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2화(192/221)
192. 가능성 (1)
192. 가능성 (1)
CIRM과 같이 국가기관급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생명과학 쪽 연구원이라면 탐낼만한 것이었다.
지원받는 금액이나 연구 환경, 각 자리에서 날고 기는 천재들이 한데 모인 곳이기도 했으니까.
밤 비행기로 도착한 캘리포니아. 다행히 내 연락을 받은 케빈이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하버드는 잘 갔다왔어? 모처럼 휴가인데 푹 쉬었고?”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이야기하는 케빈.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푹 쉬었냐라···글쎄 오히려 연구할 때 못지 않게 에너지를 쓴 것 같다. 단순히 유전자 분석하는데 에너지를 쓴 거면 차라리 좋겠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으니까.
케빈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있었던 일들을 풀어냈다.
치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에 케빈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건가?”
“음···아마 당장은 힘들겠지만 일단 가능성은 보인거지.”
“하긴 유전자 치료가 제대로 진행된 적은 거의 없긴 하니까.”
줄기세포 치료제와 달리 유전자 치료는 미래에서도 다소 생소한 개념이긴 했다.
“그런데 유전자를 일일이 다 분석한거야? 샘플간에 연관성 찾는 거만 해도 일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케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사람 말고 기계한테 넣고 돌렸지.”
“기계?”
“이번에 새로 만든 기계가 있거든. 슈퍼진단키트라고.”
“하하하! 이름이 그게 뭐야, 설마 그게 진짜 이름은 아니지?”
처음에는 이름을 듣고 웃음을 터뜨린 케빈이었지만, 이내 이어지는 내 설명에 점점 웃음기를 잃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넋을 놓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 유전자끼리 분석이 가능하다고? 그게 가능해?”
“응.”
“와우, 진짜 말도 안되는 괴물이 탄생했네.”
두려운 건지, 흥분되는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케빈.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능숙하게 도로를 주행했다.
캄캄한 어둠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바라봤다.
밤이라 그런지 사람은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살짝 창문을 내리자 열린 틈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유전자계에도 엄청난 바람이 불겠네.”
“그렇겠지?”
“정말이지···. 갑자기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네가 생물학을 전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케빈이 웃으며 말했다.
“왜?”
“네가 연구에 뛰어든 뒤로 새로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것도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정도로.”
“흠. 그정도인가.”
“하여간 본인만 모르지 또.”
핀잔 주듯 이야기하는 케빈.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계속해서 느꼈다.
과거로 회귀한 이후로 연구에만 매진했다.
처음 시작은 아밀로잽,
그리고 줄기세포로 베니를 치료했다가,
이제는 사람까지 치료해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단 하나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물어보기 좀 그렇긴 한데.”
“응?”
“치매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뭐야?”
“음···.”
내가 살짝 미간을 좁히자, 케빈이 이어서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줄기세포 연구하는 사람들 중엔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오는 사람들도 꽤 있거든. 기존의 약으로 치료되는 거라면 굳이 줄기세포까지 건드릴 필요는 없을테니까.”
희귀병, 난치병, 혹은 치료하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거나 치료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치료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이유의 사람들이 줄기세포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케빈의 경우엔 줄기세포 자체에 흥미를 느껴 이쪽으로 뛰어든 케이스였지만···.
각자 다른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냥 특별한 건 아니야. 어릴적에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치매셨거든.”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오래 전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아마 잊지 못할 그 날을.
“말도안되게 더운 날이었어. 폭염주의보에서 경보 수준까지 올라갈 정도였거든.”
더운 여름이었고, 폭염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집에 에어컨도, 그 흔한 선풍기도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쥐죽은 듯이 마루 바닥에 붙어있는 상태로 밖의 매미 소리만 듣고 있었다.
‘할아버지. 너무 더워요. 이러다가 녹을 것 같아요.’
‘니, 그리 덥나?’
