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4화(214/221)
214. 평범한 일상 (8)
214. 평범한 일상 (8)
“어이구. 네가 웬일이냐?”
“웬일은요. 그냥 시간 되니까 찾아온거죠.”
“아이고, 난 또 김성진 그 녀석 보러 간 줄 알았지.”
오랜만에 만난 박성민은 툴툴대며 나를 맞이했다. 앨런 뇌과학 연구소에서 국제치매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그는 모처럼 한국을 방문한 상황이었다.
‘한국에 왔지만, 굳이 마중 나 올 필요는 없다.’ 라는 츤데레 아닌 츤데레 문자를 받고 나는 곧장 공항으로 향했고.
박성민은 생각보다 단촐한 캐리어 하나만 끌고 한국에 온 상황이었다.
“짐이 생각보다 적은데요? 한달동안 있다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어차피 필요한 건 여기서 사면 돼. 그리고 김성진 그 녀석이 쓰는 것들이 내가 쓰는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일 걸?”
아마 휴지도 10겹짜리 고오급 휴지만 쓸 녀석이니까! 라고 말하는 박성민. 그는 한달동안 김성진이 있던 교수동 아파트에 머문다고 했다. 즉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곳 말이다.
은근히 까탈스러운 녀석인 만큼 최대한 집을 더럽게 쓰고 가는게 이번 방문의 목적 아닌 목적이라는 박성민을 보며 나는 하하···하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전에 병원에서 봤던 녀석 아니야?”
“네. 이인성이라고 이번에 물리학과 석박 밟고 있어요.”
“아이고, 별난 녀석이네.”
박성민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한 낯빛의 이인성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끌어당긴 후 물었다.
“그래서 쟤는 왜 데리고 왔는데?”
“부탁 좀 드릴까 해서요.”
“무슨 부탁?”
사실 처음부터 박성민을 떠올렸던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이인성과 박성민은 닮은 듯 달랐으니까.
물리를 좋아해서 물리학과에 왔지만 이게 내 길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인성과,
물리도 좋아해서 학부 시절에 물리학과도 복수전공을 했지만 결국 뇌과학 쪽으로 전공을 정한 박성민.
어떻게 보면 이인성에게 그다지 좋은 모델은 아닐 터였다.
“진로 고민이요.”
나는 박성민에게 짧막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상황을 전했다.
“거절한다.”
그리고 단번에 거절당했다.
박성민은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지금 내가 누굴 봐주고 그럴 때가 아니여. 지금 미국에서도 치매 연구하라고 위에서 난리난 거 알고 있지? 물론 캘리포니아 쪽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최종적으로 치료제 개발은 한국에서 이뤄진 탓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는 마당이라고.”
“그래서 오신 거잖아요. 한국 치매연구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조사하러.”
“어허, 나는 그저 위에서 보내서 왔을 뿐이다. 스파이 취급은 사양한다.”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결백하다고 말하는 박성민. 물론 이미 미국 측의 연락을 받고 박성민을 맞이하러 간 거였다.
이인성은 연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박성민을 보고 있었는데, 박성민은 그 시선이 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쟤 한국과고 출신이잖냐. 어련히 잘 하겠지.”
“어. 알고 계셨네요?”
“나 그 학교에 나름 6개월동안 있었다.”
특별반 수업을 하며 오며가며 마주쳤다는 박성민. 그는 이인성을 한번 흘끗 보고는 내게 말했다.
“솔직히 내가 여유가 있으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견학도 시켜주고 그럴 수 있는데,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 내가 연구소를 옮겼잖니.”
“그런데 왜 갑자기 옮기신거에요?”
“갑자기라고 할 건 없고. 하던 연구는 그대로 진행하고 있어. 그냥 대상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박성민은 원래 이제형과 함께 영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천재의 두뇌는 정말로 뭔가 다른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연구는 점차 인지능력 개선쪽으로 가닥을 잡아갔고 치매 환자와 같이 인지 능력이 저하된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
“잘!!!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오냐!!!”
집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외치는 이인성과 박성민.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부딪혔다.
“이 세상엔 말이야! 어! 얼마나 재수 없는 놈들이 많은지 너는 아직 모를것이다!”
“아닙니다!! 저도 주변에 재수없는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하던 박성민은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었고, 그 안에 김성진이 오래전에 사다놓고 안 마신 위스키를 꺼냈다.
