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화(2/221)
2. 입학(2)
2. 입학(2)
2007년은 유달리 추운 겨울이었다. 이례적인 한파가 뉴스를 장식했고, 마을 곳곳에는 상수도관이 터지는 게 일상이었다.
“가서 꼭 잘 챙겨 먹고, 서울 아그들한테 기죽어 다니지 말고!”
“걱정 마세요. 잘 갔다 올게요.”
목도리를 단단히 여며주시는 어머니의 손을 보자 새삼 실감이 났다.
과거로 회귀했고, 그 시점이 하필 과학고에 입학하는 지금이라는 것이.
“아들, 엄마는 예전부터 바라는 거 딱 하나야. 그냥 우리 아들이 잘 먹고, 잘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건강하게. 그거면 돼.”
이미 몇 번이고 확인한 목도리인데 어머니는 계속 놓지 않았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키워온 아들이 먼 타지로 가는 게 기특하면서도 걱정되는 듯했다.
잘 먹고, 잘 웃고, 행복하게 지내는 삶.
과거에는 내가 얻지 못했던 삶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닫았다가 어머니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엄마. 저 그냥 서울 가지 말고 엄마랑 같이 살까요?”
마음 한 켠에 몰래 숨어있었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다. 과거에 시달렸던 기억들이 나를 과고로 가지 못하게끔 붙잡고 있었다. 다시 또 같은 일이 반복될까봐 두려웠다.
내 말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사람이 무서웠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그곳을 다시 내 발로 걸어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들 원하는대로. 그렇게 하고 싶어?”
나는 양 옆에 산처럼 쌓여있는 짐들을 봤다. 캐리어 하나 제대로 된 걸 구하지 못했던 탓에 동네 이장님이 쓰시던 낡은 캐리어를 빌렸어서 그런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예비소집일이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같이 진행하는 탓에 3주 동안은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방에는 지난 중학교 시절동안 공부했던 과학과 수학 관련 책들이 들어있었다.
과학이 좋아서, 수학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읽던 소중한 책들이.
법칙, 원리, 공식들을 읽고 이해할 때마다 우주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아낸 것 같아서 설레 잠 못자던 날들.
나는 그만큼 과학을 사랑했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 시절,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는지. 나는 정말 혼자였었는지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
“짐은 일단 대강당 뒤편에 두시고 앞에 명단 보고 의자에 앉아 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장장 6시간을 걸쳐 도착한 한국 과학 고등학교는 내 기억 속과 동일했다. 혹시라도 평행세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내 기억과 완벽하게 일치했던 덕에 전생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은 일단 구석에 뒀고, 어디보자 내 이름이…저기 있네.’
앞에서 3번째 줄에 위치한 나는 강당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학생들 모두 추운 날씨 탓에 패딩을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얼굴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해 보이는 표정 속에도 칼을 품고 있는 듯한 눈빛들.
모두가 서로를 탐색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전생 때도 이 분위기에 압도당한 게 컸었지.’
대한민국의 괴수들만 모인다는 한국과학고.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다니는 건 기본, 심하면 유치원 때부터 코스를 밟는다고도 들었다.
치열한 사투 끝에 120명 안에 든 녀석들. 그러나 이건 단지 예선에 불과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살인적인 속도로 수학 10-(가), (나)를 다 끝내고 바로 수학Ⅰ, 수학Ⅱ를 나간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은 고등학교 수준이 아닌 대학교 수준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교재도 대학 교재를 그대로 끌어다 쓰는 것도 모자라 일부 선생들은 영문판을 그대로 사용. 한마디로 영어도 어느 정도 따라주지 않는다면 수업 자체를 따라가는 게 불가능하다.
당연하게도 낙오자는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동안 천재 소리 들으며 자라오던 녀석들한테는 꽤나 충격적이겠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천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충격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과연 이 중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강당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옆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이 잘게 찰랑였다. 흰 피부에 오밀조밀 배치된 이목구비는 황금비율에 맞춰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이끌었다.
10:1이라는 남녀 성비 속에서 여자가 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이쁜 애는 전교생을 놓고 봐도 없었다.
