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1화(31/221)
31. 과학의 날 (8)
31. 과학의 날 (8)
한국에서 제일 촉망받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과학의 날 행사인 만큼, 여러 귀빈들이 참석하곤 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봤을때도 서울대 교수라든가, 영재교육연구원팀의 원장이라든가.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오곤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자 이번 행사에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앤드류 부커 교수님입니다.”
“앤드류 부커? 그게 누군데?”
“뭐야. 외국인이야?”
이철규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뒤에 앉아있던 앤드류 부커가 자리에 일어나 가볍게 목례했다.
“부커 교수님의 경우엔 이번 수학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풀이하신 공로로 필즈상 수상자로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엄청난 업적을 인정받으신 분이십니다.”
“필즈상? 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와…?”
“누구 보러 온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여기 올 클라스가 아니잖아!”
학생들은 부커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일동 경악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과학고 학생들이라고 해도 필즈상 후보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부커를 바라봤다. 부커는 그런 시선을 즐기듯 미소를 짓더니 손을 흔들었다.
나를 향해.
순식간에 시선이 나로 향했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주목받는 것에는 면역이 없었기에 떨떠름한 미소로 화답했다.
“뭐야, 1학년인가?”
“야. 지금 저 사람 김만덕보고 손 흔든거 맞지?”
“여러분, 쟤가 제 친구입니다~~!”
멀찍이 서 있던 이인성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부끄러운 건 매 한가지였다.
어딜 내놓아도 부끄러운 친구…이지만 옆에 이인영이 등짝 스매싱을 연속으로 날리고 있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차례 이벤트가 끝나고 한숨을 돌리려는데, 옆에 있던 흐뭇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뭐, 뭔데요. 왜 그렇게 보는데요, 다들.”
“아니~ 그냥. 이번에 신입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에~”
“이제부터 너가 차기 부장이다.”
“부장 멀쩡히 있는데 뭔 소리야.”
김영재가 최찬서의 등짝을 가볍게 치자, 최찬서가 “아니, 그러니까. 차기 부장이라고. 차기 부장!” 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던 와중에 개회식은 끝이 났고, 다들 운동장에 설치된 각자의 부스 자리로 돌아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아직은 외부인들이 부스까지 도착하지 않았지만 불과 10분만 지나도 복작복작해 질 터였다. 출처는 내 전생.
동아리 부스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삽시간에 방문객들이 모여드는 곳은 바로, 이곳. 뇌생공이었다.
일부는 앤드류 부커 덕에 몰리는 것도 있었지만 방현욱의 안내 책자도 한몫했다.
“여기서 체험하면 뭐 준다던데?”
“체험 다 완료하고 도장 받으면 뽑기권을 준대.”
“여기 재밌겠다~ 다른데는 다 지루해보여.”
체험 부스답게 방문객들이 직접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부스들을 만들어둔 게 큰 성공요인이었다. 실제로 화려하게 부스를 4개나 만들어뒀던 뉴로 퓨쳐스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죄다 지루해보이는 논문들을 뽑아다가 진열해놓고, “의대 진학 관련해서 컨설팅해드립니다!” 라고 외쳐대고 있었으니까.
“저기는 무슨 과학의 날 행사때 입시 컨설팅을 하고 앉았냐.”
“애초에 부원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하는 동아리잖아요. 적성 살려서 하는거죠.”
“저럴거면서 부스 4개는 뭐하러 받았대.”
김영재는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오는 방문객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바쁘게 부스를 운영하는 가운데, 예상외의 재능을 보인 인물이 있었다.
“자자, 누나 하는거 봐봐? 이걸 이렇게 실에 끼운 다음에-”
“우와! 누나 짱!”
“어머, 이쁘게 잘 만들었네. 혹시 하나 더 만들어도 돼요?”
홍예슬이 엄청난 영업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원래도 이쁜 얼굴이긴 했지만 오늘은 화장을 평소보다 덜한 상태라 그런지 좀 더 참하고 단아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런 외모는 학부모님들에게 신뢰를 주는 듯 했다.
“어쩜,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겠어.”
“하하, 저 공부 못해요.”
“에이, 그래도 한국과고 학생인데!”
홍예슬의 성적을 대충 알고 있는 나로써는 그녀가 열심히 웃으며 손사래치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질 정도였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묘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전생에 홍예슬은 뭐하고 지냈으려나.’
