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3화(193/221)
193. 가능성 (2)
193. 가능성(2)
가능성이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확신하시는군요?”
“네.”
짧지만 단호한 내 말에 밀러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내 모습을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듯 했다.
“이번 연구가 쉽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네.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쉽다고는 안했습니다.”
“흐음···”
밀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런 말을 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와는 다를겁니다. 시간도 오래걸릴거고, 또 예상치 못한 문제점도 맞닥뜨리게 되겠죠.”
“책임 연구원님께서는 제게 듣고 싶은 말이 있으신건가요?”
“…”
정곡이 찔린 듯, 그가 입을 닫았다. 마른 입술이 터져있는 걸 봐선 최근 고민이 많은 듯 했다.
그가 스스로를 ‘원칙주의자’라고 밝혔던 만큼, 그의 성격은 꼼꼼하고 기준대로 행할 터.
그가 이런식으로 빙빙 돌려서 말한다는 건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많은 연구들이 지원금을 받고 시작을 했다가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흔히 있는 일이죠.”
“그리고 그 시간과 노력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고요.”
밀러가 자신의 손을 연신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긴장한 낯빛이 역력했다.
“제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으로 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 프로젝트는 김만덕 연구원님의 의견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존슨앤존슨의 빵빵한 지원금과
줄기세포로 하반신 마비인 제임스를 치료했다는 세간의 명성.
그 두 개가 합쳐져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모든 연구가 물거품이 될까봐 걱정하는 거겠지.’
간혹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게 된 사람들 중에는 필요 이상으로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십 억, 아니 수백억이 걸린 프로젝트. 거기다 사람들의 관심까지 쏠렸다면···
“저는 이 연구가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시간과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올곧은 눈으로 책임 연구원 밀러를 바라봤다.
“절대 이 연구를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부터, 아니 그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과 수단도 가리지 않을거고요.”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한다는 것. 이미 치매에 걸린 환자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아밀로잽으로 단백질을 배출해내더라도,
아무리 유전자 편집 기술로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다해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었다.
뇌가 손상된 상태로, 기억을 영영 잃어버린 상태로 반영구적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연구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나봅니다.”
내 말을 들은 밀러가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김만덕 연구원님.”
“…저도 잘부탁드립니다. 책임 연구원님.”
그렇게 밀러와의 대화를 끝낸 뒤,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
“어이, 김만덕이 돌아왔구나.”
“…그 말투는 뭐에요.”
“요즘 유행하는 말투라던데?”
“그런거 따라쓰지 마요. 아저씨같아요.”
내 말에 박성민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축 처졌다. 그때 옆에 있던 케빈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책임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표정이 그렇게 비장해?”
“내가?”
“얼른 거울 봐봐. 누가보면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겠는데.”
케빈의 말에 따라 연구실 한 쪽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아까의 긴장감이 아직도 표정에 서려있었다.
나는 애써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그걸 본 케빈이 못본 꼴 봤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심각한 일은 아니고 그냥 짧게 소개한 게 다인데.”
“그래? 난 또 한소리 들었나 했지. 은근 유명한 사람이거든. 팀원들 갈구는 걸로.”
“에, 그렇게 안보이던데.”
케빈의 말에 박성민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까 상처받았던 표정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듯 했다.
“그럼 무슨 말 했는데?”
“어···그냥 이 연구에 가능성이 있어보이냐고 묻던데요?”
가능성. 밀러의 앞에선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사실 이 부분과 관련해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연구는 어디까지나 미지의 상태를 탐색하는거니까. 이미 답이 나와있는 걸 알아내는 건 연구라고 하지 않았다.
“가능성을 여쭤보셨다고?”
“네. 왜요?”
“헐. 그 인간이?”
“아니···내가 그 양반을 좀 아는데, 그런 거 물어보는 인간이 아니거든.”