명단을 보면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최한별. 한국과학고의 전설.
‘이번에 또 전교 1등이래!’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는데? 대통령상만 이번이 몇 번째야?’
‘얼굴도 이쁜데 공부까지 잘해…부모님 모두 교수에다가 아버지는 심지어 서울대 의대 교수라며? 부러워.’
외모로나, 머리로나, 배경으로나.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완벽한 여고생.
‘그나저나 예비소집일 날 옆자리에 앉았을 줄은 몰랐는데. 과거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과거랑 달라진 점은 도착 시간뿐이었다. 나는 일부러 아는 척을 해볼까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과거 내가 과고에서 살아남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눈에 띄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전교에서 제일 이쁜 여자애한테 말을 거는 건 누가 봐도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애써 신경을 안쓰려고 하고 있는데, 때마침 강당 위로 한 남자가 올라왔다. 멀끔하게 생긴 중년 남성은 마이크를 테스트하더니 이내 공지를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오시는 길 춥지는 않으셨나요? 한국과학고에 무사히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예비소집일 안내를 진행하게 된 물리과 박민철이라고 합니다. 본 식을 진행하기 전에 입구에서 나눠드린 책자를 꺼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자를 꺼냈다. 표지에는 ‘제 17기 한국과학고등학교 예비소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오늘 진행할 행사는 예비소집 안내이지만, 이후에 브릿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잠시 후 진행될 예정이오니 지금은 학교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박민철은 포인터기로 스크린을 가리키며 학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학고 중에서도 최신 실험기기와 설비들을 갖추고 있으며 해외 연계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학생들 모두 만족하고 있으며 해외 대학 진학자 수는 몇 명, 국내 상위권 대학 진학자 수는 몇 명, 의대 진학생들은 몇 명인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육과정 안내. 박민철은 의도한건지 아니면 놓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진도를 나가는 속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어떤 과목들을 배우는지에 대한 설명들을 간략하게 했다.
“잠시 후, 임시 반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그때 임시 담임 선생님께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실테니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학교 전반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박민철이 파워포인트를 넘겼다. 그러자 새로운 배경 위로 ‘브릿지 프로그램’이라고 쓰인 피피티가 나타났다.
“브릿지 프로그램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오는 과정 속에서 여러분들의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 고등학생 때 배우게 될 과학들을 미리 공부하고 자신의 전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공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수학 중 하나였다. 이과놈들 답게 물리와 수학에 사람이 쏠리는 경향이 있었고 생물과 지구과학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총 3주동안 진행되며 이후 마지막 날에는 배치고사가 진행됩니다. 배치고사 때 일부 학생들은 보충반으로 편성 될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민철의 말에 몇몇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충반에 들어가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니 머리 빡대가리라고 소문나는 거지 뭐.”
“뒤질래?”
그때 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묘하게 고양이 느낌이 나는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지도 운빨로 합격했으면서 지랄.”
“내가? 내가 운빨이라고? 발표 전날에 엄마한테 안겨서 울던 사람 누구였더라?”
“뭐래. 너야말로 답 쓴거 오류있을까봐 쫄려서 커뮤니티에 글 올리고 사람들한테 물어보던 거 다 알거든?”
“어, 어떻게!”
실제로 충격 받았는지 남자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숨겨놨던 치부가 들켜진 모양이었다. 나는 둘의 대화보다 둘의 존재에 더 놀란 상황이었다.
‘얘네가 왜 내 뒤에?’
한국과학고에는 몇몇 유명인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최한별이었고 다른 녀석들은…
“야, 너 내 컴퓨터 만졌냐? 봤냐고.”
“에이씨, 니 컴퓨터가 내 컴퓨터지 뭔 니 컴퓨터야. 엄마가 둘이 나눠 쓰라고 사줬던 거 기억 안 나냐?”
“너 자꾸 오빠한테 반말 깔래?”
“응 조까. 3초 오빠가 오빠냐?”
쌍둥이 남매 이인성, 이인영이었다.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남매는 과고에서도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야. 이번에 이인성 물리 1등 했대.’
