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4화(24/221)
24. 과학의 날 (1)
24. 과학의 날 (1)
황금같은 주말, 모두가 자습실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 동아리실에서 홀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녀석들을 받는게 아니었어…”
김영재는 넋이 나간 상태로 동아리 부원들을 바라봤다.
“여기가 니네집 안방이냐?”
“갑자기 시비야? 불러서 기껏 와줬더니만.”
동아리실에 아예 커다란 접이식 거울을 들고오더니 이젠 화장품 수납함까지 들고온 홍예슬.
이미 화장을 다 끝낸 상태인데 거기에 또 뭘 얹어보겠다고 거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게임에 초집중한 남학생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야. 근데 너 그건 알고 화장하는거냐?”
“뭔데. 시비털지 말고 하던 게임이나 계속 해.”
“너 아무리 화장하고 치마 줄이고 그래도,”
삐융, 삐융하는 게임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홍예슬도 화장을 하던 손을 멈추고 남학생, 최찬서를 바라보았다.
“최한별 미만 잡임. 걍 고블린.”
“야 이 개새-”
홍예슬의 발길질을 잽싸게 피한 최찬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 삼매경이었다. 씩씩거리며 따라오는 홍예슬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결코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았다. 부장인 김영재에게 이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변한 상태였기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부장. 근데 우리 왜 부른거?”
“과학의 날 행사 준비 때문에.”
쓰러져있는 김영재 앞에 통통한 남학생이 고개를 내밀었다. 원래는 저체중이었지만 과고 입시 준비하느라 살이 급격하게 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방현욱이었다.
“그럼 우리 뭐 먹어?”
“뭘 먹어…그냥 저녁 학교에서 주는 거 먹어.”
“아니, 가뜩이나 석식 맛없는데 주말 석식은 더 최악이라니까? 그런데 거기서 일요일 저녁 급식은 진짜 말도 안되게 최악이야! 이거 학교 급식 백퍼 비리있다고!”
먹을 거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녀석이었다. 다른 토론 주제에서는 시큰둥했지만 유달리 급식에 관해서는 열렬히 이야기하는 학생이었다.
“치킨 시켜먹자.”
“안된다고 몇번을 말하냐…외부 음식 시켰다가 적발되면 벌점 10점인 거 몰라? 20점이면 퇴소라고.”
“아, 그러니까 적어도 두 번은 시켜먹을 수 있다는거 아님?”
그때 옆에서 최찬서를 갈구고 있던 홍예슬이 소리쳤다.
“야 이 돼지야. 두 번 시키면 퇴소잖아. 한 번밖에 못 시켜먹는다고!”
“오, 그럼 오늘 한 번 시킬까?”
“아냐…한 번도 안 시킬거야…”
김영재는 더이상 대꾸할 힘도 없었다. 눈 앞에서 어지럽게 쏘다니는 부원들을 보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으니까…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나는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이건 자연의 순리….는 개뿔.’
으악,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이자 부원들이 순간 멈칫했다.
“야, 니가 하도 치킨 치킨 거리니까 부장이 죽었잖아!”
“뭐래, 니가 동아리실에서 계속 화장만 해대니까 냄새 독해서 쓰러진거잖아!”
“하, 진짜 우리 동아리 답 없다.”
부원들이 쑥덕이고 있어도 김영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부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어떡해. 부장 진짜 이러다가 엎으면?”
“안돼! 이거 한다고 해서 주말 야자도 빼줬다고. 절대 없어지면 안돼.”
“나도 여기서 간식 책상위에 펼쳐놓고 먹을 수 있어서 좋은데…야자실에서는 음식물 반입 금지란 말이야. 난 공부할 때 간식 없으면 뇌 안 돌아가.”
새삼 동아리의 소중함을 깨달은 부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나름 부장과 같은 반이라 친분이 있는 홍예슬이 김영재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김영재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었다.
“부장, 미안 미안. 우리가 너무 철 없게 굴었지?”
“…”
“이제 지인짜 열심히 할게. 진짜루! 우리 뭐하면 돼? 뭐부터 할까?”
“…과학 부스 준비.”
“부스 준비! 쉽지! 나 중학생 때 환경 미화 담당이어서 막 뒤에 게시판두 꾸미고 그랬어!”
홍예슬이 신이 나서 말하자 최찬서랑 방현욱도 슬금 슬금 곁으로 왔다.
“맞아. 나도 손재주는 없지만 게임 덕에 손놀림은 빠른 편임. 뭐든 맡기셈.”