‘네에. 죽을 것 같아요.’
일부러 살짝 과장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꾀병을 부릴때처럼 죽어가는 소리도 간간히 냈다.
최소한으로 움직여야 땀이 안났기에 그저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바닥에 착 붙어있으니 할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할아버지는 한번 밖을 바라보시더니 흐음, 하고 작게 소리내시며 문을 가리켰다.
‘만덕아. 할애비가 아이스께끼 사주마.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가 아니고 아이스크림이에요.’
‘그게 그거다 욘석아.’
콩, 하고 머리를 쥐어박더니 이내 다정하게 머리를 매만져주셨다. 더운 공기 가운데에서도 그 손길이 싫지 않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머리를 매만지시던 할아버지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애비가 아이스크림 사오마.’
‘에. 안돼요. 엄마가 할아버지 못 나가게 말리랬는데.’
그 당시 할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왜냐면 대화를 할 때 이상한 점이 없었거든. 그냥 평소랑 똑같이 생활하셨어.”
“치매 경증일때는 큰 차이점이 안보이니까.”
“응. 근데 그때는 그걸 몰랐어.”
평소랑 똑같았다. 물론 가끔씩 말을 하다가 멈추시거나, 귀가 아플정도로 TV 소리를 크게 틀어둘 때가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나는 정상이다. 아픈 곳 하나 없어.’
‘안돼요. 엄마가 절대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떽! 괜찮대도!’
할아버지는 못 나가게 말리는 나를 바라보셨다. 짐짓 무서운 얼굴로 이야기하셨지만, 나도 한 고집 하는 성격. 계속해서 말리는 나를 보더니 이내 할아버지는 방법을 바꾸셨다.
‘그럼 아이스께끼 못 먹는데도 괜찮다는거냐?’
‘어···.’
‘올때 까까도 사오마.’
‘까까···가 아니고 과자에요, 할아버지.’
귀여움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손자였지만, 할아버지는 웃으며 계속 설득했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그다음에는 과자, 그리고 문구사에 파는 장난감까지.
초등학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유혹이었고, 결국 그 유혹에 져버린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총! 총 사다주세요! 비비탄 총!’
‘그려, 그려. 비비총도 사오마.’
‘비비총이 아니고 비비탄 총이요!’
나는 사야하는 품목을 메모지에 적어 할아버지 손에 쥐어드렸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첫 외출을 하셨다. 사실 할아버지가 혼자 어디 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
‘엄마가 절대 할아버지 혼자 못 나가게 말리라고 했잖니!’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오지 산골인 우리 동네는 저녁만 되면 길가엔 어둠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요? 아뇨, 그런 분 오신 적 없으신데요.’
‘어, 그 할아버지 아까 저쪽에 지나가시던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물었다.
누구는 오른쪽으로 갔다 했고,
누구는 왼쪽으로 갔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마주쳤는데, 어디 계셨는지 알아?”
“…글쎄. 어디에 계셨는데?”
“버스 정류장.”
아직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한밤 중. 짙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밤. 버스 정류장의 등불만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할아버지. 왜 여기 계세요.’
‘…’
‘…버스 이제 안 다닌단 말이에요.’
할아버지의 손에는 검은색 비닐 봉지를 쥐고 계셨다.
그 안에는 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들어있었다.
‘…이거 녹아서 못 먹어요.’
‘…’
할아버지는 한참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냥 초점없는 눈으로 바닥을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더니 말없이 몸을 돌려 뭔가를 내게 건넸다.
상자였다. 장난감 총 사진이 그려져있는 비비탄 총.
‘아이고, 아버님! 제가 밖에 나가면 안된다고 몇번을 말씀드렸어요. 안된다고 했잖아요, 집에 영영 못 돌아오실수도 있으시다고!’
‘…가자.’
‘진짜 제가 아버님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할아버지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저 깊은, 끝을 알 수 없어 비어있는 듯한 눈동자만이 이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슬픈 이야기네.”
