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7화(217/221)
217. 평범한 일상 (11)
217. 평범한 일상 (11)
최한별은 식탁에 앉은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마치 ‘네가 왜 여기 있어···?’ 라는 눈을 한 채.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게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한별아, 일단 씻고 오면 밥 준비해줄게.”
“아, 아니에요. 밖에서 먹고 왔어요.”
최한별 답지않게 말을 버벅이고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금철에 의해 제지되었다.
“한별아.”
“네, 할아버지.”
“잠깐 여기 앉아봐라.”
분위기를 잡는 모습에 그녀가 쭈뼛거리며 걸어왔다. 지금까지 있었던 대화를 듣고 있던 나 역시도 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긴장했다.
최금철은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니 남자친구 없나?”
“네?”
“만나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는거다.”
갑작스러운 연애 이야기에 동공이 사정없이 떨리는 최한별. 그녀는 나를 한번 바라봤다.
“아뇨···없어요.”
“그럼 니, 이 녀석은 어떠냐?”
“…네, 네?”
“지금 네 앞에 있는 이 녀석. 신랑감으로 어떻게 생각하냐는거다.”
“…하, 할아버지!”
최한별의 귀가 새빨게졌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한번 바라봤다가, 괜히 눈이 마주치자 더 놀란 얼굴로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치매가 치료 되었다고 해서 천년 만년 살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 전에 좋은 일이 있다면 빨리 빨리 봐두는 것도 좋겠지.”
“그, 그건 그렇지만···”
당황한 목소리 뒤로 최금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이 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만 이녀석 입원했을 때 매일 올 정도면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니냐.”
“…그냥 친구여서 그런거에요.”
“친구때문에 학교도 휴학하고 와서 병수발을 하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최한별이 입을 꾹 닫았다. 어째 혼이 나는 모양새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은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렸다.
“아버님! 한별이가 착해서 그래요. 착해서. 안그래도 마음이 여린 애인데 친구가 다쳤다는 이야기에 공부가 되겠어요?”
“정말 그런거냐? 네가 한번 이야기해봐라.”
최금철은 한은영의 말에도 불구하고 최한별을 바라보며 물었다.
손녀의 진심을 듣고자.
하지만 최한별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게다가 다음 달이면 출국해야하는데 갑자기 결혼이라뇨. 아버님도 참.”
“쯧, 출국하면 눈에서 멀어지는데 그 전에 어떻게든 붙잡아놔야하지 않겠나?”
그 말과 동시에 최금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내가 예전부터 사람보는 눈 하나는 모두에게 인정받았지. 그리고 내가 볼 때 이 녀석은 보통내기가 아니야.”
“제가요?”
“그래. 인생을 한번 살고 온 것처럼 세상 모든 일에 초연하다가도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물불가리지 않는 모습. 지금 이 나이대에 이런 성정을 지닌 놈은 못 찾는다.”
인생을 한번 살고 온 것 같다는 말에 뜨끔했다. 병실에서 이따금씩 최금철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볼 때가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이어지는 최금철의 내 자랑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대충 ‘이정도 얼굴, 이정도 성격, 이정도 머리면 어딜 가도 안빠진다–’하는 내용이었다.
숙인 고개 사이로 살짝 최한별을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꾹 닫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 건 덤.
‘…할아버지랑 사이가 좋다고 했었지.’
순간 최금철의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온 최금철을 보며 펑펑 울던 최한별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한별은 늘 착한 딸, 손녀. 그렇기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가려고 했었고,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최한별이라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도와줘야만 했다.
“할아버님.”
“그래. 말해봐라. 한별이랑 결혼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
“거절하겠습니다.”
단호한 내 말에 최금철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최한별도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최한별을 바라봤다. 마음속으로나마 엄지를 든 채.
이 뒤는 나에게 맡겨주라고···!
“학교에 있을 때부터 최한별이랑 저는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어서요.”
“에잉, 학교에서는 원래 싸우고 그러는거지. 그런 걸 가지고–”
“애초에 여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착잡한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최대한 가라앉은 톤으로 말했다. 최금철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여, 여자로 안 보인다고···?”
“네.”
단호하게 말하자 최한별이 움찔거렸다.
최한별은 좋은 사람이다. 이제야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식으로 일이 엮인다면 분명 다시 멀어질게 분명했다. 괜히 결혼이다 뭐다로 어색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얘 이제 스물셋이다. 그렇게 내가 양심이 없진 않다.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한별이가 자네를 안 좋아한다는 건가?”
“네. 당연하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어째 주변 사람들 표정이 좀 이상하다.