“나도 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
김영재는 여전히 엎드린 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던 중 김영재가 입을 열었다.
“과학 부스 주제 안 정했는데.”
“어? 그걸 안 정하면 어떡해! 다음주가 과학의 날 행사 시작 아니야?”
“그래서 오늘까지 다들 주제 하나씩 정해서 아이디어 잡고 내일 체험 부스 만들자고 했는데…”
“언제? 언제 그런 말 했는데?”
“매 번…”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차마 부원들도 양심은 있는지라 김영재를 더 몰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들 동아리 존폐 위기에 서 있는데,
“야. 1학년한테 전화해볼까?”
“뭐? 걔 오늘 어디 갔다며.”
“근데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온다고 했어. 아마 지금쯤은 오지 않았을까?”
“연락해봐 연락!”
동아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홍예슬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 문구뿐이었다.
“아직 비행기인가봐. 몇시에 도착하지?”
“야. 우리가 그래도 나름 과고생이잖아. 추론 드가자.”
최찬서가 안경테를 비장하게 올리며 화이트 보드 앞으로 나아갔다. 검정색 보드마카를 들고 예상 비행기 탑승 시간과 다양한 항공편 일정들. 그 중에서 탑승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은 항공편을 두고 다들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김영재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 시간에 과학 부스 주제를 생각하라고 미친넘들아…’
열띤 토론이 끝나고 최찬서는 보드마카 뚜껑을 닫았다.
“고로, 지금으로부터 약 10분 후에 김만덕은 비행기에서 내린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전원을 켜기까지 약 8분.”
“오차 범위 10%로 가?”
“아니, 5%. 묻고 반으로 가.”
작은 일도 한없이 몰입할 수 있다는 건 과학고 학생들의 특징 아닌 특징이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이야.”
“후, 간다.”
“제발!”
홍예슬이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루
“!”
“신호음 간다!”
“크으, 역시 게임으로 다져진 나의 전략가 정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지.”
[여보세요?]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김영재 역시 통화기 너머로 1학년의 목소리가 들리니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보세요? 예슬 선배?]하지만 중요한 건 여기 있는 누구도 그 다음 대화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만덕이 언제 비행기에 내리냐가 가장 중요한 주제였지, 뭘 이야기할 지는 생각을 안 해둔 상태였다.
“야, 뭐라고 말해…!”
“모, 몰라. 그냥 어, 잘 왔냐고 안부?”
홍예슬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최찬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한국 잘 도착했어?”
그때 동아리 부장 김영재가 핸드폰을 뺏었다.
[어, 부장 선배가 거신거에요? 번호는 예슬 선배로 뜨는데.]“어쩌다보니. 그나저나 이제 막 귀국해서 미안한데…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야야, 어떡해. 부장 동아리 폐부하려나봐!”
“아이씨. 그러게 내가 게임 좀 작작 하라고 했지!”
“치킨 한 번 못 먹고 폐부라니…”
잠깐의 참회의 시간을 가지며 부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행복했다, 개꿀 라이프 안녕…
[아 그 전에 부장 선배한테 알려드릴거 하나 있어요. 과학 부스 관련인데요.]“어. 안그래도 그거 말인데 우리 그냥 이번에 안-”
[과학창의재단 이사장님께서 오실 것 같아요.]“뭐?”
그 순간 부장이고 부원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과고에서 놀고 있다고 해도 과학창의재단이 한국 과학교육계에서 어떤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워낙 바쁘셔서 저희 부스만 간단하게 구경하시고 가실 것 같은데…]“아, 아니. 그런 귀한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대체 왜?”
보통 이런 거물급 인사가 오면 그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부스에 방문하거나, 혹은 전시회 앞에서 사진 한장 찍고 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무 성과도 보여준 적 없는 신생 동아리에 이사장이 온다고?
부장과 부원들 모두 낯빛이 하얘졌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근데 지금 부스 준비된 게 없는데…이 상황이면 초등학생들이나 즐길만한 체험들밖에 못 만들고 시간도 없고…예산도 그렇게 많지도 않고…”
[음, 다른 건 잘 몰라도 예산이라면…잠깐만요.]그 순간 김만덕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통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러나 소음이 심한 탓에 제대로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 어디선가 익숙한데?’
김영재가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전에 김만덕이 말을 이었다.
[예산 어느정도면 돼요?]“어?”
