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2화(32/221)
32. 과학의 날 (9)
32. 과학의 날 (9)
“네. 안 그래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
[어때? 분위기는?]“뭐. 늘 예전이랑 똑같죠.”
전시 발표회 청중석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여자의 이름은 백가영. 한국 과고 졸업생이자 KAIST 재학생이었다.
[근데 이번 특집에 쓸 만한 내용이 나오려나. 괜히 허탕치는 거면 어떡해?]“악! 말이 씨가 된다고요. 얼른 퉤퉤퉤 해요. 퉤퉤퉤!”
[퉤퉤퉤.]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열심히 침을 튀기며 뱉은 말을 취소했다. 미신이라면 학을 떼는 둘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번에 제대로 된 특집 기사 못 내면 수습 기자한테 자리 넘긴다하던데.]“헐. 그런 게 어딨어요? 수습에서 정기자 된 지 이제 한 학기밖에 안 되었는데?!”
[그만큼 문화부 애들이 일을 잘하니까…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를 잘 내잖냐.]백가영은 분한 듯이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치 있는 기사를 쓰는 것. 그래서 대학 졸업 후 과학 전문기자로 일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기도 했다.
어렵고 복잡한 과학 지식들은 바쁜 현대인에게 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기다 전문 용어로 범벅된 학회지는 더더욱 멀다.
‘과학을 좀 더 친숙하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임무 아니겠냐.’
글만 쓰면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홀라당 가입한 학부 신문사. 그러나 부장 선배의 말은 오래도록 그녀의 가슴속에 남았다. 이후 그녀의 진로를 통으로 흔들 정도로.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에 온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되었다.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신문사, ‘카이스트 신문’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구독해서 볼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쓰는 기사를 보고 주요 메이저 신문사에서 연락이 와서 좀 더 취재해 가곤 했다.
[동생이 거기 전교 회장이라며? 동생한테 뭐 없나 물어봐.]“과학고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겠죠 뭐.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재밌는 일은 없었어요.”
실제로 그녀가 학교 다니는 동안 재밌는 일은 손에 꼽았다. 급식실에 비둘기가 날아온 일, 마른 하늘에 우박이 떨어져서 선생님들 차가 다 찌그러진 일, 누가 고백했다가 차인 일…
그 당시에는 킬킬대며 웃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저 평범한 에피소드뿐이었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과고를 주제로 특집 기사 내는 거 썩 내키지는 않아요. 다들 한국과고에 대해 너무 과할 정도로 환상을 품고 있다니까요? 여기도 그냥 평범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인데.”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가보지 못했던 곳에 환상을 가지는 법이잖아. 그리고 솔직히 다른 고등학교에서 누가 그렇게 크게 행사를 하냐? 끽해야 하루하고 치우지. 어쨌든 사진이라도 잔뜩 찍어와.]백가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바로 전화를 끊은 취재 부장이었기에 백가영은 그저 꺼진 핸드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전시 보면서 생각하자.”
기자 생활을 하며 겪은 건 단순했다. 뭐라도 적고 있으면 나중에 뭐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안녕하십니까? 오늘 과학 전시 발표회 진행자를 맡게 된 백상엽입니다.”
훤칠한 키의 남학생이 강단 위로 올라와 프로그램 안내를 간략하게 했다. 백가영은 동생의 모습을 보며 과학고 시절을 회상했다.
한국과고. 꿈의 학교.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등학교 중에서 꿈의 학교일 뿐이다.
‘대학교 가고 나서야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인 걸 알았지. 그때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으니까.’
과학고에 있다보면 일반 고등학교와는 다른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받게 된다. 고등학생이 대학교에서 배우는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R&E도, 이런 전시 발표회도. 아마 저기 강단에 나와서 발표하는 사람 중에 의미 있는 내용은 사실 없을 것이다. 다 어디선가 연구를 끝낸 내용들일 것이다.
