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09화(209/221)
209. 평범한 일상 (3)
209. 평범한 일상 (3)
“재성아. 너 진짜 그 교양 들을려고?”
“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이제형과 다르게, 동생 이재성은 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학점도 다 채웠잖아. 대체 왜?”
“…김성진 교수님 수업은 다 들어보고 졸업하고 싶으니까.”
진심인 듯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재성의 모습에 이제형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 하려는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지만…솔직히 이거 하나 때문에 졸업을 미룬다는게 형은 좀···그래.”
그냥 학점이 남아서 듣는거라면 이제형도 이렇게 뭐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성은 졸업을 앞두고, 심지어 모든 졸업 학점을 다 채운 상황에서 이 강의 하나를 듣겠다고 졸업을 미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재성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세세한 걸 신경쓰다보면 큰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상이지. 자네는 지금 약의 형태에 집착하고 있어.’
‘아밀로잽의 목표는 뇌에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를 분해해내는 거네. 배출 역시 중요하지만 1차 목표는 분해라는 걸 잊지말고 연구를 진행해보게나.’
‘…대학원에 가 볼 생각은 없나?’
김성진과 함께 아밀로잽 연구를 하면서 이재성은 알게모르게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고리타분한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학문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다른 교수들과는 달랐다.
그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형식적으로 맺어지는 그런 사제관계가 아닌, 진심으로 연구에 대해 조언해주고 생각해주는 모습.
‘김성진 교수님이면 카이스트에서도 유명하신 분이지. 사실 해외에서도 모셔가려고 난리였는데 그냥 한국에 남아계셨다고 하더라고.’
‘왜요?’
‘글쎄? 굳이 해외로 가면서까지 연구를 할 만한 내용은 없다고 생각하셨나봐.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연구들이니까.’
함께 연구실을 사용하던 대학원 형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김성진에 대한 미담은 끊임없이 나왔다.
“교수님이 교양 수업 하시는 거 엄청 드문 일이라고 들었거든.”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수업 하나 더 듣는 거고, 그동안 준비할 것도 있으니까. 그냥 들어볼래.”
애초에 김성진과 이재성은 과 자체가 다르다. 이제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이재성이 김성진 밑에서 배울 수 있는 일은 없을 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동생이 한번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못 꺾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럼 이거 듣고 졸업하면 대학원 가는거지?”
“…어.”
“?”
분명 저번까지만해도 석박사 통합과정이다 뭐다 잔뜩 알아보고 왔던 동생이다. 그런데 대학원 이야기에 미묘하게 느리게 반응했다.
“설마 대학원 안 가려고?”
“아니. 갈거야. 해외로.”
“해외?”
해외 유학이라니.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물론 이재성의 성적이라면 해외 유학을 하는데 문제는 없지만…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인지 이재성은 해외 유학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유학 선언에 이제형이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재성은 가끔씩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여유만 된다면 해외로 보내 좀 더 성장하게 두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해외 유학이면 돈이···.”
유학은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해외 학비만 해도 수 천이 깨진다. 심지어 학부 과정과 다르게 석박사 과정은 이렇다 할 장학금도 없기에…
집안 형편상 그런 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이제형이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하자, 이재성이 살짝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형. 지금 돈 걱정 하는거야?”
“당연하지. 작은 돈도 아니고 큰 돈인데.”
하지만 이재성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리고는 살짝 뿌듯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했다.
“아밀로잽 돈 들어왔어.”
“돈?”
이재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이제형에게 들이밀었다. 이제형은 통장 속 찍혀있는 무수히 많은 0을 보더니 저절로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을 본 이재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치매 환자들한테는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 그래도 해외 수출이다 뭐다 돈이 계속 들어오네?”
“너, 너 이거 부모님도 아셔?”
“용돈도 드렸는 걸?”