박성민과 케빈은 밀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인 듯 했다. 박성민은 미간을 구기며 좋지 않은 일을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예전에 그 양반이랑 프로젝트 하나를 같이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솔직히 독불장군같은 면이 있어서 팀원들이 꽤나 고생했지.”
“독불장군이요? 어쩐지 자기 입으로 원칙주의자라고 하더라.”
“원칙주의자는 무슨, 자기 기준에 안맞으면 다 커트하는데 그게 원칙이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성민.
이윽고 그 이야기를 들은 케빈도 밀러와 함께 연구를 하며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냈고, 박성민도 이에 질세라 에피소드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여튼 엄청 깐깐한 양반이니까 각오하고 있는게 좋을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그걸 알고도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신거네요? 그래도 책임 연구원님이 연구는 잘 하셨나봐요.”
“으이그, 내가 저 양반 때문에 이 연구에 참여한 것 같냐?”
엥. 알 수 없는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성민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당연히 네가 참가한다니까 나도 하겠다고 한거지.”
“저요? 저 때문이라고요?”
“그래. 아마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나랑 비슷한 마음일 걸?”
“아니 제가 뭐라고···”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하자 박성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 줄기세포로 다리도 고친 놈이 이제 머리까지 고친다고 하니까 다들 참여해보고 싶은게 아닐까? 물론 나는 제자를 옆에서 도와주기 위한 참 스승의 모습으로서—“
”에이. 제가 뭐라고. 다들 줄기세포에 관심이 있어서 온거겠지요.“
”…만덕아. 너는 지금 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
내 말에 박성민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안될 것 같은 불가능의 영역조차도 네가 참여한다면 ‘혹시?’라며 갸웃하게 만드는 존재야. 그만큼 사람들에게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제가 뭘 해낸 게 없는데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제발, 그냥 겸손이 지나친 거라고 해줘.”
그러나 박성민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자 박성민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방금 밀러 그 양반이 너한테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지? 밀러 그 양반도 이 연구가 막막한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이렇게 물어봐서 확신을 얻고 싶은 거고.”
“…”
“그리고 내가 장담컨대, 분명 너라면 그 질문에 ‘네’라고 답했을거다. 맞지?”
박성민이 웃으며 말했다.
정곡이 찔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보자고, 인류 최초의 도전이나 다름없는 이 실험. 아마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기억될테니까.”
“그건 좀 부담인···”
“어쨌든! 이제 넌 무조건 성공해야 된다는 거다. 막말로 이렇게 똥 폼은 다 잡아놨는데 실패하면 엄청 부끄러워지니까.”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니 본인도 좀 민망한 듯, 박성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경험담인가요?” 라고 이야기했다가, 한동안 박성민에게 훈계와 잔소리 그 사이의 무언가를 한동안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하는 연구가 첫 발을 내딛었다.
*
“뇌세포는 대체 정체가 뭘까···”
“뇌세포는 왜 뇌세포일까···”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연구를 시작한지, 벌써 석달째.
나름 기합을 넣고 시작한 것과 다르게 연구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운동 세포처럼 분화시키는 것도 어렵고···또 설령 신경 세포로 분화시켰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읺아 사멸해버려.“
”그리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다른 신경 세포들이랑 시냅스를 형성하지 못하고.“
하아, 케빈과 나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연구는 어려웠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어이, 원래 연구란 이런 거잖아? 실험한다고 마음에 드는 결과가 쏙쏙나올리가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만···뭔가 조급해지네요.”
”됐어. 연구에서 조급함이야말로 쥐약인 거 몰라? 최대한 여유를 갖고, 릴렉스 하면서 하라고.“
박성민의 말에 케빈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에 제임스 실험이 말도 안되게 운이 좋았던거였지···이번에도 뭔가 뚝딱!하고 해결 될 줄 알았는데.“
”원래 이런 쪽 연구는 기본 2년은 잡고 가야한다고. 아니지, 2년도 빨라, 최소 5년!“
실제로 임상 실험까지 생각하면 5년은 훌쩍 넘어가는게 현실이라지만···어째선지 힘이 쭉 빠지는 듯 했다.
