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화(3/221)
3. 입학(3)
3. 입학(3)
우리는 천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어려운 수식을 암산으로 뚝딱 풀어내는 사람?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하던 규칙을 발견해내는 사람?
사람마다 천재를 정의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정의 속에서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차원이 달라.’
교직 경력 14년차인 화학과 김영환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벙찐채 바라보고 있었다.
“브래그의 법칙(Bragg’s law)을 사용해 DNA 구조를 규명한 크릭과 왓슨의 사례도 주목할 수 있습니다. 브래그 법칙이란 결정구조의 반사면과 광선이 이루는 각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림과 함께 설명을 드리자면…”
눈앞의 학생은 칠판에서 선을 그으며 입사광선과 반사광선을 그렸다. 마치 제 교실인양 능숙하게 분필을 꺼내 설명하는 모습이 웬만한 교사의 수업과도 같았다.
“이 경로를 AB, 이걸 BC 경로라고 정한다면 경로차는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때 파장을 λ라고 표시한다면…”
이게 생물인지 수학인지 이제 분간이 안된다. 사인, 코사인 같은 삼각함수들이 등장하면서 칠판은 빽빽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열띤 설명을 하던 학생은 상기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구조를 수학 법칙을 이용해 단백질과 같은 큰 분자의 구조를 파악해내는 것은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단순 암기식 지식들로 가능한 일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설명을 마친 김만덕이 조용히 되물었다. 생물학이 단순 암기식 지식이 아니냐고 물어봤던 학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니까 이 모든 게 결국 그냥 암기하면 되는-”
“거기까지.”
김영환의 제지에 남학생이 입을 꾹 닫았다. 교사로서 학생들 간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는 건 늘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기엔 시간이 주어진 시간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둘을 위해 토론장이라도 열어주고 싶지만 오늘이 예비 소집 첫날이란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한테 설명해줘야 할 게 한가득이고 12시까지는 끝내야 하거든.”
시계는 어느새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당에서 여기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한 시간동안 학생 한 명이 반을 휘어잡았다. 그것도 생물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물리, 수학, 화학, 심지어는 지구과학의 지질학 부분까지 언급하면서 생물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 열띤 강의를 펼쳤다.
“어느 학문이나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한다. 다른 학문을 경시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김영환의 말에 남학생은 아예 고개를 푹 숙였다. 예비 소집 첫날부터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은커녕 무식한 꼴만 입증해버린 셈이다.
사실 김영환 본인도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편견, 생물학은 다른 과학보다 못하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만덕은 푹 숙인 학생을 잠깐 바라보더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정도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우쭐댈만도 한데, 김만덕은 무표정이었다.
그저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표정.
“…자, 앞으로 너희가 배우게 될 과목들에 대해 소개를 진행하겠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과학고의 교육과정은 일반고와는 다르다.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대학수준의 과학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방심했다간 첫 시험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될거다. 물론 어느정도 이미 학원에서 돌리고 왔겠지만 말이다.”
김영환은 학생들을 천천히 바라봤다. 몇몇 학생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대부분은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3주동안 과학고 수업과 동일하게 진행이 된다. 수학10-(가), (나)를 끝내고 기초 물리, 기초 화학 등 기초 과학들을 자체 교재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배치고사가 치러진다.”
“배치고사는 배웠던 내용들로 나오나요?”
“3주간 배웠던 내용과 중학교 수학이 함께 섞여 나오니 참고하도록.”
김영환의 말에 맨 앞에 앉아있던 안경 쓴 여학생이 급하게 필기를 시작했다.
“일과 수업이 끝난 후에는 과학고 선배들과 멘토-멘티 활동이 진행된다. 동아리, 각종 경진 대회, 시험 노하우 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들을 잘 알려줄 테니 알아서 잘 활용하도록.”
말을 마친 김민철이 시계를 봤다. 시계는 딱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쪼록 과학고에서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
김영환과의 인상 깊은 재회 끝에 나는 기숙사로 이동했다.