윽. 순간 갑자기 동생이 커보이는 듯한 착각에 이제형이 주춤했다. 형으로서의 권위가 평소에도 없긴 했지만, 경제적인 부분까지 밀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윽고 이제형은 정신을 차리고 짐짓 무게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불필요한 곳에 쓰는 건 안돼.”
“공부하는 건데? 불필요한 곳 아닌데?”
“···그, 그건 그렇지만…”
씩 웃어보이는 이재성. 그리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제형을 보며 물었다.
“그전에 형 이참에 차 사줄까? 외제차 한 대 뽑아줄게.”
“아니…”
“그리고 그 옷. 너무 오래 입은 거 아니야? 유행 다 지났어. 옷 사줄까?”
“아, 아니 이거 저번 달에 산 건데…”
10살이나 어린 동생인 만큼 이런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나름 귀엽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형. 그리고 이 핸드폰 언제까지 쓸거야? 완전 구형이잖아. 요즘은 이런거 들고 다니면 사람들 무시한다고.”
“핸드폰 때문에 무시당하는 거면 차라리 무시당할래.”
“이제 우리도 이사가자. 한강뷰 어때, 한강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재성. 이제형은 마음을 다잡았다.
“악! 왜 때려!”
“동생이 잘못 된 길을 가지 않는 형의 마음.”
주먹으로 꿀밤을 때렸다. 부디 돈자랑하는 녀석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꿀밤 세례가 이어지고 난 뒤,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이재성을 바라보며 이제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해외로 가겠다고 하면 말리진 않을게. 애초에 말릴 이유도 없고.”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런데 해외에 가는 거···만덕이 때문에 가는 건 아니지?”
“걔가 갑자기 왜 나와.”
“너 예전부터 만덕이만 보면 혼자 라이벌 의식하고 그랬잖아.”
“내, 내가 언제? 그런 적 없거든?”
“늘 그랬거든.”
동생은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제 3자가 보면 더 객관적으로 잘 보이는 법이다.
안그래도 과학고에 떨어지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애인데···이제형은 동생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건가 싶어 마음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이재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걔랑 나는 라이벌도 뭐도 아니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내 옷 사줄 돈으로 부모님 선물이나 사드려. 나는 괜찮으니까.”
이재성은 투덜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형은 말없이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PMP를 바라봤다.
이제는 스마트폰도 있겠다, 굳이 쓰지 않는 물건. 하지만 이재성은 마치 보물이라도 되듯이 PMP를 늘 들고 다녔다.
돈도 많은 녀석이 저런 구닥다리를…문득 이재성이 자퇴하겠다고 한 날이 떠올랐다.
‘형. 나 자퇴하려고.’
‘···뭐? 미쳤어?’
갑자기 동생이 자퇴하겠다고 선언한 날. 집안이 뒤집어졌다. 고등학교에서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자퇴라니.
가족들 모두 이재성을 말렸지만, 그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재성아. 그 연구를 꼭 지금 할 필요는 없는거잖아. 인생엔 타이밍이라는게 있어. 지금은 고등학교 생활이 의미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때 친구들이랑 놀았던 기억이 나중에 다 추억이 된다니까?’
‘형도 친구 없었잖아.’
‘···어쨌든 지금 굳이 자퇴를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거야.’
완고하게 막자, 이재성이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긴 시간끝에 입을 열었다.
‘추억 있어.’
학교는 아니지만. 이라고 짧게 덧붙이는 이재성의 표정은 밝았다.
‘···걱정보다는 격려를 해주는게 맞는거겠지.’
동생이 밝게 웃는 모습이 손에 꼽았기에···. 결국 가족들은 이재성의 뜻대로 자퇴를 허락해줬고, 결과적으론 카이스트에 입학해 잘 지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계획이 있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형은 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형은 이제 나이가 30 중반인데 여친 없어?”
“···”
“일단 그 옷부터 바꿔야 여친이 생길 것 같…악!”
결국 끝까지 얄밉게 구는 동생을 진심을 담아 꿀밤을 먹이고 나서야 대화가 끝이났다.