[체험 위주 부스면 좀 많이 필요하려나요?]마치 김만덕은 부르는 대로 다 주겠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에 부원들이 모두 망설이고 있는데,
“오, 오십만원!”
“야! 미쳤어?”
방현욱이 질렀다. 그리고 홍예슬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과학고 학생중에 금수저가 많다고 하더라도 오십만원을 막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깡이 있는 학생은 없었다.
금수저라고 해서 자식들에게 카드를 막 쥐어주는 부모는 또 드물었기 때문이다.
“왜! 일단 크게 불러야지! 그래야 남은 돈으로 간식도 사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그럴거 아니야!”
“그런 걸 두고 우리는 비리라고 한단다, 미친놈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학생 신분으로 오십만원은 무리야. 뉴로 퓨쳐스도 그정도 지원은 안 받을걸?”
부장과 부원들이 방현욱을 타박하고 있는데, 김만덕의 반응은 달랐다.
[오십만원이면 너무 적지 않겠어요? 그냥 행사만 해도 꽤 나갈텐데… 외부인들까지 오는거면 좀 더 체험 준비를 해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적다고?”
[네. 한 백만원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너 무슨…누가 그 돈을 주는데?”
[교장쌤이요.]“뭐?”
순간 김영재는 아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 파악을 못한 부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야. 1학년. 너가 뭘 모르나본데, 동아리라고 막 예산 쓸 수 있고 그런게 아니거든? 게다가 우리같은 별볼일 없는 자율 동아리한테는 끽해야 십만원이 최대야.”
“아직 1학년이어서 현실 감각이 부족해서 그래. 그냥 이해해주자.”
[아뇨. 지금 허락 받은 건데요.]“그니까 누구한테? 교장쌤한테?”
[네.]순간 정적이 휩싸였다. 김만덕이 평소에 농담을 잘 하는 부원이 아니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장난이거나,
진짜거나.
처음에는 다들 장난인 분위기였지만, 점점 진짜로 믿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심증에 쐐기를 받는 대화가 선명하게 들렸다.
[교장선생님. 백만원으로 이번 체험 부스 준비하려는데 괜찮을까요?] [백만원? 음…그래. 안그래도 아까 학회측에서 발전 기금을 내고 싶다고 의향을 밝혔네. 자네가 장학금은 한사코 거절했다고 하던데.] [아…제가 그 돈을 받아선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아, 잠시만요.]등골이 싸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던 중, 김만덕은 이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일단 제가 지금 학교로 바로 갈게요. 가서 이야기해요.]그렇게 끊어진 전화기를 보며 뇌생공 부원들은 생각했다.
‘도대체 얘 뭐지?’
주말에 학회에 갔다 온다고 하길래 그러려니 했다. 과학고 애들은 좀 별난 구석이 있어서 대학교 학회에도 일반인 자격으로 회비를 내면서까지 참가하는 애들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학회가 미국에 있다길래, 그냥 좀 잘 사는 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미국을 제주도처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애들은 별로 없으니까.
“방금 교장쌤 맞지?”
“응. 빼박.”
“얘 그럼 주말동안 교장쌤이랑 같이 미국가서 학회 듣고 온거야?”
다들 1학년의 범상치 않은 배경을 보며 열심히 추측하고 있는데, 순간 전략가 최찬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근데 우리 체험 부스 망하면 진짜 뭣 되는거 아니야? 백만원이나 끌어다 썼는데?”
“지금 무를 수는 없겠지? 나 이런거 못해! 부담스럽단 말야.”
“이미 늦었어. 교장쌤한테 괜히 번복했다가 나중에 대학갈 때 불이익이라도 있으면 어떡해?”
부원들의 이야기에 김영재는 속으로 ‘그럴리가 있겠냐.’ 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위기는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뭐라도 하게 만든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갑자기 과학 부스 주제에 대해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김영재가 그토록 바라고 그리던 동아리의 모습이었다.
‘백만원이면…’
최저임금이 4천원이다. 하루 꼬박 일해야 3만원 남짓. 누군가에겐 한달 월급보다 많은 돈이 주어진 것이었다.
결코 허투루 쓸 수 없는 돈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 기회를 정말 잘 살려서 잘 준비해보고 싶었다. 언제든지 오는게 아니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구한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란 것도.
‘복덩이였네 진짜.’
갑자기 굴러들어온 복덩이 1학년덕에 모든게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자자, 만덕이 오기 전까지 우리 아이디어 초안이라도 만들어두자.”
김영재는 활짝 웃으며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