최강석은 큼큼거리며 밥을 먹고 있고, 한은영은 안쓰럽다는 눈으로 최한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최한별은···
“…저 방에 들어갈게요.”
라는 말을 하고 방으로 가버렸다.
···나 잘 한거 맞겠지?
순간 덜컥하는 마음이 들어 최금철을 바라봤다. 최금철은 미간이 깊게 패인 특유의 표정을 한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네?”
“됐다. 나도 내 손녀 이런 곰 같은 녀석한테는 못 준다.”
“예?”
갑자기 태도를 바꾼 채 밥을 먹는 최금철. 안그래도 가시방석이었는데, 더 가시방석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최한별이 더 곤란해지지는 않았으니까.’
원래 부잣집 자식들은 결혼 할 때도 정략 결혼이다 뭐다 한다는 말이 있던데···최한별의 의사 없이 이뤄지는 일은 내쪽에서도 사양이었다.
애초에 결혼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난 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한은영이 나를 붙잡았다.
“우리 한별이 많이 챙겨줘서 고마워요.”
“제가 따로 챙긴 건 없는데요 뭐.”
“고등학교에 있을 때,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최강석과 최금철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난 뒤, 한은영은 나를 따로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미 이야기를 시작했기에 끊고 나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 싶어 그냥 묵묵히 들었다.
“사실 한별이가 딸이기는 하지만 애가 워낙 말 수가 없고 조용한 지라···엄마인 나도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학생 이야기는 곧 잘 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한은영.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괜시리 목 뒤가 뻣뻣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은영은 최한별이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전해주기 시작했다. R&E 준비를 하면서 나눴던 대화들이나 특별반에 있었을 때 일. 오락실에서 마주쳤던 일 등. 최한별은 나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한은영에게 전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는 살풋 웃으며 말했다.
“한별이 강아지 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요?”
“네?”
“어릴 적에 강아지한테 물릴 뻔한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 강아지 보면 피해요. 그만큼 강아지 안 좋아하는 애인데···”
고등학생때부터 갑자기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다는 최한별. 나는 그 이야기를 그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괜히 목을 한번씩 만지작 거리면서.
“한별이랑 잠깐 이야기하다 가지 않을래요?”
“네?”
“이대로 가기엔 아쉽잖아요. 잠깐만 있어봐요.”
한은영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최한별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뭐라뭐라 말을 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한별이 곧 온다고 하니까 응접실에서 기다려요. 그이랑 아버님은 못 들어가게 내가 막아둘테니까.”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아참. 이건 혹시나 말해두는 건데···”
한은영이 살짝 고민하듯 미간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그래도 결혼은 안돼요.”
“예?”
“적어도 한별이 석사는 끝내고. 알았죠?”
“?”
분명 아까까지 결혼 이야기에 제일 회의적이었던 사람 아닌가? 애초에 실현되지도 않을 일에 다들 왜이리 진심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영문을 모르겠는 말과 함께 한은영은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평범한 집에는 존재하지 않는 응접실. 그런 실이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응접실에서 맞이할 만큼 귀한 손님들이 오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응접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다과가 기본으로 중간에 준비되어 있었고, 양쪽으로 늘어선 소파는 보기만 해도 편안해보였다.
풀썩, 소리를 내며 소파에 앉자 노곤노곤 피로가 몰려왔다. 안그래도 아침부터 병원 진료를 받으며 에너지를 쓴 상황.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몸이 편안해지자, 별별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한별이 나를 좋아하는 거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굳이 여기서 할 말이 더 있나?’
한은영이 자리를 마련해줬기에 일단은 앉아있다만···최한별이 들어오면 적당히 잘 말하고 나가야겠다. 아마 최한별도 그걸 바라고 있을 터였다.
하여간 부잣집 딸내미로 살아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도 아닌 내가 집주인인 최한별한테 들어오라고 하는게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문을 열어주려는데,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문 앞에 서있는 최한별의 모습이 평소와 너무 달랐기에.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가 발목까지 길게 닿았고, 자로 잰 듯한 검은색 머리칼이 허리쪽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여성스러운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했다.
“…안녕.”
“어···안녕.”
갑자기 확 어색해진 공기.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문 앞에서 서로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서있었다.
아니···누가 집에서 저렇게 입고 있냐고. 예전에 쌍둥이네에 갔을 때 이인영도 편한 복장으로 집에 있었다. 저런 원피스를 입고 생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잘어울린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갑자기 옷 때문일까 분위기가 달라진 듯한 느낌.
최한별은 문 앞에 쭈뼛거리며 서있더니 말 없이 의자에 앉았다. 뭔가 좋은 향도 나는 것 같았다.
