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5화(215/221)
215. 평범한 일상 (9)
215. 평범한 일상 (9)
“저기···남자친구 있으세요?”
“…”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제 취향이셔서요. 혹시 남자친구 없으시면 연락처 좀···”
“…”
“…저기요?”
이로써 4번째. 최한별은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4번째 스마트폰을 그저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처음에는 거절의 의사라도 내비쳤다만, 지금은 아무말도 안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그럼···!”
남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한껏 기대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내뱉으려는 찰나.
“친구는 있어요.”
“예?”
“남자···인 친구.”
살짝 홍조를 띤 채 조용히 읊조리는 최한별. 그 모습을 본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남자인 친구라니. 남사친을 이야기하는 건가? 근데 왜 머뭇거리는 건데?
결국 앞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최한별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축!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김만덕 교수 부임]‘이번에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구나.’
‘교수요?’
‘아마 1년 단기로 온 거겠지만, 뭐.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니?’
가서 축하라도 해주거라, 아버지 최강석은 무심한 목소리로 김만덕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했다. 함께 치매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그는 몸이 열개여도 부족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는 병원에 출근해서 환자들을 돌보고, 밤에는 연구소에 가서 치매 관련 연구를 진행.
평소보다 더 살인적인 스케줄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전보다 한결 편안해보였다. 그도 그럴게 그가 그토록 바라오던 일은 이미 이뤄진 후였으니까.
최강석의 아버지, 최금철은 국을 한번 떠서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좋은 기회겠구나. 이번에 아주 데리고 와라.’
‘? 집에요?’
‘살아있을 때 손주는 보고 죽어야하지 않겠나.’
‘하, 할아버지···!’
최금철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최한별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모친 한은영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도 참! 아직 한별이 스물 셋이에요, 스물 셋!’
‘나때는 그때면 이미 애도 있었어.’
‘아이참. 아버님도! 언제적 이야기를 하시는거에요. 여보, 좀 말려봐요.’
이제 하버드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한 딸이다. 다음주면 바로 다시 출국인데, 결혼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에 한은영이 웃으며 남편을 바라봤다. 하지만 남편의 표정이 꽤 진지했다.
마치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라는 것처럼.
‘고민 하지마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안되니까!’
‘그거야 한별이가 결정할 일이지.’
‘한별이야 당연히···?’
한은영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그도 그럴게 귀까지 빨개진 채로 입을 꾹 닫고 있는 최한별이 있었으니까.
결국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고, 식사 끝에서 최강석은 나지막하게 ‘그런데 연구소에도 인기가 꽤 있더구나.’ 하는 말만 툭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으음…최한별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마음이 답답한데, 왜 답답한지 잘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저기 혹시···”
이번에도 또? 같은 레퍼토리만 몇 번을 겪은 최한별이었기에,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 앞에 들이밀어질 핸드폰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 순간 이상함을 느낀 최한별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진짜 너였네?”
“…!”
“지나가다가 설마 해서 들어왔던건데.”
“어, 어···?”
김만덕이 활짝 웃으며 아는체를 했다. 불과 몇달 전에 아버지 뵈러 치매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봤었던 것 같은데.
안본 사이에 뭔가, 뭔가 더···
최한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뭐라도 말해야할 것 같은데, 말이 혀끝에 걸려 나오지 않는 듯한 느낌.
그러게 어버버 거리는 동안, 김만덕의 손에 들려있던 진동벨이 울렸다.
“그럼 이만 가볼게. 커피 심부름 온 거라.”
“심부름?”
“있어. 재수없는 학생 한 명.”
“?”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김만덕이었지만,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안그래도 아침 식사때 최금철이 한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기에.
“저, 저기!”
“응?”
“그게 그, 보고싶다고.”
“?”
맥락없는 말에 김만덕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뭘 보고 싶은데?”
“그, 그니까 내가 아니라···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최한별은 결국 할아버지 핑계를 대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가 한 말이 시작이었으니 꼭 핑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합리화를 끝낸 최한별이 최대한 덤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 안 그래도 한번 찾아 뵈려고 했는데.”
“언제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그런 뜻으로, 그니까 환자와 연구원의 목적으로 김만덕을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 게 아니겠지만···이러거나 저러거나 집에 데리고 오라고 했던 건 사실이니까.
김만덕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조만간 날잡자. 할아버지 뵈러 갈게.”
“…응.”
“그럼 이만 진짜 가볼게. 얼음 녹으면 또 성질 부리거든.”
김만덕은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질린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렇게 캐리어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레모네이드를 들고 떠나려던 김만덕이 순간 의아한 표정으로 최한별을 바라봤다.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어···공부.”
“카페에서?”
“으응.”
최한별이 살짝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별 눈치가 없는 김만덕은 그저 “그렇구나. 그럼 화이팅.” 이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결국 최한별은 ‘교수 임용 축하해줄 겸 왔어.’ 라는 말은 하지도 못한 채 김만덕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
김성진 대신 교수자리를 맡게 되었다고 해서, 치매 연구소 일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연구소 일은 연구소 일대로, 교수 일은 교수 일대로.
수업을 마치고 온 나는 곧장 치매연구소로 향했다. 가자마자 연구원들과 직원들이 반색하며 나를 반겼다.
“수석님! 아니지, 이제 교수님이라고 불러야하나요?”
