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0화(210/221)
210. 평범한 일상 (4)
210. 평범한 일상 (4)
“수강 취소가…안된다고요?”
“네.”
“왜, 왜요? 원래는 수강 정정기간때 취소 됐잖아요.”
수강 홈페이지에서 ‘생명의 신비’ 과목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에러가 떴다. 마음 한켠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이재성은 결국 행정실로 직행했다.
수강 관련해 업무를 담당하던 여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말을 이었다.
“그게 이번에 김만덕 교수님으로 변경되면서 학생들이 몰려들었거든요. 다들 너도나도 듣고 싶다고 난리여서.”
“그거랑 취소랑 무슨 상관인데요?”
“학생도 알고 있죠? 저번 학기에 강의 판매하다가 학생들 정학 먹은 거.”
갑자기 지난 번 이야기를 꺼내는 여자. 이재성은 이 이야기 맥락을 따라갈 수 없어 미간만 좁혔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는 수강 취소 못하게 하고 있어요. 지금 학생도 어디서 판매글 올리고 그런 거 아니죠?”
“아니…그런거 아니에요. 그리고 수강 취소를 못하게 하다뇨. 그런게 어디있어요? 막말로 수업 듣다가 아니다 싶으면 학생이 취소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정 그러면 교수님한테 말씀드려보세요. 교수님 권한으로 수강 취소는 가능하니까.”
이재성이 분한듯이 토로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고 결국 이렇다 할 수확을 얻지 못한 채, 행정실 밖으로 나왔다.
“하아···이게 대체 말이 되냐고.”
그는 양 손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신음했다.
이대로면 김만덕 밑에서 수업을 들어야한다. 그녀석이 수업을 잘하고 말고의 문제는 둘째치고, 그 상하 관계가 싫다고.
만약 이대로 김만덕의 수업을 듣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상황이 저절로 떠올랐다.
교수가 된 김만덕과,
그 밑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 이재성.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동등한 위치였는데 갑자기 저리 성장해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건지는 모르겠지만…김성진 교수님도 아닌데 굳이 그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지.’
애초에 이 수업은 김성진 교수님 때문에 신청한 강좌다. 그게 달라졌다면 굳이 이 수업을 들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수강 취소 해달라하자.’
빠른 판단. 빠른 행동.
이재성은 곧바로 김성진 사용하던 연구실로 향했다. 필시 그곳에 김만덕이 있을테니까.
“야. 너 지금 수강–?”
별다른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었고, 그곳엔 김만덕이 아닌 이인영이 서 있었다.
중단발 머리카락이 열린 창문 틈새로 살짝 흔들렸다. 햇빛을 역광으로 등지고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미인.
고등학생때와 달리 대학생이 되면서 화장을 배웠는지 조금 달라진 외모. 오늘은 어째선지 원피스까지 입고 있었지만··· 그런게 이재성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이재성은 마치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이인영을 바라봤다.
“너 왜 여기 있냐?”
“너, 너야말로 여기 왜 왔는데?”
“내가 먼저 물어봤거든? 왜 왔냐니까?”
이인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가 고민 끝에 한마디를 뱉었다.
“그냥 친구보러 왔다. 왜?”
“그냥 친구보러 화장하고 치마까지 입고 오냐?”
“네가 뭔 상관인데?”
이인영은 앙칼진 표정으로 이재성을 쏘아붙였다. 결코 자신은 오늘 신경쓰지 않았으며, 화장도 그냥 친구들이 해줬을 뿐, 하고 올 생각이 없었다고 이재성이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재성은 문을 열었을 때, 순간적으로 밝게 웃어보이던 이인영의 표정을 기억했다.
분명 김만덕이 들어왔던거라고 착각했다가, 이재성이 나타나자 저렇게 벌레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 터.
둘이 썸을 타든 뭘 하든 이재성하고는 별 관련없는 일이었다. 이재성의 눈에 이인영은 그냥 고릴라처럼 보일 뿐이었으니까.
“수강 취소 해달라고 왔다.”
“수강 취소?”