그는 “이런 건 원래 주인 없을 때 다 먹어버려야 해.” 라며 근거 없는 이유를 댔고, 알콜은 절대로 안마시겠다는 나 대신 이인성을 앉혔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인성 역시 아버지를 닮아 애주가였고.
“저저, 저 녀석 봐라. 그 노벨상 시상식에서! 그동안 키워주고, 먹여주고, 가르쳐줬던 은혜는 쏙 빼버리고! 어떻게···어떻게 김성진 이름을 먼저 언급할 수가 있냐는 말이다!!”
“아, 아니 연구원님 이름도 곧바로 이야기했잖아요!”
“그래도!! 김성진이 자기 이름 먼저 불렀다고 얼마나 기고만장을 하던지···아이고···아이고···!”
이윽고 박성민은 땅을 치며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물론 김성진의 이름을 먼저 말하긴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고···!
하지만 박성민에게는 그런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지금도 봐. 모처럼 이렇게 왔는데 술 한잔 안 어울려주는 이 못난 녀석아–!”
“알콜은 뇌에 치명적이라니까요?”
“그 말 마저 김성진 그 녀석이랑 판박이여, 판박이!”
누가 보면 아들인 줄 알겠다고 말하며 박성민은 한번 더 꺼이꺼이 울었다.
꼭 기억해둬야겠다. 박성민의 술주정은 우는 것이며, 한번 시작하면 대성 통곡을 한다는 것까지도.
한차례 통곡을 하던 박성민은 앞에서 술잔을 부딪히고 있는 이인성을 바라봤다.
“그래···진로 고민이 있다고? 뭐가 그리 고민이냐. 내가 비록···노벨상 시상식 때 언급조차 안되었던 그런 놈이지만···들어줄 수는 있다.”
“아니 언급 했었다고요—”
“인생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도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였기에, 놀란 눈으로 이인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잔뜩 거하게 취한 박성민과 다르게 이인성은 멀쩡한 상태였다. 오히려 술을 마셨다는 것도 술냄새가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티가 안났다.
박성민은 엥? 하는 표정으로 이인성을 바라봤다.
“솔직히 고등학생 때까지는 물리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아요.”
박성민은 잘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인성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다봤다.
술잔에 가득 따라진 위스키.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저, 저걸 그냥 마신다고? 미친거 아니야? 분명 위가 다 타버릴텐데, 이인성은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는 듯 했다.
“그냥 인생이 재미가 없어요. 연구실에서 논문 읽는 것도, 실험하는 것도. 그냥 다 재미가 없습니다.”
“허엄···”
“차라리 목표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이인성은 말끝을 흐렸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이런 속마음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어느정도 취했다는 걸 암시했다.
그도 그럴게 내가 봐왔던 이인성은 항상 유쾌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걸 좀체 본 적이 없었다.
박성민은 위스키를 부으며 말했다.
“짜식. 술 누구한테 배웠어?”
“예?”
“위스키는 말이다. 그렇게 한번에 들이켜버리면 코랑 혀가 마비되어버린다고. 그럼 이 뒤의 맛을 못 느낀단 말이다.”
박성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천천히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지, 그렇게 무식하게 냅다 마시는 건 위스키한테도 못할 짓이야.”
“아, 넵.”
“자. 다시 마셔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이인성은 박성민의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위스키를 넘겼다. 그리고는 술에 취했지만 아까보다는 더 또렷한 발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친구 놈은 내로라 하는 천재로 사람들이 박수치고 그러는데 그에 반해 나는 아무것도 이룬게 없는 것 같았거든. 참 그때는 뭘 해도 재미가 없었어.”
“…”
이인성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친구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기에.
“뭘 해도 그녀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굳이 이 길을 걸어야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 그래서 그때 물리학도 복수전공을 하게 된거야. 그 녀석이랑 아예 똑같은 길을 걸어버리면 평생 비교하며 살게 될 것 같았으니까. 나 나름대로의 발악이었던거지.”
김성진한테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박성민이 물리학을 복수전공을 했다고. 그때 그는 “그냥. 심심해서.” 라고 말했다고 했지만···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김성진도 모르는 듯 했다.
이인성은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천재를 연구하게 된 건 다름 아닌 그 녀석에 대한 동경이었다고 할 수 있지. 천재들은 애초부터 나랑 다르다는 걸 알아내면, 그러면 조금은 덜 괴로워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 저녀석은 날때부터 나랑 다른 머리를 가졌으니, 뛰어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면 편하니까 말이야.”
