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7화(27/221)
27. 과학의 날 (4)
27. 과학의 날 (4)
기초생활수급자.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
그게 바로 나였다.
시골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못 사는 건 아니었다. 누구는 과수원 집 딸내미였고, 누구는 이장님 막내 아들이었다.
그냥 우리 집이 못 사는 거였다.
‘만덕아, 엄마가 미안해.’
어머니는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셨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빚을 남겨둔 것, 상속 포기도 할 수 없게끔 어머니 이름으로도 빚을 만들고 사라지신 것.
그 탓에 어머니는 늘 죄인처럼 지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래도 상황 판단이 빠른 편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잘해야겠구나, 라고.
물론 공부가 좋았던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위기감은 결과적으로 내가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고, 그곳에서 악을 쓰고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여간 소문을 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소문을 내고 지랄이냐. 참 할 짓들도 없다.]전화기 너머로 이인성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 없었지만, 어째선지 인상을 쓰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네, 나 이런 것들에 환멸을 느꼈었지.
전생의 내가 삐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이벤트가 어째선지 이번 생에는 조금 빨리 터졌다. 과거로 회귀한 뒤로, ‘설마 이번에도 일어날까’ 하던 일이 결국은 일어났다. 그 방식과 시기는 좀 달랐지만,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
그 명제가 참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나 수급자 맞는데.”
[엉?]“기초생활수급자 맞아.”
전생과 지금의 나. 달라진 상황은 없다.
물론 작은 범위에서 보면 성적이 올랐다든가, 특별반에 들어갔다든가, 하는 변화는 있었지만 우리 집을 괴롭히던 빚더미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변했다.
“아버지가 빚 보증을 잘못 써서 집안이 망했거든. 그 뒤로 어머니 이름으로도 빚이 생기다보니까 이렇게 되었네.”
담담하게 있었던 일들을 말해줬다. 언젠가는 기회가 된다면 쌍둥이들에게 말해주려던 내용이기도 했다. 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공유할 필요는 없다는 주의지만, 이녀석들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생의 나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긴 하지만.
‘김만덕 기초생활수급자라고? 거지라는 소리야?’
‘헐. 어쩐지 전교 꼴등이길래 뭐지 싶었는데.’
‘돈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진짜 이정도면 인생 리셋해야하는 거 아니냐.’
나를 조롱하던 녀석들도 분명히 있었다.
‘돈 때문에 수학여행 못 간다고 하던데 우리가 모금해서 주는 건 어떨까?’
‘만덕아. 이거 남는건데 너 쓸래?’
동정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녀석들이 더 악질이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녀석들은 어느쪽일까.
[아 뭐야. 사실이었어?]심드렁한 이인성의 말. 이어지는 말은 담담하다 못해 무심할 지경이었다.
하, 둘의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냥 쌍둥이들 답다는 생각 뿐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따뜻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전생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 순간 이인영이 전화기를 뺏어들고 말을 가로챘다.
[너 나랑 R&E 하기로 한 거 안 잊었지?]“어, 어.”
[오케이, 됐어.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짧게 본론만 말하고 다시 전화기를 바꾸는 쌍둥이들.
[이제 밥 먹으러 가봐야해서 끊는다. 쨌든 내일 학교에서 봐.]“어.”
뚝. 전화가 끊겼다. 정없는 통화의 마무리였지만 오히려 그런 담담함이 더 좋았다.
일어나야 하는 일은 일어났어도, 전생처럼 내 인생을 뒤바꾸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때마침 김영재는 버거를 들고 오느라 전화 내용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미리 말할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굳이 먼저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가난한 게 죄는 아니지만 소문내고 다닐 것도 못되니까.
그리고 이제 그 사실은 별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눈 앞에 있었다.
“근데 너는 연구 주제가 뭐야? 내 이야기만 했네.”
“뇌 관련 연구에요.”
“뇌? 그러면 실험은 좀 어렵겠다. 과학 전시에는 기존에 알려진 뇌 상식 위주로 준비하면 되려나?”
햄버거를 먹으며 되묻는 김영재를 바라봤다.
