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9화(29/221)
29. 과학의 날 (6)
29. 과학의 날 (6)
중간고사가 끝난 후 시험 등수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서술형 평가 채점, 그리고 문제 이의제기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설을 진행하다보면 최소 일주일동안은 텀이 생겼다.
그리고 그 텀동안 대부분의 과학고 학생들은 과학의 날 행사를 준비했다. 과학의 날 행사는 크게 과학 체험 부스 운영과 과학 전시. 두개로 이루어진다.
“자자, 지금부터 동아리별 부스 위치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영재는 동아리 부장 회의에 참석한 상태였다. 과학고에서 매년 치러지는 정기 행사가 크게 3가지가 있었는데, 과학의 날 행사, R&E 발표, 축제였다.
“이번 과학의 날 행사는 크게 A, B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운동장이 A구역으로 체험 위주의 부스를 중심으로 운영해주시면 될 것 같고요, B구역은 강당. 여기서는 동아리에서 진행한 실험이나 보여줄 성과 위주로 전시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 학교 약도를 띄워둔 채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남학생. 한국 과학고의 전교 회장을 맡고 있는 백상엽이었다.
“부스 참가하기로 한 동아리들은 배정된 위치 파악해주시고 이상 있으시면 이야기 해주세요.”
김영재는 빠르게 뇌생공을 찾았다. 이번에는 예산도 많이 받았겠다, 분명 좋은 자리를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저기…저희 동아리에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요.”
“동아리 이름이?”
“뇌생공입니다.”
백상엽은 미간을 좁히며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러다 지도에서 A구역 제일 변두리에 마련된 [뇌생공] 부스를 발견했다.
“저희가 이번에 체험 부스를 좀 많이 운영하는데 배정된 부스는 1개밖에 안되어서요. 그럼 테이블 한 개 줄 텐데 한 개에 다 운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자율 동아리는 부스 배정에 한계가 있어서요. 일단 정규 동아리 우선으로 부스가 배정 되고 남는 자리에 자율 동아리를 넣습니다.”
“그렇게 치면 뉴로 퓨쳐스도 자율 동아리인데 4개 부스 맡았는데요.”
김영재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답변은 백상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야 뉴로 퓨쳐스는 역사가 깊고, 연구 실적도 많으니까요.”
목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한 남학생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하고 있었다. 자율 동아리 뉴로 퓨쳐스의 부장 신태훈이었다.
“역사가 깊은 거랑 부스 수랑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적어도 올해 갓 만들어진 동아리에 비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저희는 보여드릴 것들도 다 구상해둔 상태인데요.”
“저희는 이미 다 만들었습니다. 구상은 이미 진작에 끝난 상태고요.”
신태훈과 김영재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사실 둘은 학년 초부터 지독하게 이어진 악연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화려한 인맥으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또 이용할 줄 알던 신태훈.
그에 반해 혼자서 연구하고 혼자서 활동하는 게 더 편하고 도움을 받으면 몸서리치듯 싫어하던 김영재.
성향은 이렇게 정반대였지만, 둘의 관심사는 비슷했기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대체 왜 우리 R&E에 너희 사촌 형 도움을 받아야하는건데? 애초에 우리 힘으로 조사할 수 없는거면 다른 주제를 찾아야하는 게 맞는거 아니야?’
‘그렇게치면 지도 교사는 왜 있냐? 지도 교사 도움도 받으면 안되는거 아니야? 그리고 인맥도 다 자산이야. 필요한 거 묻고, 나도 도와줄 거 있으면 돕고. 그러면서 사는거 아니냐고.’
‘그래, 그런 놈이 지구과학 수행평가때 조원들꺼 홀라당 다 베껴서 제출하냐?’
그렇게 서로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렸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전에 보니까 동아리 운영도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 같던데, 부스만 무작정 늘렸다가 이도저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만.”
“동아리 운영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만.”
“한 명은 화장하고, 한 명은 게임하고, 한명은 과자먹고 있는게 운영이 아주 잘 되는건가 보네요?”
“크읏…”
김영재가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날 하루만 그랬던 겁니다.’ 라고 이야기하기엔 양심이 찔렸다.
아무말 못하고 속앓이 하는 김영재를 보며 신태훈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려는데, 갑자기 김영재가 고개를 바짝 들었다. 신태훈이 아닌 전교회장 백상엽을 바라보면서.
