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199화(199/221)
199. 치료 (2)
199. 치료 (2)
띠띠띠, 규칙적인 기계음 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다행히 최강석이 바로 조치를 취한 덕에 최금철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산소호흡기를 쓴 채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최금철,
최강석.
“…아버지이신가요?”
내 질문에 최강석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하도록 하죠. 오시느라 피곤하셨을텐데 좀 쉬도록 하세요.”
그 말과 함께 최강석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보호자도 아닌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병실 밖으로 나온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아보이는데.’
설령 줄기세포로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지 능력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미 망가져버린 몸을 다시 살리는데는 또 새로운 연구가 필요했다.
“그래, 그럼 당분간 어디에서 머물 예정이니? 너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당분간 지내도 된단다.”
“아 그게···이미 잘 곳은 정해져서요.”
“흠, 그렇다면야.”
김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연구 관련해서 더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구나. 어차피 밤도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네.”
그렇게 김성진과 헤어지고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들렸다.
“어이, 어이, 여기라고!”
“오, 차 산 거야?”
“아버지 차. 차 사고 싶으면 내 돈으로 사라고 하셔서.”
이인성이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그리고 그 옆에 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한국에 온다는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 이제 미국에 안 가는거야? 완전 컴백?”
“아니. 아마 한달 뒤에 다시 갈 것 같아.”
“아하···”
이인영이 조금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이인성은 빨리 차에 타라며 장난스레 조수석 문을 열었다.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슈퍼 과학자님.”
“윽, 그 이상한 호칭은 뭐야.”
“뭐긴 뭐야. 요즘 TV틀면 맨날 나오는 게 네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천재 소년이더니 이제는 슈퍼 과학자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넌 뭐가 더 좋아? 천재 소년? 슈퍼 과학자?”
“둘 다 싫어.”
인상을 찌푸리며 진심으로 대답하자, 이인성이 재밌다는 듯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녀석의 차를 타고 쌍둥이네로 이동하는 중,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연서 병원에는 왜 간 거?”
“아, 이번에 연구할 게 있어서.”
“연서 병원에서? 무슨 연구인데?”
“야, 그게 질문이라고 하는거냐? 당연히 치매겠지. 얘 꿈이 치매 치료잖아.”
이인성의 질문을 들은 이인영이 한심하다는 듯 타박을 했다. 그러자 이인성이 미간을 좁히며 변명했다.
“아니 이번에 한 건 다리 고친거잖아. 그래서 난 또 ‘아 얘가 드디어 목표를 바꿨나?’ 한거지.”
“목표를 바꾼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어쩌다보니 하반신 마비를 고치게 되었다라, 그게 더 무서운데.”
이인성이 장난치듯 말했고, 나는 별 말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하지만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이인영이 고개를 불쑥 내밀며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이번 병원에서는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거야? 줄기세포로?”
“어. 맞아.”
“그럼 아밀로잽은 어떻게 되는건데? 같이 병행해서 연구해? 유전자 치료는?”
생각보다 이인영은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 관심이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밀로잽은 교수님이 맡아서 진행하고 계시고, 유전자 치료도 아는 누나가 맡아서 하기로 했어.”
“…누나?”
“응. 하버드에서 알게 된 누나인데, 믿을만한 사람이야.”
내 말을 들은 이인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이인성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크으···미국에 가서도 인기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만덕 킹. 존경한다.”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연구하면서 친해진 누나인데 뭐.”
“그래도 이제 국적을 초월했다는거 아니냐!”
“뭐라는거야. 한국인이야. 그리고 애초에 그런거 아니라고.”
자꾸 핀트를 엇나가는 이인성. 하지만 핀트가 엇나가는 건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 그럼 지금 미국에 계시겠네?”
“어? 아니. 지금은 한국으로 귀국했어.”
“귀국했다고···아하.”
생각이 많아지는 이인영. 그녀는 내밀었던 고개를 집어넣고 뒷좌석에서 말없이 기대고 있었다.
뭐지, 뭔가 말 실수를 한 건가? 하지만 실수할 게 없는데?
“하긴 생각해보면 만덕킹은 고등학교에 있을 때도 또래는 관심도 안줬지?”
“엉?”
“너 좋다는 애들이 그렇게 많았어도 한번도 안 받아줬잖아.”
“…? 나 좋다는 사람이 어디있었는데?”
“에이, 모른척 하긴.”
“? 진짜 몰라.”
“?”
끼익! 빨간불에 급정거를 한 이인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신호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컨셉이지?”
“?”
“와, 진짜 몰랐다고?”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빨리 운전이나 똑바로 해. 갑자기 급정거나 하지말고.”
다시 초록불로 바뀐 걸 확인한 이인영이 이인성을 재촉했다.
그렇게 나는 쌍둥이네에 도착할 때까지 이인성으로부터 여러차례 심문을 당해야했고, 결국 긴 심문 끝에 한가지 호칭을 얻게 되었다.
“오늘부터 너를 만덕킹이 아닌 눈새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눈새? 그게 뭔데?”
“눈치없는 새X”
“? 왜?”
“아, 이건 나도 동의.”
“?”
이번엔 이인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고, 나는 영문도 모른채 그날 하루동안 ‘눈새’소리를 들으며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루였다.
*
“뇌출혈 환자의 경우 재발 위험이 큰 편이지. 게다가 나이가 있을수록 혈관쪽 회복은 더디고.”
“…전에 이런 적이 있으셨나보군요.”
