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19화(219/221)
219. 평범한 일상 (13)
219. 평범한 일상 (13)
“시간이 생기니 오히려 마음만 더 번잡해지더군요. 정작 연구는 손에 안잡히는데 말이지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요즘 그런 상황이니까요.”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플로리다. 카페 안, 두 노교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리스 교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레모네이드를 들이마셨다.
“나이가 드니 점점 단 거에 둔해지더군요. 여기에도 각설탕을 3개나 넣었답니다.”
“저런, 그렇게 드시다간 건강이 안좋아집니다.”
“하지만 노먼 교수님 커피도 그리 몸에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크리스 교수는 노먼 교수가 마시고 있는 에스프레소를 가리켰다. 거의 한약 수준으로 우려진 것이 한모금만 마셔도 정신이 번쩍 깰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크리스 교수의 말에 노먼 교수는 별다른 대답 대신 그저 허허, 웃는 걸로 대꾸했다.
그렇게 한동안 대화없이 각자의 음료만 홀짝이던 찰나, 노먼 교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정말 복귀하실 생각은 없으신겁니까?”
노먼과 크리스. 두 교수는 오래 전부터 서로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젊은 시절 하버드대 교수직으로 임용이 된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곧잘 나누던 사이였으니까.
노먼의 말에 크리스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
그는 손끝으로 레모네이드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쓸어내렸다.
“네. 아마 제가 죽는 날까지 복귀할 일은 없을테지요.”
“죄책감때문입니까?”
“죄책감이라···책임감이라고 해두죠.”
크리스 교수의 대답에 노먼 교수가 미간을 좁혔다. 오랜 친구의 경력이 끊기는 걸 반길 이유는 없었으니까.
물론 노먼 교수도 그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논문 조작. 학계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크리스 교수가 직접 내용을 조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자유롭다고도 할 수 없었다.
“제 잘못은 단 하나입니다. 조작인 걸 눈치채고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그때 당시에 연구원의 상황을 고려해서 그러신 거 아닙니까?”
노먼 교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듣기로는 당시 연구 업적 압박에 시달리던 연구원들이 꽤 있었고, 다들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잠시 양심을 접어둬야했던 상황.
노먼의 말을 듣던 크리스가 살짝 헛웃음을 지었다.
“그 어떤 상황을 고려해서는 안되었던거지요. 그 점에서 이미 학자로서 실격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저 아까울 뿐입니다, 라고 작게 이야기하는 노먼 교수였다.
크리스 교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고민하던 그가 꺼낸 주제.
“그나저나 김만덕 연구원하고는 계속 연락하십니까?”
“안그래도 이번에 한국에서 교수를 맡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오! 그것 참 기쁜 소식이군요.”
노먼의 이야기를 들은 크리스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김만덕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리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크리스 교수에게 있어 김만덕은 여러모로 뜻깊은 존재였다.
줄기세포라는 분야에 있어 아무것도 모르던 애송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어느덧 그는 자신을 훌쩍 뛰어넘어 줄기세포 분야에서 당당히 입지를 다져갔다.
“노벨 생리학상을 받을 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치매 치료제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으니까요. 만약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모든 것에 딴지 걸기를 좋아하는 사람일겁니다.”
“크리스 교수님이 보실 때 김만덕 연구원···아니 이제 김만덕 교수겠군요. 김만덕 교수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노먼은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홀짝이며 물었다. 노먼이 봐왔던 김만덕과 크리스가 봐왔던 김만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그리고 노먼의 질문을 들은 크리스 교수는 잠시 고민했다.
“어떤 학생이었냐라···글쎄요.”
처음 아카이브에서 그의 논문을 봤을 때, 크리스 교수의 온 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아밀로잽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이걸 만들어낸 사람은 분명 천재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미국,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사실 잠깐 실망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예? 실망했다고요?”
“네. 물론 아밀로잽이라는 엄청난 내용에 제가 멋대로 기대한 것도 있었겠지만···사실 첫인상은 평범한 학생이었거든요.”
김만덕을 처음 봤을 때, 그가 하버드내 학생들을 보면서 때때로 느끼던 천재의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줄기세포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하! 무슨 말 하시는 지 알 것 같습니다. 김만덕 교수가 나이에 답지 않게 좀 초연한 모습이 있지요?”
“초연이라···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뭔가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크리스는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조금은 어색하게 주변 상황들을 보고 적응해가던 모습을.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그에게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학생이 뭔가를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크리스 교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 기우였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천재성을 보여준 학생이었으니까요.”
“음, 저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굳이 캐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머뭇거리지만 결심해야할 때는 결심하는 모습도 인상깊었습니다.”
자신의 연구팀이 냈던 논문의 오류를 지적하던 김만덕. 처음 그 오류를 지적할 때, 크리스 교수는 저도 모르게 회피해버렸다.
그도 그럴게 지금 이 모든 걸 밝혀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김만덕은 모두가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을 고려하고, 또 고려했다.
만약 김만덕이 크리스 교수에게 말하지 않고 바로 논문 오류를 공개해버렸다면? 크리스 교수가 이 문제를 덮으려는 듯 발언했을 때, 참지 않고 바로 인터넷에 공개했다면?
진실은 밝혀졌겠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이다.
“아마 그 머뭇거림 덕에 주변의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김만덕은 크리스 교수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기회를 줬다.
스스로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물론 나중에 저 역시도 이 조작을 스스로 밝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서기 전까지 김만덕 교수의 도움이 컸지요.”
“도움이라면?”