와. 진짜 긴장되네.
안그래도 아까 결혼이다 뭐다 하는 말이 오갔어서 그런지 더 어색한 느낌이다. 등 뒤로 식은땀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최한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어?”
“오늘 갑자기 불려온 거. 많이 놀랐을 것 같아서.”
“아···뭐. 괜찮아. 병원 갔다가 온 거여서.”
“…병원?”
내 말에 최한별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봤다. 두 눈이 커다래진게 놀란 것 같았다.
“어디 아픈거야? 부작용?”
“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냥 정기 검진이야.”
“괜찮은 거 맞지?”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인 것 처럼 최한별이 걱정을 한껏 담아 말했다. 나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그냥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작게 한숨을 짓더니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는 그녀.
그런 모습을 보니 괜시리 더 멋쩍어졌다.
“그보다 나야말로 미안해.”
“…뭐가?”
“괜히 나 때문에 곤란해졌던 것 같아서.”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최한별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에 괜시리 시선을 피했다.
“왜 너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 뇌사 상태일때 계속 병문안 왔었다며.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보실 때는 충분히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기도 해.”
게다가 사고 당시에 내가 들고 있던 인형. 그 인형이 오히려 최한별에게 짐을 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최한별한테 주려고 했던 건 맞지만···’
누가 보면 그 인형을 전해주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니까. 이래저래 최한별에게 죄책감을 준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었다.
최한별은 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없었다. 이따금씩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치마가 흔들렸다.
좋은 향기, 따뜻한 분위기. 봄 날씨 때문인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 때문인지 분위기가 따뜻하게 변해갔다.
“난···우리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
“아까 그랬잖아. 학교에 있을 때 사이 안 좋았다고.”
최한별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조금 몸에 안 좋은 것 같아서 나는 숨을 잠깐 참았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그런가?”
“생물 올림피아드 때도 밤늦게 같이 있었고.”
“에···”
“메시지도 자주 하고.”
“에에···”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물론 올림피아드때 어쩔 수 없이 최한별이랑 같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광신도들한테 붙잡힐까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라고···!
“나도 네 말에 동의해.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해야한다는 거.”
“으, 응?”
“그래도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어.”
“아니 그거야 딱봐도 네가 억지로 결혼하게 될 것 같으니까 말 맞춰준건데.”
“억지로?”
그러나 오히려 최한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 억지로라고 생각해?”
“그, 그야 네가 결혼을 생각할리도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 말을 거절할 수도 없고—”
“흐음···진짜 그렇게 생각해?”
최한별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빨리 여기를 나가야겠다. 여기 더 있으면 안될 것 같다, 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최한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아버지를 많이 닮았대.”
“어?”
“고집 센 거.”
“?”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최한별은 이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분위기. 대체 어떻게 풀어가야하는가. 머릿속은 이미 전선회로가 이리저리 꼬여있는 것 마냥 과부하 상태였다.
“가, 강아지 원래 안 좋아한다며?”
“어?”
“아까 어머니가 말씀해주시던데. 근데 왜 좋아한다고 한거야?”
빠른 화제 전환을 위해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다. 최한별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데.”
“분명 안 좋아한다고···”
“아니. 좋아해.”
“에···”
좋아한다는 글자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말하는 최한별. 느리게 말하는 탓에 그 발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좋아해.”
최한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동자가 너무도 맑아서 어떤 말도 그 앞에 내놓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쭉, 좋아했어.”
이거···분명 강아지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가볍게 비웃듯이 최한별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는데,”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좋아지고 말았어.”
큰일이지? 라고 웃는 최한별.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멍청하고 눈치가 없다고 해도···이런 노골적인 마음을 못 알아챌리는 없으니까.
나는 고민했다. 지금 이 솔직하고 투명한 마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 지.
최한별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하지만 섣불리 대답할 수도 없었다.
진지하게 말한만큼, 나도 진지하게 답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최한별이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내 미간을 꾹 눌렀다.
“맨날 미간만 팍 구기더라. 그러면 빨리 늙는대.”
“…이미 지금 10년은 폭삭 늙은 것 같은데.”
“큰일이네.”
아니 지금 누구 때문에 늙었는데···하지만 최한별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응접실에서의 긴 대화가 끝이 났고, 최한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집밖까지 배웅했다.
나가는 순간까지도 최한별은 싱긋 웃으며 “다음에 또 봐.”라고 이야기 했고, 밖으로 나와 등을 만져보니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곳은 정말 무서운 곳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여전히 아찔한 정신상태로 집으로 걸어가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소장님!]치매 연구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