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6화(26/221)
26. 과학의 날 (3)
26. 과학의 날 (3)
“일단 준비한 거 가지고 오라고 해서 들고 오긴 했는데…”
김영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트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네임펜으로 굵게 쓰여진 ‘연구 노트’라고 적혀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포스트잇과 손때들만 봐도 그가 이 연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다.
[유전자 편집]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결합할 수 있는 기술. 하지만 활용 방안은?] [단순히 치료의 개념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걸까?]그가 혼자서 고민한 흔적들을 묵묵히 읽어내려갔다. 김영재는 머쓱한 듯이 몇번이고 나와 노트를 번갈아 보았고 이내 포기한 듯이 내 반응을 기다렸다.
“선배. 진짜 열심히 연구하셨네요.”
“어? 아냐. 그냥 생각만 했던 거지 이렇다 할 실험을 해본 적도 없고…그냥 심심해서 끄적여본거야.”
김영재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말했지만 이미 그의 성과를 전생에서 보고 온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진심이었고, 이 연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는 것을.
‘연구를 하고 싶다고 동아리까지 개설할 정도였으니 뭐. 이정도는 예상했어.’
하지만 아쉬운 건 그의 말마따나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의 연구 노트의 대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할 경우의 부작용은 뭐가 있을까? 정도였고, 실제로 실험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절차는 적혀있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직접 실험을 해보고는 싶었는데 우리 학교 시설로는 불가능하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유전자 수준으로 실험을 하려면 몇 천만원 기기가 있어야하는데 그런건 대학교나 전문 연구원에 있으니까.”
“전에 제가 했던 말 기억해요? 연구할 곳은 준비되어있다는 말이요.”
“아, 기억은 하는데…”
김영재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너가 연락처랑 위치를 알려주긴 했는데 솔직히 어떻게 내가 거길 가. 애초에 그런 기계 만질 줄도 모르고 괜히 잘못했다가 감당할 수도 없어.”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김영재. 사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박성민에게 아무런 연락도 안왔을 뿐더러 종종 연구실에 들리면 누가 왔었다는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김영재가 유전 공학 부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건 좀 나중에 일이긴 해. 하지만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타임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사실을 바꾸면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미쳐 시간의 인과관계가 꼬여버린다는 말.
나는 김영재의 연구 노트를 손에 든 채로 잠시 고민했다.
만약 내가 지금 김영재를 연구실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된 정보나 힌트를 제공한다면? 그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연구 노트는 그가 그간 얼마나 고민했는지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아직 그가 유전자 편집 기술, 즉 유전 공학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상태가 아닐 때 내가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미래의 유전 공학자 김영재는 없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김영재라면 오히려 이 사실을 발견해 더 불타오를거라는 확신이.
그도 나와 같은 별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내게 뇌 공학과 관련된 역사적인 발견을 알려준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선배. 지금 당장 가죠.”
“지금? 어디로?”
나는 연구노트를 가방에 챙기며 웃었다.
“연구실이요.”
*
“오, 그래. 학회는 잘 갔다왔고? 수학자들한테 단체로 린치당한 건 아니야?”
“수학자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야 괴짜들?”
“다들 평범했어요. 적어도 선생님보다는요.”
이녀석이! 서울국립뇌과학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을 맡고 있는 박성민이 낄낄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누가 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김영재가 얼음장처럼 굳은 채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친구는?”
“전에 말했던 동아리 부장 선배요. 유전 공학쪽에 관심이 많다고 했던.”
“아. 그 괴짜 친구. 연구하고 싶어서 동아리까지 만들었다고?”
“아,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고등학교 2학년 3반 4번 김영재 입니다!”
김영재가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하자 박성민이 더욱 크게 웃으며 화답했다.
“괜찮으니까 여기선 편하게 대해도 돼. 나는 어차피 특별반 대상으로 선생님인거지, 지금은 그냥 연구원에 불과하니까.”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뭐라고?”
“유전자 편집 기술입니다. CRISPR 관련해서 연구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박테리아와 고세균의 게놈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DNA 서열.
박성민은 미래의 유전 공학자가 될 김영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유는?”
“네?”
“이걸 연구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거 아니야. 이 연구를 통해 뭘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분명 방금전까지는 사람 좋은 삼촌같은 이미지였는데, 순식간에 냉철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김영재는 오히려 이쪽에 더 강한 사람이었다.
“농업쪽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굳이 농업으로? 의학쪽이 더 밀접하고 가치있지 않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사실 오래전에 나온 토픽이었지만, 제대로 연구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윤리적 문제, 그리고 현재에선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 등이 손에 꼽았다.
하지만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 필요한 부분에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의학계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 실제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이런 상태는 쭉 이어지다가 김영재의 유전자 편집 관련 논문이 세상에 나오면서 급진적인 변화가 시작되지.’
나 역시도 나중에 김영재가 발견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병 치료 연구에 뛰어들 수 있었으니까.
새삼 눈 앞의 인물이 엄청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있는데, 박성민은 영 탐탁치 않은 분위기였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 팔 벌려 환영할, 아니 당장이라도 뇌 구조를 분석해보자며 달려들 인간인데 영 이상했다.
“자네 농업쪽 말고 뇌 신경과학 쪽으로 연구해 볼 생각은 없나?”
