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0화(20/221)
20. 증명 (1)
20. 증명 (1)
부정행위 폭로일 줄 알았던 회의가 ‘천재 발견’이라는 화두로 바뀌고 난 후, 교사들이 김만덕을 대하는 시선은 달라졌다.
‘쟤가 걔 맞죠? 이번 전교 1등.’
‘결국 그 문제는 오답 처리 받았다면서요? 그런데도 1등을 했다는 건…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푼 걸까요? 찍을 수 있는 숫자도 아니었을 텐데.’
천재를 향한 동경은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수많은 수재를 가르치고 지도해온 과학고 교사들에게도 ‘천재’의 등장은 언제나 설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의심과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누가 봐도 부정행위 아닙니까? 정작 그 알고리즘인가 뭔가는 증명하지 못했다면서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리고 막말로 답안을 몰래 교체했을 가능성도 있죠. 차마 알고리즘을 적을 시간이 없으니까 답만 적어서 낸 거라고요.’
‘천재’의 등장을 인정하는 것보다 부정행위로 판정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처리 방법이긴 했다. ‘천재’를 증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부정행위’는 자백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쉽게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체육 교사 김석우는 이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생활지도부실의 문이 열렸다. 남학생은 문을 열면서 동시에 인사를 했다.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딴판이군.’
김석우가 한국과고에 있는 지는 올해로 벌써 12년. 다양한 학생들을 지도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는 눈빛만 봐도 어떤 학생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생길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절 찾으셨다고…”
“그래. 앉아봐라.”
김석우는 2, 3학년 체육 수업을 전담했기 때문에 1학년 수업은 들어간 적이 없었다. 체육관이나 생활지도부실에 상주하고 있는 탓에 1학년 학생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드문 편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만덕은 자신을 보며 친근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마냥.
‘성격이 모난 놈은 아닌가 보군. 보통은 눈도 못 마주치면서 들어오는데 말이지.’
생활지도부는 말 그대로 학생 생활을 지도하는 곳이다. 이곳에 불려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가 죽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이번에 시험 관련해서 담임쌤한테 전해 들은 건 있지?”
“네. 부정행위 처리될 뻔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처리될 뻔했다?”
김석우는 조용히 뒷말을 반복했다. 과학고 학생들은 한평생 공부만 해오던 녀석들이니 나쁜 짓과는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나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많았다.
약한 수위로는 필기 노트 뺏기, 수행 평가 방해 정도가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학교 폭력, 은근한 따돌림, 사이버 불링… 학업 스트레스를 이런 악질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그중에는 이렇게 일탈적인 행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컨닝, 도벽과 같이.
“하지만 너 역시 풀이로 써낸 답안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진짜 인터넷 검색해서 적은 게 아니라고?”
의심이 더해졌다. 김석우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이미 그는 김만덕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가정하고 대화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는 그가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증명하지 못한 걸 썼다는 것부터가 심히 의심스러운데 말이다.”
“증명할 수 있어요.”
“엉?”
그 순간, 예상과 다른 답변이 나왔다. 김만덕은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증명할 수 있긴 한데… 조금 복잡해서 그래요. 이미 답안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컴퓨터 알고리즘을 그 좁은 칸에 다 적을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시간도 부족하기도 했고요.”
한국 과학고의 수학 시험이 어려운 건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사실상 마지막 장은 손도 못 대고 종이 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증명 못 하는 게 아니라고? 그걸 어떻게 믿지?”
김석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추궁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문제아’일 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교사들이 김만덕을 두고 하는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만덕이가 문제 푸는 거 보셨어요? 암산으로 하는지 종이에 뭘 쓰는 경우가 별로 없더라구요.’
‘근데 또 논문 형식으로 써보라고 하면 어찌나 잘 쓰던지, 저는 대학원생인 줄 알았다니까요?’
‘집안 형편을 보니까 학원을 다닌 것 같지도 않던데… 천재는 진짜 있나 봅니다.’
‘천재’냐, ‘문제아’냐.
