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02화(202/221)
202. 꿈에 그리던 (2)
202. 꿈에 그리던 (2)
수술이 끝났다.
줄기세포는 안정적으로 손상된 뇌 부위에 집중적으로 이식되었고, 안정적으로 기존의 뇌세포들과 연결을 형성해나가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것 뿐.
“일단 MRI상에서는 새로운 뇌세포로 보이는 것들이 계속 형성되고 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해마의 일정 부위도 크기가 이전 상태로 회복된 게 보이고요.”
“환자분의 의식은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알겠습니다. 일단 계속 경과를 지켜봐주세요.”
뇌에서는 열심히 이식된 줄기세포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단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할아버지 일어나시겠지?”
할아버지의 수술 소식을 듣고 바로 한국으로 달려온 최한별.
그녀는 울음을 머금은 상태로 내게 물었다.
“응. 일어나실거야. 꼭.”
“…고마워.”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뿐이었음에도 최한별은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한동안 침묵이 맴돌더니, 그녀가 용기를 낸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가주면 안될까? 나 혼자서는 할아버지 뵈러 못 가겠어.”
“내가?”
“…혹시라도 갔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혹시라도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게 될까봐 두려운 듯 했다.
“…그래. 같이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최한별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엘리베이터 앞. VIP실로 향하는 길은 꽤나 길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VIP실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대화도 없었다.
그녀는 굳게 닫혀있는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이 그녀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괜찮아.”
“…응.”
“이제 들어가자.”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 문. 그리고 그 안엔 이미 손님이 와 있었다.
“…아버지?”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은 채 할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최강석이었다.
최한별은 아버지의 존재에 살짝 놀란 듯 했다. 이내 최강석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결국 왔구나.”
“…왜 할아버지 수술하는 거 숨기셨어요?”
“네 엄마가 말했니.”
“아뇨. 제가 말했습니다.”
최강석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러자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행동이군.”
“최금철 환자는 최강석 교수님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한별이한테는 하나뿐인 할아버지이기도 하니까요.”
줄곧 존칭을 써오던 최강석은 다시 원래 말투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무래도 최한별이 있는 앞에서 존댓말을 쓰는 건 좀 이상하게 보일테니까.
수술이 이뤄지기 전 날, 나는 최한별에게 연락했다.
[…할아버지가 수술을 하신다고?]‘응. 치매 치료 관련해서 줄기세포 이식 수술이야.’
[당장 갈게.]그녀는 수업도 내버려둔 채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원래라면 부모님 말을 잘 들을 착한 딸이었겠지만···지금만큼은 얌전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라는 부모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괜히 네가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요? 그때 가서 제가 얼마나···얼마나 후회할지 생각해보셨어요?”
“네가 후회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설령 네가 온다고 한들 수술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아.”
딸한테 하는 말이라기엔 과할 정도로 냉정했다. 빈말이라도 미안하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최강석은 꿋꿋하게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는 한결같이 냉랭한 모습이었다.
“…있다가 다시 올게요.”
“맘대로 하렴.”
최한별은 그 말을 하고 곧바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빨리 나간 듯 했다.
그렇게 병실에는 최강석과 최금철.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남아있게 되었다.
“…안 따라가도 되겠니.”
“혼자 있고 싶어할걸요. 은근 강한 척 하는 면이 있어서요. 아마 우는 모습 안 보여주려고 할거에요.”
“…그다지 좋은 남자친구는 아니군.”
최강석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의식이 없는 최금철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매정하다고 보이나?”
“음···네.”
“솔직하군.”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건 다 한별이를 위한 일이네. 괜히 정을 붙였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더 큰 충격을 받을테지.”
“글쎄요. 이미 충격은 다 받은 것 같은데요.”
“내가 왜 한별이가 할아버지를 못 만나게 막은 줄 아나?”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한별의 말에 따르면 최강석은 최한별이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뵈러 몰래 병실에 찾아가야만 했다고.
최강석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 분명 충격을 받을테니까.”
“…”
“그 애는 너무 여려. 분명 자신이 그토록 따랐던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 분명 상처를 받겠지.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일세.”
