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화(21/221)
21. 증명 (2)
21. 증명 (2)
미국 학회로 가는 일은 어렵진 않았다. 여권만 있으면 되었다.
“아니, 여기서 다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바쁘신 분이 어떻게…평소에 수학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하하, 수학에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조금 흥미가 가는 일이 생겨서 말이죠.”
처음 가보는 학회. 물론 전생에도 여러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거물들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박사학위도 제대로 못 딴 나와 다르게 이 사람들은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지금 눈 앞에서 사람좋은 미소로 교장 이철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 바로 과학창의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추후에 교육부 장관까지 올라가게 되는 한학수였다.
‘훗날 교육부 장관이랑 이철규가 구면인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한학수가 왜 여기에?’
아무리 한국 교육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미국 학회에 초대될 정도의 급은 아니었다. 이곳은 세계 7대 난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곳. 적어도 수학에 발 한짝은 담그고 있어야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렇게 치면 이철규가 이곳에 있는 곳도 이해가 안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오, 저기에 오늘 주인공이 나타나시는군.”
한학수의 말과 동시에 입구쪽에 검은색 철테 안경을 쓴 서양인이 나타났다. 그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다가 이쪽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이곳으로 걸어오더니 자연스럽게 한학수와 이철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어 대화들. 오랜 시간 영어를 접하며 살아왔기에 이정도 대화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룸메이트였다니. 세상 참 좁군.’
한학수의 전공은 화학이었지만 전공 상관없이 다양한 인종들을 섞어 기숙사를 운영하는 스탠포드 대학의 운영 방침에 따라 미국인 앤드류 부커와 한국인 한학수는 같은 룸메이트였고, 그 결과 둘의 우정은 이런 결과를 내게 되었다.
“Thank you for inviting me. Thanks to you, I was able to come to a precious place.” (초대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귀한 자리에 올 수 있었어.)”
“It’s just a presentation. I wonder who this younger student is?(그냥 발표하는 자리인 걸. 그보다 이 어린 학생은 누군지 궁금한데?)”
부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학수 역시 나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은 상태였기에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이철규를 바라봤다.
이철규 역시 고민하는게 느껴졌다. ‘세계 7대 난제를 푼 학생’ 이라고 소개하는 건 부커에게 모욕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컸다.
‘하긴, 한 평생을 연구해서 알아낸 자리에 느닷없이 먼저 푼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나라도 당황할 것 같긴 해.’
애초에 이 학회가 급작스럽게 열린 이유도 이 방정식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 학생 한명이 내가 먼저 문제를 풀었다고 말한다면? 어떤식으로든 큰 파장을 일으킬 게 보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만약 눈 앞의 명예가 탐이 안나냐고 묻는다면…솔직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이 사람 대신 저 위에 올라가, 내가 이미 교사 회의때 사람들에게 보여줬던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이 방정식에 대한 해답을 증명해보인다면,
나는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터였다. 그리고 금성 장학생으로 추천되는 것도 일도 아니겠지.
“I am very interested in math, but I have been selected as a representative of Korean students. Thank you for the precious opportunity.(수학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 한국 학생 대표로 선정되어 왔습니다.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명목도 ‘한국 학생 대표’였기에 올 수 있었다. 다양한 것을 보고 배워가라는 취지.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초대받은 나라의 대표와 동행하여 잠재력이 있는 학생만 선정하고 그 중에서도 극 소수만 이곳에 올 수 있었는데 이철규가 그 티켓을 나한테 쓴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배우는 학생’ 스탠스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전생의 나였으면 이런건 생각도 하지 않고 눈 앞의 이득만 취하려고 혈안이 되었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이룬 성과가 아니야. 이 사람이 먼저 발견해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게 뻔해.’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을 낼름 뺏어가는 건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해서 업적을 인정받는다고 한들 수학쪽으로 계속 있을 생각도 아니었고.
인정받아야 할 사람은 인정받을 수 있게.
그것이 과거로 회귀한 내가 다짐한 신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동아리 부장 김영재가 평소 관심있어 하던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과하게 개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고.
혼자서 독식해봤자 오래가지 못한다는 건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Oh, I heard that there is a high interest in math in Korea. Even young children study math until late at night. It’s amazing. (오, 안그래도 한국에서는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밤 늦게까지 수학을 공부한다고요. 놀랍습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이유가 수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학을 위한 것이긴 했지만, 굳이 그런 진실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What is your name?(이름이 뭡니까?)”
“I’m Kim Mandeok.(김만덕입니다.)”
내 이름은 짧게 읊조리던 부커는 시간이 되었는지 슬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나는 떠나려는 그와 가볍게 악수하며 말했다.
“Can we talk after the conference? I’d like to discuss the algorithm I made.(학회가 끝난 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든 알고리즘에 관해 의논하고 싶습니다.)”
“algorithm?(알고리즘?)”
“Yes. The algorithm that you worked hard on living with a supercomputer.(네. 당신이 슈퍼컴퓨터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연구했던 그 알고리즘 말입니다.)”