“부스를 더 배정해주실 순 없으신건가요?”
“물론 여기서 부스를 양보하겠다는 동아리가 있다면 가능하지만…그 외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생 동아리인것도 있고 이번에는 외부 귀빈들도 많이 참석하셔서요.”
“그러면 동아리 예산으로 부스를 구입하는 건 가능합니까?”
“예?”
뚱딴지같은 말에 백상엽과 신태훈, 그리고 이곳에 모여있던 다른 동아리 부장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다들 김영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공간이 부족한 건 아닌것 같아서요. 보니까 저희 부스가 제일 변두리인데다 양 옆으로 공간이 충분히 있는데, 개인적으로 부스를 추가해도 되는지 질문드립니다.”
“…개별적으로 더 늘려서 운영하겠다는 건 말릴 수 없긴 한데 안내 책자에 부스는 1개로 소개 될 겁니다.”
“괜찮습니다. 안내 책자도 개별로 뿌리죠 뭐.”
김영재의 자신만만한 말에 신태훈이 코웃음을 쳤다. 근거 없는 패기가 그저 만용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율 동아리 예산가지곤 택도 없을텐데? 아. 혹시 부원들 중에 금수저라도 있나?”
“금수저는 아니고 복덩이는 있지. 그럼 되는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김영재는 신태훈의 말에 가볍게 응수한 뒤, 백상엽을 바라봤다.
“과학의 날 행사 취지에 안맞는 게 확인되면 철거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스 안내와 과학의 날 행사 일정을 소개한 뒤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다들 회의장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신태훈이 거들먹거리며 김영재의 자리로 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 어차피 행사때 너희 부스 찾아올 사람도 없을텐데. 그냥 그 돈 아껴서 부원들끼리 뭐 사먹는 건 어때?”
신태훈은 이미 부스 준비를 다 마쳐둔 상태였다. 이 날을 위해서 자신의 연락처에 있는 선배들이란 선배들은 이미 연락해둔 상태였다.
“너 조자령 교수님 알지? 이번에 세계 수학 난제 풀이법 관련해서 강의도 하신 분 말이야. 그 교수님하고 내가 아는 사이인데 이번 행사때 와주신다고 하네?”
“넌 뇌공학 동아리 아니야? 근데 왜 수학 교수님이 오시는건데?”
“이래서 너가 안된다는거야. 과학의 날 행사때 꼭 과학 관련해서만 와야한다는 생각이라니. 생각조차도 꽉 막혀있네.”
신태훈은 신이 난 상태로 자신의 인맥을 자랑했다. 이번에 오는 교수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난제를 풀기 위해서 몇년을 연구하셨는지, 그렇게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김영재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저번 주말에도 같이 저녁 먹었거든. 그때 논현동에서 먹은 한우가 아직도-”
“뭐야. 한국에 계셨다고?”
“엉? 그게 왜?”
김영재가 코웃음을 쳤다. 신태훈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김영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아냐. 그냥 우리 부원 중에 한명이 좀 바빴거든. 미국까지 갔다올 정도로 말이야.”
“아하, 걔구나? 금수저? 이번에 부스때 얼마나 내겠대?”
“음 금수저는 아니고 복덩이이긴 한데, 한 백만원쯤?”
“백정도야 뭐….아니. 백만원?!”
김영재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태훈을 뒤로한 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복덩이가 있는 부실로 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
“만덕아, 이거 한번 봐볼래? 너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 대상으로 한번 만들어봤어.”
“현미경 활용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현미경으로 일상 생활의 물건들을 확대해서 보고 사진으로 출력해주는거지. 부스 이름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로. 어때?”
“어때? 너가 말한대로 최대한 그래픽쪽은 옛날 오락실 감성을 살려봤어. 그대신 내용적인 측면이나 구성에 좀 더 신경을 썼는데…”
과학의 날 행사가 다가오면서 동아리 부원들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배가 되고 있었다. 다들 자신이 준비한 걸 나한테 확인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예슬 선배 손 재주가 좋으셨네요. 다양한 시안이 있어서 아이들도 원하는 걸로 재밌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예전부터 손재주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징. 나 어릴 적 취미가 곤충 해부였거든. 여름이면 개미랑 초파리 잡아서 해부하곤 했어.”
“그건 그거대로 신기하네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홍예슬의 취미를 들으며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한곳에는 방현욱이 있었다.
