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3화(33/221)
33. R&E (1)
33. R&E (1)
“중간고사 성적 나왔다.”
박민철의 말에 학생들 모두가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시험을 친 지는 꽤 되었지만 서술형 평가 채점과 이의제기 신청 기간까지 고려하면 성적이 나오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성적을 알고 있었다. 서술형처럼 부분 점수가 있지 않는 한, 객관식 문제는 시험 당일 바로바로 채점했으니까.
박민철은 번호순으로 성적표를 나눠줬다. 그러나 성적표에는 과목별 등수만 나와 있을 뿐 전교 등수나 반 등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등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국어: 2/120수학: 1/120
영어: 1/120
물리: 2/120
화학: 1/120
생명과학: 1/120
지구과학: 2/120]
‘못해도 전교 2등.’
금성 장학생으로 뽑히려면 전교 1등이 안정권이었지만, 전교 2등도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올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네.’
높은 확률로 서술형에서 감점된 것 같았다. 대학 학부생 시절 때 배운 공식을 은연중에 사용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전생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전생의 난 전교 꼴등이었으니까.
“배치고사 때도 말했듯이 우리 학교는 반 등수를 비롯한 전교 등수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박민철이 반 학생들을 쳐다봤다. 나와도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 채 말했다.
“전교 1등은 공개한다.”
전생에도 박민철은 전교 1등은 모두에게 공개했었다. 이미 알고 있던 나는 놀란 기색 없이 무표정으로 있었다.
“나는 경쟁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라이벌이 있기에 서로 성장할 수도 있는 법이지.”
실제로 등수를 알려주는 걸 법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박민철은 전교생 등수를 뽑아 복도에 게시했다고 한다.
전생의 나는 전교 1등은 커녕 전교 꼴등이었기에 오히려 1등으로 공개되는 아이를 부러워했다. 그래, 지금 내 앞에서 고고하게 앉아있는 저 여자애를 부러워했다.
“보나마나 최한별이겠지.”
“쟤 전 과목에서 틀린 거 손에 꼽는다며? 애초에 배치고사 1등이 쟤 아니야?”
“공개하나 마나인 정보네.”
박민철의 말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선망과 동경의 눈빛을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질투 같은 걸 하기엔 그녀는 급이 달랐다.
중학생 때도 단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 없다는 최한별. 배치고사에서도 1등을 한 그녀가 중간고사 때도 1등의 주인공일 거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시선과 다르게 박민철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최한별을 보는 건가 싶었는데 어째 시선이 내 앞이 아니라 나다.
‘뭐야, 뭔데.’
“김만덕.”
“네?”
“축하한다.”
“?”
순간 벙찐 상태로 박민철을 바라보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지금 김만덕이 전교 1등이라고?”
“나 지금 교과서로 공부하는 애한테 밀린 거야?”
“천재는 천재구나…”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나왔다. 부러움, 질투, 선망, 시기 등 다양한 감정과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누구는 모두가 들리도록 부러운 마음을 쏟아냈고, 누구는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목소리로 질투의 말을 던졌다.
박민철은 반에 커다란 폭탄을 던져둔 채 종례를 마쳤다. 그리고 박민철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이들이 내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너 진짜 대단하다. 학원 어디 다녀?”
”야. 얘 학원 안 다니는 거 몰라? 그보다 만덕아, R&E 팀원은 꾸렸어? 나랑 같이 안 할래?”
“만덕아 이번에 너희 과학 부스 갔었는데 너무 재밌더라. 너 아이디어야?”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들에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싸이월드 소동 때문에 내가 기생수, 그러니까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아이들은 나와 같은 팀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새삼 전교 1등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체감되었다.
학교에서 ‘전교 1등’ 타이틀은 많은 것들을 무력화할 수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라는 핸디캡마저도 사라지게 했다.
“나랑 같이 팀하자! 나도 생물학쪽으로 연구하려고 하던 참이었-?”
그때 열심히 어필하던 남학생이 순간 말을 멈췄다. 누군가를 보고 겁에 질린듯 주춤핬다.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익숙한 표정으로 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인영이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순간 전에 전화로 이인영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너 나랑 R&E 하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어, 어.’
‘오케이, 됐어.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선뜻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래서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거고.
“아니면 오늘 방과 후에 잠깐 이야기 좀-”
“미안. 근데 나 같이 연구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어? 누군데? 그럼 나도 껴주면 안 될까? 두 명이서 연구하면 힘들잖아.”