그럼 그렇지. 박성민은 김영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 유능해 보이는 인재를 자기 쪽 분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영재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쪽 계열이 좋아서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기기 작동하는 법은 만덕이가 알려주고, 무슨 문제 있으면 너한테 다 뒤집어 씌울테니까 관리 잘 해라.”
“예?”
박성민은 가벼운 외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주말엔 나도 좀 쉬자. 약속이 있다고.”
“뭔데요? 중요한 약속이에요?”
“…소개팅.”
아. 순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영재는 박성민이 미혼이라는 점에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거 수 천만원짜리 기계라면서요. 저희한테 맡겨도 되는거에요?”
“어차피 너 전에 와서 혼자 잘 쓰다 갔더구만.”
“뭐야, CCTV 돌려봤어요?”
“내 기계 쓰는 거 좀 보겠다는 데 왜. 싫어?”
“아니, 그래도 그냥 말을 하지-”
그렇게 옥신각신 하는 사이 어느새 박성민은 나갈 준비를 다 마쳤다. 그는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라면 믿을 수 있어서 그래.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있으면 저 친구도 제대로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아, 아닙니다!”
“원래 연구는 혼자서 조용히 할 때도 필요한 법이거든. 그리고 여차해서 고장나면 뭐, 만덕이 노예로 삼으면 되지.”
“이미 랩실 노예인데요…”
“이젠 자본주의적 노예가 되는거지.”
섬뜩한 말을 남기고 박성민은 문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휑해진 연구실에서 김영재는 나를 바라봤다.
“하하…저 분이 장난이 좀 심해도 나쁜 분은 아니에요. 그냥 좀 외로운 사람…”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여기 와 볼 생각도 못했을거야. 뇌과학 책임 연구원분도 만날 일도 없었을테고. 기계는 사용법만 알려주면 최대한 조심히 다룰게.”
김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에게 기계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실시간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기계에요. 선배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특정 DNA 서열을 증폭하는 데 사용해요.”
“유전자 발현 변화를 정량화할 때 좋겠네.”
김영재는 이해력이 매우 높았다. 말 그대로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학생으로 기계에 대한 설명만 해줬을 뿐인데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건 세포 배양 장비인데 세포를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인큐베이터는 이쪽에 있고요, 생물반응기는 이쪽을 보면…”
하나씩 장비를 설명해주고 난 뒤, 우리는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사실 귀국하고 난 뒤에 계속 쉬지 않고 온 상황이라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미안. 안그래도 이제 막 귀국해서 피곤했을텐데.”
“아니에요. 지금은 행사 준비가 급하니까요.”
연구실 근처 유명 프랜차이즈 버거집에서 주문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버거가 나오기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김영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만덕아. 나 궁금한게 있는데, 이 연구소는 어떻게 알게 된거야? 개인 연구실은 또 어떻게 얻었고?”
“아 그게,”
순간 박성민과의 연구를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닫았다. 비밀 조항도 조항이었지만, 이런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걸 알려봤자 여러모로 피곤해질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시는 분이거든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일부러 여지를 많이 남긴 채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김영재는 납득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교장쌤이랑도 친하고 미국에 학회까지 갔다 올 정도면 인맥이 넓겠네. 어쨌든 너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어. 이 기회는 어떻게든 보답할게.”
“에이, 아니에요. 저야말로 동아리에 가입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아냐. 내가 더 고맙지.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폐부되었을거야.”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김영재가 부담스러웠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전생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던 그였는데, 어느새 나는 그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나중에 졸업하고도 꼭 연락하고 지내자. 나는 다음 학기에 조기 졸업계 내려고.”
“와, 선배 공부 잘하셨네요?”
“뭐. 나쁘지 않게 했지. 그래봤자 전교 2등인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나도 그냥 별 대꾸 없이 넘겼다. 전교 2등인건 사실이니 굳이 여기서 겸손을 떨어봤자 마이너스니까.
“선배는 잘 될거에요.”
“응?”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무조건 잘 될거에요.”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비록 그는 조금 늦은 나이에 연구 업적을 이뤄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뤘다.
“전에는 관상이더니 이번에는 눈이야? 유사 과학은 사양인데.”
“체험존에 유사 과학도 넣을까요? 손금 봐주기 어때요?”
“윽. 그만해.”
전생에는 없었던 인연이 이번 생에는 이렇게 이어졌다. 학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든든한 동료가 늘어간다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이인성]“어, 잠시만요. 전화 좀 잠깐 받을게요.”
“응.”
평소라면 전화보다는 문자를 하는 녀석인데, 나는 살짝 이질감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이인성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깔려있었다.
[어, 귀국했냐?]“응. 왜?”
[아, 그게. 음. 너 혹시 싸이월드 같은 거 해?]싸이월드. 한때 대한민국에 도토리 열풍을 불게 했던 SNS였다.
“아니? 왜?”
[아이씨…그게 나도 잘 안하는 편인데 오늘 들어가보니까 누가 비밀 방명록으로 너에 대해 안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싸이월드 하고 있는 애들한테는 다 뿌렸다는 것 같은데.]“소문?”
이인성이 한동안 입을 꾹 닫았다. 침묵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소문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너…기생수, 그니까 기초생활수급자라고.]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