그 말을 하는 최강석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슬픈 기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미 할아버지의 치매 상태에 대해 다 알고 있던데요? 이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나 역시 하루종일 여기를 지키고 있을 순 없으니까.”
아무리 VIP 병동이라고 해도 할아버지를 찾아 온 손녀를 막을리 없었다. 어쩌면 엄마에게 졸라 이곳을 방문했을 수도 있고.
“항상 나는 그랬네. 모든 일에 서툴렀지. 아이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고 마네.”
“그런 것 같아요.”
“…자네는 위로하는 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군.”
“그런 소리도 자주 들어요.”
내 말에 최강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병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야! 최강석! 너 이새끼 네가 어떻게, 어떻게–!”
문을 박차며 열고 들어온 남자. 최강석의 동생이자 미래기술육성센터장 최성훈이었다.
그는 단번에 최강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더니 멱살을 잡았다. 최강석보다 체격이 살짝 작은 편이었지만, 최강석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야 이 미X놈아. 수술 소식을, 수술하는 걸, 나한테 말도 안하고 진행시켜? 나도, 나도 아버지 아들이야. 너만 아들인게 아니라고!”
“…정식 보호자는 나로 되어있지.”
“보호자고 뭐고 간에 이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셨으면? 돌아가셨으면 네가 다 책임질 수 있어? 있냐고!”
최성훈의 눈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변해있었다.
뛰어왔는지 숨을 가쁘게 내쉬던 그. 그는 금방이라도 한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최강석을 노려봤다.
“야 이 나쁜 놈아···이 재수없는 놈아···안그래도, 안그래도 내가 얼마나···흐흑. 내가 지금 무슨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아밀로잽 때문에 아버지가, 내가 그거 지원만 안했어도, 추천만 안했어도···”
결국 최성훈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밀로잽 때문에 뇌출혈이 일어난 뒤,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더구나.’
‘왜요?’
‘아밀로잽을 연구를 지원했던 곳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거겠지.’
김성진은 뇌출혈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며 최성훈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들려줬었다.
“됐고. 이렇게 된 거 임상 실험 관련해서 소송 걸거야. 아밀로잽 연구한 너도, 개발한 연구진들 모두!”
“그렇게 해봤자 뭐가 남지? 그리고 부작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는데 말야. 이제와서 이렇게 이야기한들 너 역시도 치매 치료에 동의해서 아밀로잽 지원을 한 거야. 너도 책임이 있는 거라고.”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결국 최강석의 말에 이성을 잃은 최성훈이 주먹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질이 벌어지려는 찰나,
“….그만.”
“!”
“…아버지?”
“그만해라.”
최성훈에게 멱살이 잡혀있던 최강석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금방이라도 한대 치려던 최성훈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아, 아버지.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아버지? 저, 성훈이에요. 최성훈.”
“…시끄럽다.”
“…아버지.”
최금철이 인상을 쓴 채로 아들 둘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최강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시끄럽다.”
“제 이름. 제 이름 한번만 불러주세요. 네? 아버지.”
간절한 목소리. 최강석은 마치 동아줄을 붙들듯이 간절한 표정으로 최금철을 재촉했다. 어느새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최금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최금철은 이 상황이 불편한지 얼굴을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이름따위 모른다.”
“…아, 아버지.”
“이름따위, 몰라!”
“…”
그리고 그 모습에 최강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죄송합니다. 환자분. 상태 체크 좀 할게요.”
“흥.”
“…저 보신 상태에서 눈 한번 깜빡여 볼게요.”
계속되는 부탁에 결국 최금철이 고개를 돌려 눈을 깜빡였고, 최강석은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이번엔 손 좀 꼭 쥐어보시겠어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최강석은 천천히 최금철의 상태를 확인했다. 기본적인 체크를 다 한 뒤, 간호사를 불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지만 일단 생체 반응은 정상이에요. 정밀 검사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최강석이 발걸음을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교수님.”
“실험은 실패네.”
“…”
“치매는···치료할 수 없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정말 이젠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겠다는 표정.