*
떨리는 첫 강의.
들어오는 학생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주겠다고 다짐하며 단상앞에 서 있는데,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
“···안녕?”
“···”
“···하세요?”
이재성이 멀뚱멀뚱 문 앞에 서있었다. 마치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몰카?”
“안녕하세요, 이재성 학생.”
“쌍둥이들 여기 숨어있지. 야. 나와. 재미없어.”
“이번에 생명의 신비 강의를 맡게 된 김만덕입니다.”
“이 뭔…”
이재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좁아지다 못해 아예 눈썹이 하나로 붙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뒤로 몰려드는 인파에 결국 강의실 안으로 쓸려들어왔다.
“와!! 김만덕 연구원님!! 이 수업 진행해주시는거에요?”
“대박. 저 집에 김만덕 연구원님 사진도 있어요. 저희 집에서 프린트해서 부적처럼 붙여놓는다니까요?”
“김성진 교수님은요? 강의계획서에는 김성진 교수님 이름 적혀있었는데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 이런 시선은 언제나 부담스럽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네. 이번 수업은 김성진 교수님 대신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대박. 애들한테 알려야지. 아마 다들 이 수업 듣겠다고 몰려올 걸요?”
“그럼 김성진 교수님은요?”
“1년동안 안식년입니다.”
“잠깐만, 안식년이라고?”
갑작스러운 반말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재성은 그런 시선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처음 듣는 소리였는지 적잖이 당황한 모습.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한숨과 함께 나를 바라봤다.
“그럼 1년동안 김성진 교수님 대신에···”
“제가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냐.”
“학생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싱긋 웃으며 말하자, 이재성이 경멸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저었다. 이내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 이재성.
첫 수업부터 학생이 도망가게 둘 순 없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디가?”
“수강 취소하러 간다.”
“왜. 나 수업 준비 많이 했는데.”
이재성은 진심이냐는 눈으로 뒤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쯧, 여전하네. 나는 작게 혀를 차고 난 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을 바라봤다. 1학년 대상으로 개설된 교양이어서 그런지 다들 앳된 얼굴이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기대하고 있는 학생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볍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다시 제 소개를 하자면···이번에 생명의 신비 강의를 맡게 된 김만덕 입니다.”
“대박···좀 있다가 사진 찍어도 돼요?”
“저는 싸인 좀···”
뭔가 수업이라기보다는 팬사인회에 온 듯한 느낌이지만, 이정도는 어느정도 예상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업을 시작했다.
“생명의 신비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어져있지만, 이 수업은 기초 교양 과목입니다. 생물학 전반에 있어서 기본 지식들을 알려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설명이 시작되자 학생들이 집중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은 첫날인만큼 음···자기소개를 해볼까 하는데 어떤가요?”
쌍둥이들은 첫날 자기소개만큼은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교수 입장이 되니 좀 궁금해졌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일지. 김성진 교수님은 이 자리에서 어떤 걸 가르쳐왔을지.
이 학생들이 훗날 어떤 걸 발견하게 될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화학과에 입학하게 된 조원서입니다. 성일과학고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산과고에서 온 이상역입니다. 전공은 물리학과입니다.”
확실히 과학고 출신의 학생들이 많았다. 과학고가 아니더라도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했던 실적을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약간의 자부심과 약간의 자만심이 오묘히 섞여있는 목소리로.
애초에 대학교 자기소개에서 누가 고등학교를 말하냐고.
하지만 나는 천천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점차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 학생들이 과고 학생이어서? 아니면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져서?
아니다.
“그런데 왜···생물학 전공 학생은 아무도 없는 건가요?”
이 많은 학생들 중에 생물학 전공 학생은 한명도 없었으니까.
그때, 한 학생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죄송합니다! 강의실을 착각해서···!”
“전공이?”
“예? 새, 생물학입니다!”
“A.”
“예?”
“A+입니다.”
그렇게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