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0화(30/221)
30. 과학의 날 (7)
30. 과학의 날 (7)
내가 뇌에 빠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랑만 단둘이 살던 내 삶에 손님이 잠시 찾아왔었다.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셔. 만덕이가 아주 애기때 한번 봤을텐데. 기억나니?’
‘움…기억이 안나요. 그러면 이제 할아버지랑 같이 사는거에요? 쭉?’
어머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계셨으리라.
“만덕아, 잠깐 엄마 밖에 나갔다 올테니까 할아버지랑 있어.”
“네에.”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언제나 방에만 계셨다. 오래된 텔레비전 볼륨을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틀어놓으시던 할아버지.
하지만 나는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집에 오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건 무슨 벌레에요?”
“거미여 거미. 아침 거미는 죽이면 안돼.”
“왜요?”
“겉으로 이래보여도 좋은 벌레여. 해충들을 다 잡아먹어주지.”
“와아!”
비록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할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으셨다. 궁금한 게 생길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곧잘 물어보곤 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있어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걸 알고 있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을은 왜 빨간색이에요?”
“…애비냐? 어디 갔다 이제 온 겨.”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온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내 볼을 쓸어주시더니 다시 잠에 드셨다.
그 날을 기점으로 할아버지의 행동이 달라졌다. 여전히 누워계신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예전처럼 무엇이든 답해주지 않으셨다. 알 수 없는 말을 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엄마. 할아버지 왜 저러시는거에요?”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그래.”
“어디가요? 몸이 아파요?”
“응. 몸이 아프셔. 특히 여기, 머리가 많이 아프시니까 만덕이가 잘 챙겨드려야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직전까지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아빠 이름을 불렀었다. 몇번이고 내 이름을 가르쳐 드려도,
할아버지의 기억엔 내가 더이상 없었다.
이토록 치매는 잔인한 병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게 하는, 백과사전 같던 할아버지를 순수한 종이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잔인한 병.
“만덕아. 진짜 이거 너 혼자서 연구한 거 맞니?”
연구실에 도착하자 박성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예전부터 연구하던 주제였어요.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올줄은 몰랐지만요.”
“왜 이렇게 담담한건데! 너 지금 너가 뭘 발견했는지 알아? 치매 치료에 한 획을 그은거나 마찬가지라고!”
박성민의 눈이 그 어느때보다 빛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씁쓸했다.
이 이후에 나는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흔히 우리가 치매라고 부르는 병의 일종이다. 1907년 최초로 연구가 발표된 이후로 이 병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여러가지 상관관계들을 파악해내고 있었지만 이미 어느정도 진행된 병을 회복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유전자 APOE4 변형 관련해서 기존에 연구한 논문이 있길래 거기서 추가로 연구해봤어요. 생활 습관이나 후천적 요인도 있겠지만 유전적 요인이 클 거라 생각했거든요.”
유전자의 위대함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가족력’이란 이유로 병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박성민은 아까보다 사뭇 진지해진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연구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연구 노트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세계 최고의 뇌과학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답게 그는 꼼꼼하게 내 노트를 읽어나갔다.
“인지 및 행동 부분은 콜린에스테라아자 억제제나 메만틴같은 약물로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완벽한 치료는 불가능해요.”
“유전적 요인으로 일어난 이상 유전자 자체를 갈아끼우지 않는 한 계속 재발될테니까.”
박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어요. 동아리 부장 선배가 연구하던 내용에서 힌트를 얻었거든요. CRISPR-Cas9 말이에요.”
CRISPR-Cas9. 김영재가 연구하던 유전자 편집 기술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후에 김영재가 이 방식을 발견하고 논문에 게재해. 그걸 보고 나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물론 연구를 진행하다가 팀 동료들에게 쫓겨나는 바람에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연구를 발표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네. 유전자 편집은 윤리적 문제가 많으니까요.”
“윤리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어. 그 유전자가 변인이라고 판단하고 잘라냈다가 돌이킬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다른 학문과 다르게 생물학은 얽히고 섥혀있는 것들이 많다. 단일관계라고 생각되었던 게 알고보니 이리저리 연관되어 있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모으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구를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윤리적인 문제를 논하기 전에 가능성은 일단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내용, 논문에 올릴거니?”
박성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논문에 올릴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데이터가 확보되긴 했지만 이정도로는 턱없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아직 부장 선배 연구가 끝이 안났어요.”
“부장이라면 전에 봤던 걔 말이지? 그 애 연구가 중요해?”
“네. 엄청요.”
원래 인과관계를 따진다면 김영재가 먼저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발표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발표해버린다면 김영재가 발견한 유전자 편집 기술까지 내 업적으로 돌아가버릴터였다.
‘단순히 도덕성 문제가 아니야. 김영재는 이후에도 유전 공학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내고 이건 뇌과학 분야를 순식간에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돼.’
지금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김영재의 모든 연구를 내가 다 기억하고 있지 않기도 했고.
“시냅스에 대한 연구도 수준급이야. 이게 정말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연구인지 의심스러운데. 당장이라도 너의 뇌를 꺼내서 연구해보고 싶을정도야.”
“하하…”
등 뒤로 오싹함이 느껴지는 걸 애써 부정하며 노트를 덮었다. 이후 박성민과 함께 실험하고 있던 내용들을 한번 더 이야기하고, 결과값들을 분석하면서 유의미한 데이터 확보에 힘을 썼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차에 타. 데려다줄게.”
“감사합니다.”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외제차에 타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연구소 앞에 얼쩡거리는 것도 신기한데 차까지 타다니. 이상하게 보일만했다.