“아뇨. 이미 실험은 끝났어요.”
전생에 말이죠.
*
폭풍전야같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가니 이인성과 이인영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주말동안 미국은 잘 갔다왔어?”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탔지?”
“응. 실내화도 서비스로 챙겨주시더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인영은 이따금씩 내 상태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인성은 전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 편이 편하기도 했다.
“학회는 어땠어? 그런데를 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내말이. 게다가 교장쌤이랑 같이 간 거라며? 대체 왜?”
수학 마지막 문제를 증명하다가 학회까지 가게 된 것 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학생들한테는 말하고 다니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부탁과 더불어 나 조차도 그 후폭풍을 굳이 감수하고 싶지 않았으니.
‘괜히 수학 난제를 푼 학생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쓸데없이 시기를 받을 만한 일은 안 만드는 게 좋지.’
어차피 내 목적은 교사나 교수들에게 나를 알리는 거지, 학생들의 눈에 띄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을 테니까. 이건 내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이기도 했다.
드르륵. 그때 교실로 한 명이 들어왔다. 익숙한 단발머리. 박은지였다.
전에 화학 수행평가 때 한번 부딪히고 난 뒤로, 박은지는 의식될 정도로 나를 피해다녔다. 어쩔 수 없이 같은 조가 되는 순간이 와도 투명인간이 된 것 마냥 나와 말조차 섞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꿈틀거린 걸 나는 느꼈다.
“쟤인거 같아.”
그때 조용히 내 눈치를 살피던 이인영이 말을 꺼냈다.
“쟤가 너 소문 퍼뜨리고 다닌거 같다고.”
“증거는?”
“내가 쎄한 사람들을 잘 걸러내는데 지금 엄청 쎄해.”
“유사 과학은…”
“유사 과학 아니거든? 인간의 육감은 빅데이터인거 몰라?”
평소에 이런 이야기는 학을 떼며 싫어하는 이인영인데, 이정도로 확신하는 걸 보면 얘도 어지간히 많이 데였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오늘 물리때 조별활동 한다고 했던가?”
“응. 빛 관련해서 실험 한다고 하던데. 굴절, 반사 뭐 그런거.”
이인성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물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실험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인성의 경우엔 문제 풀이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실험 같은 거 귀찮아. 그거 굳이 실험 해 봐야해? 그냥 머릿속으로 답 나오는 거 아닌가?”
“재수 없으니까 조용히 해.”
“맞다, 너희도 이번에 과학의 날 행사때 뭐 해?”
둘이 티격태격하기 전에 빨리 화제를 바꿨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노려보던 눈이 나를 향했다.
“아니? 너는 뭐 해?”
“응. 이번에 자율 동아리에서 부스랑 전시회 하기로 했거든.”
“와, 대단하네. 나는 그런 거 시간 아까워서 못하겠던데. 솔직히 그거 한다고 뭐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잠깐. 정규 동아리가 아니고 자율 동아리라고?”
이인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과학고 내에서 자율 동아리의 활동이 다른 고등학교보다 활발한 편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규 동아리가 우선이 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응. 정규 동아리는 생물 동아리이긴 한데 1학년보다는 2, 3학년 선배들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내가 할 일이 없어서.”
“하긴 우리 동아리도 그래.”
과학고는 특목고인 만큼 대부분 좋은 대학을 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기 졸업과 조기 진학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고, 그 외에는 다들 입시를 위해 여러가지로 준비하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되는 만큼, 다들 동아리 활동에 진지하게 임했다. 특히 정규 동아리의 경우에는 그 파워가 나름 강력했기에 다들 한줄이라도 잘 쓰여지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였다.
그런 치열한 싸움 속에서 1학년까지 차례가 오지 않기도 했고.
“나도 너 하는 자율 동아리 들어갈 걸 그랬나. 야자도 빼준다며.”
“야자 빼주긴 하는데, 차라리 야자하는게 더 나을 걸. 지금 다들 한 숨도 못 자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거든.”