문득 오래전, 박성민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나를 보며 천재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말하던 그.
그는 나를 보며 김성진을 떠올렸던 것일까.
나를 연구하면 그 오래 케케묵은 열등감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래서 천재의 뇌는 달랐나요?”
이인성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다.
박성민은 위스키가 담긴 술잔을 한번 만지작 거렸다.
“아니. 전혀.”
“아···”
“물론 아인슈타인과 같이 인류를 바꿔놓은 천재의 뇌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다, 하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내가 연구하는 천재들은 그냥 평범한 뇌였어. 적당한 크기에 적당히 활성화 된.”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연소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이 녀석의 뇌도 결국 나와 똑같았고 말이야.”
“그러니까 애초에 저는 천재가 아니라–”
“인생이 재미없다는 거. 이 녀석 때문이지?”
박성민은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 나? 내가 뭘 어쨌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인성을 바라봤는데,
“네.”
“?!”
이인성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이인성의 목이 벌겋다. 이녀석 잔뜩 취했다.
“어차피 뭘 해도 이녀석보다 유명해지긴 그른 것 같아서요. 최연소 노벨상도 물 건너 갔어요.”
“그건 맞지. 이 녀석은 내가 봐도 난 놈이거든.”
“여자들도 이녀석만 좋아해요.”
“그건 이해가 안되네.”
갑자기 만담을 늘어놓듯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둘. 하지만 이인성의 고민의 원인이 다름아닌 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나는 어버버 거릴 뿐이었다.
“과고때도 여자애들 다 얘 좋아했어요.”
“야.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 하지마. 누가 날 좋아해?”
“눈치 없는 것까지 짜증납니다.”
“짜증날 만 하네.”
박성민이 안타까운 눈으로 이인성을 바라봤다. 이인성은 말없이 위스키를 들이마셨다. 이번에도 원샷을 했지만 박성민은 말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갑자기 죄인이 된 기분이다. 심지어 내가 뭐 한 것도 없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서 뭐라 했다간 더 큰 폭풍이 몰아칠 것 같았기에 그저 말없이 물만 홀짝였다.
한동안 말 없이 위스키만 서로 주고받던 둘. 긴 침묵 끝에 박성민이 입을 열었다.
“먼저 재미없는 노잼 인생을 걸어온 선배로서 충고하나 하자면, 이 녀석 신경쓰다간 죽을 때까지 노잼으로 살게 될 거다.”
“아니 왜 자꾸 가만히 있는 저를—”
“하지만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이인성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박성민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땐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
“…?”
“비교할 틈도 없이 바빠지면 된다.”
“…예?”
박성민은 빈 잔에 위스키를 콸콸 붓기 시작했다.
“마침 이번 국제치매연구소에서 새로운 연구부서를 만들었지. 치매를 연구하는데 있어 새로운 첨단 기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첨단기기연구부로, 지금 MRI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있는 중이고.”
“MRI라면···”
“뇌를 비롯해 신체 내부를 진단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기이지. 물리학과라면 충분히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만.”
박성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하지만 이인성은 조금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MRI, 그러니까 자기공명영상을 더 발전 시킨다고 한들···”
“생각해봐라. 네가 만든 기기로 질병을 더 정확하고 빨리 진단할 수 있게 된다면 뜻 깊지 않겠나?”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박성민이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이 녀석이 네가 만든 기기가 없으면 연구가 안된다고 찾아오는거다.”
“…!”
“그리고 머리를 땅에 박은 채로 제발 한번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거다!”
“…!!”
상상만 해도 쥑이지? 라며 엄지 손가락을 쳐드는 박성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냥 아무말도 안하기로 했다.
설마 이런 유치한 말에 넘어갈리가···
“…끝내주는데요?”
“진짜냐.”
“하하하하!”
어이없는 눈으로 이인성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저 “개쩌는데···?”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됐다. 그냥 두자. 어차피 술 깨고 나면 다 기억도 못할 것 같으니까.
그 이후로 이인성은 내 앞에서 “김만덕이 과고에 있을 때 얼마나 재수 없었냐면요—”라고 이야기 했고, 박성민은 “와, 김성진이랑 판박이다, 판박이!” 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시고 난 뒤에 둘은 곯아떨어졌고, 다음날 화장실에서 연신 토하는 둘을 보며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