“슬프다기보단···. 그냥 그때 생각했던 것 같아.”
이게 치매구나. 라고.
“아마 그게 내가 겪었던 제일 무서웠던 순간일거야.”
기억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기억 하나를 잃어버린다는게 아니란 걸 알게 된 날이니까.
“나중에 여쭤봤거든. 왜 버스 정류장에 앉아계셨냐고.”
“그랬더니 뭐라셔?”
“그냥. 여기에 있으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셨대.”
뇌의 해마가 손상될 경우,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게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예전의 느낌과 기억에 의존하여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아마도 예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가 데리러 온 기억이 남아계셨던 게 아닐까. 그래서 거기에 앉아계셨던거지.”
“뭐···일리 있는 말이네.”
케빈은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어두운 창밖을 바라봤다.
‘할아버지, 제 이름 뭐에요?’
‘…’
‘제 이름 까먹으신거에요?’
‘…욘석아, 얼른 가자.’
집에 돌아가는 길. 재촉하듯 할아버지에게 여러번 이름을 물었고, 오랜 시간 끝에 “만덕이, 김만덕.” 이라는 답을 받았지만…
‘그때 버스정류장에서 할아버지는 누굴 기다리고 계셨던걸까나.’
그날 이후로 치매 증상이 급격하게 심해진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직전까지도 내가 아닌 아버지 이름만 계속 부르셨다.
“그냥 지금도 가끔씩 생각해. 그때 버스정류장에서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아님 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셨던 걸까. 하고 말이야.”
“뭐···. 그래도 그때면 널 기다리고 계셨던 게 아닐까?”
케빈의 말에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뭐가 됐든 그날 이후로 내 목표는 이 지긋지긋한 병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거야. 그거뿐이야.”
그렇게 우리는 어두운 도로 위를 한참이나 계속해서 달려갔다.
*
“반갑습니다. 책임 연구원(PI)을 맡게된 데이비드 밀러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만덕입니다.”
그날 밤, 케빈의 집에 하룻밤을 묵고 난 뒤 나는 곧바로 CIRM으로 향했다. 연구소에 가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다름 아닌 책임 연구원이었다.
PI(Principle investigator). 연구를 이끌어가는 총 책임자.
50대 초반정도 되었을까, 머리 군데군데에 흰머리가 살짝 보이는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MIT에서 포스트 닥터, 포닥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이번에 CIRM에서 PI제안을 받고 연구소로 옮겨왔습니다.”
화려한 경력.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밀러였다.
언뜻 신경 과학과 관련된 논문에서 그의 이름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계에서 그의 입지와 명성은 꽤 높은 편이었다.
밀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자면···저는 원칙주의자입니다. 한마디로 꽤 엄격하다는 뜻이지요.”
“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그가 설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꼬투리를 잡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고 경계하는 건···눈속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고자 좀 질문이 많은 편입니다.”
“눈속임이요?”
“신뢰도가 낮은 데이터를 묶어 뭉뚱그려 설명을 하거나, 일부러 데이터를 과장해서 그래프를 그려놓는다거나 하는 거 말입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충분히 경계할 만한 내용들이다. 가끔은 보고서 쓰는거에 혈안이 되어서 별로 유의미하지 않은 데이터도 엄청난 것처럼 뻥튀기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전생에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겪어왔기에···나 역시도 그런 족속은 사양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시다시피 존슨앤존슨을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보조금 지원을 나선 프로젝트입니다.”
“아···”
“그리고 그 이유는 김만덕 연구원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요.”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나 때문이겠지. 존슨앤존슨 CEO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심 끝에 말을 꺼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데이터를 기반해 결론을 내는 걸 선호합니다. 과장된 말이나 허울좋은 말은 오히려 경계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니 부디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밀러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줄기세포로 뇌세포를 복구한다는 것.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