“우선 기숙사에 짐 푸시는 대로 바로 급식실로 오시면 됩니다~”
‘여기인가.’
기숙사는 크게 여자동과 남자동으로 구별되어 있었고 2인 1실로 운영되었다. 시설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지만 규율은 엄격했다.
“지금은 예외이지만 입학식 이후부터는 전자기기 소지시 벌점 20점입니다. 벌점 20점부터는 1주간 퇴사이고요.”
1주 퇴사. 대부분 서울에서 살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나로서는 치명적인 페널티였다. 당장 미성년자 혼자 숙소를 구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도어락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하얀 침대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앞으로 치열하게 공부하게 될 책상도.
‘다시 이 방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졸업하는 날, 혼자 침대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었다. 앞으로의 미래, 두려움, 걱정과 후회등이 쌓여 앞으로는 잘 살아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던 날들.
‘…이번 생에는 꼭 후회없이 살자.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캐리어에서 짐을 주섬주섬 풀었다. 어느정도 짐이 정리되어 가는 가운데,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안녕.”
문을 열고 들어온 남학생이 멋쩍게 인사했다. 사람이 먼저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쭈뼛거리는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빈 침대 옆에 짐을 두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 한번도?’
‘아…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왔던 거구나.’
세상의 모든 문제집과 각종 기출문제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문제뱅크라고 불리던 김진수. 그는 사교육이 만들어낸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과외랑 학원가야해서 바쁜데…혹시 대신 청소해주면 안 될까? 사례는 톡톡히 할게.’
‘이 문제 하나에 몇백만 원인지 알아? 돈 주고도 못 받는 문제라고!’
그리고 사교육이 만들어낸 괴물이기도 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던 김진수는 사교육이란 사교육을 다 받은 결과 의대 진학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교육이 통하던 입시 때와는 달리 의대에서 생활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본과 들어가고 유급을 반복하다가 결국 자퇴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까나.’
사교육으로 인해 스스로 공부할 힘을 잃어버린 김진수. 성격 자체가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기브 앤 테이크엔 최적화된 타입이었다.
‘자료 조사 대신 해주면 10. 거기에 발표 자료까지 만들어주면 10 더 얹어줄게.’
그 방식이 자본주의에 찌든 방식이었던 게 문제였지만.
과학고의 경우엔 대학 교재와 교사들이 만든 자체 교재들로 수업을 한다. 기본적인 내용들을 학습하는 데는 최적화되어있을지라도 결국 응용문제를 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사교육은 필요했다.
‘이번 생에서는 이 녀석을 잘 활용해보자.’
“안녕. 내 이름은 김만덕이야. 3주 동안 잘 부탁해.”
“어, 나는 김진수.. 나도 잘 부탁해.”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진수를 바라봤다. 아직 짐을 덜 푼 탓에 캐리어에서 이것저것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프링 제본된 책더미들을 한가득 꺼냈다.
‘저기에 배치고사 관련 문제들도 있겠지. 제일 좋은 건 과거의 기억으로 푸는 거지만…한계가 있다.’
아무리 내가 머리가 좋다고 해도 몇 년 전에 나왔던 시험문제를 모조리 기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의 실력으로 배치고사를 본다면 보충반에 들어갈 성적은 아니겠지만… 특별반에 들어갈 성적도 안 될 터였다.
특별반. 보충반과 상반되는 반으로 이 반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진행되는 특별 수업이다. 각종 대회 출전 자격 제공부터 장학금, 견학 및 체험, 해외 연수 등 다양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는 반.
‘꼭 이런 혜택이 아니더라도 내 이미지를 위해서 필요해.’
전생에 학생들에게 질타를 받았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자격이 없는데 들어온 놈’이라는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입학 당시에는 성적도 처참했기에 사냥감이 되기 딱 좋았다.
성적은 곧 권력. 공부 잘하는 놈이 대우 받는 유치하지만 잔인한 현실.