그 깊은 고뇌를 해결해주려는 듯이, 김만덕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음 교사 회의 때 컴퓨터 한 대만 준비해주세요.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
중간고사가 끝나고 평화로운 나날.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시험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며 지냈겠지만, 나는 좀 달랐다.
“굳이 모든 선생님이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꼭 필요한 분들만 모셨다.”
그 말을 하며 김석우는 자리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익숙한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담임이자, 꽤나 복잡한 문제에 휘말려 골치 아프단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담임 박민철,
수학과 교과부장이면서 동시에 이 문제를 출제했던 유지한,
그리고 2,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수학과 선생님들.
그리고 의외의 인물도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바로 증명하도록 하지.”
중후한 목소리가 장내를 휘감았다. 짦은 말이었음에도 위엄있는 말투였다.
한국과학고 교장, 이철규였다.
‘교장이니까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바쁠 텐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왔다 갔다 한다고 들었는데.’
교장은 말 그대로 학교의 우두머리.
기본적으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들 강력한 결정권자이다. 한국과고처럼 교육열이 강한 학교에서 부정행위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게 맞겠지만,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긴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교장은 나를 바라보았다.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대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왔던 만큼 그의 눈빛에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담겨있었다.
부정행위로 발각되는 즉시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준비됐니?”
그런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줄 생각인 걸까, 담임교사 자격으로 참석했던 박민철이 컴퓨터 세팅을 마치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교사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그에게도 이런 분위기가 영 어색한 듯했다.
“네.”
하지만 내게 이런 분위기는 익숙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더 일상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대학원 생활을 하면 매 순간순간이 평가의 연속이다. 연구 주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교수님에게, 동료 연구원들에게, 늘 평가받고 깨져야만 한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낯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떤 말을 해도 달려드는 비판의 말들은 감당하기 버거웠으니까.
더군다나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에게 그런 비판의 말들은 건설적이든 그렇지 않든 정신적으로 큰 피해였다.
짧게 과거에 대해 반성하며 나는 준비된 노트북을 켰다. 오래된 노트북이라 그런지 부팅 속도가 조금 걸렸지만 이내 전원이 켜졌다.
탁탁탁. 연구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거 봤어? 세계 7대 난제가 풀렸대!’
‘엄청나네. 어떤 천재가 풀어낸 건데?’
‘음… 미국에 살고 있는 앤드류인데, 좀 애매해.’
미간을 좁히며 동료 연구원은 학회지를 건넸다. 지금도 유명한 ‘네이처’에 실린 한 부분이었다.
[컴퓨터의 재발견, 세계 7대 난제 해결]컴퓨터가 7대 난제를 해결했다. 단순히 조건을 만족하는 x, y, z, k을 구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단순해 보이는 것과 다르게 답은 간단하지 않았다.
‘뭐야. 그럼 결국 컴퓨터가 푼 거네?’
‘글쎄. 풀기 위한 알고리즘은 인간이 제시해야 하니까 인간이 푼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컴퓨터는 단순 계산이기도 했고.’
‘단순 계산이라고 보기엔 그 이후의 과정에 컴퓨터가 개입한 게 많은데?’
그로부터 몇 년 후에야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인공지능의 초석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 일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마치 작은 날갯짓으로 저 너머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것처럼, 장난삼아 만든 알고리즘이 ‘세계 난제 해결’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그때 당시의 난 이 과정이 몹시 흥미로워서 다른 수학 학회의 자료들까지 모두 읽을 정도로 빠져있었다. 얼마나 집요했던지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나에 빠지면 주변이 안 보일 정도로 몰입하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재능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저절로 외우게 된 저 숫자들. 남들이 보면 어떻게 외우냐고 경악할 모습이었겠지만, 어려서부터 원주율 외우는 걸 취미로 삼던 나에게 이정도는 쉬운 축이었다. 고작 숫자 29개 외우면 된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탁. 경쾌한 타자음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손동작이 멈췄고, 나는 사람들을 향해 노트북을 돌렸다.
