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4화(194/221)
194. 포기 (1)
194. 포기 (1)
최한별의 할아버지. 사실 그와 이렇다 할 접점은 없었다. 끽해야 아밀로잽 임상 환자 중 한 명이라는 것과, 친구의 할아버지라는 점. 그 외에 나와 큰 연관은 없었지만···
‘만덕아. 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어.’
‘…’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자, 인사.’
어릴 적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던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불현듯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나는 전화기 너머 여전히 떨고 있는 듯한 최한별을 향해 말을 걸었다.
“괜찮아? 정확히 상태가 어떠신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최한별의 목소리가 떨렸다.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에서 왜 하필 나한테 전화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무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이전에 최한별이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들을 미루어봤을 때, 그녀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는 꽤나 각별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꽤 오래전 최한별의 할아버지를 길가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핸드폰에 걸린 강아지 키링을 소중하게 만지고 있던 모습. 할아버지에게도 손녀인 최한별은 큰 의미였을 터.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누군가를 위로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내게 이런 상황은 그 어떤 문제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최한별이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미안, 갑자기 전화 걸어서 놀랐지. 생각해보니까 지금쯤이면 자고 있었을 시간일텐데.]“아냐, 마침 연구하던 중이었어서 안 자고 있었어.”
[아, 연구···]연구란 말이 나오자 최한별이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전화기 너머로도 심란한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최한별이 조심스레 물었다.
[있잖아.] [치매라는 거··· 정말 치료될 수 있는걸까?]질문 끝 물음표에 울음이 섞여있었다. 아마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최한별은 넘쳐오르려는 감정을 애써 누르려는 듯, 말 중간 중간에 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 치료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안됐잖아. 이번 임상 실험도···이번에 만큼은 성공할 줄 알았는데.]실제로 김성진으로부터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아밀로잽에도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들 중 고령의 환자 2명에게서 뇌출혈이 발생했다. 아무래도 혈관 자체가 약해진 상태이다보니 배출되는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한 거로 추정하고 있고.’
그리고 하필 그 2명 중 한 명이 최한별의 할아버지였다.
···물론 이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고령의 환자의 경우엔 이미 뇌 속에 베타-아밀로이드가 다량 축적된 상태였고, 아무리 양을 조절해가면 투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출되는 과정에서 뇌출혈이 발생했다.
‘다행히 한 명은 빠르게 조치를 취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다른 환자는 나이도 나이였던 만큼 더이상 아밀로잽 투약은 중단되었다.’
아밀로잽이 효과를 보인 건 경증 알츠하이머 환자들이었다. 베타-아밀로이드 축적량 자체가 많지 않은 환자들은 높은 인지 능력 개선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어느정도 진행된 환자들에게는 다량의 아밀로잽을 투약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령의 환자들에게 아밀로잽 투약은 중단되었다.
[이제는 포기하는게 맞는 것 같아. 치매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야.]포기한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 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치매.
사랑했던 사람을 빼앗아가는 병.
함께했던 추억들마저 다 뺏어가버리는 잔인한 병이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평균 수명이 짧다는 건 알고 있었어.]“응.”
[하지만···난 이미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오래전에.]날 못 알아보시는 날부터 말이야, 라고 말하는 최한별.
기대했던 게 컸던 만큼 실망감도 컸을 터.
혹시, 어쩌면. 하고 치매가 치료되길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안내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위로를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고 해도 닿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들어주는 건 그나마 내가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하루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집에 오셨어. 한번도 그런 적 없으셨거든. 그리고 계속 우셨어.]“응. 그랬구나.”
[어머니도 힘들어하셔. 최근까지 병원에 계속 가셨는데 이제는 더 못 가겠다고 하셨나봐. 너무 힘드시대.]“다들 힘들었겠다.”
[응. 그래서, 다들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런데 나까지 티내면 안되니까.]별다른 말 없이 들어주자, 이윽고 최한별은 천천히 있었던 일을 꺼냈다.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는 할아버지 병문안을 못가게 막은 일, 할아버지를 집에 데리고 오자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반대했다가 집안 전체가 크게 싸웠던 일.