설령 자기들은 엄청난 발견을 했다고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글쎄.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가설은 첫 번째 발표자를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아리 뉴로 퓨쳐스의 부장 신태훈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저희 동아리에서 연구한 내용으로는…”
남학생은 열심히 ‘뇌와 오감’이라는 주제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실제로 시각적 자극을 줬을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 되는지 실험을 했었고, 감각이 중첩이 되었을 때는 어디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이라는 오감을 활성화하기 위해 저희 동아리는 다양한 자극 샘플군을 선정했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것은 시각 자극 샘플군으로, 보시는 것과 같이 색깔, 모양, 인물 등 다양하게 선정하였으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조금 엉성한 느낌이 들었다. 발표자 역시 발표를 하다가 말이 꼬이는지 감각과 실험 유형을 헷갈리곤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 때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딱 보니까 누구 거 베꼈네.’
이런 걸 기사에 실었다가는 모교 망신만 시키는 꼴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학생의 발표. 소재는 참신해 보였지만 역시나 이미 관련 내용으로 논문이 수십 개는 나와 있을 게 보였다. 애초에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실험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고, 나온 결괏값이 유의미한지도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한 명씩 발표를 마치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몇몇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과고라고 해서 좀 기대를 했는데… 역시 고등학생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괜찮은 내용들이었어요. 이때는 사실 내용보다는 이런 경험이 더 값진 게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이곳에 모인 분 중 꽤나 의외인 얼굴들이 몇 분 보이시네요.”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기자는 자고로 귀가 밝아야 하는 법이니까.
‘뭐야. 그러니까 지금 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라고?’
맨 앞에서 짙은 쥐색 양복을 입은 채로 앉아 있는 남자. 그리고 그의 옆에는 어떤 외국인이 앉아 있었는데 한국어가 서투른지 옆에서 번역을 해주고 있었다.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잠깐, 잠깐, 잠깐!’
순간 백가영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가 불과 하루 전에 봤던 기사 속 사진의 인물이었다.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풀어냈다는, 천재 수학자 앤드류 부커.
그가 이곳에 왜 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좋은 기회인 건 분명했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아니 과고에 오게 된 이유라도 짤막하게 알아낸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일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뇌생공 부장을 맡고 있는 김영재라고 합니다. 저희 동아리에서는 총 2개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유전 공학과 치매 치료입니다.”
강단에 선 학생은 긴장을 많이 한 게 느껴졌지만, 앞의 학생들처럼 엉성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본인이 직접 생각하고 실험했다는 게 느껴졌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실제로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중에서 CRISPR-Cas9 시스템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Cas9은 가위처럼 작용하는 효소로, DNA를 정밀하게 절단하고 편집합니다.”
김영재의 발표에 다른 청중들도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앞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백가영의 학교에서도 성황리에 연구되고 있는 주제로, 학부생 대상 세미나를 통해 이 분야로의 진출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표 역시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발표가 끝나고 많은 청중이 질문했다. 김영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까 고유한 DNA 서열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고유한 DNA 서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일부 박테리아와 고세균의 DNA에서 CRISPR라고 부르는 특별한 패턴이나 문자 시퀀스를 발견했습니다. 이건 일반적인 DNA 패턴과 달랐습니다.”
그는 옆에 보조로 있던 화이트보드에다가 패턴을 간략하게 묘사했다. 이 뒤에도 몇 번의 질문과 답이 오간 뒤에야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백가영은 이 발표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도 사진 찍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애가 발표하는 걸 중심으로 기사를 써야겠어. 굳이 특집이라고 해서 모든 발표를 담을 필요는 없으니까.’
혹시 몰라서 녹음을 해뒀지만 이걸 그대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발표자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도 했고 애초에 녹음을 한 목적도 기사를 쓸 때 참고하는 용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특집 기사의 개요와 구성을 생각해 낸 백가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사를 작성해 가기 시작했다.
‘일단 발표하고 있는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둔 다음에…아! 좀 있다가 인터뷰도 부탁해 봐야겠네. 혹시 저기 있는 자료 중 일부를 쓸 수 있으면 더 좋고.’
신태훈이 한 발표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마 많은 사람이 과고에 품고 있는 환상에 걸맞은 사람은 김영재일 거라 생각하며, 그녀는 키보드를 경쾌하게 놀렸다.
그렇게 몰입한 상태로 정신없이 써 내려가는데,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목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뇌생공 부원 김만덕입니다. 저는 치매 치료를 주제로 연구했습니다.”
강단에 선 남학생은 꽤나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꾸미진 않았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외모보다도 시선을 끄는 건 태도였다.
여유롭지만 적당히 긴장하고 있는 듯한 제스쳐와 목소리는 청중들이 그에게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백가영도 키보드를 치던 손을 떼고 눈앞의 발표자를 쳐다볼 정도였으니까.