‘헐. 인영이는 화학 1등이라며?’
‘근데 둘 다 수학은 영…’
남매가 나란히 각자의 분야에서 탑을 찍는다는 건 여러모로 대단한 일이었다. 둘 다 서로의 분야를 극딜하는 것도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었고.
‘응~그래봤자 원자 나부랭이 조합하는 일이쥬~ 결국 놓고 보면 생물이랑 암기하는 과목일 뿐이쥬?’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헛소리하니까 걍 안쓰러워진다. 그렇게 평생 사고 실험으로 방구석에 처박혀서 머리만 굴리다가 뒤지세요~’
서로에게 비수가 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놈들이었지만 나쁜 놈들은 아니었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 유일하게 편견 없이 대해주던 녀석들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남 의식 안 하고 사는 부분에선 둘 다 비슷하네. 물론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안 좋은 기억이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다른 학생들이 은근슬쩍 소똥 냄새가 난다며 돌려 까거나 기초생활수급자, 기생수라고 무시할 때, 편견 없이 다가와 준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자, 그럼 예비소집 안내는 이쯤으로 하고 이제 임시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예비소집 안내가 모두 끝나고 강당은 이동하려는 사람들 탓에 북적였다. 가뜩이나 강당 뒤쪽에 짐을 둔 상태였기에 사람들은 좀처럼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좀 기다렸다가 나갈까나.’
어차피 임시반으로 가는 길이다. 이 학교에만 2년을 있었으니 건물 위치 정도는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좀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빠르게 이동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좀 빠진 틈을 타서 짐을 가지고 반으로 이동했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 이제 모든 학생이 다 온 것 같으니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해보겠습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자신을 김영환이라고 소개했다. 전공은 화학.
“다들 세부 전공에 대해 생각해왔던 게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했다가는 앞으로가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과목으로 선택했다가 졸업할 때는 그 과목을 증오하며 나갈 수도 있습니다.”
선배들의 실패 사례를 씁쓸하게 풀어내는 김영환. 그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약간 공포심이 서렸지만 이내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랬을지 몰라. 하지만 난 달라. 어떻게 보면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순진한 학생들이 품을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김영환이 나를 바라봤다.
“제일 늦게 들어온 학생. 이름이?”
“김만덕 입니다.”
작게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입을 가린 것 같았지만 누군지 다 봐뒀다.
“만덕 학생은 전공 결정 했나요?”
“네.”
과거 내 꿈은 뇌생명공학자가 되어 치매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생물 과목에 대한 관심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생물입니다.”
내가 답하자 몇몇 학생들이 조소를 날린다. 그 웃음이 가소롭게만 느껴진다.
끽해야 16년을 산 어린 놈들이 생물, 그러니까 생명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얇고 조잡한 교과서에서 단순 암기성 지식들을 보면서 생물 별거 아니네? 라고 비웃었을까?
김영환 역시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 같았다.
“지금 이 반에도 생물과 지구과학 학문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서려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여러분 미래에 여러분이 어떤 과학자가 되든 간에 학문을 존중하는 태도는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천대받는 학문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학문만 있을 뿐이죠.”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비웃는 거다 중생들아- 라고 돌려 말하는 김영환의 말에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생물 같은 경우는 대부분 단순 암기식 지식이지 않나요?”
“그런 발언 자체가-”
나는 김영환이 말하는 와중에 손을 들었다. 당황한 김영환이 나를 바라봤다.
집을 떠나 과고를 오는 길에 내내 생각해봤다. 내가 과고에서 살아남지 못했던 이유.
하나는 별종이어서다.
하지만 단순히 별종이어서 그런 대우를 받았던 것일까?
아니, 별종이라고 무시하는 놈들을 그냥 냅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놈은 시간이 지나 그런 놈‘들’이 되었고. 집단이 된 그들은 점점 활개를 쳤다.
개인은 악하지 않다.
그러나 집단은 악하다.
“혹시 저 말에 대해 반박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적당히 미리 밟아줄 필요가 있었다. 깝치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