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6화(216/221)
216. 평범한 일상 (10)
216. 평범한 일상 (10)
“일단 지금 관찰되는 징후는 없네만.”
“다행이네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네.”
최강석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뇌의 90%이상이 줄기세포로 새로 생성된 뇌세포들인 만큼 언제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로 설명할 수 밖에 없네.”
“제가 운이 좀 좋은 편이긴 해요.”
“그거 참 부럽군.”
장난스레 던진 내 말에 최강석도 작게 코웃음치며 답했다.
줄기세포를 통해 뇌세포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 말은 간단해보였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성공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뇌사자들이 다시 의식을 차렸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 되고 있었다.
[스위스, 안락사 금지 법안 도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줄기세포로 다시 얻은 삶] [한국으로 몰려드는 환자들, 의료 강국으로 우뚝]“그래, 새로운 뇌세포들을 가지고 강의는 잘 되고 있나?”
“어. 소식 들으셨어요?”
“이래보여도 김성진 교수와 나름 친분있는 사이라네.”
최강석은 시계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김성진과 최강석 둘이 만나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눌까···하고 잠시 고민한 뒤, 그의 뒤를 따라갔다.
병원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치매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가끔씩 일상적인 주제들도 오가곤 했다.
“최근에 한별이를 만났나?”
“안그래도 전에 학교 근처에서 봤어요. 카페 안에 혼자 앉아있더라고요.”
“약속을 따로 잡은 게 아니라?”
“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건데요?”
내 말에 최강석이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그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나는 그저 물음표만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그 애만 알고 있겠지.” 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함께 나는 그의 차에 탔다.
고급 외제차. 오래 전에 봤던 차와 같은 차였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분위기와 감정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들이 올라왔다.
딱딱하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이 아닌, 뭔가 좀 더 부드러워진 듯한 분위기. 그리고 그건 최강석 역시 같게 느낀 듯 했다.
그는 부드럽게 운전을 하며 병원을 빠져나왔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시골에 계시나?”
“네. 아무래도 거기에 계속 계셨다보니 거기가 편하신가 봐요.”
“하긴, 나이가 들면 새로운 곳으로 가기 어렵지.”
최강석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윽고 신호에 맞춰 차가 멈췄다.
그는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뭔가 할말이 있는데 고민하는 듯한 느낌.
“고맙네.”
“네?”
“생각해보니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네.”
예상치 못한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정면만 바라봤다.
“치매는 내게 커다란 벽같은 존재였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그렇기에 감정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젊은 시절부터 몇 번이고 그 벽을 부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네. 젊었을 때는 패기로, 어느정도 나이가 든 뒤로는 끈기로, 계속해서 연구했지.”
최강석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끽해야 오래전 최한별로부터 들었던 게 전부. 그것도 그냥 치매 연구를 했었다가 포기했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였다.
어느새 신호는 변했고, 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게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지. 벽이 벽인 이유는 결코 깨지지 않기 때문에 벽이라는 것도.”
“하지만 지금은 깨진 거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치매는 치료가 되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최강석이었다.
그의 아버지, 최금철이 최초의 치매 치료 완치자였으니까.
내 말에 그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산산히 깨졌지.”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그냥 말해주고 싶었네. 아무리 벽처럼 보이는 일도 이렇게 깨진다는 걸.”
이윽고 저 멀리 궁전같은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저 곳이 최강석의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주택 안 차고지로 들어섰고, 이내 시동을 껐다.
“자네는 젊네. 앞으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겠지. 그래도 벽처럼 보이는 문제가 보이면···포기하지 말고 계속 부딪혀가게나.”
그러면 지금처럼 언젠간 부서질테니 말일세.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해야하는 연구가 많다. 지금도 치매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프로젝트들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치매 치료가 성공한 이후,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연구소에 거는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중인 만큼 연구소에 있는 모두가 진심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사뭇 달라진 분위기로 말했다.
“그리고 지금 또 부숴야하는 벽이 하나 더 있네.”
“예?”
“아버님이 많이 기대하고 계셔서 말일세.”
“기대요?”
그러나 최강석은 내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답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왔나?”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최금철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몸 상태는 좀 괜찮으세요?”
“멀쩡하다. 멀쩡해.”
“반가워요. 우리 전에도 본 적 있죠?”
오래 전, 최금철이 길거리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 함께 있던 여자였다. 나는 최한별의 모친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쌍둥이네에 갔을 때도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최한별의 집은 그 정도가 달랐다. 단순히 집이 큰 거를 넘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가구와 제품들이 범상치 않다는 걸 느꼈으니까.
“아내가 미술쪽에 종사하고 있어서 말일세.”
벽 한쪽에 걸려져있는 [희움아트갤러리 소장 한은영] 이라고 적힌 명패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는 이미 진수성찬이 차려져있었다. 모처럼 손님이 오는 거라 힘 좀 써봤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꾸벅였다.
안그래도 오늘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는 상태다. 코끝을 찌르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있는데, 갑자기 최금철이 나를 보며 물었다.
“한별이하고는 친하나?”
“최한별이요?”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 고민했다. 물론 이런 자리에서 친하지 않아도 친하다고 말하는게 예의겠다만···
‘친한 사이 맞겠지?’
이상하게 최한별하고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친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쌍둥이들을 대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
침묵이 길어지는 걸 느낀 최금철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다시 물었다.
“안 친하나?”
“아, 아뇨. 친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나.”
