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5화(25/221)
25. 과학의 날 (2)
25. 과학의 날 (2)
한국과학고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고등학교이다. 비록 공립이 아닌 사립재단이기는 하지만, 공립 과학고들보다 압도적인 성과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공립인 경우엔 아무래도 제약이 많은 편이니까. 그에비해 빵빵한 재력을 뒷배로 둔 사립 학교는 무서울 게 없기도 하고.’
실제로 공립 학교라면 징계를 받거나 예산 삭감이라는 페널티를 받을 수 있는 것들도 한국 과학고에서는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 분기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발전기금 만으로도 학교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을정도였으니까.
“정말로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겠나? 백만원이면 학생 수준에선 꽤 큰 돈이라고 생각하는데.”
학교로 돌아가는 길. 이철규가 넌지시 물었다.
백만원.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저축을 해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쓰이겠지.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장학금 받는 대신 앞으로 알고리즘 관련해서 자문을 해달라고 하던데요.”
“어이쿠, 그런 말이 오갔었나?”
“뭐, 강요는 아니긴 했지만 말하긴 했어요.”
부커는 내 생물학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난 후, 두 손 두 발을 든 상태였다.
‘하하! 이런 생물학이랑 이미 결혼까지 한 상태였구만! 그것도 모르고 수학이 들이대니 넘어올리가 없지. 자네가 어떤 연구를 하든 응원하겠네. 훗날 자네는 모두를 놀라게 할 발견을 할 것 같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시간이 될 때 알고리즘 관련해서 자문을 구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 대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그러나 전생의 경험상, 이렇게 돈과 얽힌 문제는 어떤식으로든 깊게 개입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일이 더이상 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이제부터는 진짜 학업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길은 생물학자의 길이었지 수학자의 길이 아니었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도 발전기금으로 학교에 넘길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자네에게 가능성을 본 거겠지. 어쨌든 그런 거라면 잘 생각했네. 눈 앞의 돈에 혹해서 섣부른 결정을 했다가 피 보는 연구원들도 많으니까.”
실제로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만 보고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수 년의 세월을 허송으로 보낸 연구원들도 종종 있었다. 특히나 기업쪽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엔 그만 두는 것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실적에 대한 압박도 상당했으니까.
“그래도 동아리 관련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동아리만 너무 많이 받으면 나중에 공정성 문제가 일어나진 않을까요?”
“비록 발전기금이긴 하지만 자네 명목으로 들어온 거니까 엄밀히 따지면 기여도가 있는 사람에게 더 주는 게 맞다고 보네.”
이철규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학회에서 깜짝 놀랐네.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콧대 높은 수학자들이 만덕 학생을 데려가겠다고 앞다투어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나도 조마조마했네.”
“교장 선생님이요?”
“갑자기 자퇴하고 바로 대학으로 들어가버리면 어떡하나 싶었거든. 물론 우리 한국과고가 밀린다는 건 아니지만 말일세.”
허허,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이철규. 항상 카리스마 넘치고 위엄있던 그가 나 때문에 조마조마했다고 하니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렇게 불편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은 대화가 이어지다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이번 과학의 날 행사는 기대해도 되겠지? 가장 많은 예산을 가져간 동아리이니 말이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나 덕분에 받은 돈이니 써도 된다고 했던 양반이었는데, 이철규가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안에 숨어있는 뼈를 느낄 수 있었다.
기대를 받는 이상 부응해야 한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부커의 제안도 거절했던 나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강한 확신에 차있었다.
“무엇을 기대하시든 그 이상일겁니다.”
생물학이 주제라면 두려울 게 없었으니까.
*
이철규와 헤어지고 동아리 부실에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났다. 지금 내 심정은 간단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은 늘 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더 격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기숙사라도 가고 싶다. 그러나 양쪽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부원 선배들 덕에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만덕아 이 주제는 어때? 방문하러 온 사람들의 피를 채혈해서 Rh-/+ 여부를 판단해주는 거야!”
“괜찮긴한데 혹시라도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외부인들도 오는데 괜히 말 나오면 큰일이잖아요.”
방현욱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홍예슬이 A4 용지를 들이밀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럼 내껀 어때? 비즈로 DNA 모형을 만드는 거야! 이러면 일반인들도 쉽게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오…이건 가볍게 하기엔 좋겠네요. 근데 백만원 예산을 다 쓸 수 있을까요?”