다음날 아침, 나는 곧바로 연서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인성이 차로 데려다준 덕분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김성진을 만나 연구실 안내를 받으며 최금철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뇌출혈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가장 차도를 보인 환자도 최금철 환자분이란다.”
“정말요?”
“잠깐이지만 사물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심지어 아드님과 있었던 일도 생생하게 이야기하셨지.”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듯, 김성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앞으로 연구를 하게 될 연구실 내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CIRM에서 연구를 할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적어도 시설이 나빠서 연구가 안되는 일은 없어보였다.
“이번에 치매 관련 연구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나라에서 보조금이 많이 들어왔단다. 그 돈으로 이번에 설비도 다 교체했고.”
“나라에서 투자를 많이 하네요.”
“그럴수밖에 없겠지. 이게 성공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의 치매 치료제를 얻게 되는 걸테니 말이다.”
김성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내용은 결코 덤덤한 내용이 아니었다.
치매 치료제. 아직 아무도 개발하지 않은 미지의 약.
“치매 환자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 아마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수를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많아질거고.”
“하루 빨리 연구를 시작해야겠네요.”
“빨리 시작한다고 해서 빨리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니 좀 더 여유를 가지렴.”
김성진은 나를 위해 한 말이겠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연구를 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여유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연구실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다른 시설들을 안내해주려는 듯 엘리베이터 앞 시설 목록을 보던 김성진.
‘VIP실 병동’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가장 꼭대기층에 있는 VIP실이었다.
이전에 한 번 최강석의 동생, 최성훈을 따라 갔었던 곳.
‘상황이 더 안좋아지셨나봐.’
‘이제는 만나지도 못하게 하셔.’
‘위독하시대···’
문득 그곳에서 최한별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이어 그녀가 전해줬던 말들도.
‘···그러고 보니 시간도 꽤 흘렀구나.’
처음 최한별로부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하버드에 가고, 아밀로잽으로 임상 실험이 진행되고,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하반신 마비환자를 고치고.
하지만 정작 치매 환자를 고친 적은 없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안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와 계셨군요.”
최강석이 흰 가운을 입은채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럼 어제 못다한 이야기를 하러 회의실로 가볼까요.”
최강석은 어제의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듯,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마침 가볼만한 곳도 없는 상태였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회의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최강석은 본론을 꺼냈다.
“중간엽 줄기세포를 통해 뇌세포를 복구하는 연구자체는 저희 연서 병원에서 충분히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가요?”
“음, 일단 연구 관련해서 몇가지 준비해야할 게 있지만 아마 빠른시일내에 가능할 겁니다.”
최강석은 병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절차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CIRM에서 진행되는 것과 거의 유사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운 건 없었다.
“단지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한국 내에서는 줄기세포를 가지고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이 조금 복잡하다는 겁니다. 받아야할 절차가 꽤 많은 편이니까요.”
“절차라면···”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통과를 받아야합니다.”
아밀로잽은 비교적 임상 실험 허가가 간단하게 난 상황과 달리,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가 통과가 되려면 꽤 복잡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번에 진행하게 될 중간엽 줄기세포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연구와 관련된 대화가 끝날 무렵.
결국 나는 줄곧 궁금해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뭐든지 편하게 물어보세요.”
“치매 연구를 다시 시작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 질문이 의외였는지 최강석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그는 한번씩 테이블 위를 톡톡 치곤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치매 연구를 포기했던 그가 다시 이토록 열정적인지.
심지어 포기하던 그 때도 이미 최금철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보통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더 포기하지 않게 되는 법인데···’
그때, 최강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연구를 할 때 가능성을 봤었습니다.”
“가능성이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더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으니까요.”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최강석.
문득 이 연구의 책임 연구원을 맡았던 데이비드 밀러가 떠올랐다.
그도 가능성을 묻고 있었다.
“그럼 이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건가요?”
“김만덕 연구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강석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건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밀러에게도 했던 그 대답.
“네. 치료 될 거라 생각합니다.”
“확신하시는군요.”
“네. 언젠가 반드시요.”
최강석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간단합니다. 아밀로잽을 통해 희망을 봤으니까요.”
“네?”
“지금까지 아무도 못해내던 걸 해냈으니,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을뿐입니다.”
아무도 못 해내던 것. 아카이브에 올렸던 그 논문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자, 이제 그보다 연구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어제 말씀하셨던 신경 영양 인자와 성장 인자에 대해서—”
최강석은 그 후로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우리의 대화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갔다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 그깟 쥐 사체 하나 봤다고 무서워서 한국으로 달려가다니.”
어두운 방 안. 남자는 얼마 안되는 회원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과학주의, 과학 기술이 더 발전되는 걸 막는 단체인 ‘네오 루디즘’의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손으로 죽였던 생명들은 신경도 안쓰더니 말이에요.”
“과학자 놈들이 이래서 안된다는거야. 과학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게 용서받을거라 생각하니까!”
“아주 악랄하고 또 가식적인 놈들같으니라고. 대체 누굴 위한 발전이란 말인가!”
통탄해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윽고 중앙에 앉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문제는 만악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겁니다.”
“맞습니다. 어차피 한달이 지나면 다시 CIRM에 와서 끔찍한 일들을 진행하겠죠. 또 연구라는 이름으로 말이에요!”
“우리가 막아야해요. 이대로면 모든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 오고 말거에요.”
회원들의 목소리에 남자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그 일’을 시작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 그 일이요?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저희 모두가 그냥 넘어가지 못할텐데···”
“괜찮습니다. 설마 저희가 아무런 빽도 없이 일을 시작하겠습니까?”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정의는 승리합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준비되고 있었다.
각자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