살짝 타박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을 집는 대신 그저 빤히 바라봤다.
“진짜 친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왜. 한별이가 좀 못되게 대하드나?”
“아뇨. 전혀 그런 게 아닌데···”
나는 머뭇거렸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이런 자리. 그러니까 최한별의 가족이 모인 이곳에서 하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으니까.
회귀 전, 별다른 충돌이 없었던 쌍둥이들과 다르게 최한별은 늘 내 마음 속에서 부딪혔다.
전교 1등. 금수저. 모든 학생들이 부러워하는 존재.
‘최한별 이번에도 전교 1등이라며?’
‘쟤 중학생 때부터 유명했어. 중학교 내내 전교 1등 했거든.’
‘과외도 일타 강사들이 개인 과외해준다고 하던데?’
‘와. 나도 금수저 부모 두고 싶다.’
최한별이 밝게 빛나는 만큼 그녀를 둘러 싼 말은 자동적으로 생겨났다. 물론 그 중에는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대다수였지만, 웃으면서 그녀를 은근히 내려깎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쟤 친구가 있긴 해? 보면 맨날 혼자 다니던데.’
‘저런 금수저 집안에서 우리가 친구로 보이겠냐? 어차피 사회로 나가면 다 자기 밑일텐데.’
‘에이, 그래도 우리도 나름–’
물론 장난이었을테고, 농담이었겠지만···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한마디 하려고 했을 때, 최한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누가 봐도 뒷담화하다 딱 걸린 분위기.
침묵이 맴돌고 긴장감이 흐를 때, 최한별은 그냥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책을 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일을 했다. 물론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직감상 분명 들었을거다.
그리고 그 시절 난 좀 많이 못난 놈이었기에, 그걸 보며 비아냥할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전에 나보고 그러다 평생 혼자일거라고 말하더니. 본인 이야기였나보네?’
‘…’
특별반 수업이 끝난 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잔뜩 비아냥댔다. 게다가 그때는 최한별로부터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한 상황이었기에 기고만장한 상황이었다.
금수저인 너를 내가 이겼다. 봤냐? 같은 마음.
하지만 최한별은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 시선에 조금 주춤했지만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대충 ‘그래도 1등은 나거든?’ 하는 유치한 마음으로.
‘그러게.’
하지만 최한별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누가 말을 걸면 자동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처럼 최소한의 효율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럼 우리 둘이 똑같은거네.’
‘뭐?’
‘우리 둘 다 친구 없는거.’
‘뭐래. 나는 내가 안 사귀는거고 너는–’
하지만 내 항변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쓴 미소를 지으며 교실 밖으로 나갔으니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좀 못되게 굴었던게 많아서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과거 일은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지.”
“아, 물론 지금은 아니긴 한데···”
“?”
알 수 없는 내 말에 최금철과 최강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밀히 따지면 회귀 전에 있었던 일.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최한별에게 했던 행동이나 말들마저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말이다.
고민하는 나를 보더니 최금철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남녀 사이에 싸울 때도 있고, 다툴 때도 있는거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한 다음인거지. 때로는 의도치않게 상처주는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최금철은 음식을 앞에 나를 향해 무거운 목소리로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듣고 있는데,
“부부가 되면 평생을 같이 살아야하는데 그럴때마다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고민만 하면—”
“부부요?”
“언젠가는 결혼할 거 아닌가?”
“예?”
“자네 그냥 연애만 하다 끝낼 생각이었나?”
“예?”
이게 뭔 소리여. 나는 미간을 좁히며 최금철을 바라봤다. 하지만 최금철도 만만치 않게 미간을 좁힌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 상태로 서로를 빤히 바라보기를 몇 분.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최금철이었다.
“자네 우리 한별이랑 교제중인 사이 아니었나?”
“제가요? 아닌데요?”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소리에 최강석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 한별이가 마음에 안차는 건가?”
“예? 아, 아뇨. 그런게 아니라···”
“그런데 왜 안 사귀는 건가?”
“아, 아니 그게 제가 사귀고 싶다고 사귀는게—”
당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가만히 밥을 먹고 있던 한은영이 젓가락을 탁, 소리 내며 내려놨다.
그리고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제가 말했잖아요. 한별이 남자친구 없다고.”
“하, 하지만 분명 병문안도 계속 오고—”
“여보. 그리고 아버님. 우리 애들 연애는 애들한테 맡겨요. 네?”
그녀는 연신 싱긋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애들 나이가 몇인데 결혼이라뇨. 우리 한별이 미국에서 공부 다 끝나고 오기 전까지는 결혼의 ‘결’ 소리도 꺼내지 않기로 해요. 알았죠?”
“에잉, 우리때는 지금 나이면—”
“—절대 안된다니까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한별이 의사를 안 물어봤잖아요. 한별이가 좋다고 하면 몰라. 하지만 이렇게 어른들이 다 정해버리면, 분명 착한 한별이는 그대로 할거라고요. 네?”
한은영이 딸을 변호하듯 열심히 말했고, 남자들은 그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말도 안하고 있었다.
그렇게 긴 연설이 끝난 후, 최금철은 고민을 하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한별이가 괜찮다고 하면 되는거가?”
“아버님!”
“본인들이 좋다하면 하는거지. 안 그런가?”
최금철이 나를 보며 물었고, 그의 기세에 눌린 나는 그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최한별이 날 좋아할 리는 없을테니까.
이성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저 멀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