“보석을 비싼거 사면 되는거지! 아니면 금으로 할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겁니까…”
홍예슬의 사리사욕이 느껴지자, 그녀도 머쓱한지 뒤로 물러났다. 그나마 부원들 중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최찬서가 내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내가 좀 이번 행사에 대해 분석을 좀 해봤어. 이번 과학의 날 행사는 외부인들도 참여할 수 있을정도로 큰 행사. 어떻게 보면 지역구 급 행사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지. 작년 기준으로 행사 방문객은 일 평균 150명정도. 주말이면 2배로 올라가지.”
오, 최찬서의 브리핑에 집중했다. 모든 행사의 기본은 타겟 분석이니까.
“행사에 참가하는 부스는 총 17개. 정규 동아리 11개와 자율동아리 6개 참여를 하는만큼 부스마다 치열한 경쟁이 있을거로 예상되지. 그럼 그 치열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
[재미]최찬서는 재미라고 적혀진 글씨 위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결국 아무리 유익해도 노잼이면 쳐다도 안 본다는거야. 그러면 극한의 재미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부원들 모두가 최찬서의 말에 집중했다. 관중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임.”
“에라이, 나가. 나가 뒤져!”
“게임충이 그럼 그렇지…”
홍예슬과 방현욱이 타박하며 최찬서를 갈구는 와중에 김영재가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봤다.
“미안. 그래도 너 오기 전까지 아이디어를 좀 내보려고 했는데…이런 것들 뿐이네.”
“아뇨. 괜찮은데요?”
“엉?”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최찬서를 구타하고 있던 홍예슬이 고개를 갸웃했다. 최찬서도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도 내 쪽을 바라봤다.
“저도 찬서 선배 말에 동의해요. 이번 과학의 날 행사는 외부인도 참가하니까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학회가 아니다. 세미나도 아니다. 누가 누가 더 똑똑한가를 두고 대결하는 곳이 아니라, 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들도 편하게 즐기고 갈 수 있는 행사.
“그렇지! 그니까 지금 당장 게이밍 컴퓨터를 사서-”
“그건 안돼요. 아무리 백만원이 있어도 컴퓨터 사는데 다 사버리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참가자들이 앉아서 게임을 하다 갈 수 있는 시간도 충분치 않고요.”
“그럼 생각해둔 아이디어 있어?”
김영재가 아직은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양한 체험 부스들 위주로 진행되었으면 해요. 저희가 5명이니까 한 명 당 체험 코너를 맡아서 총 5개를 운영하는거죠. 예산은 인당 십만원 선에서 진행하고요.”
“나머지 예산은?”
“과학 전시에 퀄리티를 더 높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쪽은 진짜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관람하다 가는 쪽이니 퀄리티의 정도가 큰 영향을 줄 것 같거든요.”
부직포로 대충 만들어놓은 모형과 아크릴로 깔끔하게 주문 제작한 모형. 둘 중에 후자에 눈이 더 가는게 사실이듯이 사람들은 보기 편한 전시에 더 발걸음을 자주했다.
“하지만 당장 연구해놓은 것도 없고 전시에 내놓을 만한 성과가 없는데.”
“선배 개인적으로 연구하던 건 어때요?”
“어?”
김영재에 대해 이미 알만큼 안다. 그가 이렇게 동아리가 개판이 되어도 못 나간 이유는 ‘개인 연구’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 야자를 합법적으로 뺄 수 있으니까.
그런 목적으로 동아리까지 만든 김영재가 개인 연구를 진행 안하고 있을리가 없었다.
“…하나 있긴 한데, 그럼 그걸로 준비해볼게.”
“네. 저도 준비하던 거 공유할게요. 좀 있다가 한번 이야기해봐요. 그리고 예슬 선배.”
“응?”
“비즈로 DNA 모형 만드는 활동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한데 다른 아이디어도 더 생각해주시겠어요? 대상은 어린이들로 해서요.”
“어린이들이라…알았어. 한번 생각해볼게.”
누군가 떠오른 듯 홍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옆에서 시무룩하게 있는 방현욱을 바라봤다.