“어. 무슨 말도 안되는 규정 때문에 취소하려면 교수한테 직접 하란다.”
이인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흐음?”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김만덕한테서 수업을 듣는거네?”
“그러니까 그걸 안 하려고 온 거라고 멍청아.”
“근데 그건 김만덕이 정할 일 아니야? 걔가 안해준다고 하면 별 수 없는거고.”
이인영이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의뭉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재성은 그 미소를 보며 불길한 기운을 떨칠 수 없었다.
“뭐야. 뭐 들은 거라도 있어?”
“아니, 전에 김만덕 만났는데 너한테 쌓인 게 좀 많은 것 같더라고? 아밀로잽 연구하면서 당한게 너무 많다나?”
“뭐, 뭐래.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해.”
“글쎄···그건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싱긋 웃으며 이야기하는 이인영. 그 말에 이재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검은색 소파에 풀썩 앉았다.
“됐고, 김만덕 언제 오는데?”
“아마 곧 올 거야. 3시 전까지 온다고 했거든.”
티격태격 대면서 둘은 김만덕을 기다렸다. 이인영은 이재성을 보며 “누가보면 너희 집 안방인 줄 알겠다?” 라고 타박했고, 이재성은 “의자가 앉으라고 있는거지, 그럼 땅바닥에 앉아있어?” 라며 응수했다.
‘인영 선배. 이번에 들어온 새내기 중에 걔 잘생겼지 않아요?’
‘누구?’
‘이재성이요.’
‘너 빨리 안과 가봐. 아니, 정신과에 가봐야하나? 미의 기준이 사람들이랑 많이 다른 것 같으니까.’
이인영의 눈에 이재성은 그저 바다 속 오징어 한마리였고,
‘야야. 우리 과에서 넘볼 수 없는 존재가 있다. 한마디로 화학과 여신.’
‘여, 여 뭐요?’
‘여신이라고. 너랑 동갑인데 한 학번 위인데. 이인영이라고 들어봤지?’
‘형. 혹시 이인영한테 약점 잡히셨어요?’
화학과 여신이라는 말에 이재성은 미간을 좁히며 진심으로 부정했다. 이재성의 눈에 이인영은 그저 흉폭한 고릴라 한마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둘은 같은 과이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뭐야, 뭐야. 둘 다 화올 금메달 수상자들이었다고?’
‘둘이 친해? 설마 사귀는 거 아니야?’
안그래도 이인영은 캠퍼스 내에서 여신으로 통하고 있었기에…부러움 가득 담은 눈으로 사람들은 이재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심으로 혐오했다.
‘전혀 안 친한데요.’
‘그냥 남이에요. 남.’
같이 화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동고동락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법 했지만, 둘에게는 그런 감정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솔직히 김만덕 아니었으면 너랑 말 하는 일도 없었을 걸.’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앞으로 아는 척 하지 마라.’
‘내가 할 소리.’
김만덕이라는 연결 고리가 사라지고 나니, 둘의 대화는 아예 없어졌었고, 그나마 친했던 이인성과 이재성이 간간히 연락할 뿐. 이인영과 이재성은 이렇다 할 대화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김만덕이 올 때까지 지금 이 연구실은··· 침묵만 맴돌고 있었다.
초침 소리만 똑딱똑딱 들려왔다. 새학기, 봄날의 따뜻한 기운이 연구실 안을 가득 메웠다. 적막이 끝없이 이어지고, 계속 서있던 이인영이 마지못해 이재성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으려는 찰나,
“어? 뭐야. 재성이도 와 있었네?”
그때, 문을 열고 김만덕이 들어왔다.
이인영은 순간적으로 앉으려던 자세에서 바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로 이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왔냐?”
“인영이는 아까 연락했고···재성이 넌 무슨 일 있어?”
“수강 취소.”
“어?”
“네가 맡은 생명의 신비 강의. 거기서 내 이름 빼달라고. 행정실에서 직접 말하라고 해서 왔다.”
김만덕은 아하, 하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더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흐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밝고, 명랑하게 말했다.
“안될 것 같은데.”