“저도 수석 연구원님 강의 듣고 싶은데, 어떻게 안되려나요?”
“하하! 대학교 졸업한 지 까마득인데, 다시 재입학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웃는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들. 나이가 어리다는 점에서 멀어질 법도 한데, 그들은 그런 것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야 이곳에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치매라는 병. 아직 완전히 정복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저도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노벨상 시상식 소감을 듣는 내내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 사람 밑에서 연구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딜 가시든 따라 갈겁니다!’
그 중에는 일종의 내 팬인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팬이에요!” 라고 말하길래 장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진짜 팬클럽 가입 내역까지 보여줬다.
진짜 팬클럽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만···나는 멋쩍게 하하 웃을뿐이었다.
뭐가 되었든간에 사람들이 치매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이었으니까.
“연구원님. 이번에 뇌은행 설립하는 것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한 연구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뇌은행. 연구를 위해 뇌를 기증받는 기관.
이미 일본을 비롯해 미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나라에서 도입되고 있었지만, 한국은 아직이었다.
“뇌를 기증한다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기관도 아닌 뇌니까요.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내년에 뇌은행을 설립하는데 문제가···”
연구원이 말끝을 흐렸다.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과 함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런 식으로 일일히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기다리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연구를 시작하려고 해도 기증된 뇌의 수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연구가 되지도 않는 중이니까요.”
뇌를 기증한다는 것. 다른 기관과 다르게 뇌는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내 뇌가 온전히 연구를 위해서만 이리저리 사용된다는 건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 무섭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원들 입장에서도 답답한 건 매 한가지였다. 치료제가 개발되려면 필연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뇌 연구를 하는데 사용되는 뇌조직. 그 뇌조직 샘플 자체가 적다보니 연구가 늦어지는 것이었다.
“동의 없이 기증이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보하는 방식을 좀 더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식으로요?”
“좀 더 공포스러운 면을 부각하거나 경각심을 갖도록—”
현재 뇌기증과 관련한 홍보는 지하철 내 포스터나, 티비 속 공익광고 등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생활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홍보물들.
연구원은 자신이 생각하는 효율적인 홍보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두려움의 동물이니 원초적인 공포심을 심어줘야한다, 어차피 모두가 좋으라고 하는 일인만큼 이정도의 일은 괜찮다고 본다, 치매라는 질병을 하루빨리 정복해야하지 않겠느냐 등.
쏟아내는 말이 많은 만큼 그가 나름대로 많이 고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구원님. 병원에 입원해보신 적 있으세요?”
“네? 갑자기 그건 왜···어릴 적에 한번 입원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때 어디 다치셨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남자가 살짝 주춤했다. 그리고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다리를 다쳤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었거든요.”
“그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셨겠네요.”
“뭐···아예 못 움직이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다리만 부러진거였거든요.”
경계한 기색을 지우지 않은 채로 조심스레 말하는 남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병원에 입원한 적 있어요. 머리를 좀 다쳤어서요.”
“…”
“그때는 아무곳도 못 가고, 못 듣고, 못 봤었어요.”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뇌사자가 되었던 사실은 이미 전국민에게 알려져있던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내 반발하듯이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뇌 기증 홍보를 해야한다는겁니다. 샘플이 더 많았다면 김만덕 연구원님도 더 빨리 깨어나실 수 있었을테니까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유 아시죠?”
“어떤 이상한 단체때문에···”
이상한 단체. 맞다. 네오 루디즘은 이상하다 못해 정도를 넘어선, 비 상식적인 단체였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그러했다.
“아직도 미국내에선 줄기세포 치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굳이 미국까지 안가도 한국만 봐도 그렇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가 살아난 것도 죄라고 하더라고요.”
중간엽 줄기세포.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몸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하는 거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은 꽤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올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게 사람이니까요. 아무리 제가 뭐라고 이야기한들,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긴 어려워요.”
“그렇지만···그럴수록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거 아닐까요?”
“강하게 밀어붙이면 결국 제 2의 네오 루디즘 사태가 또 일어나겠죠.”
신념의 차이는 무섭다.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을 하게 만드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네오 루디즘 단체 뒤에 정치계 거물이 있었다나봐.’
‘정치계?’
‘응. 꼬리 자르고 도망가려다가 잡혔는데 이름이 엘리엇 어쩌고였는데.’
미국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알려주던 미야가 한가지 소식을 전해줬다.
엘리엇. 뜻밖의 이름과 함께.
‘줄기세포 반대 단체에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줬다나. 그 전에는 임상 실험 관련해서 반대 시위하는 단체한테 후원도 했고.’
‘아하···’
‘그 지역에서는 유명했나봐. 그거로 표도 어느정도 확보하고 말이야.’
하여간 정치인들은 무섭다니까, 라고 말하는 미야였지만 나는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오래전 엘리엇으로부터 느꼈던 이질감은 이거였나. 아직도 그가 이 일을 방해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단시간에 이뤄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요?”
“설령 제가 죽더라도 연구는 계속 이어질테니까요.”
나는 벽 한쪽에 걸려져 있는 ‘치매연구소’ 명패를 바라봤다.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도 이 연구소가 계속 되는 한, 연구는 멈추지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조급해하다간 결국 모든 걸 망치게 될 테니까. 느리더라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했다. 그게 설령 한낱 이상에 불과하더라도.
한차례 이야기를 끝낸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렇게 나는 연구소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