“현욱 선배. 채혈하는 건 좀 위험하니까 다른 실험은 어때요? 전에 보니까 현미경 사용하는 데 능숙하신 것 같던데.”
“어? 어. 현미경으로 보는 거 재밌어서 중학생때 자주 만지고 놀았거든. 배율 조정하는 건 안 어려워.”
“음, 그럼 현미경으로 할 수 있는 활동 생각해주시겠어요? 예산은 넉넉하니까 체험하고 가는 손님들한테 기념품으로 뭔가를 줄 수 있는거면 더 좋고요.”
“기념품이라…먹을 것도 돼?”
“음식은 빼고요.”
내 마지막 말에 방현욱이 살짝 풀이 죽은 것 같았지만 이내 다시 살아났다. 부실 뒤편에 놓여있던 현미경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나는?”
“찬서 선배의 역할이 제일 중요한데…”
“아 싫어, 쉬운 거 할래!”
“선배 게임 만들 줄 알아요?”
내 기억이 맞다면 최찬서는 훗날 대국민들을 사로잡은 전설의 게임 ‘팡팡팡’의 개발자가 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기 싫어서 게임을 만들었던 게 시작이었다던 최찬서의 인터뷰를 어렴풋이 읽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게임을 만들던 시기가 지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최찬서의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쯤인 것 같았다.
“어…그게 그냥 취미삼아 만들고 있는게 있긴 한데.”
“어려운 게임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냥 픽셀 도트 느낌으로 아기자기 할 수록 더 좋고요.”
“근데 만들기만 하면 돼? 주제는?”
“과학의 날 행사니까 과학이랑 관련이 있으면 좋겠어요. 기왕이면 저희 뇌생공쪽으로요.”
“뇌랑 관련지은 게임을 만들라고?”
뇌랑 관련지은 게임. 한때 전국민적으로 ‘두뇌개발’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만들어진 게임을 떠올리며 말했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기억력 게임, 주의 지각 게임 등 그냥 방문객들이 체험해보고 ‘뭔가 똑똑해지는 기분인데?’ 정도만 느껴도 좋아요. 아니면 그냥 재밌게 즐기고 가도 되고요.”
“그 정도 간단한 게임은 만들 수 있어.”
“그럼 부탁할게요 선배.”
일사천리로 최찬서까지 과제를 주고 난 후, 나는 김영재를 바라봤다. 그는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선배는 저랑 연구 이야기나 좀 합시다.”
“옙.”
저도 모르게 나온 부장의 존댓말에 부원들 모두가 빵 터졌다.
“꺄핳, 뭐야. 나 부장이 저렇게 긴장하는 거 처음봐.”
“아니 1학년 포스가 미쳤네.”
“아, 혹시라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명령조로 이야기 한 건 아니었어요.”
“아냐, 아냐. 오히려 너가 와서 일이 진행되는 느낌인 걸. 고맙지 뭐.”
전생에도 이렇게 이끌어야하는 상황은 종종 있었다. 아무리 개별 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팀 활동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있었으니까.
‘조금 달라진 건가.’
물론 전생때는 이런 과학 부스를 해본 적이 없다. 시험 공부 하기도 바빠죽겠는데 이런 행사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4일 남짓. 금토일 운영되는 행사인 만큼 시간이 촉박했다.
앞으로 방과후마다 행사 준비로 바쁠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시간 낭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만덕 학생이 운영하는 곳은 꼭 들려보겠네. 아무리 바빠도 말이지!’
한국창의재단의 이사장, 한학수. 그는 학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나는 학생이 학생답지 못한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네. 때로는 그 모습에 취해 잘못된 길을 가는 학생들이 있으니 말이야.’
‘잘못된 길이요?’
‘내가 제일 똑똑하다, 그러니 남의 도움따위는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말일세.’
순간 정곡이 찔렸었다. 전생의 내가 하던 생각이었으니까.
‘이번 과학의 날 행사 때 만덕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보러 가겠네. 그때 보게나.’
한학수의 서늘한 눈빛이 어쩐지 잊히지가 않았다. 한없이 유해보이지만 눈빛만큼은 맹수와 같던 그.
“선배. 조용한 곳으로 자리 좀 옮길까요?”
맹수에게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