박성민과 케빈은 그 이후로도 힘 없이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어. 벌써 가게? 선생님도 지금 가시게요?”
“응. 오늘은 뭔가 연구할 기분이 아니네.”
“그리고 지금 시계를 봐라. 저녁 9시인데 집에 가도 합법이지 않겠니?”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거의 이곳에 살다시피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더 연구할 마음이 안드는 듯 했다.
박성민은 가방을 챙긴 후,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이번에 캘리포니아 대학측에서 기숙사 방도 줬다며.”
“아···근데 가본적은 없어요.”
“너 설마 여기서 잔 건 아니지?”
“아뇨, 전혀요.“
나는 양 손을 들어보이며 부정했다.
물론 연구실에서 깜빡 존 적은 있지만 잔 적은 없다. 수면 패턴의 한 주기를 1시간 30분으로 보고 있으니, 그 이하로 잠든 건 잔 거로 치면 안되는 것 아닐까?
내가 하하, 웃으며 어색하게 부정하자 박성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내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연구도 좋지만, 몸도 좀 챙겨가면서 해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죽으면 안되잖아.“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여튼 조금만 더 정리하다 가라.“
그렇게 박성민과 케빈이 떠난 후, 나는 빈 연구실에 홀로 앉아있었다.
미리 프린트해놓은 논문들을 하나씩 들춰봤다. 사실 이미 본 것들이었지만 놓친게 있나 싶어 몇번이고 다시 보고 있었다.
‘신경 형성 인자로 신경세포가 원하는 유형으로 발달할 수 있게 조절해야하는데···’
신경 형성 인자.
한마디로 신경세포가 올바르게 분화 및 상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단백질.
그 중에서도 이번 연구에서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들로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와 신경성장인자(NGF)였다.
사락, 사락 소리를 내며 논문을 다시 읽어갔다. 꼼꼼히 읽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나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 밤이 가까워지며 새벽 특유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이 세상에 나와 이 연구만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
’살다보면 그런 연구를 만나게 됩니다. 이 연구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사활을 걸고 매달리게 되는 연구 말이지요.‘
오래 전, 노먼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한가로운 연구실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음···엄청 힘들겠네요.’
‘후후, 글쎄요. 힘들 것 같나요? 그런데 막상 그런 연구를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다들 행복해보이더군요.’
‘에···’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노먼 교수는 그저 웃으며 ‘만덕 학생도 조만간 그런 연구를 만나길 바랍니다.’
운명의 연구 말입니다.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결국 연구에서 지면, 그러니까 그 연구를 못 풀어내면 전혀 안 행복할 것 같은데요?’
‘싸우기도 전에 질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아뇨, 제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결국 그 대화에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고, 노먼 교수는 별다른 말 없이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심장이 벅차오른다.
마음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재미있다.
이 세상에 나와 이 연구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결국 풀어낼 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까지.
노트를 펼쳤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한 줄이라도, 하나라도 더 머리를 쥐어짜내서,
숨어져있는 무언가를 발견해내겠다는 마음으로.
‘뭘 놓치고 있는거지?’
‘왜 제임스때와 다르게 신경세포로 분화가 안되는 건지 알아보고···’
‘시냅스 형성을 원활하게 하려면···
사각사각, 노트위로 필기하는 소리가 연구실에 크게 울려퍼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지이잉-하고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순간적으로 집중이 탁 깨졌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뜬 이름에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최한별]“어라.“
핸드폰에 뜬 이름은 최한별이었다. 지금쯤 하버드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녀석인데···
지금은 새벽 3시.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걸 애가 아니다. 새벽에 걸 애는 더더욱 아니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아···그게, 어.]뭔가 많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무슨 일 있어?”
내 물음에 최한별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몇 분간의 침묵.
최한별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위독하시대.]아주 많이. 많이 위독하시대. 라고 말하는 최한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