“우선 APOE 유전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포지단백질(APOE) 유전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이 유전자에는 세 가지 일반적인 변종이 있습니다. 그 중 APOE ε4는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반면, APOE ε2는 보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김만덕은 화면에 PPT를 띄운 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자신이 설계했던 실험을 제시하며 실험 데이터를 해석했다.
고등학생 수준이 아닌 대학교, 그것도 석박 준비하는 사람이 할 만한 내용을 가지고 발표를 진행하니 사람들의 표정에서 당황한 게 느껴졌다.
“저게 고등학생이 밝혀낼 수 있는 내용입니까? 어디 논문을 보고 베낀 거겠죠?”
“아무래도 그런 거겠죠. 애초에 저 주제를 가지고 실험을 하려면 대학 병원급의 기관이 딸려 있는 연구소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걸요. MRI 촬영도 한 거 보십쇼.”
사람들이 동요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MRI 기계는 한 대당 11억이 넘는다. 거기다 관리 비용도 10억 이상. 한마디로 학생들의 수준에서 살 수 없는 기계였다.
‘물론 집안이 엄청 빵빵하면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기계를 개인적으로 구매할 순 없을 거고. 아니면 인맥이 좋나? 그것도 아니면 진짜 논문 베끼기?’
하지만 백가영 역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 소식에 대해선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설령 전공 시간에 다룬 게 아니더라도 매주 특종을 가지고 오는 신문사 특성상 최신 트렌드라면 꿰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동요를 김만덕은 예상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사람들이 진정되길 기다린 후 능숙하게 뒤의 내용에 관한 발표를 이어나갔다.
“아밀로이드 연쇄 가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뇌의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이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요인인 것으로······”
그가 제시한 화면에는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 단백질’이라고 표시된 분홍색 영역이 눈에 띄게 감소되어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지금까지 술렁이던 사람들이 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학생은 이곳에 있을 인재가 아니었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발견을 한 상황일 수도 있었기에.
백가영은 가지고 온 카메라를 들었다. 눈앞의 학생 사진을 연속으로 찍다가, 이윽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차라리 캠코더를 들고 올 걸, 이라는 생각이 미쳤지만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쏟아지는 질의응답에도 능숙하게 답변하는 모습. 수준 높은 발표 실력과 연구 내용.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질의응답까지 모든 발표가 마무리된 후, 그녀는 홀린 듯이 기사를 취재부장에게 보냈다.
원래라면 발표자에게 허락을 받고 그래야겠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빨리 이 보물을 발견했다고, 드디어 가치있는 기사, 아니 세상을 바꿀 기사를 썼다고 알리고 싶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핸드폰 액정 위로 [취재부장] 이라는 글씨가 떴다. 백가영은 전화를 받았다.
[야. 이거 내용은 좋은데 사실 관계 확인된 거 맞냐? 겉은 번지르르하고 실제로 실험한 거 보면 데이터 조작하거나 그런 걸 수도 있어.]“선배. 저 생물학 전공이잖아요. 촉이 와요. 촉이!”
[전공이라해도 아직 학사 나부랭이면서 무슨. 괜히 이거 올렸다가 욕먹으면 감당 안 돼. 기각.]“아 선배!”
백가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연구는 어떤 식으로든 가치가 있을 거고, 지금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리고, 알려서. 더 연구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일을 더 가치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선배. 잘 생각해 봐요. 만약 저 학생이 한 말이 사실이면…”
[사실이면?]“저희가 최초로 보도한 사람들이 되는 거라니까요? 최초로! 그것도 세계 최초!”
백가영은 일부러 최초라는 말만 3번 반복했다. 언론인들에게 최초 보도, 단독 보도는 특별했기에.
취재부장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고민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오보를 낼 수도 있는 상황. 그랬다가는 신문사의 신뢰도가 깎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카이스트 신문. 학부생들과 외부인들에게 실낱같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게 아닐까?
[…통과.]“예쓰!!!!”
[그 대신! 인터뷰 꼭 따와.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지도 교사랑 참고 논문, 연구 노트 뭐 그런 거까지 싹 다 조사해오고.]“네!”
백가영은 싱글벙글 미소를 띤 채로 김만덕을 향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