그렇게 최강석이 병실을 떠나려는 순간,
“아이고, 저 쫌생이같은 녀석.”
“…?”
“지 애비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이름 하나 기억 못한다고 내팽겨치는거 보소. 쯧.”
“…!”
최강석이 고개를 홱 돌렸다. 최금철이 인상을 쓴 채 혀를 차고 있었다.
“못난 놈. 뭘 잘했다고 울어?”
“…”
“이름 하나 기억 못 해준게 그렇게 서럽더냐?”
“아버지···”
“아버지이이이이!!!”
최성훈이 최금철을 끌어 안았다. 하지만 최금철은 그런 막내 아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최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이 되었으면 동생을 챙길 줄도 알아야지. 쌈박질이나 하려고 하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게다가 장남이 되었으면 집안의 기둥이라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든? 뻑하면 쳐 울어제끼고 쯧. 그렇게 여려서 이 험한 세상 어찌 살려?”
“죄송해요. 아버지.”
최강석이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이따금씩 흔들렸다.
가려진 얼굴 사이로 벅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죄송해요, 제가, 원래 잘 안우는데. 오늘은 눈물이 좀.”
“쯧쯧···하여간.”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
최한별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두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울고 있고, 삼촌은 할아버지를 끌어 안고 울고 있다.
그리고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할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할아버지!”
“오냐.”
“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제가 누군지—”
“너도 네 애비랑 똑같구나. 하여간 다들 이름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원.”
최금철이 웃으며 최한별을 바라봤다.
“한별이. 내 손녀.”
“!”
“할아버지···!”
최한별은 펑펑 울며 할아버지를 끌어안았고, 나는 그저 온 몸에 돋는 전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느끼면서 울고 있는 최강석과,
큰 목소리로 울고 있는 최성훈과,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는 최한별.
그 사이에서 성가시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면서도 희미하게 웃고 있는 최금철까지.
오늘 이 장면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평생토록 싸워왔던, 치매라는 질병으로부터 승리한 날이었으니까.
*
“치매 증상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에요. 이름은 기억하시지만 그 외의 일들은 기억 못하시고 계시고요.”
“아무래도 뇌세포가 예전과 같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또 시냅스 형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억들 간에도 끊김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줄기세포 분화 정도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정밀 검사에 들어갔고, 몇가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금철의 기억이 일부가 돌아오긴 했지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또한 치매 상태일때의 기억 중 일부는 기억하고 있는 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어휴, 저 놈 새끼. 어떻게 애비가 기억 못한다고 죽은 사람 취급을 해? 이 못난 놈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아버지.”
“됐어. 죄송하다고 해도 네 놈은 불효자다 이 말이야!”
“아버지 죄송합니다. 좀 더 혼내주세요.”
“아이고? 너 지금 죄송한 사람 표정이냐, 이게?”
최강석은 아버지 최금철로부터 연신 혼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혼내달라고 재촉할 정도였다.
“저···최강석 교수님 저런 표정 지으시는 거 처음봐요.”
“저도요. 한번도 웃는 걸 본 적 없던 분이신데···”
그리고 최금철의 상태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병원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럼 진짜 이제 치매도 치료할 수 있는거에요?”
“어머, 이거 당장 뉴스에 나올 소식 아니에요? 플랜카드라도 걸어야하는거 아닌가?”
“지금 플랜카드가 문제에요? 이정도 일이면 그냥 뉴스가 아니라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어야 할 정도의 뉴스라고요!”
축제 그 자체였다. 너도 나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이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게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그 치료제 개발하신 분은 어디에 계세요?”
“저도 미리 싸인 한 장 받아두고 싶은데···”
“혹시 다음 임상 대상자는 언제 모집합니까?”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찾았고, 이런 상황이 이제 매우 익숙한 나는 연구실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잠깐만 진정되면 나가야지.’
내 경험상, 이 뒤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싸인 행렬과, 사진 행렬이 있을것이고,
조만간 병원장과 따로 면담을 하며 칭찬 세례를 받게 될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한학수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와 나와 사진을 찍고 갈 것이다.