아쉽게도 내 기억 속에 그녀는 없었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을 라이벌로 두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그녀는 내게 친구도 라이벌도 아니었다.
저기서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며 게임을 소개하는 최찬서도, 다양한 샘플을 들고 현미경 배율을 이리저리 조절하고 있는 방현욱도.
‘아마 전생이었다면 한심한 인생들이라고 무시했겠지. 과고까지 와서 인생을 낭비한다면서 말이야.’
“애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 좀 낯설다. 그치?”
“어. 형. 전시 준비는 다 끝났어요?”
“응. 안그래도 전시 부스에 이미 사람들이 많더라고. 이제 슬슬 우리도 가봐야 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동아리가 전시를 하는 건 아니었기에 전시를 희망한 동아리들은 간단한 발표 시간을 가져야했다. 소규모 R&E의 느낌이랄까.
끊임없이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상대하느라 바쁜 부원들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소강당으로 이동했다.
개회식이 이루어지던 대강당과 다르게 과학 전시가 이루어지는 소강당은 규모는 작았지만 그 안은 꽉 차 있었다. 평소에는 화이트 보드가 놓여있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문제를 적어놓고 토론하는 곳이기도 했고, 점심시간이면 이곳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지곤 했다.
물론 지금은 화이트보드를 한쪽에 밀어놓고 간이벽들을 통해 전시회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벽마다 동아리 이름과 전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샘플들도 이렇게 전시해두니까 뭔가 있어보이는걸요.”
“다 너 덕분이야. 나는 이런 거 배치하는데는 조금 어려웠는데 너가 알려준 방향대로 진열만 했을 뿐이거든. 대체 이런 센스는 어디서 배운거야?”
학부생 시절 여러 과학 전람회를 방문한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생이 되고서는 관련 분야의 전람회만 방문하는데 그쳤지만, 학부생때는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런 거까지 보러 와야하나.’ 하는 생각이 강했지만 돌이켜보면 여러 분야의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 이렇게 배치 감각도 생기고 말이다.
“Oh, this is genetic engineering. Let’s see. What’s the name of the club? (오, 여기는 유전 공학쪽인가요. 가만보자 동아리 이름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힘겹게 뇌생공을 발음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It’s short for brain biotechnology. Long time, no see. Professor Booker.(뇌생명공학의 줄임말입니다. 오랜만이에요. 부커 교수님.)”
“Mandeok!”
나를 발견한 부커가 환한 미소로 반겼다. 가볍게 포옹을 한 뒤 우리는 친숙하게 대화를 나눴다.
“어쩐일로 이곳에 오신거에요? 학회랑 세미나 준비때문에 바쁘시지 않으세요?”
“하하, 그래도 가끔은 휴식도 필요한 법이니까.”
멋쩍게 웃는 부커를 바라봤다. 대체 누가 휴식을 하러 한국까지 와서 과학 전시회를 보는지는 모르겠다만…일단 먼 길을 찾아와준 건 사실이었다.
“오! 그때 봤던 친구구만. 이름이 김만덕이었지? 교복입은 걸 보니 또 달라보이는구만.”
과학창의재단의 이사장 한학수가 반색을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여전히 유하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웠다.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에 김영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 부장 선배. 이쪽은 과학창의재단의 한학수 이사장님이시고요, 이쪽은 앤드류 부커 교수님인데 음, 그러니까 이번에-”
“아, 알고 있어…”
어라.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표정이 굳은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김영재는 이 둘을 알고 있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김영재에게 조용히 물었다.
“형. 혹시 이 두 분이 불편해요? 알던 사이였어요?”
“그럴리가 있겠냐! 나는 단지 그러니까, 윽. 이런 대단한 분들 앞에 있으니까 심장이 떨려서…”
김영재는 보기와 다르게 새가슴이었나보다. 단순히 이사장과 세계 7대 난제 해결자가 앞에 있을 뿐인…
‘긴장하는게 당연하네.’
새삼 그동안 내가 얼마나 거물급 인물들과 함께했는지 자각했다. 떨고 있는 김영재를 보더니 한학수가 눈매를 부드럽게 고치며 물었다.
“그래, 그래.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설명을 안 들을 수는 없겠지. 혹시 전시한 내용들 설명해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한학수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전시를 하겠다고 한 이유도 이런식으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으니까.
기연은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는다. 옷깃을 스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생기는 법이다.