사배자 전형이든, 기초 생활 수급자든 간에 공부만 잘하면 받아들여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 성격이 개차반이 된 나는 스스로 받아들여지길 거부하긴 했지만, 어쨌든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 책들은 뭐야?”
“아 이거? 학원에서 이번에 따로 뽑아준 거야.”
제본된 프린트에는 ‘한국과고 배치고사 기출문제집’이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김진수가 눈치를 보며 자기 쪽으로 책을 잡아당겼다.
잠재적 경쟁자를 경계하는 모습.
전생 때의 내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녀석이 싫지만은 않았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책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서적들을 책상 위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영문판으로 된 학술지들을 책상 위로 쏟아놓자 김진우의 눈이 커다래졌다.
“너 이걸로 공부해?”
“아니? 그냥 읽는 건데?”
“영어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때 당시의 난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프나 그림 위주로 보거나 번역기를 돌려보는 정도.
하지만 어릴 적 이런 학술지들이 왜 그리 멋있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용돈을 모아 이런걸 구입하면서 지적 허영을 채우곤 했다.
‘물론 지금은 다 읽을 수 있지만 말이야.’
대학원생으로 굴려진 것만 10년이다. 그동안 영어로 된 논문을 찾고, 해석하고, 직접 영어로 논문 작성까지.
이미 내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김진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자신의 배치고사 문제집을 들춰보더니 내 학술지들과 비교하는 듯했다. 그리곤 무심한 척 말했다.
“근데 우리 학원쌤이 그랬는데 그런 거 다 시간 낭비래. 어차피 시험에 낼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 심화된 내용은 못 낸다던데? 그냥 문제나 여러 번 돌리는 게 나을걸?”
“난 딱히 시험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서. 그냥 재밌으니까 읽는 거지. 그리고 나중에 R&E 준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R&E. Research & Education의 줄임말로 팀 연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연구 주제를 정해 팀원들과 연구를 하는 것. 이때 지도 교사도 함께 연구에 참여한다.
대부분의 과고에선 중요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였다. 수능을 치지 않고 대학을 갈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스펙이기 때문이다.
R&E가 언급되자 김진수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차피 R&E는 학기 시작하고 진행되는 거 아니야? 지금부터 준비할 필요 있어?”
“브릿지 프로그램 일정 안 봤어? 이때 연구 주제를 미리 선정한 팀한테는 지도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던데.“
학생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지도 교사는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진행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걸 같이 돌파해주는 게 지도 교사의 몫이고.
한평생 어른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김진수에겐 지도 교사는 더없이 중요한 문제였다.
“너 어디 학원 다녀? 거기서 알려준 정보지?”
“나 학원 안 다니는데. 근데 정보는 믿을만한 사람한테 들은 거야.”
“누, 누구?”
‘출처는 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신뢰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졸업생한테 들은 거야.”
“거짓말. 내 주위에도 한국과고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아마 지금 시점에선 저 말이 사실일 것이다.
“올해부터 바뀔 거라고 하더라고. 학생들이 입학 후에 연구 주제를 정하니까 시험기간이다 대회다 뭐다 시간이 없어서 민원이 많았다고 해서.”
올해부터 달라진 탓에 학원가에서도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정보를 얻을 수조차 없었겠지.
김진수는 고민하는 듯했다. 그는 문제지와 학술지를 번갈아봤다.
원래 사람 심리란 나한테 없는 자료가 더 좋아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수십 번 읽어서 낡고 헤진 학술지는 어쩐지 그 모습만으로도 더 비밀스러워 보였다.
“…그거 나한테 팔래?”
김진수는 딜을 시작했다.
“내가 왜? 필요하면 너도 사.”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 뭔가 내가 모아둔 것들이 더 정리가 잘 된 것 같겠지. 중간중간에 메모해둔 것들도 분명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 걸 거고.
우물쭈물 말을 못 하던 김진수는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뒀던 문제집은 슬쩍 내 쪽으로 밀었다.
“그럼 우리 공유할래? 내꺼랑 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