내 말에 부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물론 이번 생에서 그의 업적을 뺏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회를 그냥 놓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거물급 인사들에게 나를 각인시킨다. 내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쓰일 터였다.
내가 챙길 수 있는 것까지는 다 챙기고 가자.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얼굴만 튼다고 해도 나중에 장학생 추천서를 받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부커는 재밌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Discussions on math are always welcome.(수학에 대한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이죠.)”
“Thank you.(감사합니다.)”
그렇게 부커는 자리를 떠났고, 이철규와 한학수가 나를 바라봤다.
“역시 한국과학고 학생이라 그런지 영어 대화도 수준급이구만?”
“하하. 우리 학교 학생들이야 뭐, 영어는 기본 아니겠나?”
이철규가 자랑스러운 자식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이윽고 한학수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와 이철규는 조금 학회장에서 뒤쪽 자리에 배치된 자리에 앉았다. 수학자도, 그렇다고 과학자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인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였다.
“한국 학생들이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를 비롯해서 상을 휩쓸어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그덕분에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진 상태야. 그래서 이런 자리에까지도 올 수 있는거고.”
“어쩐지 이런 곳에 저같은 학생이 와도 되는건지 싶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학회는 교육자들에게도 기회가 열렸거든. 이번 학회의 뜨거운 감자가 ‘컴퓨터와 수학’이니 이번 기회에 컴퓨터에 대해 더 널리 알릴 생각인거겠지.”
실제로 수학이라는 학문은 생각보다 보수적인 곳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풀이를 한다는 건 인간의 사고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한국의 경우엔 계산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니까. 뭐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한국의 교육, 수학에 대해 생각하던 중에 마이크 소리가 울려퍼졌다.
학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 오늘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이렇게 다들 모이게 된 가장 주된 이유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곧바로 익숙한 얼굴이 연설대로 나왔다.
앤드류 부커. 60여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를 컴퓨터를 이용해 풀어낸 천재.
그러나 그의 등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회장내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그는 발표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k값이 1에서 100까지의 숫자들을 만족하는 x, y, z값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단 33과 42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리고 그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크린 위에 띄어진 무수한 코딩들을 보면서 몇몇 사람들이 탄식을 질렀다. 그렇게 그의 설명이 끝나고 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머리가 희끗한 남성이었다. 자신을 미국 대학의 수학 교수라고 밝힌 그는 다소 권위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발견해 낸 업적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꼭 이 방식으로만 풀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뭐라고 해야할까, 이건 그냥 하나씩 다 해보는거니까요. 수학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다른 수학자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류 부커는 이 상황을 예상했는지 반박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수학자님. 의견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수학자인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수학적이라는 말은 다른 기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문제를 풀어내야한다는 뜻인가요?”
“적어도 저런 건 수학적이지 않다는거죠. 당신이 운이 좋아서 이곳에 온 것처럼 말입니다. 굳이 당신의 저런 알고리즘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누군가가 풀어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인정은 받았을겁니다. 직접 하나하나 다 해봤을테니까요.”
“무례도 정도껏입니다.”
“하! 무례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수학자들에겐 모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우리 모두의 노력을 저런 기계 하나로 다 없애버렸다고요! 우리가 밤낮을 고민하는 동안 당신은 그저 저 멍청한 기계 하나에 입력만 하고 잠이나 쿨쿨 잤겠죠! 어차피 계산은 컴퓨터가 다 해줄테니까!”
장내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기존의 수학을 고수하던 구 수학자들과 새로운 신식 기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신 수학자들의 대립이 팽배해지는 가운데, 학회 주최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지금 다소 격앙된 분위기인 관계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참석자분들께서는 20분 뒤에 다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주최자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씩씩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황이 우호적이진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하군.”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철규가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한국 교육을 이끌어나갈 그에게도 이 문제는 복잡한 문제로 다가올 터였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로 이어질 문제일테니까.
그러나 나는 비교적 차분한 상태였다. 오히려 이렇게 반대하는 입장이 강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차피 멀지 않은 미래에서는 컴퓨터의 발달로 무궁무진한 문제들이 풀어지게 되니까 말이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일어난 문제였다.
‘물론 인간이 컴퓨터보다 낫다고 생각해. 하지만 컴퓨터가 뛰어난 부분도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어.’
대표적으로 계산 능력. 애초에 컴퓨터는 계산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였다. 인간의 계산 능력을 월등히 넘어선지 오래. 그 어떤 인간도 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제 그 부분이 사고력 부분까지 넘어오니 위기감을 느끼는 거겠지.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
이대로면 수학계에서는 컴퓨터를 두고 긴 논쟁을 피할 수 없을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선생님. 학회가 끝나고 저분과 이야기 할 시간이 있을까요?”
“하하, 아까 대화때문에 그러나?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을것 같군. 이미 예정 시간보다 지연된 상황이어서 말이지.”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계를 쳐다봤다. 휴식 시간이 끝나기까지 10분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려는건가?”
“아뇨.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누구랑?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이철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알고리즘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