“그럼 과학의 날 행사때 저 내용을 전시한다는거지?”
“네. 부장 선배꺼랑 같이요.”
“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네. 이게 바로 한국 교육의 힘이라는 건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동시에 두 명이 낼 수 있는거지?”
박성민과 친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그가 해외에서 대부분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생에는 박성민을 만날 일이 없었어. 아마 2학기가 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던 거겠지.’
운전대를 잡은 채 열심히 한국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박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 고등학교엔 왜 오신거에요? 그것도 물리 가르치시잖아요. 생물학이면 모를까.”
“응? 말 안했던가? 나 원래 전공 2개거든 생물, 물리.”
“그게 가능해요…?”
경악하며 박성민을 바라봤다. 물론 대단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생물 하나도 하기 벅찬데 물리까지 학위를 땄다고? 괴물이었다.
“하하, 뭐야. 진짜 괴물같은 녀석이 오히려 이런 반응이니까 머쓱한데. 근데 난 평범한 축이야. 어떤 놈은 전공 3개 따가는 녀석도 있어.”
“엄청나네요.”
“뭐 그건 그렇고. 고등학교 온 이유는 간단해. 흥미가 생겼거든. 분명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나름 상을 잘 타가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인데 또 국제적인 연구 성과에서 보면 애매하단 말이지.”
그래서 마침 한국에 온 김에 그 원인 좀 찾아보고자 한국 과고에 왔다는 박성민.
“천재에 대한 연구가 다 그 궁금증의 연장선인거지. 물론 너도 거기 포함이고. 아마 이번에 전시하고 나면 보는 사람 모두 다 나랑 같은 생각할거다. 자, 다 왔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뒤 차에서 내렸다.
과학의 날 행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
“찬서 형, 멀티탭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노트북 충전할 수 있게 준비해둬야 할 것 같아서요.”
“알았어. 또 뭐 필요한 건?”
“음…잠깐만요. 예슬이 누나, 부실에 뭐 두고 온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맞다! 내 틴트!”
부스를 준비하던 홍예슬이 번쩍 일어났다. 행사를 준비해며 부원들과 친해진 나는 선배 대신 형, 누나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만덕아. 안내문 행사장 입구에 두고 올게.”
“어, 현욱이 형. 제가 대신 두고 올게요.”
“아냐. 너 우리꺼 다 봐주느라 며칠째 잠도 못 잤잖아. 잠깐 쉬고 있어.”
방현욱은 양 손 가득 안내 책자를 들고 부스 밖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영재가 입을 열었다.
“아마 자기가 만든 안내문이라 더 애착이 가서 그러지 않을까?”
“현욱이 형이 만든 거에요?”
“응. 볼래?”
지금까지 부스 내용들에 집중하느라 안내문은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김영재가 건네 준 안내문을 보니 퀄리티가 남달랐다. 마치 진짜 과학박람회에서 사용될 것 같은 안내문 퀄리티에 놀라고 있는데 또다른 안내문을 내게 보여줬다.
“학교 자체에서 만든 건 이거.”
“음, 현욱이 형이 만든 걸 보고 봐서 그런가 좀 조잡하네요.”
“그렇지? 게다가 우리 부스는 설명도 제대로 안되어있어.”
“진짜 간결하네요. 그에 반해 뉴로 퓨쳐스는 엄청…화려하네요.”
뉴로퓨쳐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어떤 체험 활동을 하는지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체험하기엔 너무 어려워보이는 체험 내용들과 설명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화려하긴한데 별로 가고 싶지는 않네요. 재미없어보여요.”
“나중에 뇌과학 전공할 애가 그런 말 하면 안되는거 아니야?”
“여기 설명 보니까 딱히 뇌랑 관련된 것도 아닌걸요. 그냥 아는 거 자랑하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써 둔 거 같아요.”
내 말에 김영재가 빵 터졌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훔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태훈, 아니 거기 동아리 부장이 좀 그렇거든. 자기가 아는 거 자랑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지.”
“피곤한 성격이네요.”
“하하, 맞아. 진짜 피곤하다니까!”
그렇게 부장 선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행사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이 다가왔다. 급하게 틴트를 챙기고 온 홍예슬과 멀티탭을 주렁주렁 들고 온 최찬서, 그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안내문을 두고 온 방현욱이 뒤이어 도착했다.
우리는 강당에 모여 강단을 바라봤다. 교장 이철규가 정장을 입은 채로 걸어나왔다.
“자랑스러운 한국 과학고 학생 여러분, 오늘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밤잠을 설치며 준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한국 과학고의 과학에 대한 열정은 전세계 어느 학생들과 견주어 봐도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철규의 한국 과고 자부심을 들으며 그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딱 봐도 이 행사를 위해 먼길을 와 준 외부 인사들인 것 같았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한국창의재단 이사장인 한학수라든가, 불과 어제까지 봤던 박성민이라든가. 박성민은 강사 신분이 아닌 연구원 신분으로 왔는지 그의 앞 명패에는 ‘앨런뇌과학 연구소’ 라고 적혀있었다.
‘분명 출장 때문에 못 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지금 출장이 문제냐? 뇌과학계에 판도가 뒤흔들릴 수 있는 연구가 나온 마당에!’
박성민은 출장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이곳에 왔다. 대신 같이 오기로 했던 연구소장님은 급한 일 때문에 못 오게됐다고 하면서.
‘이렇게 보니까 또 사람이 달라보이네. 그나저나 외부 인사가 뭐이리 많…?’
그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전혀 상상도 못한 인물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왜 여기서 나와?’
앤드류 부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