“아니, 도와주는 거 아니었어? 같이 연구도 한 사이인데 이러기야?”
“제가 누구 막 인맥으로 뭐 하고 그런 걸 안 좋아하는지라.”
내 말에 김아진이 팍 식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투덜거리며 “하여간 꽉 막혔다니까.” 라고 이야기 하는 김아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생에 난 그녀를 인정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녀가 내는 의견은 늘 묵살했고, 함께 연구하자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다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누나. 같이 연구해서 즐거웠어요.”
“이럴때만 누나라고 하지. 됐거든?”
“다음에 꼭 같이 또 연구해요.”
나는 웃으며 김아진을 향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잘 지내. 나중에 한국 들어오면 꼭 연락하고!”
“네. 한국에 가서도 유전자 편집 기술 관련해서 연구하게 되면 꼭 알려주고요.”
“당연하지!”
김아진은 하버드대 졸업장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만덕아! 드디어 CIRM 연구실이 다 복구되었다고 하네!”
“! 그럼 당장 연구 시작해도 돼요?”
“내일 당장 짐싸서 캘리포니아로 와라. 아니, 오늘 밤 비행기로 바로 와라!”
신이 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박성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