“뭐?”
“안그래도 이번에 추가로 수업 듣고 싶다고 온 학생들이 많았거든.”
김만덕이 안타깝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을 다 받아주자니 부담이 되고, 그렇다고 누구는 받아주고 안 받아주자니 형평성에 어긋나서…”
“어긋나서?”
“그냥 청강만 허용해주기로 했어.”
이재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빠른 판단과 빠른 행동력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수강 취소가 안된다고?
게다가 김만덕이 말한 이유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거랑 내 취소랑 무슨 상관인데.”
“근데 이 수업 신청 인원이 딱 10명이더라고. 심지어 거기에 생물학과는 1명뿐이야.”
“그래서?”
“너 빠지면 폐강이네?”
김만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공은 5명, 교양은 10명이 모여야 개설되는데, 김성진의 경우 A를 잘 주지 않는 교수로 소문이 나있던 탓에 다들 그의 교양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여기 모인 10명은 수강 신청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듣는 학생이거나, 혹은 김성진만 보고 신청한 사람이었다.
김성진만 보고 이 강의를 신청했던 이재성은 혈압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러면 날 빼고 다른 사람을 받으면 되잖아. 이해가 안돼?”
“아니, 그렇게 되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니까? 누구는 받아주고, 누구는 안 받아주고 그런 잔인한 행동을 나는 할 수 없어.”
“뭔…”
마치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김만덕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장난끼가 다분했다. 그 모습을 본 이재성이 모든 감정이 빠져버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강 취소 안해주면 민원 넣을거야.”
“방금 이제형 연구원님이랑 이야기하고 왔는데, 동생 잘 부탁한다고 하시더라.”
“…너, 너가 형을 왜 만나?”
놀란 목소리로 버벅이며 말하는 이재성. 그리고 며칠 전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재성아. 너 이번에 듣는 과목 이름이 뭐라고 했지? 김성진 교수님이 하신다고 한 거.’
‘생명의 신비. 왜?’
‘아…아무것도 아니야.’
불과 며칠 전, 이제형은 이 과목 이름을 물어봤었다.
강의 이름을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것 까지.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제형이 형이 걱정이 많더라고. 동생이 돈 맛을 보고 나더니 형을 무시한다나 뭐라나…”
“그, 그런 적 없거든? 그리고 10살이나 차이나는데 형은 아니지 않냐? 호칭 제대로 하지?”
“하지만 형이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아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김만덕은 괜히 틱틱대는 이재성을 보며 말없이 웃었다.
“사실 이번에 치매 연구소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거든. 거기에 제형이 형도 참여하게 되었어.”
“형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김만덕이 치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 이미 신문이나 방송에서 숱하게 접한 내용이었지만, 그게 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도무지 연관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형이 하던 연구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재’ 연구였지, 치매가 아니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있자, 김만덕이 씩 웃으며 말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뇌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는 동일해. 너 혹시 형이 하던 연구 뭐였는지 구체적으로 들은 적 있어?”
“…몰라. 말도 안되는 연구길래 그냥 듣다가 때려치라고 했는데.”
“와, 너 형한테 나중에 사과해라 꼭.”
김만덕이 불효자를 보듯 이재성을 바라봤고, 그런 취급이 불쾌했던 이재성은 별 대꾸없이 서있었다.
“제형이 형이랑 박성민 연구원님이 하던 연구는 단순히 영재에 대한 연구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면 부진 학생들이나 경계선 지능의 학생들을 일정 범주 안으로 끌어올리는 연구도 같이 진행하고 있었어.”
“그게 치매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인지 능력 개선.”
인지 능력? 이재성이 미간을 좁히며 되묻자, 김만덕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지 능력이라는 건 한마디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구별할 수 있는, 그런 모든 능력들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어.”
“그래서?”
“치매 환자의 경우엔 점점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지.”
떨어진 인지 능력. 원인은 다양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뇌의 일정 부분이 손상. 그리고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지거나 혹은 기존에 뇌세포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시냅스가 약해지면서 세포들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였다.