“대통령님께서 오실 것 같네.”
“…예?”
“이번 임상 연구 결과가 벌써 청와대에도 전해진 모양이더군. 병원장이 언론에 벌써 결과를 알린 모양일세.”
“아, 제발.”
연구실에 은신해있던 나를 용케 찾아낸 김성진.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고, 그 표정에 약간의 장난끼 비스무리한 것이 섞여있는 듯 했다.
“대, 대통령님께서 왜 오시는···걸까요?”
“전세계 최초의 치매 치료제이니, 오실만하지.”
“아, 아니 가더라도 제가 가야지. 왜 대통령님이—”
“환자하고도 이야기를 나눠야하지 않겠나. 여러가지를 고려한 걸테지.”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마 한시간내로 오실 것 같은데. 잠깐 눈이라도 붙이겠나?”
“…아뇨. 바람 좀 쐐고 올게요.”
“그래.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잠이라도 깨야지.
안그래도 그동안 연구를 하다보니 제대로 잠을 잔 적도 없었다. 이 상태로 인터뷰를 하거나 대통령을 만났다간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커피 좀 마실까.’
나는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카페를 향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이 알아봐 꽤나 진땀을 뺐다.
‘저기 김만덕 연구원님이시다!’
‘연구원님! 이번에 치매 환자가 치료되었다면서요?’
‘그거 아밀로잽이랑 다른거에요? 줄기세포라던데, 저희도 살 수 있는거에요?’
달려오는 인파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완전 치료라고 보기엔···아직 경과를 더 지켜봐야합니다.’
‘상용화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사진 촬영은 좀···지금 몰골이…하하…’
‘싸인이요? 아, 네네. 여기요.’
라고 말한 뒤에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체력이 반타작이 되었다. 나는 병원 내에 있는 카페로 가려다가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지금 병원 내 카페 갔다간 체력이 방전될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빠져나온 병원. 모처럼 신촌 앞 거리를 거닐다보니 오래 전 들렀던 오락실이 눈에 들어왔다.
체력도 없고, 놀 기운도 없고, 혼자서는 더더욱 놀 생각도 없지만···
[500점 달성시 인형 증정!]이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슈팅 게임입니다. 500점 이상 달성하시면 인형을 드려요~”
오락실 직원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직 낮 시간이라 그런지 오락실은 꽤 한적한 상황. 나는 홀린듯이 그 안으로 들어갔고,
탕! 탕! 탕!
“와! 사격 너무 잘하시는데요? 군필이세요?”
“경품으로 인형 드립니다! 여자친구 분한테 선물하세요~”
어쩌다보니 인형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예전에 최한별에게 줬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강아지 인형을.
‘…흠. 선물로 줄까.’
어차피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것도 아니고. 저번에 보니 강아지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인형을 챙긴 후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한시간 내로 오신다고 했으니까···이제 슬슬 갈까나.’
약간의 일탈을 마치고 난 뒤, 나는 병원 앞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렇게 쇼핑백에 든 인형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살짝 올리고 있는데,
“Ah? 만덕 연구원님이어요?”
“…?”
“저 완전, totally, Fan이에요! Big fan of you!”
어떤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꽤나 체격이 있는 남자였다.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어쩐지 낯이 익다.
“Wow! I never expected to see you here. It’s so nice to meet you.(와! 여기서 뵙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너무 반가워요.)”
“아···감사합니다.”
“Did you receive the gift I sent you?(혹시 제가 보낸 선물은 받으셨어요?)”
“…선물이요?”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눈꼬리가 휘어졌다.
“Squeak! Squeak!”
“…?”
“한국어로 뭐라하더라···아!”
그가 양 손으로 따옴표 표시를 하며 말했다.
“찍찍!”
“…네?”
“쥐 선물 받으셨잖아요.”
어.
그 순간, 몸이 도로쪽으로 밀쳐졌다.
“그러게 멈추셨어야죠. 연구.”
다음은 당신이라고 했잖아요.
아. 빨간불.
빠아아아아아앙—!!!!!
쾅!
몸이 붕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