남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그만큼 R&E는 중요했다.
R&E(Research & Education)는 과학고에서 진행되는 활동 중 단연 꽃이었다. 많은 학생이 사실상 학교 내에서 진행한 R&E 내용으로 인정받아 대학을 가곤 했다.
과고나 외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는 정시보다는 수시로 대학을 가는 비율이 높았다. 그만큼 학생들은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더 적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이 R&E를 시험과 수행평가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고, 시험 성적이 애매한 학생들일수록 오히려 여기에 매달렸다.
남학생은 내가 누구와 팀이어도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열심히 자신의 이용 가치를 PR하기에 담백하게 말했다.
“인영이랑 같이 하기로 했어서.”
“어? 이인영?”
“응. 학기 초부터 이미 정해뒀던 거라서. 만약 괜찮다면-”
“아, 아냐. 생각해보니까 나도 같이 하기로 한 애들이 있었던 것 같네? 하핫.”
남학생이 멋쩍게 웃으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이인성이 소리내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얼굴이 빨개져 나중엔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핰, 하. 진짜 개웃기네. 야. 니 성격 개차반이어서 애들이 다 너 피한다.”
“닥쳐.”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면 얼마나 좋-악! 꼬집지 말라고!”
이인영이 이인성의 팔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꽤나 폭력적인 모습에 모여있던 아이들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학기 초 이인영의 이미지가 ‘말수가 적은 미소녀’같은 느낌이었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이미지는 좀 달라져 있었다.
‘인영이? 나쁜 애는 아닌데 무섭다고 해야하나.’
‘팩폭을 당하는데 다 맞는 말이어서 아파. 반박할 수 없어서 더 아파. 악의가 없는 게 느껴져서 진짜 아파.’
‘아무래도 먼저 다가가기엔 조금 어렵지?’
오죽하면 이인영의 별명이 도축업자였다. 하도 팩트로 때려서 순살로 만들어 버린다고.
이인영은 그런 주변 분위기를 느꼈는지 애써 티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굳이 전에 한 말 때문에 나랑 R&E 하려는 거면 안 해도 돼. 뭣하면 얘랑 하면 되는거고.”
“나? 나는 너랑 안 할 건데요? 내가 미쳤다고 너랑 같이 R&E를 하겠냐-악! 진짜 그만 꼬집으라고!”
옆에서 깐족대는 이인성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이인성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인영은 연신 ‘혼자 연구해도 괜찮아.’, ‘어차피 혼자서 연구하려고 했어.’, ‘생각해 보니 굳이 팀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라며 혼잣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전생 때 이인영의 팀은 1위를 한다. 무려 대상. 이인성이 특유의 말재간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면, 이인영은 오로지 연구로 인정받아 얻은 상이었다.
‘R&E 발표가 끝나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지. 나중에 알고 보니 연구도 혼자서 다 준비한 거였고.’
그녀 성격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적잖이 어려웠을 거다. 지금도 이렇게 같이 팀 하자고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가 없다고 해도 R&E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그녀가 했던 연구를 내가 한 것처럼 적당히 꾸며내 발표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같이 하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나?”
“어, 어? 우리가 그랬었나?”
“응. 너가 전화로도 말해줬잖아.”
내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걸 알게 된 날. 이인영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무심하게 R&E에 대해서만 물었다.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내가 같은 팀을 안 하겠다고 하면 화를 낼 것처럼.
“나는 너랑 같이 하고 싶은데. 물론 싫으면 어쩔 수 없고.”
“!”
이인성을 꼬집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그녀는 여전히 고양이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나랑 하고 싶은 건데? 나 너보다 화학 못하는데도?”
가만 보니 이번에도 화학 1등을 못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이 떨어져 R&E하자고 말도 못 한 모양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너가 연구한 내용이 1등할거니까.’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애 취급하면서 이인영 쪽에서 밀어낼 가능성도 컸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이미 전생을 통해 수상작의 내용들을 알고 있는 내가 굳이 이인영이랑 R&E를 하려는 이유.
혼자서도 해도 대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랑 팀을 하려는 이유.
아. 그래. 나는 활짝 웃으며 이인영을 바라봤다.
“친구잖아.”
“어?”