“물론 줄기세포로 뇌세포를 복구해내면 되지만···복구를 해낸다고 해도 인지능력을 예전처럼 향상시키려면 일종의 길 작업이 필요해.”
“길 작업?”
“뇌세포가 다른 세포들이랑 시냅스를 연결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거야. 줄기세포가 자동차라면 제형이 형은 도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연구하시는 거지.”
“…”
이재성은 침묵했다. 그동안 형이 하는 연구는 쓸데없는 연구라며 무시하기 일쑤 였는데···정작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건 나였나, 하는 생각이 미쳤다.
말이 없어진 이재성을 보며 김만덕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사실 네 도움도 필요해.”
“내 도움?”
“박성민 연구원님은 약물을 사용하는 걸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시지만···난 처음 시냅스가 형성될 때 만큼이라도 약물 사용이 필요하다고 보거든. 물론 과하면 뇌에 부하가 걸릴 수 있겠지만 말이야.”
제약회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재성에게 ‘약’은 큰 의미였다.
“아밀로잽도 물론 의의가 있지. 경증 치매 환자에게 뚜렷한 약효를 보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인지 능력 개선 쪽으로 새로운 치료제를 만들 필요가 있어.”
“줄기세포만으로는 불가능해?”
“줄기세포가 만능인 건 아니니까.”
웃으며 이야기하는 김만덕. 그 모습에 이재성은 인터넷에서 줄기세포 치료제를 보며 오갔던 사람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ㅇㅇ: 줄기세포로 치매 치료한다는 발상은 좋긴 한데, 그래봤자 돈 있는 놈들만 치료받을 수 있는 거 아님?] [ㅇㅇ: ㅋㅋㅋㅋ내말이. 어차피 있는 놈들의 세계임. 수술할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음?] [ㅇㅇ: 그래도 나라에서 지원해준다던데···] [ㅇㅇ: 그것도 언젠가 한계가 있겠지. 애초에 비싸게 팔아먹으면 이익인데 누가 싸게 팔겠음? 가만히 앉아있어도 돈방석인데.] [ㅇㅇ: 나중엔 그냥 약국에서도 살 수 있는 약이 나오면 좋겠당···] [ㅇㅇ: 꿈 깨 셈.]“…”
이재성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원했던 것 역시 치매 치료. 그것도 누구나 쉽게 약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는 그런 치매 치료약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에게 병원은 늘 멀었고, 약국은 가까웠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이재성이 경계 가득한 눈으로 김만덕을 바라봤고, 김만덕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자리에 앉아볼래? 혹시 둥글레차 좋아해?”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자–라며 자연스럽게 대화로 유도하는 김만덕. 그들은 옆에 이인영이 있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연구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줄기세포 이식이 끝난 뒤에 투약할 약에 대한건데–”
“흐음···아밀로잽때 하던 거랑은 전혀 다르네.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은데.”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까까지 수강취소 하러 온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진지한 표정으로 연구에 대해 의논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인영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어른들 이야기 하는 곳에 낑겨온 아이처럼, 이인영은 둘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받고, 학과에서 탑을 찍었다고 하더라도 치매 쪽에 있어서는 무지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보통이라면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운하거나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어째선지 이인영에게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저 오래전 김만덕이 했던 말이 떠오를 뿐이었다.
‘…10년뒤에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인영은 입고 있던 원피스를 바라봤다. 기껏 신경써서 꾸미고 왔던 손톱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김만덕을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김만덕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잘 안 날정도로 오래전부터.
하지만 이 감정이 사랑 하나로만 설명할 수 있냐면···
“나도 같이 들어도 돼?”
“어?”
“마침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 그래핀 이용해서 투명 센서칩 연구하고 있거든.”
“어, 어?”
당황한 김만덕을 바라보며 이인영은 확신했다.
사랑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10년뒤에도 볼 수 있을정도로, 성장하고 싶다고.
그래서 김만덕과 동일한 선상에서 마주하고 싶다고.
“뇌에 길을 만들어야한다고 했지? 그거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인영은 싱긋 웃으며 김만덕을 보며 마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