“알고리즘 다 작성했습니다.”
“설명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여기 있는 선생님들 모두 이해할 수 있게끔.”
“간단한 알고리즘입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뭔가 쓸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동식 화이트보드였다.
자리에 일어나 화이트보드를 끌고 오자, 교사들의 눈빛이 한층 더 호기심으로 차올랐다.
화이트보드 위로 복잡해 보이는 수식을 쓰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교장이 원한 건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였으니까. 게다가 컴퓨터 언어로 쓴 내용은 수학과 전공이라 하더라도 이해하기엔 어려울 수도 있었다.
최대한 간단하지만, 핵심은 놓치지 않도록 한 줄씩 한 줄씩 써 내려갔다. 쓰면서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만 알고 있는 지식은 쓸모없다는 걸 전생에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그렇게 몇십 분을 설명했을까, 어느새 내 등에도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은 에어컨으로 인해 시원한 편이었지만, 설명을 하면서 점점 고조된 탓이었다.
“처음 입력한 알고리즘은 간단해 보였지만 이후에는 스스로 적절한 조건을 찾아 답을 도출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보입니다라, 그 말은 김만덕 학생도 그 안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소리인가요?”
문제 출제자인 유지한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문제를 풀었던 앤드류도 “컴퓨터가 어떻게 푼 건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라고 말했으니까. 물론 그 발언으로 인해 한동안 수학계에선 토론이 끊이지 않았다.
“애초에 답이 나왔다고 해도 풀이 과정이 없는데 인정을 해주기엔 좀…”
“지금 그게 중요한 겁니까? 만약 이 답이 사실이라면 7대 난제가 풀린 거라고요! 세계 7대 난제가 말입니다!”
“허허, 박 선생 너무 김칫국은 마시지 말고…”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이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나의 풀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누군가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끄러운 반응들 가운데에서도 한결같은 표정과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김만덕이라고 했나?”
교장 이철규였다.
“네.”
짧게 대답하자, 그는 나를 찬찬히 훑어봤다. 그러더니 눈앞에 놓인 시험지와 나를 번갈아 봤다.
“시험문제가 뭐였는지 기억하나?”
“네.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로,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 x, y, z, k의 값을 찾는 풀이 과정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근데 자네는 답만 적었어. 풀이과정은 ‘컴퓨터 알고리즘’이라는 말로 퉁치기까지 했지.”
아. 이미 답을 정한 듯한 그의 말투에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교장 이철규의 말이 이어졌다.
“애초에 시험에서 요구하는 건 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이었단 말이지.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식으로 수학적 접근을 해야 하는지에 맞춰서 답안을 작성했고, 이 문제를 출제한 유지한 교사가 제출한 평가 기준도 그런 것들이었네.”
교장의 말에 방금까지 나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교사들이 입을 꾹 닫았다. 그들도 같은 뜻을 읽은 듯했다.
“게다가 이미 끝난 시험에 따로 시간을 줘서 풀이 과정을 제시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걸 답으로 인정해버리면 형평성에 어긋나버리지. 부정행위가 아닌 건 증명할 수 있어도 점수를 제공하는 건 힘드네.”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정행위로 처리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라니까.
애초에 부정행위로 처리되면 수학 점수는 0점이 된다. 게다가 이 한 문제를 포기해도 수학 등급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이거 말고는 다 맞았을테니까.
그러나 조용히 안도하고 있는 중에,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그러니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떻겠나?”
“예?”
목석같이 무표정으로 앉아 있던 교장이 처음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번 주말에 이 문제에 관해 학회를 연다고 하더군. 김만덕 학생도 같이 가는 걸로 하지.”
“…어딘데요?”
“어디겠나?”
보통 이런 문제가 풀리면 문제를 푼 사람이 직접 과정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다. 종이로만 적어냈던 풀이 과정을 직접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여권 챙겨오도록.”
하얀 치열이 드러나도록 웃은 교장이 자리에 일어났다.
이번 주 주말,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