“현욱 선배 아이디어 좋네요.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도 오시니까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는게 있으면 더 의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진 출력은 어떻게 하면 되는거에요?”
“아, 이 현미경이랑 노트북을 연결해두기만 하면 돼. 근데 우리 동아리에 프린터가 없어서 사야하는데 괜찮을까?”
“네. 예산은 충분하니까요. 샘플로 뭘 확대할지 구상만 좀 더 해주세요. 기왕이면 일반인들을 위해 현미경을 다루는 방법도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방현욱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자리로 갔다. 보아하니 샘플은 이미 다 생각해둔 모양이었다. 나는 제일 기대하고 있는 최찬서를 바라봤다. 안그래도 빼빼 마르고 다크서클이 심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시체였다.
“선배 잠은 자면서 하고 있는거죠?”
“잠 잘거 다 자면 못 만들어.”
“아니 그래도 잠은 자야죠. 뇌과학 측면에서도 적당한 휴식은-”
“잠이 아니라 영혼을 갈아서 만들어야지. 내 첫 게임인데.”
눈 밑 다크서클이 턱끝까지 내려온 상태였지만 그의 눈 만큼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 몰입도가 달라지네.’
원래도 게임할 때 한 몰입을 자랑하는 최찬서였지만, 지금은 그 궤가 달랐다.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고, 또 욕심도 내고 있었다.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고 말겠다는 욕심이.
나는 그가 건넨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아기자기한 픽셀 도트로 표현 된 시작화면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자 옛날에 자주 하던 몬스터 게임 느낌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세계를 누비며 몬스터를 포획하고, 박사님한테 바쳐서 분석하고, 또 진화시키는 게임. 포0몬과 유사한 스토리 라인이었지만 그 세부 내용은 달랐다.
“너가 뇌과학이랑 관련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스토리 라인을 짜다보니까 단순히 몬스터 잡고 싸우는 거로는 부족하겠더라고. 그래서 강화 부분에서 그 내용을 좀 더 추가해봤는데…”
최찬서가 준비한 게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장이라도 출시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뒤로 갈수록 교육적인 내용도 적절히 섞여 있었다. 이 게임이 있다면 어려운 공부도 쉽게 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 거짓말 아니고 진짜 너무 잘 만들었는데요? 이거 나중에 출시해도 될 것 같아요.”
“에이, 누가 요즘 이런 게임을 한다고. PC게임으로 하기엔 너무 유치해.”
“음 PC게임으로 치면 그럴수도 있지만…”
지금 시기는 아직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되는건 2009년 10월 이후. 아직까지 시간이 좀 남았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면 최찬서에게는 충분한 가능성과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부원들의 진행 상황을 하나씩 확인해주고 있는데, 김영재가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묘하게 들떠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해야할 일이 많았으니까.
“부장 선배. 전시 준비하던 건 어떻게 되고 있어요?”
“이제 거의 다 마무리 되었고, 너 연구 자료만 인쇄소에 맡기면 돼. 일반 사이즈로는 학교에서 출력하기 애매하더라고. 그렇다고 분절해서 출력하면 모양이 좀 그렇고.”
“감사해요. 근데 부장 회의는 어땠어요? 뭐 추가로 변경된 사항같은 거 있어요?”
내 말에 김영재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물었다.
“우리 예산이 모자란가?”
“아뇨? 오히려 남을 것 같아서 걱정인데요?”
“다행이네. 테이블 몇 개 사야할 것 같거든.”
테이블? 왜 사려는 건지 감이 오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딱봐도 신생 동아리라고 부스도 제대로 안 배정해준거겠지.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외부인사들도 오는 중요한 행사 자리. 대표격 동아리들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테니까.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석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배 오늘 저녁엔 부스 준비하는거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잠깐 외출할 일이 생겨서요.”
“괜찮아, 괜찮아. 할 일은 거의 다 끝났는데 뭐.”
그때 때마침 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나는 가볍게 김영재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이제 출발하려고요.”
“만덕아, 내가 아직도 안 믿겨서 계속 데이터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 있긴 한데, 이거 진짜 사실이니? 너 대체 이런 연구를 언제-”
떨리는 목소리. 박성민은 지금 극도로 흥분 상태에 빠져있었다.
“가서 말씀드릴게요.”
나는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