과거의 나는 전혀 몰랐었던 최한별의 이야기였다. 아무런 문제없이 마냥 행복하게만 살아왔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제일 끔찍한 게 뭔 줄 알아?]“뭔데?”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순간적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한 나.]“…”
[나 진짜 못됐지. 겉으로는 착한 사람인 척 하면서 이런 생각 했다는 거.]그녀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깃들어있었다. 한번도 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던 최한별이 이렇게 자기 속마음을 그대로 말한다는 건···
‘그만큼 정신적으로 무너졌다는 소리겠지.’
치매 환자의 가족들 중에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된 소통이 안되는 것에서 오는 절망감,
앞으로 치매 환자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
이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 대상이 소중하면 소중할 수록, 그 고통은 배가 된다.
“어릴적에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계속 잊어버리신 적이 있었어.”
[…]“계속 ‘저 만덕이에요.’ 라고 말하는데도 한번을 안 불러주시는거야. 계속 아버지 이름만 부르고.”
덤덤한 목소리로 오래 전 일을 꺼냈다. 최한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난 뒤, 할아버지는 더이상 내 이름을 부르시지 않았다. 언제나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성호야, 성호야.’
‘저 성호 아니라니까요?’
‘성호야, 물, 물 좀 가져오너라.’
할아버지는 방에 누운 채로 계속 아버지 이름을 불렀었다.
“그래서 일부러 안 갔어. 내 이름을 불러주실 때까지 계속 기다렸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어? 불러주셨어?]“아니. 그리고 그 다음 날에 돌아가셨어.”
아. 최한별이 짧게 말했고, 이후로 침묵했다.
“그 이후로 계속 후회했어. 매일 밤마다 ‘그냥 아버지 이름으로 부를 때 찾아갈 걸.’ 하고 울면서 생각했지.”
[미안, 괜히 내가 말을 꺼내서···]“뭐…이미 다 지나간 일인 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고두고 할아버지의 죽음이 나와 관련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순간에 들었던 마음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만덕아. 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어.’
‘…’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자, 인사.’
장례식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화장되었다. 할아버지에게 가족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었기에 따로 장례 절차 없이 바로 화장 후 유골을 받아 납골당에 두었다.
납골당, 할아버지의 위패 앞에서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던가.
‘할아버지 어디로 가셨어요?’
‘…아빠 있는 곳으로 가셨어. 아마 행복하실거야.’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떤 말을 했던가.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었는데, 물 달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이제 이름 헷갈리실 일은 없겠네요, 라고 말했어.”
[…]“이렇게 보면 나도 참 대단하지?”
딱히 최한별을 위로하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때의 난 어렸고, 할아버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에 대해 서운해하는 어린 애였으니까.
그냥 더는 아버지랑 나를 착각할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최한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에 나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그래도 심란한 애 앞에서 괜히 더 심란하게 만들었네.’
역시 위로하는 건 나랑 안 맞다. 애초에 새벽이라 그런지 마음이 더 뒤숭숭해지는 느낌이었다.
[고마워.]“어?”
[그냥 다. 예전에 할아버지 도로에 뛰어들 뻔 한 거 구해준 것도 고맙고, 아버지 설득해서 치매 치료 연구 다시 시작하게끔 만들어준 것도 고마워. 그리고 아밀로잽 만들어준 것도 고맙고.]“어···딱히 고마워 할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치매 치료 연구 다시 시작하게 된 건 나 때문도 아닌 걸.”
갑자기 이어지는 감사 인사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하자 최한별이 말을 이었다.
[아냐. 너때문에 다시 시작하신 거 맞아.]“에이, 내가 뭐라고. 그리고 너희 아버지 원래 치매 연구 하시던 분이셨잖아. 잠깐 중단하고 계셨을 뿐이야.”
[흐음···그럼 나중에 직접 물어봐. 왜 다시 치매 연구 시작하시게 되었는지 말이야.]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대답한 최한별. 그 뒤로 기운을 차렸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차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아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구하는데 내가 너무 방해한 거 같아서 미안한 걸.]“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조만간 또 전화할게.]처음과 다르게 최한별의 목소리는 많이 밝아져있었다. 할아버지 병문안도 갔다오겠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굳은 결심이 담겨있었다.