어제를 기점으로 뇌생공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시범으로 만든 프로토 타입인데 한번 확인하고 피드백 좀.] [예산으로 이 현미경 사도 돼…? 비싸긴 한데 한 대 있으면 퀄리티가 확 올라갈 것 같아서.] [아이들도 여러가지 체험할 수 있도록 시안을 좀 만들어 봤어.]늦은 밤, 점호 시간 전에 핸드폰을 내려고 했는데 문자가 우수수 와서 놀랐다.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동아리 선배들이었다.
[만덕아. 오늘 너 연구 듣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 아직 1학년밖에 안됐는데 그런 주제를 선택해서 이미 실험까지 마쳤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나랑 한살 차이 밖에 안나는데-]그리고 나름 심도깊게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김영재는 자아성찰 수준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길이가 너무 길어서 MMS로 하고도 4통 정도 왔다는게 문제지만…
“그래도 목금토 3일은 야자 빼주니까 개꿀 아님?”
“그때 너희 동아리 구경갈게. 전시도 보러가고.”
“응. 고마워.”
그렇게 동아리 이야기가 끝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담임인 박민철이 들어왔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 잡담, 점심, 휴식, 그리고 다시 수업.
쳇바퀴같은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사건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자, 지금부터 조별로 파동 문제를 나눠주겠다. 시간은 15분. 그 시간동안 모둠원들이 의논해서 풀이 방법을 적고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다.”
랜덤으로 짠 모둠은 한마디로 지뢰밭이었다.
날 싫어하는 게 딱 보이는 박은지, 수업 시간에 매번 엎드려 자고 있는 유진혁, 그냥 불편한 최한별까지…
어색하기 짝이없는 모둠 구성에 착잡해하던 중, 박민철이 문제지를 나눠줬다.
“오늘 실험과 관련있는 문제들이니까 단순히 실험 결과값 측정에서 끝내지 말고 실제 이론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파악해보도록.”
받아든 문제는 쉬운 문제였다. 편광과 관련한 문제로 Malus의 법칙 및 Brewster의 각도와 관련된 문제.
[초기 강도를 갖는 무편광 광선이 굴절률이 1.5인 유리 표면에 입사되고 있다. 유리 표면에 대한 광선의 입사각은 45도이며, 반사된 빛은 투과축이 수직에 대해 30도 각도로 배향된 편광판에 입사될 경우, 편광판을 통과하는 빛의 강도를 구하시오.]종이를 자신 쪽으로 끌고 온 박은지가 상의도 없이 풀이를 적기 시작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그런 건 이해한다지만, 모둠원들이 당황하는게 느껴졌다. 애초에 조장은 최한별이기도 했고.
“편광은 굴절이라고 생각해도 되니까 이 문제를 풀려면-”
“아냐. 편광이랑 굴절은 달라.”
“뭐?”
게다가 잘못된 내용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길래 한마디 했을 뿐인데, 눈이 가로로 가늘게 떠졌다.
“야매로 풀면 결국 마지막에 가서 꼬일 수도 있으니까 정석 풀이로 가는게 나아. 편광은 광파의 전기장 벡터 방향이고, 굴절은 매체가 변할 때 빛이 휘어지는 현상이니까.”
“Brewster의 각도로 풀면 그게 그거인 내용이잖아.”
“그래도 풀이 과정에 둘을 같은 개념이라고 두고 풀면 안되지. 차라리 둘이 다른 걸 밝힌 후에 이 경우에는 풀 수 있다고 적는게-”
“너가 뭘 알아?”
박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15분동안 다 써야한다고. 이런 문제는 결국 시간 싸움인 거 몰라?”
“이게 객관식 문제도 아니고 있다가 앞에 나와서 설명해야하는데 괜히 오개념으로 지적당하는 건 괜찮고?”
“하.”
상황이 점점 안좋게 흘러가는 느낌이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박민철은 야매 풀이나 개념을 혼용해서 쓰는 걸 실제로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너만 괜찮다면 내가 풀이 쓸게. 물론 논의는 다같이 하고-”
탁.
박은지를 향하던 손이 내쳐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박은지가 말했다.
“기생수 주제에…”
경멸에 찬 목소리가 반 전체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