“CRISPR-Cas9 is a technology to remove the genetic factors that cause it. Of course, there’s a huge risk of eliminating this gene…(CRISPR-Cas9를 이용하여 원인이 되는 유전인자를 제거하는 기술입니다. 물론 이 유전인자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큰 위험성이 있지만…)”
차근차근 내가 연구하던 주제를 설명했다. 물론 전생에 연구하던 내용이더라도 지금 현재로써 모두 밝혀낼 수는 없었다.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축적되지 않도록 미리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아 그 부분을 편집, 수정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특정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다라, 흥미롭군요. 선행 연구된 논문이 있습니까?”
“연구 중인 논문은 있습니다만, 치매 치료와 관련해서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네.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 중 베타-아밀로이드에 초점을…”
데이터 부족뿐만 아니라 기존 논문에서 배경 지식으로 사용되던 것들이 현재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내 이야기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해 가정으로 끝났다.
그러나 부커와 한학수는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저 고등학생이 하는 말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다.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쉬이 넘겨들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군. 꽤나 획기적인 발견이라 생각하는데 지도 교사는 누군가?”
“지도 교사는 따로 없습니다.”
“따로 없다고?”
한학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학수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은 부커 역시 짧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되물었다.
“이정도 연구를 진행하려면 어느정도 장비가 갖추어진 시설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대학교의 연구실정도 말입니다.”
“연구실은 운 좋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아시는 분께서 기꺼이 허락해주신 덕에요.”
“그럼 그 사람이 논문을 봐준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고등학생이 할 만한 논문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그때 뒤에서 박성민이 걸어왔다. 그는 이곳 저곳 끌려다녔는지 양 손 가득 팜플렛과 기념품들을 들고 있었다.
“어? 선생님!”
“얌마, 한참을 찾아다녔네. 그래 이게 그 준비한 전시구나. 연구실에 들락날락한 보람이 다 담겨있네.”
박성민이 흐뭇한 미소로 전시를 쓱 보고는 옆에 서있던 한학수와 부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고에서 특별반 강사로 재임중인 박성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과학창의재단의 이사장 한학수입니다. 지금 들어보니 김만덕 학생에게 연구실을 빌려주셨다고요?”
“네. 제가 지금은 강사로 있지만…”
품 속에서 명함을 꺼내 한학수에게 건네는 박성민. 한학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들더니 이윽고 눈이 커졌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앨런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뇌연구에서 권위를 가진 연구소 맞지요? 이런 분이 여기까지!”
하하, 큰 소리로 웃는 한학수는 옆에 있던 부커에게 박성민을 소개했다. 그러자 부커 역시 놀란 눈으로 대답했다.
“앨런이라면 저희 대학에서도 유명한 곳이지요. 많은 학생들이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밤낮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한 단계 진보하게 만드는 곳이라더군요.”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인류의 진보에 대해 요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곳에 온 이유라면?”
박성민은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온 나는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부디 나중에라도 내 뇌가 실험대에 올라가는 일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나저나 이제 전시 발표회가 시작될 것 같아서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긴장하지 말고!”
박성민은 친근하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한국 과학고의 과학 전시는 조금 특별하게 진행되었다. 기존의 체험 부스가 일반인들이 과학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춘것이라면, 과학 전시는 좀 더 전문적인 내용들을 다뤘다.
“전에 안내해드렸던 것처럼 동아리당 15분의 발표 시간이 주어집니다. 발표를 마친 후에는 청중들과 질의 응답시간이 있고요.”
소강당 옆 대기실으로 가자 전교회장을 맡고 있는 백상엽이 발표자들을 두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김영재를 포함한 8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준비는 이미 완벽하게 해뒀어.’
내가 연구해왔던 주제를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건 언제나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 떨림조차도 지금은 소중했다.
‘이렇게 내 연구를 가지고 누구 앞에서 발표를 해보는 게 얼마만의 일이지?’
대학원생을 그만두고 이쪽으론 쳐다도 안봤기에 그리우면서도 떨리는 일이었다. 대기자들이 한 명 한 명 줄어들고 앞에서 열심히 발표를 했다.
발표를 하다가 말이 꼬여버린 사람, 예상치 못한 질의 응답에 당황하다가 고개를 푹 숙인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모습들은 과거의 내 모습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뇌생공. 뇌생명공학 동아리의 발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나 즐겁다.
나는 강단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