“만약 중간에 잠깐이라도 이 조작을 덮어주려고 하거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저는 또다시 진실을 밝히는 걸 주저했을테니까요.”
김만덕은 쉬지않고 줄기세포에 대해 연구했고, 그 과정 속에서 크리스 교수의 논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계속 언급했다.
그리고 이건 사실 일개 학부생이 할 수 있는 깡이 아니었다.
“사실 노먼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엘리트 학생일 수록 몸을 사리는 경향이 더 크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아는 학생들이니까요.”
“아마 저를 거쳐갔던 수많은 학생들 중 제 논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 학생이 있었을 겁니다.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고요.”
크리스 교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학생들 중 제게 이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교수들은 가끔가다 지적하곤 했지만···어느정도 선에서 그치곤 했죠.”
“잘 몰랐기에 그냥 넘어간 건 아닐까요? 말마따나 아직 학생이니 말입니다.”
“글쎄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여 그냥 보고도 지나치자는 마음만 심어준 건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들 뿐입니다.”
노먼 교수는 말 없이 크리스 교수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크리스 교수님, 교수님 전공이 줄기세포였지요?”
“정확히는 분자세포쪽입니다만···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요.”
이제 학계에 몸 담을 일은 없으니 말입니다. 크리스 교수가 무미건조한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노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볼때는 크리스 교수님께서는 큰 잘못을 저지른게 맞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단죄에 크리스가 잠깐 주춤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이미 오랫동안 인정해왔던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굳어진 터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노먼은 넘어가지 않았다.
“크리스 교수님의 연구로 인해 많은 연구원들이 헛으로 보냈던 시간과 돈. 그것들을 환산하면 어마어마하겠지요.”
“…예. 저 역시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반성하고 계신다는겁니까?”
다그치듯 말하는 어조에 크리스 교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그 어느때보다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먼 교수를 바라봤다.
“반성을 한다는게 설마 이 학계를 영영 떠나 이런 한적한 삶을 보내는 걸 말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제가 학계로 돌아갈 일은 없을겁니다.”
노먼 교수의 말의 의도를 파악한 크리스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제가 줄기세포 연구에 다시 뛰어들게 되면 이건 분명 안좋은 선례로 남게 될테니까요. 논문을 조작하고도 떵떵 거리며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 많은 학자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줄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이미 크리스 교수님께서는 충분히 잘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크리스 교수가 은퇴하고 난 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때로는 카지노에서 돈을 왕창 따기도 했고.
노먼 교수의 말에 크리스 교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시 죄인 모드로 돌아가려는 찰나, 노먼 교수가 잔을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최근 한국에서 치매 연구소가 설립된 건 알고 계시지요.”
“네. 김만덕 교수가 그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의 CIRM을 벤치마킹해 설립된 기관이라 하더군요. 그 안에서 이뤄지는 연구들은 날마다 눈부신 성과를 보이고 있고요.”
노먼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이 안되는 것 같았다.
노먼 교수 역시 플로리다로 오고 난 후, 연구에 몰두했다. RNA에 대한 연구에 한평생을 바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엔 끝이 없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치매 관련한 목표를 제정했다는 기사 읽으셨습니까?”
“네. 2025년까지 치매 예방에 힘을 쓰겠다고···”
“단순히 예방 뿐만 아니라 치료제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노먼은 준비해왔던 기사를 꺼내 크리스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미국 내 치매 대응에 대한 여러가지 정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기사를 꼼꼼히 읽던 크리스는 결국 미간을 좁히며 노먼을 바라봤다.
“이게 저와 어떤 관련이 있는겁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노먼. 그는 크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국립 보건원(NIH)에서 노화연구소에 와주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더이상 이 학계에—”
“—만약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신다면,”
노먼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더 연구를 해주십시오. 미국 국민들이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노먼의 말에 크리스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복귀를 하게 되면 분명 많은 연구원들이 반발을···”
“비공식 복귀로 처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비공식 복귀라···”
비공식적으로 연구는 진행하되, 그에 대한 업적이나 결과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저 한명의 연구원 신분으로 돌아가 묵묵히 연구만 해야할 수도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
“교수님의 논문으로 인해 많은 연구원들이 헛된 시간을 보냈다는 것, 인정하시지요.”
“백번, 천번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있을 수많은 연구원들이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연구에 매진해주십시오.”
크리스 교수가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또다른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그의 논문을 바탕으로 또다른 논문이 나올 수 있도록.
“더이상 미국엔 김만덕 교수가 없습니다.”
“…”
“한국에 가지 못해 치매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연구에 뛰어들어주십시오.”
노먼 교수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김만덕 교수는 치매 치료제를 독점하지 않았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은 미국내에서도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의료 기술 뿐만 아니라 의료 시스템 역시도 중요했으니까.
한국 내 치매 치료가 일사분란하게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미국은 그 절차도 복잡했고 치료비도 비쌌다. 그렇기에 치매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노화연구소에는 교수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제 교수가 아닙니다. 은퇴했으니까요.”
“그럼 박사—”
“—연구원이라고 하죠.”
크리스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전보다 더 밝아져있었다.
“제가 남은 인생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것이 제 죄를 속죄하는 길이라면 말이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된 거 이번주에 바로 한국으로 가야겠군요.”
“한국이요?”
갑작스러운 한국 이야기에 크리스 교수, 아니 연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노먼 교수가 웃으며 답했다.
“벤치마킹을 위해서 답사는 필수 아니겠습니까.”
두 남자는 그 길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김만덕 교수를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