[오늘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갔다올게. 가서 할아버지 뵙고 올거야. 물론 날 기억하시진 못하시겠지만.]“응. 조심히 잘 갔다와.”
[그리고 아까 했던 말 정정할게.]“응?”
[치매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는 거 말이야.]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치매는 치료될 수 없는 병이라고 포기하던 그녀가 어째서인지 말을 번복하고 있었다.
[너라면 꼭 치료해낼 수 있을거야.]지금 하고 있는 연구, 응원할게.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나는 한동안 통화가 끊어진 휴대전화를 빤히 쳐다봤다.
···치매.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가는 끔찍한 병.
’살다보면 그런 연구를 만나게 됩니다. 이 연구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사활을 걸고 매달리게 되는 연구 말이지요.‘
‘싸우기도 전에 질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노먼 교수가 했던 말이 귓가에 웅웅 울렸다.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밤을 샌 상황이라 피곤해야 정상인데, 온 몸에 활기가 돈다.
뇌가 맑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더이상은 지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창밖에선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
“만덕아. 컨디션 안 좋으면 잠깐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 오늘 회의는 내가 대신 발표할게.”
“괜찮아요, 선생님.”
“…너 잠은 자면서 연구하고 있는거지?”
“그럼요.”
오늘은 연구와 관련해 전체 회의가 있는 날. 대규모 프로젝트인만큼 각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이 전부 다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내 대답이 영 못미더웠던 걸까, 박성민이 수상쩍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몇 시간 잤는데?”
“30분이요.”
“뭐?”
내 말에 미간을 팍 좁히는 박성민. 그리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분명 예전에 ‘잠 안자고 공부하는 건 효율 제로라고요. 잠을 자야 뇌가 더 활성되는걸요.’ 라며 수면 패턴을 꼭 지키지 않았니?”
“괜찮아요. 그래도 규칙적으로 30분씩 자고 있으니까요.”
“규칙적이어도 절대적인 수면량은 지켜줘야지! 너 지금 하는 모습이 꼭 브레이크 없는 기차가 폭주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다.”
박성민이 화를 내듯 말했지만, 나는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케빈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이러다가 너 진짜 쓰러진다고.”
“괜찮아. 몸이 못 버틸쯤엔 한번 씩 몰아서 자고 있어.”
“아니! 그렇게 하면 얼마 못 간다니까? 잘 아는 녀석이 왜 이래?”
“왜일 것 같아?”
“…?”
살짝 광기가 느껴지는 내 말에 박성민과 케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회의실 안으로 책임 연구원인 데이비드 밀러 박사가 걸어들어왔다. 이어서 각 연구원들이 모인 걸 확인한 그는 큼큼 거리며 마이크를 들었다.
“자, 다들 모인 것 같으니 바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줄기 세포 분화에 대한 진행 상황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네. 우선 다들 미리 나눠드린 페이퍼를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성민이 능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 상황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실험은 모조리 실패였으니까.
물론 줄기세포와 관련된 실험이 단기간에 될 리가 없다. 길게는 수 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연구였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천재라고 하길래 좀 기대했는데···”
“아무리 천재여도 뇌까지 건들수는 없는거겠죠.”
“사실 이전의 실험들이 말도 안되게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요?”
그 내용이 여실히 담겨있는 종이를 본 사람들이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던졌다.
“음,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는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책임 연구원님.”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박성민이 미간을 좁히며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이래?’ 다급하게 입모양으로 내게 말을 거는 박성민.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최대한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 밀러 박사를 바라봤다.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옆에 있던 케빈도 처음 듣는다는 표정.
그동안 밤을 새며 준비했던 내용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어마무시한 종이더미를 받아든 사람들이 긴장된 낯빛으로 종이를 뒤적거렸다.
“대체 그 방법이 뭔가요?”
“간단합니다.”
그의 물음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포기해야합니다.”
종이를 읽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