“별이유 없는데. 그냥 원래 친구끼리 같이 팀 하고 그런 거 아닌가?”
“뭐야! 그럼 나는? 나는 친구 아니야?!”
“넌 이미 팀 정했다며.”
“그건 맞지만-!”
옆에서 이인성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칭얼댔다. 거머리처럼 계속 “친구, 친구잖아~”라고 말하는 탓에 목덜미가 좀 뜨거워졌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머쓱해진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서 자습실로 향했고, 그 탓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린 이인영을 눈치챌 수 없었다.
*
이인영과 R&E를 하기로 확정하고 나서 머지않아 우리는 큰 관문에 부딪혔다.
‘지도교사 선정.’
사실 석사를 거쳐 박사 과정까지 지내오던 내게 지도 교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사실상 연구의 방향성부터 시작해 어떻게 보면 졸업을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도 전적으로 지도 교수에게 달려있었고, 자칫하면 박사 과정만 10년 넘게 한 사람도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과고에서 진행하는 지도 교사는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기간도 정해져있고, 교사의 조언이 크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과학 분야에 대해 고집이 있는 과고 학생들이었기에 지도 교사의 말을 듣고 일부를 수정하는 일은 있어도 갈아엎는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나는 황대문 교수의 호출을 받아 그의 개인 연구실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충 무슨 내용일지 감이 오긴 한다만…’
과학 전시 발표회 이후 한 여자가 다가왔었다.
‘안녕하세요? 카이스트 신문의 취재부 백가영 기자입니다.’
그녀는 명함까지 내게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미는 손이 묘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전시한 내용을 신문에 싣고 싶다, 이건 뇌과학 아니 생물학 전체에서 역사적인 발견이다, 진짜 고등학생이 맞냐는 그녀의 질문에 떨떠름하게 “예…”라고 대답했다.
‘카이스트 홍보팀이 온다는 말은 있었어도 그게 기자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러나 거절할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대학 신문정도면 큰 부담도 없었다. 적절하게 나를 PR할 방법으로 최고였으니까.
그런데 그 신문 내용이 황대문에게까지 흘러 들어간 상황이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과학 전시 기간에 불참했던 그는 뒤늦게 기사를 통해 내 연구를 확인했고,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그의 개인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R&E 연구 주제는 신문에 난 걸로 계속 갈거냐?”
“아뇨. 다른 주제로 하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아무래도 실험값이 더 나오려면 한학기로는 부족하니까. 그럼 뭐로 하려고? 유전 형질? 염색체?”
당연히 생물학쪽으로 연구를 할 거라 생각한 그의 앞에 나는 한차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말해야만 했다.
“그래핀이요.”
“그, 뭐?”
황대문이 되물었다.
“그래핀? 그 테이프로 흑연 떼어낸 그거 말이냐?”
“네.”
황대문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몇 번이고 되물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변함없었다. 물론 생물학이 제일 좋고, 앞으로의 연구 대부분은 생물학에 쏟아부을 거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회귀한 그 순간부터 정해놓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황대문은 끈질기게 회유를 시도했다. 혹시 생물학이 싫어졌냐, 물리 쪽이 좀 더 관심이 가더냐…설마 담임이 꼬드기더냐-나는 모든 질문에 “아니요.”, “전혀요.”, “그럴리가요.”로 대답했다.
“그럼 대체 왜 그래핀을 연구하려는 거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끈질기게 회유를 했지만 실패한 황대문은 결국 내 말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그의 연구실을 빠져나오며 나는 전생을 떠올렸다.
단순히 전생에서 대상을 받았던 주제여서 그래핀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주제로 연구를 해도 대상을 받을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있다.
하지만 이번 R&E는 조금 특별했다. 정확히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찾아온다.
복도에 붙어있는 R&E 발표회 홍보 포스터를 바라봤다. 일정과 연구 주제 및 심사 기준, 평가 배점 등…빼곡하게 적혀있는 내용 가운데 가장 아래 선명하게 적혀있는 글자를 보았다.
[후원]이례적으로 올해 R&E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다. 아니, 올해를 기점으로 쭉 기업의 후원을 받게된다.
그 기업의 마음을 통째로 빼앗아버린 연구를 한국과고에서 해냈기 때문에.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지나갔다. 포스터 맨 아래 줄줄이 써있는 기업 중 선명하게 써져 있는 ‘삼성’ 글자를 손으로 가리키면서.